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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를 매춘부라 하였다. 당시의 파리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비의 심장부이자 중심지였기에 가능한 표현이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도 소비가 중심인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 표현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끊임없이 무엇이든 생산해 내고 팔아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형성된다. 19세기 자본주의의 심장부가 파리라 한다면 대한민국은 단연코 서울이다. 서울의 모든 삶이 소비라는 수레바퀴로 굴러가고 있고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생존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경제학자인 류동민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관계가 아닌 '정치경제학'의 서울을 재조명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서울은 자본과 노동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 불과하지만 정치경제학의 서울은 소비라는 패턴으로 얽혀져 있는 생활의 터전이라는 공간의 총체적 재현이다. 이러한 공간의 개념은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같은 맥락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울은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가 지닌 아케이드'이다. 저자는 서울에 침투한 자본의 욕망을 읽고 대형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놀이공원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상에 물신의 지배를 읽어내며 삶이 어떻게 소진되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한다.
자본의 힘이 삶을 착취하는 한편으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이중성을 가지듯이, 공간에 대한 낭만적인 재현도 마찬가지로 인간 본성의 요구인 동시에 지배 구조를 단단하게 만드는 이중성을 갖는다. 공간의 총체적 재현, 어쩌면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이는 그 목표에 한 걸음이라도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다. -p27
한국의 주거문화를 선두하고 있는 아파트, 언제부터인가 민주적공간의 상징이 되어버린 스타벅스,상품 물신의 현장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코엑스물, 자본에 장악된 놀이공원, 대학 캠퍼스, 대형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서울을 정치경제학이라는 색다른 지평으로 읽어내는 가운데 저자는 이러한 공공장소가 지닌 의미가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생성되고 있음을 간파해 낸다. '공간' 이 지닌 의미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며 그 공간이 또다시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만들어나가는 경제구조를 창출한다. 모든 것이 소비라는 시스템에 기인하듯, 고갈되지 않는 소비에 대한 욕망은 공간의 의미를 재편집한다. 스타벅스가 현재의 민주적인 공간을 대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의 변화에 따라 스타벅스가 상징하는 의미는 변화되고 또 다른 상징이 그 공간을 대체하는 것처럼 하나의 욕망이 만들어낸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는 소비의 패턴이고 그 소비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 서울은 이렇게 수많은 욕망과 자본에 의해서 움직이는 유동의 공간이다.
애초에 인간이 만들었으나, 어느덧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것, 정확하게 물신의 정의이기도 하다.
자본이 국가의 자리를 대신하는 듯한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국가가 능력주의의 후원자일 거라는 환상 때문에 방해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국가는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여 할 때조차 자본의 은유를 빌리곤 한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주로 억압적 국가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의 지배, 국가의 틀을 빌린 자본의 통제 혹은 자본의 언어로 말하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시간 구조를 뼈대로 삼아 형성된 서울의 공간적 구조를 구별 짓기와 추격의 과정,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환상과 실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귀착된다.p199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 '시초 축적'에 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저자는 보들레르가 지적한 것처럼 '매춘'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면 현재의 서울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기 까지 사람들의 욕망의 변천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장 쉬운 예로 '시초 축척' 이라는 신화적 의미를 대입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열심히 일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보편적 판타지가 통용되지 않는 이유를 '자본'에서 찾고 있다. 대학가에서나, 백화점에서나, 교회에서나 자본이 전공과목의 유용성을 평가하게 된 것처럼 자본이 능력이고 자본이 곧 종교가 된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자본만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이자 능력이다.