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닐스 우덴베리/샘터/심리학자의 일상에 꺼어든 길고양이의 반전...
애완견이나 반려묘를 키워본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 이야기라면 무척 반가울 텐데요. 고양이와는 전혀 상관 없이 살던 이가 우연히 마주친 길고양이로 인해 일상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는 이야기는 단언컨대 흥미 만점일 겁니다. 더구나 저자가 노인이자 심리학자이기에 고양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거나 고양이를 대하는 자신의 심리가 달라지는 것을 분석하는 글은 반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이 책은 스웨덴에서도 논픽션 베스터셀러에 올랐을 정도로 흥미로운 북유럽 에세이입니다. 부제인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쓰하고 산뜻한 골칫거리'처럼 지루한 노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은 스웨덴 길고양이 이야깁니다.
3킬로도 안 나가는 이렇게 작은 생명이 어떻게 내게 이런 안정감을 불어넣는 걸까? 나는 나비보다 훨씬 더 힘이 세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손쉽게 이 녀석을 망가뜨릴 수 있다. 나비는 나를 능가할 그런 힘이 없다. 나비가 내게 보이는 신뢰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내게 보이는 자비심과 호감을 나비는 고맙게 받아들인다. - 71쪽
지루한 일상이 지속된다면 파리 한 마리나 모기 한 마리로도 일상은 자극이 되는데요. 누군가는 그런 미물을 잡으려고 힘 깨나 쓸 것이고, 누구는 가만히 들여다보며 파리나 모기의 모양이나 몸짓을 관찰하며 신기해 할 것입니다. 그러니 파리나 모기보다 덩치도 크고 행동도 민첩한 영물 길고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이 책의 묘미는 고양이의 심리와 정신세계를 마치 인간처럼 풀면서 분석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는 겁니다. 인간 대 고양이와의 관계가 생명 대 생명의 관계이기에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인간 관계로 사유와 성찰이 학장된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저자가 심리 치료와 인생관 연구의 전문 박사이기에 고양이에 대한 신화나 고양이의 습성에 대한 전문적 자료를 읽는 재미도 있었는데요. 다소 심리학적이었다가 다소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유머와 통찰을 담은 길고양이와 노 교수의 유쾌한 동거 실화입니다.
노 교수의 밋밋한 일상을 강렬하게 터치하고 간 길고양이에 저도 매력을 느꼈는데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노인의 고집을 무너뜨린 반전 가득한 이야기에 웃음과 해학, 인문적 지식에 읽는 재미가 있었답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운다면 이렇게 심리 변화를 기록하는 것도 멋질 것 같습니다. 작은 동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모습, 자신이 바뀌는 모습을 들여다 보는 시간일 테니까요. 나중에 노인이 되어서 이런 골칫거리를 만나고 싶어졌어요. 지루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줄 테니까요.
|
|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고양이 사랑을 한 권에 담뿍 -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닐스 우덴베리, 샘터 고양이를 좋아하시는지,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키우지는 못하고 그저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주는 정도이다. 한 때 반려동물을 들여야 하는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책임감과 비용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키울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학창시절 사귈 수 없는 상대를 짝사랑하는 마음처럼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 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낼 때에도 표지의 고양이의 묘한 모습에 끌린 적이 있다. 제목과 표지에서 따뜻함과 여유가 묻어난다. 이런 나의 마음을 어떻게 통했는지 책을 만나게 되고 읽을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호감을 가지면 오감을 통해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연애를 할 때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만지고 싶고 보고 싶은 것도 결국 그 대상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대상을 바라본다. 어떤 분야에 마니아층이 형성되는 것도 호감을 갖고 있는 존재, 대상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싶기 때문에 더 파고들기 때문이리라.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박사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만나고 점차 그 매력에 빠지면서 느낀 것을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과 고양이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읽을수록 눈앞에 그 장면이 떠오른다. 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배움의 결과로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 동원하여 ‘나비’를 이해하려고 한다. 읽으면서 점점 우리는 ‘집사’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집사’는 자기 필요할 때 사람을 이용하는 이 영악한 동물이 가지는 매력을 논리적, 이성적으로 고찰한다. 보통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감정에 대하여 혼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은 발견할 때마다 읽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강아지와 다른 고양이의 매력, 왜 고양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의 생명으로서 다른 개체와는 다른 고양이의 특성은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한 것이 한 권에 집약돼있다. 고양이 꼬리, 고양이의 사냥 이야기, 야생적 본능을 품고 있는 모습 등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지금 눈앞에 있는 고양이도 먼 옛날 아프리카 초원에서 홀로 생활 했을 거라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간다. 내용에 몰입할수록 표지의 고양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심코 봤던 고양이 일러스트는 점점 그 눈, 귀, 코, 수염 하나 둘 씩 생명감을 얻어간다. 고양이 특유의 무신경함과 본인이 필요할 때 사람한테 들러붙는 상황이 절묘하게 떠오른다.
