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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상상력 또는 저무는 날의 희망을 위하여
"비판적 상상력 또는 저무는 날의 희망을 위하여" 내용보기
비판적 상상력 또는 저무는 날의 희망을 위하여 - 녹색평론 서문집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김종철, 녹색평론사 2008) 을 읽고   요즘 내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희망은 없다’입니다. 그렇다고 삶을 비관하거나 냉소적인 포지션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한번 씩 스스로도 그 말에서 전해오는 절망감에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대체 ‘희망’이란 뭘까요. 우리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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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상상력 또는 저무는 날의 희망을 위하여

- 녹색평론 서문집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김종철, 녹색평론사 2008) 을 읽고

 

요즘 내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희망은 없다’입니다. 그렇다고 삶을 비관하거나 냉소적인 포지션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한번 씩 스스로도 그 말에서 전해오는 절망감에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대체 ‘희망’이란 뭘까요.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바라고(希) 또 바라는(望) 걸까요

혹 희망이란 ‘무망(無望)’의 다른 말은 아닐까요.

 

‘녹색평론’이 통권 1백호를 맞아 그간 서문을 엮어 내놓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라는 책에서 김종철 선생은 17년 전 첫 호 창간사에부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와닿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문명을 인류와 사회와 자연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폭력적인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안고 있는 ‘근원적 공포’와 ‘본질적 결핍’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이에 매달리게 되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환경적 재앙은 이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 결과라는 거지요. 그리하여 끝내 빙산에 부딪는 타이타닉호의 최후처럼 인류 ‘존망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지요.

책 제목대로 약간의 비판적 상상력을 가진 이라면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는 말인데요.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스템에 내재한 ‘근원적 공포’와 ‘본질적 결핍’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근원적 공포와 본질적 결핍이 꼭 자본제 시스템의 문제일까요. 혹 삶은 근원적으로 두려움이고 모자람 아닐까요. 삶에 대한, 죽음에 대한, 살아남음에 대한, 죽어감에 대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바탕 위에서 희로애락을 섞어가며 하루를 애써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어떤 이들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초월적인 삶 또는 생각을 궁리하기도하고 보다 큰 어떤 존재에 기대기도 하고 때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 말미암는 삶을 좇아 살아가기도 하고.

 

일반적으로 경제행위란 부족한 재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재생산하는 행위라고 하지요. 거기에 각 계급이나 무산자와 유산자의 입장차이가 있는 것이며 자기 몫을 좀 더 차지하기 위한 쟁투, 그것이 세계이고 인류사회의 역사라는 거지요

이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본질적 결핍을 채우기 위한 쟁투가 사람살이라면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또 굳이 이러한 것들을 자본제 사회만의 폐해나 재앙으로 보아야 할까요

제도의 폭력성과 무자비함.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어느 시대, 어느 사회고 존재해 온 것이라 할 때 ‘대중’ ‘시민’ 등 여러 가지로 불리는 일반 다수가 사회에 대해 알아차리고 보다 나은 또는 보다 덜 나빠지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면 꼭 희망적이라서기보다 뭔가 기댈만한 언덕 하나쯤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물론 인류에 닥쳐올 미래를 - 어쩌면 현실일 수도- 눈여겨 볼 때 지금 우리 앞에 드러난 길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인류 ‘존망의 시기’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생로병사처럼 인류의 마지막을 맞는 극적인 시기에 우리가 서있다고 여길 수도 있지 않겠나요.

50억년 지구의 역사 동안 모아온 화석연료를 가지고 2백년 동안 흥청망청 화려한 만찬을 즐기고 떠나는, (지구의)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일대기를 마감하는 시기’라는. 가면 갈수록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어쩌면 희망이란 애초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무망한 것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희망을 삼아 살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한번 씩 갖다 쓰는 말인데 힌두스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사람은 산봉우리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맹이에 걸려 넘어진다’는. 저 높은 꼭대기 희망이나 바램보다 당장 자기 앞의 돌멩이를 살피며 나아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어보는데요.

이와 다르게 사람이 숲을 쳐다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본다고 나무라지만 그 숲이 이미 벌거숭이가 되었다든지 멀리서부터 타들어온다면 어찌해야 하나요. 막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네 삶은 소중한 것이고 지켜내야 할 그 무엇 -숲은 아니더라도 내 주위의 나무들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마더 테레사의 말씀도 생각나네요.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만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하겠지요. 굳이 그것을 희망을 빌어 말하라면 우리의 희망은 이런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사소한 것 그 자체 아닐까 하는 거지요.