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자본이 물신이 된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 하듯이 서울은 인간의 욕망을 팔아 도시를 완성한다. 비약적인 발전으로 서울은 현재에 근대를 품고 있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 불리기도 하였지만 서울이라는 도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배제의 원리'에 있다, 자본이 삶을 착취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도 자본이다. 이러한 자본의 이중성은 발터 벤야민이 말하였듯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와 같은 아케이드 서울이다.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류신'의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이야기의 흐름은 전혀 다르지만 본질은 같았다. 류신의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프레임에서의 공간이라면 이 책은 실천적 공간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라는 프레임이다. 류신의 서울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기억되는 공간 재현이었다면 경제학자 류동민의 서울은 삶을 이루고 바꾸며 살아가고 있는 공간 실천의 서울이다. 같지만 다른 느낌의 서울,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시간 축과 공간 축이 서로 얽히면서 일어나는 변화는 그 시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하였듯이 정치경제학으로 살펴보는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람들 저마다의 기억속에서 재현되는 삶의 또다른 모습이다.(재현공간)
나의 기억을 자기중심적으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폭력적 재현, 내가 믿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대안적 재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것이다. 공간을 마음속에서 재현하는 것, 공간에 얽힌 시간을 기억하는 것,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가 사는 공간을 바꿔나간다.-p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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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이란 낯설고 새로운 것에 관한 동경, 한편으론 정치권력, 부의 편중, 배제원리가 냉철하게 작용하는 도시사회의 대표격으로 환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60여년 동안 엄청난 발전과 변혁이 일어난 본산이기도 하다. 인구 천만이 넘은지 오래, 거리마다 높은 빌딩과 저마다의 브랜드와 가치로 무장한 상업적 공간이 즐비한 이 곳, 서울이 돌아가는 작동 원리는 과연 무엇일까. 부산 태생인 저자는,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느꼈던 과거 자신의 시절을 회상하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건물들과 집들이 지어지고 뜯기며 또 다른 무대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공간이 충돌하거나 공감되거나 혹은 외면받는 현실에 대해 정치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서울은 냉정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능력이 있고 돈 있는 사람들과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의지하여 상위층에 머무르며 인서울 생활을 즐기겠지만 지방으로부터 부푼 꿈만을 안고 올라온 이들은 도심 속에서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기 일쑤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인들을 보는 시선부터 배제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처럼의 이벤트 행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게 일반이고 대학과 일자리를 구하려면 서울로 가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혀 있다. 이러한 배제원리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대학, 주거지역, VIP서비스, 교육현장등이 그 예일 것이다. 요즘엔 웬만한 고급아파트나 신축 빌라엔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경비도 삼엄하다. 대학졸업장만 따면 그만인 시대는 갔다. 서열 매기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대학에도 순위를 매겨 철저한 등수논리에 의해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우월감에 젖는다. 이런 네임밸류는 대학에 한정되지 않고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 강남 어디 어디 학원이 잘 가르친더라~ 또는 어디 병원이 시술을 잘 한다더라~ 하는 사교육과 성형열풍에서도 비껴가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다 되는 자유가 오히려 빈곤층과 서민들을 최상위계층과 구별짓게 하는 역효과는 낳은 셈이다. '억울하면 출세하든가~'라는 말이 더욱 더 그 힘을 발휘하는 현대사회가 때로는 각박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커피는 스타벅스, 대학은 인서울 중에서도 스카이, 아파트는 최소 몇 평은 되어야 하고 취직 후 월급은 얼마 이상. 주부나 회사원, 입시생들이 모이면 주로 올리는 화제거리가 아닐까.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브랜드를 소비하고 고급적인 생활공간을 지향한다. 이러한 욕구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자기투자 즉, 자격증 취득이나 여가, 외모관리등 '자기경영'에 소비하는 행위조차도 점점 차별화와 럭셔리화의 대세를 따라간다. 결국, 이렇게 이룬 모든 것을 그것을 이루지 못한 자들과 구분하기 위해 자신들만을 위한 특별한 대우를 원하게 되는데 최근 생겨난 코스트코나 롯데월드, 백화점 명품관, 주상복합아파트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공성이 비공공성으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있는 자들만의 소유가 된다. 