애묘인, 집사를 자처하는 이들과 고양이가 마냥 좋은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현재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앞으로 함께 할지 고민이 되는 이에게는 더욱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책이 주는 여러 이점 중에 한 가지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정리된 활자로 만날 수 있는 점이다. 어떤 것을 느끼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개인의 경험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생각을 관통하는 한 문장을 만났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이성적이 되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오감을 총동원한 것에 비하면 쉽게 나 자신을 만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으면 왜 고양이를 좋아하고 때로는 주체하지 못하는 고양이 사랑과 그 감정에 슬며시 고개를 드는 의문에 답을 제공해 준다. 당신은 고양이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고. |
|
스노우캣, 콩고양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고양이집사... 고양이에 관한 책을 개에 관한 책보다 많이 읽었다. 많은 동물들 중에서 '고양이'라는 동물이 특별히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장화신은 고양이'의 그 아련한 눈망울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던 그 고양이 눈을 보는 순간 극장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지 않았을까.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무엇이라도 다 해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실제로 고양이 눈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그런 고양이의 눈망울에 매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실제로 정신과의사인 작가가 어느날 우연히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그 녀석과 함게 살아가게 되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서술해 놓은 에세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모르고 읽는다면 나이든 할아버지와 작고 귀여운 새끼고양이의 동거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그만큼 이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혀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없었던 할아버지 닐스.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차고에서 새끼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러나 한번이 두번이 되고 두번이 네번이 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불편한 것들이 가득차 있는 공구박스함에서 자는 고양이를 계속 보게 되면서 어느틈엔가 공구들을 꺼내고 폭신한 수건을 깔아서 그녀석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면서도 전혀 그녀석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주 집을 비우는 그들의 일상을 볼때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은 부담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딸과 손자들이 알게 되면서 그들이 자리를 비울때면 돌봐주겠다고 선뜻 나서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수도 없다. 실제로 그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들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고 개도 키웠던 그였다. 이름도 없던 녀석에게 '우리작은 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밖을 돌아다녔고 닐스와 나비는 썸아닌 썸을 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그녀석에게 항복하고 만 닐스 할아버지. 나비는 닐스 할아버지의 생활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고양이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내게 있어서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일뿐 그닥 좋아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림속에서의 고양이는 얼마나 이쁜지 귀엽기 짝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녀석은 [콩고양이]에서의 '콩알이'와 '팥알이'다. 그녀석 둘이 사고치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 현실에서 그녀석들을 기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귀여운 것을 어찌하겠는가. 닐스할아버지는 현실속에서도 그런 재롱들을 보고 싶으셨음에 틀림없다.
