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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자가 한 한국인 목사에게 물었다.
2007년 7월 19일, 샘물교회의 23명 선교단은 선교를 위해 ‘여행 제한 국가’였던 ‘아프간’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들은 탈레반 무장 세력에 피랍돼 2명이 살해되고 나머지 21명이 42일 만에 귀국하고 만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으며 정부 또한 한동안 얼마만큼의 몸값을 지불했다는 염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뜩이나 위대한 신의 다양한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분명 ‘창조’일 것이다. 창조가 있은 연유에야 비로소 인간도 있을 수 있고, 인간에게 신의 계명을 전할 수 있으며, 모든 창조물들이 다함께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 찬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창조가 위대하지 않을 소냐. 그런데 우리의 위대한 신은 이 모든 것을 ‘무’(無)로부터 이끌어낸다. 창조란 신의 말씀이 표현된 것인데, 이것을 말 그대로 무로부터 생긴 것이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1-3)” 그리고 ‘말씀’은 무에서 나온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히브리, 11;3)”
아울러 기독교 그리고 다른 독실한 일신교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신이나 그리스도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인간이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은 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이며 따라서 죄인 것이다. 신은 물론 인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적인 사랑으로서 이들이 기독교도일 때 한에서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만을 사랑해야 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할 경우 ‘잠재적인’ 기독교도로서만 사랑해야 한다. 기독교는 인간 사이의 자연스러운 유대를 없애버리는 대신, 신앙 안에서의 강제적인 통일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다.
폭력에 가까운 기독교적 행태에도 모자라 기독교는 더욱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인간 스스로에 대한 평가절하가 그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탄탈로스(Tantalos)를 아는가. 그는 신들에게 자기 아들 펠롭스를 재료로 한 음식을 접대함으로써 지하세계에 감금된 자이다. 아들을 살해함으로서 신의 영역으로 상승하고자 했기에 신들에게 찍한 것이다. 성경에도 아들살해라는 비정한 부정(父情)이 나온다.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인데, 그 동기는 그리스 신화와 상이하다. 일찍이 종교학자 엘리아데(Eliade)가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으로 해석한 아브라함의 아들 살해는, 신에게 자신의 자식을 바침으로서 자신의 상승 욕구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음을 그려낸다. 그리스 신화가 일종의 ‘상승 주의적 가학성’을 대변한다면, 성경은 ‘하강 주의적 피학성’의 입장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외에도 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인간비하는 성경의 단골소재이다.
처음에 밝혔듯이 대부분의 인류는 모든 곳에서 신을 발견해냈다. 세계를 향해 내던져진듯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것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게 만든 것이다. 최초의 신앙심은 말 그대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신앙인 셈이다. “최초의 복음, 가장 순수하고 어떤 사제의 기만을 통해서도 왜곡되지 않았던 인간 최초의 종교적 원본은 감성이다. 또는 오히려 이러한 인간의 감성 자체가 최초의 신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종교의 본질에 대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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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태극기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담임목사의 카톡을 받으며 이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으로 찾은 책이다. 포이어바흐의 당시 이책은 이후 철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마르크스 유물론에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하니 더욱 기대기대하며 책장 넘겼다. 처음엔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무슨 말인지 한줄읽고 다시 앞줄 다시 읽고. 지금껏 접한 책 중 단연 탑이다. 옮기신 강대석 교수는 폭풍처럼 몰아친 책이라고 했는데 그만큼 강하게 와닿아서 , 그래서 순식간에 읽어내려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 독해가 않되어서 읽다가 강대석 교수님께 따지고 싶었다. 쉽게 번역해도 되지 않았냐며.... 원어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는 한 쉽게 번역하였다 하니 뭐 어쩌겠나. 한장한장 읽어가며 나의 뇌가 독해력이 늘었는지 중간부터는 적응이 된다. 속도가 붙어 2주 걸렸다. 책은 종교비판서 이면서 철학비판서 이기도 하다. 인간본질에 다가가지 않는다면 종교도 철학도 아니라 한다. 당시 시대 사회상에 비춰보면 정말 용기있는 주장이고 논리였을것이다. 이책은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도,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도, 기독교를 알기 위해 꼭 1독을 권한다. 첫장부터 버거울 정도겠지만 읽다보면 바흐선생 말투에 빠져들어 쉽게 읽힐것이다. 종교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해방! 휴머니즘! 이것이 포이어바흐의 200년 외침이다. 오늘날 발전소노동자와 지하철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고 트렌스젠드 숙명여대 등록을 포기하게 사회적폭력을 행사하며 코로나를 하나님이 벌주신다고 외치며 범죄(강간 폭행)를 저질러는 목사에 대한 기독교전체의 사회적지탄을 평신도들의 기도가 부족해서다라고 떠들어대는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큰 일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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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독일의 유물론 철학자이자 종교 철학자이다.