열려진 공간, 누구에게나 개방적이었던 공간이 점점 입장권이나 멤버십등의 제한으로 차단되는 요즘,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젠 그 의미가 달라져야 할 듯 싶다. 어쨌든 소비사회에서 물욕의 노예인 우리들은 가지지 못하면 부러워 하거나 따라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엇비슷하게 따라하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짝퉁명품을 사거나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 질투심을 달랜다. 나처럼 마음을 비우고 아예 시도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편할텐데 사람 맘이 다 같지 않으니 '죄수의 딜레마'같은 너도 나도 현상이 일어나나 보다. 하긴 그래야 시장도 돌아가고 먹고 사는 거니까. 그런데 이런 사회계층을 구분짓게 되는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간의 의미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4-50년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급격한 변화는 예감할 수 없었던 강남 지역은, 정부의 각종 정책 단행이나 제3한강교 건설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여 땅값 상승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됐고 그 후로 지금껏 건물 조성과 재개발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끼리의 숱한 갈등이 불가피하게 이어져오곤 했다. 익숙한 공간을 허물고 낯선 공간의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공간재편이 아닌, 때론 소수의 의지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말살되는 현장 혹은 시초축적의 현장일 것이다. 우리는 늘 불안 속에 살아간다. 가진 자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을, 뒤따르는 자는 끝없는 추격을, 경쟁하는 사람들은 뒤쳐지면 안된다는 두려움을 안고 매일을 살아낸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 물질은 그 고유의 실용가치를 잃고 상징성만을 띠게 된다. 당신이 사는곳, 당신의 품격, 당신의 이름이라는 등의 유려한 선전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마케팅은 이제 흔한 것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개미와 베짱이 이론을 믿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순수했던 10대에는 일한 만큼 돌아오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이고 논리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때가 묻어 그런지 세상이 변해 그런지 올바른 방식으로 대자본을 쌓기에는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과 정보사회에도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한 말단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온 몸으로 일하는 정직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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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이 서울이란 뜻이다. 어릴 때부터 자라온 서울은 지금처럼 마천루가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내 어릴 때만 해도 조금만 옆에 가도 논두렁이가 있어 그곳에서 개구리도 잡고 메두끼도 잡고 거머리에 내 다리를 물리기도 했다. 살다보면 조금 짜증이 나는 것이 지방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지방색을 드러내는 것이겠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 입장에서 도대체 싸우는 이유를 모르겠다. 서울이란 도시는 크게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몰려와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자신들의 줄을 세우고 앞서고 끌어주고 밀어준다. 그 외에 충정도와 강원도가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볼 때 솔직히 가당치도 않다. 난 서울사람이니까. 지금까지는 이런 상황과 연고가 중요하지만 갈수록 이런 지방 연고는 줄어들지 않을까한다. 나처럼 어릴때부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토박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지방색은 거의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지방에 대해 관심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극단적으로봐서 서울과 그 이외가 있을뿐이라는 생각마저 갖고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 아마도 서울,수도권과 그 이외 지방색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예상을 한다. 서울은 가면 갈수록 모든 권력과 문화와 자본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집어 삼킬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경기도는 서울의 배드타운 역할을 한다. 서울이 없으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다. 서울은 처음에 4대문 안이 전부였다. 확장을 거듭해서 지금의 메가폴리스가 되었다. 서울마다 더 많은 인구와 면적을 갖고 있는 도시도 있지만 서울은 어느 곳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서울 도시의 확장과 주택이야기와 사회를 결합한. 막상 책을 읽으니 예상과는 달랐다. 정확히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내 아둔한 머리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서울에 대해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하지만 이걸 꼭 서울에 대한 이야기인지 여부도 혼동되었다. 책 에필로그에 저자 자신이 이 책은 꼭 서울이 아닌 한국으로 확장해도 된다는 언급을 한다. 저자도 다 쓰고보니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닐까한다. 