고양이는 15년을 넘게 살 수 있고 닐스 할아버지는 이제 칠십을 넘기신 나이니 계속 함께 한다면 아흔살까지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난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나비와 닐스할아버지의 동거가 그때까지 쭉 계속 되었으면 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 |
|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다. 어렸을 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 이후로 강아지의 죽음이 두려워 여전히 키우지 못하고 있는 모습, 고양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보살피고 이해하려는 박사의 모습은 현재 5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의 모습 같았다. 고양이를 키우며 일상을 기록하며, 고양이의 심리 분석과 더불어 자신의 심리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 책은 미처 내가 놓쳤던 심리적 변화 요인과 공감대 형성으로 이 책은 남의 사생활이 아닌 또다른 나의 이야기였다. # 나는 내거야. 고양이를 심리 분석한다? 처음에는 심리치료사이니깐 당연하게 받아들어졌지만, 계속 읽을수록 사람은 반려동물을 너무 장악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버려서 생긴 제도이기도 하지만, 고양이에게 등록 칩을 몸에 넣는 것도 그렇고, 중성화 수술, 성대 수술 등 사람이 편한대로 고양이의 자유의지를 없애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통제를 했으면서 자신의 자유의지로 머무는 것이 좋다는 심리치료사의 이중적인 모습은 같은 사람으로써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변화된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 보았다. "나비는 스스로 삶을 선택해야 하고 우리는 친절한 태도를 지키면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만이다."(p72) 고양이가 한 번 사라졌다가 다시 찾은 후로 심리치료사는 많이 바뀌었다. 고양이를 주인의식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함께 같은 공간에 머무는 존재로 공감한다. 고양이의 노는 모습과 함께 즐기는 시간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태, 공존의 방식을 생각하게 하였다. 또, 소유물이 아닌 가족으로 인정하며 고양이의 의견도 헤아리게 되었다. "우리가 고양이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고양이도 우리를 길들여진 '집사'로 만들었다. 우리는 쌍방이 기쁘도록 서로 길들였다."(p192) # 서로서로 삶의 일부 고양이와 자식을 비슷하게 인식해서 기분 나쁠수도 있지만, 유사점이 많았다. 부모로써 자식의 삶을 장악하려 하고, 부모에게 맞게 아이를 길들인다. 아이의 삶을 선택하는 연습보다는 명령에 따르게 하는 교육이 우리에게는 더 익숙한 것 같다. 아이를 낳았다는 것만으로 아이의 삶을 소유하려는 것. 하지만 함께 사는 공동체는 서로서로 기쁜 삶의 일부이다. 서로의 삶의 선택을 존중하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에서는 고양이와의 생활을 통해 공존하는 방법에 대한 철학적 깨달음을 던져 주었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진정한 공존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
우연히 자기집 창고에 들어와 밤을 보내는 고양이를 만나 조금씩 가까워져서, 집을 내주고, 드나들 수 있는 고양이문을 만들고, 침대까지 내어준 작가의 이야기다. * 우리 야옹이도 외출 고양이다. 길고양이도 아니고, 집고양이도 아닌, 방랑 고양이
10 |
| 가냘픈 가을 햇살이 내려오는 어느 가을 날, 노부부의 집에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다. 뜻밖에 찾아온 낯설지 않은 이 손님은 어느샌가 노부부의 정원 안쪽 차고에 자리잡더니, 이내 그들 가족의 구성원이 된다.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일 것 같은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 눈 앞에 나비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만 같다. 저자의 세심한 관찰과 풍부한 통찰력으로 그려진 고양이 나비. 나비의 등장으로 노부부의 일상은 더 전원적이고 풍요로운 것이 되고, 삶의 순간들은 새로운 색채로 물들여져, 낯설지만 반가운 설렘으로 가득하다. 도도한 고양이 나비를 향한 할아버지의 짝사랑이 풋풋하게 베어 있어, 보는 내내 아빠 미소 아닌 할아버지 미소를 짓게 될 지도... 반려동물을 키워봤다면 오래 공감할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 |
|
【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닐스 우덴베리 / 샘터
1. “고양이 눈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커다랗고 앞을 똑바로 보는데, 사람이나 다른 원숭이들처럼 고양이의 시각도 삼차원이다. 어린아이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듯이 고양이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2. 길에서 마주치는 개와 고양이를 비교해보면 차이점이 많다. 대상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개는 눈 마주침의 시간이 길지 않다. 반면 고양이는 때로 음흉스러움이 느껴지는 눈길을 거두지 않고 노려보는 경우가 있다. 몸은 금방이라도 뛰어오르거나 달려갈 상태로 긴장감이 고조 되어있다. 또한 옛날부터 고양이는 영물(靈物)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보다 고양이 키우는 것이 더 신경이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3. 이 책의 지은이 닐스 우덴베리는 스웨덴의 신경의학과 교수이다. 심리 치료와 함께 인생관 연구가 전문이다. 어느 해 늦가을, 지은이의집 정원 창고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무단 침입이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70세가 넘은 지은이 부부가 먼 길에서 오랜만에 집으로 와보니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밤만 되면 기어들어왔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다. 집을 자주 비워야 하기 때문에 고양이가 집에서 나가주길 기대했다. 전단지도 붙여보고, 경찰에 전화도 해보면서 주인이 나타나길 바랐다. 그러다 결국 고양이의 안녕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마음을 정한다.
