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9.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나비 날개들 위의 연필 선 하나하나에서 시작된 탐색과 사색 이야기
"나비 날개들 위의 연필 선 하나하나에서 시작된 탐색과 사색 이야기" 내용보기
절판이 되어 매우 아쉬운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비는 호랑나비, 배추흰나비 정도인데. 나비의 종류도 나비의 습성도 이렇다나 다양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자연, 생태계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서울숲에 있는 나비정원을 나비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생명의 경계선은 이익을 쥔 사람들에 의해 왜
"나비 날개들 위의 연필 선 하나하나에서 시작된 탐색과 사색 이야기" 내용보기
절판이 되어 매우 아쉬운 책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비는 호랑나비, 배추흰나비 정도인데. 나비의 종류도 나비의 습성도 이렇다나 다양하고 아름다울 수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자연, 생태계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다. 서울숲에 있는 나비정원을 나비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싶다.
 
생명의 경계선은 이익을 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어 살인과 자살의 예리한 검이 되었다. (p.59)
나비에게도 모성이 느껴지는 대목들은 조금 놀랐다. 인간만이 지니는 모성이 아니었음을. 그런데 또 짠하다.

도시로 와서 번식하는 암나비들은 알을 배에 가득 품고 날아다니다가 산란할 곳을 찾지 못하고 기운이 소진되어 죽는다고 한다. 먹이풀을 찾지 못한 채 아무 곳에나 산란한다면 유충들이 굶어 죽을 테니 말이다. 나비들이 대지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생존의 터를 그토록 고집스럽게 지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p.67)
AI로 인해 기술이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어떻게 진화를 하는지, 직각을 유난히 사랑하는 인간들이 유연성 있는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스게보겔은 기술 진보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연의 기술은 더디게 발전하고 인공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한다는 것이다. 자연계는 보수적인 설계사 같아서 돌연변이 출현 후 도태를 통해 진화하는 반면, 효율성을 신봉하는 인간은 실패를 예측해 미리 위험을 피하고 시행착오를 줄인다. (p.111)
누구나 쓸 수 있고 그릴 수 있다는 작가의 마지막 문장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연필 선 하나로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느끼게 해 준 책이다.

누구나 쓸 수 있고, 그릴 수 있다. 모든 탐색과 사색이 이 나비 날개들 위의 연필 선 하나하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p.215)

YES마니아 : 로얄 s*******n 2024.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나비 탐미기)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나비 탐미기)" 내용보기
숲책 읽기 114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나비 탐미기 우밍이 글·그림·사진 허유영 옮김 시루 펴냄, 2016.7.19. 14000원  나비가 알 낳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애벌레가 번데기를 튼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번데기를 벗고서 깨어나는 나비를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다만, 알을 낳든 번데기를 틀든 나비로 깨어나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나비 탐미기)" 내용보기
숲책 읽기 114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 나비 탐미기
 우밍이 글·그림·사진
 허유영 옮김
 시루 펴냄, 2016.7.19. 14000원


  나비가 알 낳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애벌레가 번데기를 튼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번데기를 벗고서 깨어나는 나비를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다만, 알을 낳든 번데기를 틀든 나비로 깨어나든, 동영상이 아닌 맨눈으로 코앞에서 지켜보기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요즘 나는 나비를 관찰할 때 그림을 그려 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나비를 상품으로 여기면 마음속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고 시장 논리에 따라 판매할 것이고 … 우리가 나비라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것을 내적 가치를 지닌 특별한 생명으로 여긴다면 오직 거래, 수집, 연구 수단으로 나비를 잡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11쪽)


  마당에서 나비를 지켜보며 놀던 큰아이가 ‘나비 알낳기’를 처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좀처럼 ‘나비 알낳기’를 못 보았어요. 어쩌면 느긋하게 살펴보지 못한 탓에 못 알아보았을 수 있어요. 다른 놀이가 더 재미있어서 나비 날갯짓에 숨은 뜻을 몰랐을 수 있고요.

