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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구분된 인종은 유럽인 그들의 가치기준에 의해 나누어진 결과다. 특히 기독교로의 개종과 서구 문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익에 따라 백인으로 만들었다 황인으로 만들었다 했다. 그리고 크로스토프 마이너스의 인종주의적 관점(백색 인종은 아름답다.)은 노예제도와 나치 선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미국에서는 인종간의 결혼은 자신들의 피를 타락 시키게 하는 일이라며 황인종은 나라에 들일 수 없다고 배척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유럽이 만든 인종차별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역사는 곳곳에 묻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
(이 책은 주로 중국과 일본을 다룰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세기 이전의 자료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19세기 말까지 동아시아의 어느 누구도 자신을 황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이 되면 근대 서구 과학의 다양한 분야가 중국과 일본에 유입되면서 서구의 인종적 패러다임도 소개되기 시작했다.-----p18
요컨대 유럽의 '대항해시대' 초기에 동아시아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인으로 묘사되었고 황인종으로 묘사된 적이 없다.----------p57
중국인과 오키나와 사람들을 백인으로 표현한 것은 그들의 물질적 풍요, 국력, 높은 수준의 세련된 문화를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백색은 다른 색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치평가적인 말이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곧 진정 '문명화'될 수 있는 능력, 즉 유럽의 기독교로 개종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본인이 이웃한 중국인보다 더 백인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16세기 말 일본인은 이미 수만 명이 개종했다는 점이 부분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일본인이 "지금까지 발견된 사람들 중(즉 비기독교들 가운데) 최상의 사람들"이라는 판결은 서구의 기독교에게만 어울린다고 생각한 명예, 정직, 미덕이라는 철저히 유럽적인 코드에 기초한 판단이다.-p59
서구의 인종차별적 편견의 힘은 강력해서 중국인과 일본인의 얼궄은 다시는 백색으로 보일 수 없었다.--------------------p79-80
요컨대 중국과 일본의 피부색은 철두철미 서구의 편견과 선입관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p80
황색은 다른 모든 색깔처럼 그것이 표현되는 문맥과 언어에 따라 긍정적 함의와 부정적 함의를 가진다. 아주 거칠게 말해, '좋은' 황색은 빛,태양,황금 등을 연상시키며 '나쁜' 황색은 배신,질시,허위를 연상시킨다.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 황색은 유다와 유대인을 표현하는 색이었다.현대적 맥락에서도 황색은 교통신호나 스쿨버스처럼 여전히 경고의 색이다. 현대 영어에서 황색 인간은 겁쟁이다.-------p99
블루멘바흐 책의 중요성은 그가 황색을 다른 색에 대비되는 것으로 제시한 점이나 오래전부터 통용된 개념인 황색 인도인 내지 황색 셈족의 이미지를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투영한 데 있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가 인종적 범주의 신상품, 즉 '몽고인종'이라는 새로운 인종적 범주를 발명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다.-----------p113
블루멘바흐 5단계 계층구조를 설정하면서 '코카서스인'을 중심에 두고 '몽고인'이라는 새로운 상표를 창안해 '에티오피아인'과 함께 유럽인의 이상형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했다.-------------p124
19세기 초에는 당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비교해부학자이자 동물학자인 조르주 퀴비에가 이 개념을 이어받았다. 그는 블루멘바흐의 도식을 조금 더 단순화해서 세 가지 인종 유형, 즉 백인/코카서스인종, 황인/몽고인종, 흑인/에티오피아인종으로 축소했다.
그는 최상층에 유럽인종을 놓고 최하층에는 원숭이에 가까운 흑인 아프리카인종을 배치하여 아주 간단히 위계질서를 잡고자 했다.-p124-125
우리는 동아시아인 역시 통상 백색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하지만 이미 피부색이라는 말 자체는 과학으로 됫받침된 문화의 높낮이에 관한 편견 및 규범적 주장과 불가분의 관계였다.-----------p126
마이너스의 관점에서 코카서스와 몽고라는 두 인종 간의 가장 큰 차이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코카서스인종만이 "아름답다고 불릴 자격이 있으며 몽고 인종은 추하다고 불러도 정당하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몽고족의 후예라 칭해지고 있으며 몽고족의 기형적인 체형을 가진 짙은 피부색의 "불완전하게 계몽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몽고인의 피부색이 은밀하게 갈색에서 황색으로 바뀌기까지 했다는 점이다.-----------------------p130-131
인종주의적 사고라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마이너스가 (비)매력의 개념을 고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다. 따라서 그의 관점이 아프리카인의 노예화가 자연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1세기 뒤의 나치 선전관들에게 매력적으로 ㅂㄱ쳤단ㄷㄴ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p131
마이너스와 블루멘바흐가 일단 모든 동아시아인을 몽고인종으로 지칭함에 따라 이 지역 전체는 '몽고족'의 특성을 갖게 되고 말았다.-----------------------------------------p131
이제 몽고인종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방랑자 인간형, 즉 다시 한 번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인종으로 간주되었다.