4. 지은이가 고양이의 안녕을 책임진다고 해서 특별히 할 일은 없다. 고양이가 안 왔으면 하는 바람은 접고, 먹을 것을 챙겨주고, 부부간에 “고양이 어디 갔어?” 라는 말을 하게 된 것뿐이다.
5. “나비는 애정과 관심을 일깨우고 우리에게 기대면서도 꽤나 믿음을 준다. 고양이에게 느끼는 내 감정 때문에 나도 놀란다.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고양이 덕에 내 삶은 무척이나 달라졌다.” 예전에, 절대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무색하게 지은이의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고양이가 그를 키우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고양이와의 하루는 계속 이어진다.
6. 직업의식이 발동된다. 고양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도 해본다. 제대로 맞는 경우도 있고, 헛발질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나비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사흘 만에 돌아온 나비는 지은이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한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을 사랑하지만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보답을 받지는 못한다고 했다. 기껏해야 믿음을 얻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과 반려동물의 믿음은 어떤가? 집나가는 반려동물보다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7. 동물과 인간사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몽테뉴는 동물들이 뭘 느끼고 생각하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생각한다. 오만한 인간은 동물들에게 무슨 사유(思惟)가 있겠느냐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인간과 비교를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단정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고양이는 인간에 비하면 뇌 무게가 새 발의 피 정도지만 여전히 놀라운 기적이다. 그 뇌는 나비의 발을 움직여서 실수 없이 정확하게 코앞에 대롱대롱 흔들리는 털실 조각을 붙들게 한다.”
8. 참 따뜻한 책이다. 2012년에 스웨덴에서 출간되어 논픽션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지은이 부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양이와 서로서로 삶의 일부가 된다. 서로를 이해해서라기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지은이에겐 고양이 세계를 조금이라도 파악하려는 것이 철학적 과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양이, 아내, 나(지은이)는 쭉 함께 살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키울 사람 또는 고양이가 끔찍하게 싫은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 어느날, 갑자기 고양이가 아른거린다면? 나이 지긋하신 심리학 박사님. 환경이 편안하게 정리된 박사님이 있었지요. 책을 읽다보니 물론, 이 분도 어릴때 동물들에 푹 빠지곤 했으니, 아주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추운 겨울인데, 스웨덴의 겨울. 그 추운 날에 밖에서 어찌어찌 견디는 길고양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니 아쉽곤 하며 그렇게 점점 마음을 홀리게 되고. 누군가의 소유가 있는지도 알아보게 되고, 경찰서에 신고도 해보지만, 이 고양이, 그러는 사이 점점 마음을 차지합니다. 도도하게도 이 녀석은 박사의 흥미로운 존재가 되죠. 집고양이로서, 소유주가 있음을 칩으로 저장하고, 검진을 받고, 외출을 위해 중성화 수술까지. 집고양이로서의 채비를 마친 '나비' 나비의 가르랑 소리에 녹아내리는 박사. 박사는 나비를 차근차근 빠져들어가지요. 어찌하여 골골송을 부르는지, 이 녀석의 야수본능은 작은 몸집에도 DNA로 녹아있어 생쥐를 쫓고, 자랑스럽게 집으로 물고 오고. 나비의 행동들은 의존적인 개들과는 또 다르니, 고양이의 매력은 도도함에 있는 것인가 싶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추구하기에, 그래서 물렁하던 삶에 적당한 속도로 파고들지요. ![]() 박사는 나비를 보며, 사람이 고양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 만큼, 고양이도 사람만큼 즐거워함을 느낍니다. 분명 거만한 태도를 가졌음에도,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비도 분명 즐거워했으리, 함께 한 세월동안 나비는, 은근 밀당 느낌으로 자리잡아오는 반려동물. ![]() "서로를 이해해서라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부부와 나비는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박사를 움직이게 하고, 에너지를 요구하기도 하니, 자주 웃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그 아이는, 그렇게 삶을 생기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함께 하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 나비는 노부부에게 나른한듯하지만 생기있는 봄을 선물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산뜻 발랄한 나비와의 동거 이야기. 보는내내 저도 씨익, 웃으며 읽어봤네요.