  우리 집에서 깨어나는 나비가 몇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파란띠제비나비 한 마리가 후박나무하고 초피나무 사이를 매우 잰 날갯짓으로 넘나들었습니다. 큰아이는 이런 잰 날갯짓을 궁금해 하면서 한참 지켜보았고, 나비가 문득문득 스치듯 지나간 자리마다 작은 알이 하나씩 남은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관람객들은 여과지도 붙이지 않은 손전등을 반딧불에 마구 비추어대고 주전부리를 손에 든 채로 전시관을 어슬렁거린다. 그들 중 반딧불과 진정 교감하려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왕얼룩나비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에겐 그저 남에게 뽐내기 위한 종이 한 장일 뿐이다. (27쪽)


  나비가 낳은 알을 처음으로 알아본 큰아이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온 식구를 부릅니다. 여기에 알이 있고 저기에 알이 있다면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알을 쳐다보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알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슬픈 낯빛인 큰아이를 달래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나비가 왜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는 줄 아니?” “아니. 몰라.” “그러면 생각해 보자. 나비가 나뭇잎 하나에 모든 알을 다 낳았어. 그런데 이 나뭇잎이 똑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알은 다 죽어?” “그래. 다 죽지. 그래서 나비는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아. 그렇게 온갖 잎마다 알을 하나만 낳으려고 매우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면서 알을 낳을 만한 잎을 살피지.” “그렇구나.” “네가 찾아낸 알은 어쩌면 다른 벌레가 먹이로 삼았을 수 있어. 그렇지만 모든 알이 다 벌레먹이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우리가 못 본 자리에는 틀림없이 나비가 낳은 알이 살아남았을 테니까.”


나는 배추흰나비를 잃어버린 밭두렁에서 채소들이 얼마나 외롭게 자랄지 상상할 수 없었다. (45쪽)

래리가 말했다. “올해 설에 저어새를 보러 갔는데, 가는 도중에 길가에 노점상이 많았어.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 주변에 가 보니 저어새 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있더라니까. 빈난공업단지, 툰텍스화학단지, 메이능저수지가 전부 완공되면 그 노점상들이 저어새 기념 머그잔이나 연노랑나비티셔츠, 가방 같은 걸 팔게 되겠지.” (71∼72쪽)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지난 2000년에 《나비 탐미기》(시루 펴냄)를 썼다고 해요. 이 책이 2016년에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나비 전시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비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가를 지켜보았고, 전시관장은 나비를 언제나 한낱 돈푼으로만 여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대만 곳곳을 누비면서 나비를 살필 적마다 대만이 일제강점기였을 적에 일본 학자가 얼마나 대만 나비를 꼼꼼히 살펴서 적바림했는가를 새삼스레 느꼈다고 합니다.

  한국도 대만하고 엇비슷합니다. 한국 나비를 놓고도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깊고 넓게 살폈어요. 한국 사회는 그무렵 식민지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비 한살이를 눈여겨보거나 아끼는 손길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날개를 펼치면 10cm도 넘는 그 거대한 나비를 어째서 보지 못하는 걸까? 온몸이 검은 그 나비를 밤낮이 바뀐 아둔한 박쥐로 오인해서일까? 아니면 먹색 날개를 가진 새로 착각해서일까? 어쩌면 눈을 크게 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92쪽)

나비들과 사귄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또는 소풍을 즐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나들이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103쪽)


  여름이 저무는 즈음 시골마다 뻥 뻥 하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집니다. 총을 쏘는 소리입니다. 노루가 밭으로 들어온다면서 이 마을이나 저 마을이나 총을 쏩니다. 총알을 재워서 쏘는지 빈 총으로 소리로만 쏘는지 모르나, 아침 일찍 뻥 뻥 소리가 나고, 해질 무렵까지 이 소리가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어린이나 젊은이는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니 밭 언저리에서 총을 하루 내내 쏠 수 있구나 싶습니다. 마을에 어린이나 아기가 산다면, 또 젊은이가 북적거린다면, 노루나 멧돼지가 밭에 드나든다고 해서 함부로 총소리를 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노루를 미워하며 총소리를 내는 시골에서는 나비도 몹시 싫어합니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애벌레일 적에 잎을 얼마나 갉아먹느냐면서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기에, 나비는 수없이 많은 ‘열매 꽃가루받이’를 해내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자리에 맺는 꽃마다 살포시 앉아서 꽃가루를 조금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살뜰히 해 줍니다.


그 후 일본군은 계획적으로 숲을 죽이고 철거하고 운반했으며 그 증거로 나무 처형장으로 향하는 철도와 도로를 남기고 떠났다. 뒤이어 들이닥친 국민당 정부는 산맥과 강을 독살하고 마구잡이로 갈라놓았다. 산소와 하늘은 재벌들에게 독점당하고 재벌들은 그 대가로 몇 푼 안 되는 이자를 내놓으며 스스로 해친 땅을 ‘보호하는’ 자비를 베풀었다. (128쪽)


  나비는 그저 겉보기로만 날갯짓이 고운 목숨일까요? 나비가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요? 나비 애벌레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까요? 오직 사람만 있고 벌도 나비도 잠자리도 새도 사라져야 할까요?