몽고인종은 이제 흉물스러움, 즉 마이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추함'의 보편적 상징이 되어버렸다.---------------------------p132
마침내 1780년대가 되면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같은 보편학자들조차 "몽고족의" 야만성은 "아시아의 산마루"지역에 사는 모든 민족의 특징이라는 이론을 개진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기형적이고" 약탈적인 성격은 단순히 기후나 문화적인 탓만은 아니며 유전적인 원인 탓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기존의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한 호감은 18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중국혐오증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p133
'황색 몽고인종'의 경우는 어떤가? 어떻게 해서 이 어휘는 다원발생론과 19세기 인간유형학의 개념에 끼워 넣어질 수 있었는가? 가장 단순한 해답은 이들이 그 피부색이 그러하듯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일종의 '중간적' 인종으로 파악되었다는 것이다. 퀴비에는 이를 편리하게 생각해서 코카서스인종보다는 덜 "문명화"되었지만 에티오피아인종만큼 "야만적"이지는 않은 인종으로 구별했다. 윌리엄 로런스는 1819년 이에 대해 상세한 해설을 달았다. 그는 중국과 일본이 "문명화를 이룰 능력"이 있었지만 "수 세기 동안 정체"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가 "기독교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2,000~3,000년 동안 정치제도 및 사회제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었다"라고 볼 수 있지만, 이후의 정체된 모습은 이들이 "백인종에 비해 본성이 열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보여준다."--------------------------------------p136
"역사는 백인종 국가에만 존재한다."선배 마이너스처럼 고비노의 이론은 나치에 도움을 주었다.특히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의 개념뿐 아니라 역사에 등장한 모든 참된 문명의 원천이 '아리안'이라는 생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p141-142
논의를 진행하기에 편리한 시점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1859년일 것이다. 하지만 다윈의 책은 다원발생론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는거녕(물론 이 책은 인종 문제를 거의 거론하지 않지만), 오히려 인종적 위계를 더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진화나 돌연변이의 문제는 18세기 이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p143
브로카가 초기 인류학, 특히 형질인류학으로 알려진 분야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는 개인적으로 20여 개 이상의 측정 기구, 예컨대 두골계측기, 측각기, 측미컴퍼스 등을 제작했으며 1880년 그가 사망할 즈음 이것들은 모두 표준 기기가 되었다. 오늘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브로카가 색상 측정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그가 만든 색상표는 일부 변형된 형태로 20세기까지도 많이 활용되었다.-------------------------p143
많은 측정 사례의 초점은 결국 '다른' 인종들은 '정상' 인종과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물론 이 '정상' 인종이 인류학자 자신이 소속된 인종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인종 간의 이와 같은 차이는 유전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형성되었다. 여기서 대븐포트는 또다시 이런 인종주의적 사고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주었다. 1911년 출판한 300쪽에 이르는 <우생학과 형질유전의 관계>라는 책에서~ 이 연구는 독자들에게 "잘못된 종류"의 외국인들이 추가 유입될 경우의 악영향을 경고하는 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다양한 이민 규제, 바람직하지 못한 결혼에 대한 금지법 제정, 심지어 강제적 불임수술 등이 필요할 터였다.-------------------------------p166
서구 의학은 형용사 '몽고적'이라는 말을 극동 지역 사람들 혹은 그들의 질환과 연관되는 신체 조건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인종주의적 관념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했ㄷㅏ.그런 용어로는 '몽고눈주름','몽고점', 및 '몽고백치 또는 몽고증'등이 있다.-----p171
1851년처럼 이른 시기에 어느 안과학자는 다른 민족보다도 유독 동아시아인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내안각주름이 "코카서스인종에서 몽고인종으로의 변이"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그의 이런 생각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인종을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정도에 따라 분류하려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런 유의 이론을 제창한 이는 로버트 체임버스였다. 그는 1844년 펴낸 <창조의 자연사적 흔적>에서, "여러 인종의······대표적 특징은·······가장 우등한 유형, 즉 코카서스 유형으로의 발전 단계 중 특정 단계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다.---------------------------p178
19세기 말이 되면 상당수의 동아시아 이주민들이 서구 사회에 등장했고 그에 따라 이들을 인종화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었다. 우리가 지난 수 세기 동안 보아왔듯 '야만적' 동양에 대한 서구의 공포는 동양을 위험한 곳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침략자의 이름은 페르시아인, 스키타이인, 파르티아인, 훈족, 투르크인, 타타르족, 몽고족 등 매우 다양했다. 블루멘바흐가 몽고인종을 따로 구분하기 전인 18세기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이 붕괴한 원인 중 하나로 미개한 북동 지역 "유목 민족들"을 지목해 따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1895년에 '황하'라는 말이 창안되면서 동아시아인은 황색이고 위험하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이는 학문적 담론이나 대중적 읽을거리 등 상상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이 말이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처음으로 전 유럽이 언어 장벽을 넘어 이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인은 이제 확고부동하게 황인종이 되었다.------------------p206-207