저자 자신이 어릴때부터 서울에서 자라며 만났던 장소와 경험을 함께 곁들여 현재와 비교해서 이야기해준다. 이걸 사회문제와 함께 이야기하는 식으로 책은 구성되어있다. 한편으론 한국이라고 읽어도 된다. 서울 이야기지만 서울은 한국이다. 한국은 서울이고. 현재 한국에 거의 모든 것은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누가 뭐래도 서울에서 유행하고 서울에서 의지를 갖고 하려는 모든 것들은 전국적으로 퍼진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와 공부하고 배우려한다. 가장 파급효과가 큰 드라마와 예능, 영화는 대부분 서울이 배경이고 중심이다. 서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 이외는 잘 가지 않는다. 기껏해야 수도권이다. 여행을 갈 때나 수도권을 벗어나지만 그마저도 정말로 여행목적이다. 해외를 나간다. 국내여행을 한다. 둘 중에 하나 선택이다. 서울은 그렇게 모든 것의 중심이다. 이러니 서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한국이야기가 된다.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한국과 동의어다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책에서 서울이라고 쓰고 자꾸 한국으로 연상되고 읽히는 것은 너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읽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경제학자라는 것을 몰랐다. 그걸 알았다면 좀 더 눈여겨 봤을터인데. 저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책이 상당히 교수스럽다. 분명히 쉽게 써도 되었을텐데 굳이 교수답게 썼다고 할까. 그건 교수로서 사람을 만나고 글쓰고 대화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그럴 것이다. 그렇다해도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책이라면 - 그렇지 않았다면 죄송 - 좀 더 친절하게 썼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읽으며 했다. 아직 내가 수준이 떨어져 그런 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중요한 문제제기이자 핵심은 '배제의 원리'와 '관계자외출입금지'다. 자격이 안 되면 배제한다. 능력이 안되면 출입금지다. 꼭 이렇게 구분하고 이런 잣대로 해야하는지, 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차지하고 반드시 틀렸다고 하기는 힘들다. 서울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자산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똘아이도, 착한 사람도, 능력자도, 부적응자도 살아간다. 이들은 다 다르다. 틀린 것은 아니다. 서울이 아닌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점이 획일화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무조건 받아들였다. 관용이란 뜻보다 더 큰 똘레랑스가 힘든 이유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힘들고 앞으로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현재 한국사회의 대치상태에서는. 그래도 내가 살아가는 곳이 서울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 서울이다. 서울을 벗어나 살 생각은 해 본적도, 할 생각도 없다. 예상과는 다른 내용에 책은 다소 집중하기 힘들었다. 너무 주택으로 생각하고 읽어 나도 모르게 인지편향에 빠져 읽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제목을 바꿔야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서울에서 산다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20171149728 결혼 - 제도에 대해 http://blog.naver.com/ljb1202/208290227 아파트 한국사회 - 단지 공화국 http://blog.naver.com/ljb1202/145296276 정의란 무엇인가 - 생각할거리가 가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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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에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책이 몇 권 있다. 경제서적을 거의 읽어본적이 없었던터라 생소하면서도 재밌었고, 이해와 공감도 잘 되었다. 저자의 노력도 많이 보였던 책이었다. 여러모로 잘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서울은 강북과 강남으로 구분 된다. 강남도 부자동네와 덜 부자동네로 나눈다. 어디서 사느냐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사회는 계층을 나누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열의를 자극한다. 남들과 다른 옷, 가방, 집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여 차별화를 꿈꾼다. 흔히 언론에서는 월급쟁이가 수십 년 돈을 모아야 강남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격 거품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다. 올라갈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진자들이 만든 차별적 구역나눔인가. 서울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곳이다. 시공간이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들과 함께 압축되어 정글을 이루었다. 당신이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스타벅스가 인기가 많은 이유중에 뉴욕커의 상징같은 교양있는 분위기 같은 인식이 크게 작용한다. 코엑스몰 같은 거대 상점에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빠르게 찾기란 쉽지 않다. 복잡한 미로를 찾아 헤매이듯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 경제적 인간이 될 것을 요구받는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 아파트 광고는 고급화 경쟁이 한창이었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인데 투기목적이 한몫 했다. 또한 자식교육 때문에 대치동으로 무리하게 이사가는 가정도 많이 있다. 