|
|
<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 닐스 우덴베리 / 샘터 - 난 동물과는 아직도 친해지지 못 한 사람이다. 어릴 적 우리집에서는 강아지들부터 다 자란 개에 이르기까지 꽤 여러 번 동거를 하였지만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아주 어릴 때에는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발로 차서 물리는 등 개에게 당하는 사건들이 여러 번 일어났기 때문에 더더욱 멀어졌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의 집요한 부탁을 받으며 꼭 굳이 동물과 같이 살아야 한다면 그나마 애증의 관계인 강아지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개도 안 된다. 힘이 없는 강아지일 때부터 봐서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동물은 내게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데 요즘 자꾸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단순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강아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따라다녀서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고양이는 무심한 듯 다닐 것 같다는 상상에서였다. 그 상상은 내게 자꾸 부드러운 유혹을 보내고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아주 조금씩 자라고 있던 차였다. 그런 때에 만난 이 책은 마치 고양이를 키우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내게 알려주려고 다가온 것 같았다. 70이 넘은 스웨덴의 신경의학과 노 학자의 가정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서는 고양이 걸음처럼 서로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글의 전개도 그 걸음을 닮았다. 어떤 결정적이거나 화려한 사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와 적응하고 친밀해지는 일상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엔 또 다른 즐거움이 숨어 있다. '사람이 고양이의 입장을 상상하기'가 바로 그것인데, 그 일은 고양이의 말을 들어보지 않는 한 증명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이렇게 저렇게 상상하고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인간의 이해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고양이는 상하 혹은 주종의 관계가 되지 않고 독립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고양이에게 끌렸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다. 키워보진 않았지만 개가 충직함의 대명사라면 고양이는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바람이나 상상을 만족시키듯 저자는 그 사실을 조곤조곤 풀어나간다. 사람에게 속해서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 서로 이해하고 있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함께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것.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것들의 대명사 같던 고양이가 사실은 인간 관계에서의 대등함과 개별적인 고유함을 인정하는 것의 대표 주자는 아닐까. 그래서 난 이제야 그 진면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어 혼자 실실 웃었다. 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는 고양이가 아니니까. 고양이가 박사의 애틋하기까지 한 사랑과 애정을 다 몰라주듯. 그래도 그 둘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있음에 즐겁다. 갑자기 나도 새끼 고양이 한 마리와 즐거운 관계를 시작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물론....쥐를 물고 와서 자랑하는 일을 보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흐흐^^ ---------- **---------- - 가까이서 일어나는 일에는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은 그게 좋든 나쁘든 쉽게 눈을 감아버린다.(p41) - 고양이의 골골송(p52) - 고양이는 멋대로 행동하면서도 일관성이 있으며 자유로이 선택한다.(p72) - 인간은 비참하게 태어나서는 거만한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신과 똑같은 자리에 올린다. 그리고 똑같이 자만하는 태도로 다른 살아 있는 생명체들에게 알맞다고 여기는 능력과 힘을 부여한다.(p82) - 우리는 둘 다 각자 성향의 포로이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관계라는 형태를 만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p85) - 인간 공동체도 같은 조건에서 생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사람은 서로 이해한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각기 전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얼마 동안은 잘 지낼 수 있다.(p86) - 나비가 아침에 드러내는 다정함과 애정은 아마도 소유물을 관리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p114) - 이제 우리가 '고양이 집사'가 되었으니 나비가 때로는 포식자의 본능을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회적 관계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p131) - 정신과 의사였던 나는 어린 시절에 어땠느냐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자신한다. 이런 원칙들이 고양이에게도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싶다.(p136) - 대부분 영장류는 집단을 이루고 인간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회적이다. 우리의 사고 과정은 다른 사람들이 뭘 원할지를 계속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 속에서 진화했다.(p142) - 애완동물을 기른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로 의인화 아니던가?