황색에 대한 동아시아의 수용은 결코 우연적이지 않았다. 특히 중국은 황인종(그러나 '몽고인종'은 아니다)에 대한 서구의 관념을 타당한 것으로 수용했고,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황색이 완전히 긍정적인 자기 증명의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황색성의 전유이기도 했지만 서구 인종주의의 전유이기도 했다. 특히 서구가 각 지리적 집단에 특정한 색깔을 고정시키는 일에서 보여준 이상한 집착은 중국적(사실 동아시아적) 사상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분명히 동아시아의 전통에서도 성과 사회 계층에 따라 피부색을 구별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서구의 분류학적이고 해부학적인 전통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이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이 되면 서구의 이런 전통이 다른 과학적 발견들과 함께 중국과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한다.----p211
캉유웨이는 장대한 유토피아적 비전을 담은 <대동서>(1902년경)를 통해 ~ 그는 세계가 서로 다른 피부색의 인종들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면서 "검은 색" 인종들은 열등하다고 보았다. 그는 백인종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대신 "황인종"을 같은 수준에 위치시키는 계층구조를 제안했다.------------------------------p212
황제는 '순수한 황색인' 즉 한족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황은 꼭 색깔을 의미하지는 않는다.('황'은 성씨의 일종이며 이 글자는 여러 가지 다른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p212
비록 많은 중국인이 그들 자신이 사실상 '황인종'의 일부라는 데 동의하듯 보였지만 황색이라는 개념을 서구가 생각하듯 수동적으로만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캉유웨이는 그의 책에서 중국인을 "금색인"으로 불렀다. 이는 개념적으로 서구의 "은색인"보다 더 우월한 민족이기 때문일 것이다.---------------------p213
18세기 이전 유럽의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밝고 어두움의 기준은 문명의 수준이지 인종이 아니었다. 중국은 중화로서 세상의 중심이자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백색으로 제시되었다. ------p218
일본인은 자신들을 '황색'으로 규정하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곧 서구가 일본을 중국과 함께 싸잡아 도매급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많은 일본인이 자신들을 중국인과 구별하려 애쓰는 마당에 말이다.----------------------p219
물론'황인종 중국인'보다는 훨씬 우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개념 자체를 철저히 거부하며 자신들은 이웃한 어떤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더 백인종 유럽인들과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메이지 시대 저명한 역사가이자 경제학자인 다구치 우키치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 우수하고 탁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황인종이 아니다."--p219-220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피부색 및 전반적인 문화 발전이라는 점에서 일본이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언했다.----------p222
중국인의 피부는 황색인 반면 일본인은 황색(혹은 누르스름한) 안색에 백색 피부다. 일본인은 황색에 몽고인종이지만 여전히 일정한 백색 기질을 부여받고 있다. 이 글(<인종의 알파벳>)의 저자는 그 이유를 일본인은 "아시아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문명화된 민족이라서 '극동의 영국'으로 칭해지기도 하기"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독일은 이를 다른 식의 관용구로 불렀다. 즉 일본의 극동의 프로이센이라고. 그러나 중국은 "굉장히 잘 조직된 고대의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때 보수주의와 미적지근한 태도로 나타난다. 일본과 ······ 너무나 다른 면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삽화를 보면, 일본인의 얼굴은 밝은 피부색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아이누를 포함한 다른 동아시아 이웃들과 비교되고 있다.----p223
일부 서구인 구경꾼들이 볼 때 일본은 황색 위협이 아니라 '황색 희망' 이었다. 일본이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필요한 전 지역, 특히 중국에 그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1904년 쑨원은 근대화된 중국의 미래가 "황색 축복"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일본이 그런 역할을 떠맡게 되리라는 생각은 굉장한 불안감을 주었다.-----------------------------------------p224
그 시기와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중국이든 일본이든 '기독교 국가들'에는 똑같이 황색 위협이었다. ㅇㅣ러한 편견은 (다른 곳보다도) 미국에서 입법화된 일련의 이민 규제 조치에서 은근히 드러나게 되었다. '황색 몽고인들'의 유입을 차단하려는 이 법안들은 1882년 중국인배척법으로 시작해 이후 확대되고 강화되었다.~그러므로 인종 간 결혼은 "미국인의 피를 타락시키는 일"이며 그로 인한 동화의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p22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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