 

김종철 선생은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군요

“산업주의에 대하여 정말로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큰 사랑과 책임감과 에너지가 우리 자신 속에 있는지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간명하게 요약한다면 자동차를 섬기기 위해 쌀을 버리려는 태도에서 나오는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결국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지만 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자명한 진리 말이다. 쌀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자동차없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우리자신의 능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참 단호한 말이네요.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원칙주의이며 생태근본주의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데요. 김종철 선생은 언제나 되묻습니다. ‘달리 방법이 있느냐’고.

더하여 희망을 두고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희망을 위한 싸움’이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조짐을 우리의 삶속에 드러내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도대체 ‘무한경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 이성의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는가.”

이 시대에 일상화된 ‘무한경쟁’을 어찌 사회적 이성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며 ‘희망을 위한 싸움’을 말하고 있네요. 거기에는 낙관도 비관도 별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은 '사랑은 생명을 기르는 일'이라 하였지요. 그리하여 우리들의 '희망을 위한 싸움'은 생명을 보듬고, 생명과 더불어 나아가는 사랑의 행위이자 사랑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이며 물러설 수 없는 인간정신의 요구라 믿습니다.

쇠고기 정국에 에프티에이, 대운하 계획, 그리고 공교육의 마지막 숨통마저 끊으려하는 4.15 정부조치 등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만만한 것이 하나도 없네요. 그리하여 다시 ‘희망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라 하네요. 이를 위하여 ‘용기있게, 정직하게’ 나아가려는 바램.

그걸 희망이라 하네요.

9****4 2008.05.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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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을 가는 이가 쓰는 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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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제목으로 좀 과하다고 느낀다. 너무 일반적인 느낌...'녹색평론 서문집' 뭐 다소 건조하더라도, 이 제목이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는 더 적합한게 사실이고, 내용과도 부합하는게 맞다고 본다. 91년부터 07년까지 쓰여진 글들을 봐가며, 학부 1학년때 하던 고민부터 직장을 가져서 무뎌지는 감각에 대한 우려까지,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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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제목으로 좀 과하다고 느낀다. 너무 일반적인 느낌...'녹색평론 서문집' 뭐 다소 건조하더라도, 이 제목이 최소한 한국사회에서는 더 적합한게 사실이고, 내용과도 부합하는게 맞다고 본다.

91년부터 07년까지 쓰여진 글들을 봐가며, 학부 1학년때 하던 고민부터 직장을 가져서 무뎌지는 감각에 대한 우려까지,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였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이 이어온 정권들의 나름 사상적인 변천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한결같은, 고집쟁이라는 말을 당연히 들을 수 밖에 없는 김종철의 사상과 상식의 무게감이 정말로 막대했다.

하 나하나 뭐 새로운 건 없는게 사실이라고 해도 좋겠다. 딱 내 학부입학과 궤를 같이하는 역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 난 지난 18년 동안 녹평을 제대로 읽어본 게 3-4번 밖에 안된다는걸 밝히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사상가, 활동가, 정치가보다 한결같은 이야기를 이어왔다는 사실, 그것이 한편 한편의 글에 부가하는 후광은 그 어느것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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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평론'의 메시지가 근본적으로 옳지만 , 비현실적이며 이상주의적이라고 하는 끊임없는 비판의 목소리 가운데서도, 그러한 '현실성 없는' 메시지야말로 인간다운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의 궁극적인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견해에 동의해준 독자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50호, 2000년 1~2월, 연대의 그물을 위하여)
...

그래, 이거다. 김종철 글의 힘은 바로 이 비현실성을 인지하고서도 본 잡지를 죽이지 않고 살린 수천명의 독자, 지식인-활동가-민초들의 양면성인 것이다. 그들의 잠재적인 이상주의적 욕망, 그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이 아니면 이 글들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자유롭다는 이들은 우파든 좌파든 꼴통 산업주의, 생상력주의자들 밖엔 없을꺼다)

사실 어찌보면 김종철의 입장이란게 시작부터 데카당트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부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이 역시나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일 수는 없다. 그는 아래처럼 호세 루첸버거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
환경운동에서 우리는 언제나 결국 패배한다. 우리가 때때로 거두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오늘 우리가 구한 것은 내일이면 파괴될 수 있다.
...

그 시간동안 김종철은... (그리고 감히.. 나도) 많은 패패를 봤다. 4대강, 새만금, 핵폐기장, 천성산, 골프장, FTA, 그리고 가장 가슴아파하는 수없이 갈아엎어진 농지. 그래도 그는 글을 쓰고 잡지를 낼 것이라고 본다. 그럴 것이다. 그런 인간이 같이 있다는게, 그나마 인간으로서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e****s 2009.08.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