누군가가 서울시 지도를 꺼내놓고 색연필로 짚어가며 그렸을 지하철 노선도가 세월이 흐른 뒤에 우리의 삶의 양식을 규정하게 되는 셈이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재편되며 변화해 간다. P114 지하철 역이름으로 대학을 넣어달라고 항의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대학의 인지도가 오르고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별화하고 드러내는 것. 경쟁이 만든 변화이다. 대형교회도 차별화를 시도한다. 주변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크기, 관계자외에 들어갈 수 없는 배제성으로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대형교회의 공간 구조는 고급 아파트나 쇼핑몰, 놀이동산, 심지어는 패키지여행의 그것과 닮았다고 한다. 렌트 경제. 목이 좋아도 임대료, 권리금 같은 지대가 높은 경우에는 유명 커피전문점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벤처 열기가 사라진 테헤란로의 수많은 오피스텔에 성매매업소가 파고든 데에도 이러한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한 달 임대료만 몇 십 만원이 넘는 방에서 그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종은 흔치 않다. 그런 업종의 대표가 성매매 산업이라 한다. 너무나도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공간 구조의 왜곡이 그나마 현실적으로는 경제를 지탱해주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오피스와 매장이 텅텅 비어 유령처럼 변하는 도시를 환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P145 구별짓기와 계급적 차이가 만연한 도시속 생활자들은 따라가기 위해서 오늘도 분투하고, 잡히지 않기 위해서 달린다. 자본축적은 이익은 위로 몰리고, 위험은 아래로 내려가는 유흥주점형 경제 모델이라고 한다. 각자는 피라미드에서 자신보다 아래쪽에 위치한 이로부터 빨아 올린 이익을 더 위쪽에 있는 이에게 빨리는 구조이다. 서울처럼 급격하게 팽창하며 발전한 도시의 공간을 기획하고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이익을 빼앗아 부를 쌓는다고 한다. 서울의 작동원리를 경제적, 철학적, 인문학적, 문학적으로 다양하게 살펴보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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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대학다니던 지난날에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책을 쓰던 사람이 꽤 눈에 보였으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마치
썰물처럼 그 분들은 다들 어디론가 가버렸나 싶었다. 그때에도,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선생님이라야, 경제학과에 한분 정도 있었는데, 그
마저도 사라져간다는게 아쉬운 마음도 크다. 듣기 싫은 것과 아예 치우는 건 정말 다른데, 오늘날 한국 경제학을 가르치는 강단을 보면, 미국 경제학 교육을
본따고 싶은 마음이 더욱 노골화되나 싶다. 하지만, 한국보다
미국이 좀더 다른 의견에 열려 있음은 별로 얘기되지 않고 쓱 지나가는 오늘날을 보면 정말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글쓴 이는 (대)자본의
공세, 이제 더욱 그 모습을 드러내고, 거침없이 그 욕심의
이빨을 드러내고 없는 사람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간다. 먹고 입고 자는,
정말 우리의 기본 터를 움켜쥐고 어떤 빈틈도 없이 싹싹 긁어가버린다. 그중, 책쓴 이는 잠자고, 살아가는 공간,
특히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500년 이상 우리 나라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서울을 주목한다. 자본주의를 빗대어 말하려고 할 때, 공간
측면에서 도시는 가장 눈여겨볼 수 있는 꺼리다. 서울에서 어린 나날부터 보내온 책쓴 이는 스스로의 경험,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문제나 현상을 푸는 힘을 바탕으로 서울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책쓴 이는 우선, 자본(주의)이 이제 크게
바뀌는 중요한 갈림길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자본이라는 테제는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하지만 쉽게 넘어가도록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엄청난 힘을 가진 그 무엇이다.
특히, 렌트(지대), 도강비라는 이름안에 들어박힌 다양한 빨대를 어떻게 짤라내버릴 것일까?
읽으면서, 점점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길이 잘 보이지 않아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책쓴 이에 대한 느낌은 아니고, 오늘날 서울에
살고, 살고 싶은 우리에게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길찾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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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덜컥 사들인 책입니다. 저도 시골놈이라서 아무래도 이러한 주제는 대단히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예상과 달리 분석을 하는 식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방식이 이 딱딱한 주제를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볼수 있겠습니다. 그 글을 따라가다 보면 서울이란 도시가 얼마나 퀀텀점프를 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프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수 있습니다. 그 빛이 강하면 그림자 또한 강해지듯이 서울이란 도시의 어두운 면도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면모에 대해서 집어보고 있는 내용입니다. 삶은 참 고달프고 힘드네요. 간단치 않은 내용이라서 잘 표현하기 어렵네요. 읽은 뒤에 바로 바로 써야 그나마 나은데요.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