  《나비 탐미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말썽거리가 터졌다 하면 닭이고 달걀이고 수십만 수백만 목숨이 땅에 묻혀서 죽어야 하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알맞게 먹고 나누는 사회보다는 더 돈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나비 탐미기》를 쓴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잠자리채를 안 쓰려 한다고 합니다. 사진기조차 안 챙기려 한다고 합니다. 나비를 지켜보거나 살필 적에 오로지 두 눈으로 살피면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하면서 더딘 길을 가는 셈이겠지요. 잠자리채로 낚아채면 더 가까이에서 손으로 쥐면서 지켜볼 수 있을 텐데, 나비를 따라서 숲을 헤매고 온 골짜기를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사진기로 찍어 놓으면 그림 그리기가 한결 수월할 테지만,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한참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들(나비)의 엄지손가락만 한 문신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처럼 지면에 닿을 듯 가깝게 엎드려 아주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며 눈을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야성적인 붓터치이자 생명의 먹물이 퍼진 모습이다. (156쪽)

세잔 작품의 복제품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 실력이 세잔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것은 영혼을 선과 색채 속에 가두어버린 그림일 뿐이다. 황세줄나비도 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경치다. (31쪽)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은 모습을 지켜본 뒤, 오래오래 들여다본 다음, 즐겁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비가 어떻게 날갯짓을 하며 알을 낳는지 그리고, 나비가 알을 낳은 잎을 그렸어요. 아이는 마음에 담은 우리 집 나비를 그림으로 옮겨서 앞으로 새로운 목숨(애벌레)이 깨어나서 즐겁게 잎을 갉다가 번데기를 틀고, 바야흐로 고운 나비가 다시금 태어나기를 꿈꿉니다.

  나비를 그림으로 담으면서 나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지를 생각합니다. 나비를 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웃인지를 헤아립니다.

  그림에 담으려고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그림으로만 담을 생각이기에 억지로 잡지 않습니다. 그림에 담고 싶기에 나비 날갯짓을 따라서 함께 들길이나 숲을 달립니다. 그림으로 담은 뒤에는 따뜻한 눈길로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우리가 나비뿐 아니라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싶습니다. 기쁨도 평화도 사랑도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바라보는 눈길에서 피어나리라 봅니다. 2017.8.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h*******e 2017.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에세이/곤충] 나비 탐미기
"[에세이/곤충] 나비 탐미기" 내용보기
나비를 통해 인간들의 군상을 이야기하는 <나비 탐미기>는 여는 글에서 이 책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뭐랄까. 나비를 통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다는 느낌. 저자의 감수성이 전해져 그의 이야기가 따뜻하다."나비 탐미는 나비와 '사랑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짝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연연하고 그 속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지
"[에세이/곤충] 나비 탐미기" 내용보기

 

나비를 통해 인간들의 군상을 이야기하는 <나비 탐미기>는 여는 글에서 이 책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뭐랄까. 나비를 통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다는 느낌. 저자의 감수성이 전해져 그의 이야기가 따뜻하다.

"나비 탐미는 나비와 '사랑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짝사랑에 빠진 사람은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에 연연하고 그 속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지 추측한다. 나도 나비를 만날 때마다 흥분과 수줍음에 가슴이 설렌다." 13쪽

저자는 왕 얼룩 나비를 10평 남짓 되는 전시관에 가둬 놓고 조몰락 거리는 인간의 만행을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심정을 절절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나비에 관한 탐미적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내용의 깊이가 다르다. 마치 나비와 식물도감 정도의 학술적 이해와 디테일한 그림이 아마추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다. 약간 아쉬움이 있다면 그림과 해설을 보며 머릿속에서 나풀거리는 나비의 모습과는 달리 컬러가 덧입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려한 나비의 모습에 본연의 모습대로 컬러풀한 모습이었다면 어땠을까. 맨 마지막에 사진집이 있긴 하지만 읽는 내내 무채색의 나비가 머릿속을 날았다.

"우리가 계속해서 과학기술을 신봉하고 유전자 프로젝트라는 종교를 믿고, 오판과 자기최면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인간을 신격화한다면 언젠가 인간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고독사하게 될 것이다." 38쪽

저자인 우밍이는 나비를 그저 관찰하는 정도의 탐미가 아닌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야기 자체가 이렇게 달콤하고 약간 들떠있는 듯하면서 조근조근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나비에 대한 사랑을 그는 나비를 '그'나 '그녀'로 의인화해서 표하고 있다. 에우로페 그늘 나비를 보며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이 나비의 안타까운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저자는 그냥 나비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를 통해 지금 당장 나비가 날진 않지만 곧 날아다닐 나비의 모습들이 새로운 느낌일 것 같다. 이 에우로페 그늘 나비를 볼 순 없겠지만 말이다. 타이베이의 도심을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이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닐 나비들이 기다려진다.