내가 포이어바흐를 알게 된 것은 마르크스와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였다. 과거 마르크스는 젊었을 때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나중에는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해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포이어바흐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여기까지였고, 실제로 그의 저작을 읽지는 못했다. 솔직히 나는 우리나라에 포이어바흐의 책이 출판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는 포이어바흐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물론 마르크스 철학이나 유물론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잘 알려진 사람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사람들 사이에서일 뿐, 포이어바흐가 누구인지, 어떤 주장을 했고, 어떤 책을 썼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나 또한 그러한 일반인 중 한 명이었기에 포이어바흐에 대해 알고자 하는 바람도 식어갈 뻔했다. 하지만 한길사에서 출판한 '기독교의 본질'과 '종교의 본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놀란 마음도 잠시 나는 이번에야말로 포이어바흐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먼저 사서 읽어보았다.
그렇게 읽어 본 '기독교의 본질'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책에서 포이어바흐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실은 예수와 같은 신의 존재를 위한 종교라기보다는 자기 자신, 즉 인간의 본질을 대표하는 종교이며, 오늘날의 기독교는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을 무시하고 오직 신만을 추켜세워 인간을 소외시키게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교리들을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하나하나 따지며 기독교가 결코 추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이 종교가 아니었음을 간파한다.
이렇게 기독교의 신성을 부인하는 모습은 자칫 무신론자처럼 보이지만 포이어바흐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기독교 내에 숨겨진 인간적인 모습, 다른 종교들과 달리 감성적이고 사랑이 있는 기독교의 본모습을 보여주며 진정한 기독교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다. 인간보다 신을 우선시하고 숭배하는 일반 기독교나 신학자들과 달리(모든 기독교나 신학자가 그런 것은 아님) 포이어바흐는 기독교 속에서 인간 사랑을 발견했고, 신보다는 인간을 중요시하는 휴머니즘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런 포이어바흐의 주장은 지금은 다니지 않지만 어렸을 적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던 내게 그때 당시 느꼈던 기독교에 대한 의문점을 어느 정도 속 시원히 알려준 것 같았다. 뭣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왜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을 보고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기도하는지, 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라는 것을 하는지, 왜 다른 기타 종교보다 기독교에 열광하는지 등등이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포이어바흐의 책을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결론을 내려보자면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그동안 일반인들 사이에서 신비로운 종교로서 알려진 기독교의 진정한 본질을 폭로하는 책이며, 기독교도 결국에는 인간의 종교이며 인간을 위한 종교임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인간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것에서 인간적 의미를 찾아내고야 마는 포이어바흐의 분석력은 마찬가지로 우리 눈으로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자본'과 '노동력' 속에서 인간적 의미 - 인간 착취를 발견한 마르크스의 분석력과 매우 비슷하다)
비록 일반인들에게는 읽기 어려운 책일 수도 있으나 기독교나 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마르크스 철학과 유물론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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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고 발전해왔으며 그 교리가 어떤 동기에서 만들어졌는가를 인간을 중심에 두고 파악해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은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기독교의 본질은 종교 문제뿐만아니라 철학문제에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