(p148) - 인간은 언어로 서로를 어루만진다.(p148) -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관계는 상당한 오해를 기초로 한다고 생각한다.(p155) - 고양이는 개와 달리 독립의 완벽한 상징이다.(p158) - 현대인은 스스로를 집단의 구성원보다는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보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와 쉽게 동일시한다.(p168) - 고양이가 우리를 골랐지 우리가 고양이를 고른 게 아니다.(p168) - 주목할 점은 고양이가 삶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버린다는 것이 아니고 어째서 사람은 그러지 않느냐는 것이다.(p172) - 고양이는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질적 차이도 잘 느낀다.(p176) - 사람 환경 고양이를 모두 염두에 두고 사회적인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p190) - 우리와 나비는 서로서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해서라기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p193)
|
|
'고양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왠지 기대가 되고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는 사실 '고양이'가 출현한다는 것만으로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지 그림을 차지하고 있는 고양이 표정이 매력적이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면 읽어야만 한다는 느낌이 강렬해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닐스 우덴베리. 스웨덴의 신경의학과 교수로 심리 치료와 인생관 연구를 해왔고, 현재 70세를 넘겨 국가에서 수여하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실제 저자에게 생긴 일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로, 인생에 관한 넉넉한 유머와 성숙한 자의식으로 한 마리 고양이가 노인의 일상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2012년에 스웨덴에서 출간되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실화로 인기를 모았으며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의사 면허가 있다. 대학에서 심리 치료와 '인생관의 경험적 연구'를 강의하며 자상한 정부 덕분에 명예롭고 품위 있게 교수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나 스스로는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몇몇은 꽤 잘 팔리기도 했다. 요즘은 고양이도 키운다. 아니, 고양이가 나를 키우는 건가? 글쎄, 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9쪽) 이 책의 첫 시작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은 고양이도 키운다. 아니, 고양이가 나를 키우는 건가?'라는 글에 일단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시작한다. 어떻게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 저절로 집중하며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실 무척이나 부러웠다. 고양이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보니 고양이에게 선택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럽기만 했다. 왜 우리 동네 고양이들은 도망만 다니는 것인지. 이 고양이처럼 빼꼼히 쳐다보며 자리잡고 있지 않은지. 바구니라도 하나 갖다 놓을까. 별별 생각을 하며 이야기에 집중해본다. 고양이에게 주인을 찾아주고자 전단지를 붙이고 경찰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고양이가 마당에서 안 나가고 버티면 어떻게 해야죠?"라고 질문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우리 작은 나비'라 부르며 자연스레 고양이의 주인이 되었다. 우리는 사로잡혔다! 우리의 저항은 무너졌다. 혹은 차라리 부서졌다고 하는 쪽이 낫겠다. 고양이가 이겼다. (24쪽)
길고양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한 순간에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어느 여름날,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나타났다가 한달 쯤 후에 뿔뿔이 흩어졌던 일을 떠올린다. 고양이에 대한 공감 때문일까. 나에게 있었던 고양이의 기억과 교차되며 책 속에 빠져들게 된다. 글을 읽으며 고양이가 낯설던 나에게 고양이가 나타나서 어쩔 줄 모르고 버벅거리던 것을 떠올린다.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걱정과 허전함도 이 책을 읽으며 되살려본다. 고양이 때문에 여행을 망설이게 되는 것, 쥐같은 먹잇감을 물어오는 문제 등 겹치는 부분이 자꾸 눈에 보인다.
고양이가 우리를 골랐지 우리가 고른 게 아니다. 고양이들은 수천 년 동안 그랬기 때문에 꼬리를 자랑스레 치켜들만하다. 이들은 계급을 부여받기 거부하는 자립적인 개인주의자들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바로 그런 주체적인 모습이다. (168쪽)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서로 삶의 일부가 되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느낌일까. 저자는 고양이, 아내와 함께 셋이서 쭉 함께 살기를 기대한다며, 고양이는 15년 넘게 살 수 있으니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아흔 살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데에 망설여지는 것이 오랜 기간을 함께해야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저자는 고양이를 만나 함께 지내기로 결심했고, 그 시간은 흐르고 있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몰랐던 스웨덴 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재미있게 그려나간 에세이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키울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이 꿈과 희망을 심어주리라 생각된다. 그나저나 집주변을 기웃거리는 고양이가 없는지, 창고를 살펴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