"잠자리채 안에 담겨 관찰자의 판별을 기다리고 있는 나비의 심정은 잔뜩 잡아당겨져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활과 같을 것이다. 그들의 학명이 무엇인지 판별하는 것이 다른 생명과 우정을 나누려는 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나도 생명과 우정을 쌓는 것이 수줍고 떨리는 연애에 가까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101쪽

다른 생명들과의 연애라니 그것도 나비와. 나는 좀처럼 저자의 나비에 대한 생각에 다가가지 못한다. 왜 나는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빈곤한 건지. 저자의 탐미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부럽기만 하다.

 

글 : 두목

 

 

c********u 2016.08.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생태 문학이란 이런 것!
"생태 문학이란 이런 것!" 내용보기
길을 걷다 화분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봤다. 평소라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 책을 읽은 뒤라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고 이름이 뭔지 궁금했다. 나비라면 겨우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정도만 알고 있었고 어렸을 때 호기심에 나비 날개를 잡았다가 손에 묻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어 나비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나방인지 나비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손에 비벼
"생태 문학이란 이런 것!" 내용보기

길을 걷다 화분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봤다. 평소라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을 텐데 이 책을 읽은 뒤라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고 이름이 뭔지 궁금했다. 나비라면 겨우 배추흰나비, 호랑나비 정도만 알고 있었고 어렸을 때 호기심에 나비 날개를 잡았다가 손에 묻었던 안 좋은 기억이 있어 나비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나방인지 나비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손에 비벼지던 그 기억은 여전히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든다. 더불어 나비를 해쳤다는 죄책감과 더해져 나비에 관한 기억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렇게 기억을 쥐어짜다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일화가 있었다. 초등학생(난 국민학생 세대지만) 때 학교와 집이 멀었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시골길을 늘 걸어 다녔다. 그러다 늘 같은 물가에서만 보였던 코발트블루 같기도 하고 프러시안 블루 같기도 한 나비가 떠올랐다. 그 당시 나에겐 잠자리채도 사치라서 오로지 믿을 건 손밖에 없었는데 절대 잡을 수 없었던 나비라 만인의 나비처럼 느껴졌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 장소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나비. 새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었는데 저자의 글을 통해서 더듬다보니 그런 기억도 저장되어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대학의 부교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분야에 몸담고 있지만 그런 저자가 쓴 나비에 관한 글을 분류하기가 애매했다. 나비에 관해 완전히 전문가답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나비와 자연과 한데 묶어 바라보는 시선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추천사를 통해 겨우 이런 글을 ‘생태 문학’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자는 ‘문학에서 출발했으면 글쓰기라는 길을 걷다가 대자연으로 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후 한 번도 그 창 앞을 떠난 적이 없’는 작가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나비의 종을 구별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비를 보기 위해 기꺼이 먼 거리를 여행하고 기다리고 환희에 찬 만남을 이야기하는 데서 전문가, 아마추어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나비를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나비를 보는 것을 즐기며 희귀한 나비를 직접 보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나비가 좋아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눈과 손과 머릿속에 새겨 넣는데 사진과 비교해보면 꽤나 사실적이다. 이 나비를 그리기 위해 얼마나 자세히 쳐다보았을까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나비를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그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연구자들의 논문을 읽고 들판에 나가 나의 눈으로 아름다운 이들을 만나고 그 친구들의 성격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를 매료시키는 나비의 수수께끼는 각각의 생명이지 생’물‘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저자는 자연 속에서 만나는 나비를 가장 좋아했다.

그의 이런 진지한 관찰과 사료를 타인이 공감할거라는 전제 하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학교에서 나비를 관찰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동료들은 “학교에 나비가 있어?” 하고 물으며,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교정을 오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초가을 풀밭에 홀로 쪼그려 앉아 있는 바보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디스하지만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다를 뿐, 저자가 바보 같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처음엔 나비를 관찰해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어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의 나비와 자연에 관한 진지한 태도,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삶과 적용시키는 성찰에 나와 취향은 다르지만 그의 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사람들은 ‘나라’가 땅을 의미하지만, 그 위에 복수의 생명이 어울려 살 때 그 땅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작은 밤색왕나비가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인간 역시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130쪽)

나비와 대만의 역사가 얽혀 들어가면서 드러난 저자의 생각을 읽다 보면 단순히 나비에 관한 책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다양하고 특이한 나비가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진지하게 삶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태문학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낀 시간이었다.

s****m 2016.09.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