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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빌때는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원하는대로 정확히 이루어지니까요“ 소원을 파는 사디어스 블린이 내 앞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돈, 아름다움,명예...상상할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내것이 된다면?? 나두 당연 소원을 들어주는 카드를 구입할 수밖에^^; 물론 속은 기분이 들면서도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사기꾼일지언정.. 코븐트리 마을 이 마을에서는 항상 유월 세째 토요일날 마을축제가 열리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작은 광고가 보인다.. 그리고 이 광고에 혹 해서 폴리,로위나,애덤 세친구와 나 스튜미트가 사디업스 블린을 만나단돈 오십센트를 내고 소원카드를 받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끔 우리들도 자연으로 나가게 되면 토끼풀을 만나게 되는데 저마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네잎 클로버를 찾게 될 때가 있다. 세잎클로버가 지천에 널렸지만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세잎크=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행복은 언제부터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고 네잎클로버가 가지고 있는 행운만을 찾아 여기저기 눈 크게뜨고 찾아 보게된다... 단돈 오십센트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준다는 카드. 네잎 클로버처럼 행운이 손짓할수도 있지만 다른무엇인가를 잃게 된다면?? 주변에서 쉽게 볼수있는 세잎 클로버처럼 늘 우리 가까이있는 행복이 더 좋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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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사람들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 원하는것 되고싶은것 보다 나은 미래의 모습을 꿈꾸는 수단으로 희망사항일수도 있고 자신의 소원을 향해 무던히 노력하고 있을수도 있다. 특히나 아이들이라면 왕성한 호기심만큼이나 하고싶은것도 가지고 싶은것도 많기에 이루고 싶은 소원도 참으로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원하는것 한가지를 무조건 들어줄수 있는 카드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얼마나 열광할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안은것 같다." 원하는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줍니다 단돈 오십 센트 " 라는 광고판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온마을 사람들중 단 4명뿐인것을 보면 찾아온 그들 또한 원하는것은 무엇이든 들어줄수 있다는 카드를 손에 쥐고도 전혀 믿을수 없다는 반응들이다.
세아이와 그리고 그들과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할아버지 그렇게 4명의 사람들이 처음 소원을 들어주는 카드를 만나는 이야기로 시작된 책은 다음부터는 세아이의 이야기를 담아가는 단편형식으로 구성되어졌다.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 세개의 이야기가 되었다 또다시 하나가 되어 끝나는 독특한 구성에 이야기 또한 현실과 가상세계가 적적하게 잘 어우러져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현실속에서 많은것을 느끼고 깨닫게하는 많은 교훈 또한 안고 있었던것이다.
스스로는 정직이라 생각하지만 상대방에겐 화를 돋우고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치않고 내밷던 폴리, 일년에 두번 마을을 찾아오는 농기구 외판원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 다른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15살의 로위나, 마을에서 물이 가장 귀한 애덤네 농장의 아들 애덤피스크 이들은 50센트의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된 각각의 카드 앞에서 나름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던 각자의 소원을 빌게된다.
마침내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소원은 아이들이 원하는것이었지만 전혀 원하지않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찾아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진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개구리 소리를 내는 폴리를 걱정해주던 선생님 자신의 마법때문에 농장이 물바다로 변해버리고 그동안 일군 모든 재산을 잃게 된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애덤을 이해해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든든한 아이들의 후원자로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하다.
우리 아이들은 곤경에 처한 세아이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만약 이세상에 소원을 들어주는 카드가 정말 있다면 가지고 싶다한다. 알수 없는 미래의 모습만큼이나 어떤방향으로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세상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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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화책을 읽다가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 없을까하는 생각 때문에. 물론 내가 우리 동화책을 모두 읽은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판단한다는 것이 오만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어린이책과 관련해서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굉장한 책을 못 보고 지나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뭐가 특별한 것일까 곰곰 생각에 들어갔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 명은 서술자로 등장하니 세 명의 아이들(본인들은 아이들이길 거부하고 청소년이길 바라지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세 아이들은 한 마을에서 살며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셋을 모두 한꺼번에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명씩 다루기에 처음에는 서로 연결시키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하'라는 감탄사와 함께 그동안 각기 떨어져서 생각되었던 세 아이들이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구조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데도 참 신선하다. 판타지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중간에 마법이라는 말이 나오고 소원을 빈다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게다가 각각의 소원들이 차라리 이루어지기 전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기에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지는 이야기는 그동안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 이야기를 순식간에 마무리한다. 그렇다고 서둘러 봉합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력감에 빠질 정도로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뉴베리 아너상을 받았다는 타이틀 때문에? 그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간혹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해도 우리의 상황과 맞지 않는 이야기일 경우 몰입하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을 받은 책을 봐왔다. 그렇다면 뭘까. 나름대로 내린 결론에 의하면 현재 우리의 동화책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면만을 다루거나(특히 요즘 그런 경향을 보인다.) 판타지의 경우 현실적인 요소는 없이 판타지에 모든 것을 할애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리고 아직 판타지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상태도 아니고. 하지만 이 책은 판타지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현실적인 장치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둘을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책에 더욱 빠져들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메시지가 없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라도 때로는 현재가 좋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고 소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뭉뚱그려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씩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메시지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부주의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헐레벌떡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테니까. 우리의 상상력은 무엇 때문에 벽을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경직된 사고를 하도록 훈련받은 교육 때문은 아닐런지. 동화책 한 권 읽고 어쩌다 교육문제로까지 나가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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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줍니다. 농장이 물에 잠기게 된 게 애덤의 소원 때문이었다는 걸 들은 애덤 아버지의 온화한 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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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문학의 영원한 소재인가 싶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살아가며, 나 역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원작 동화를 읽으며, 그런 소원풀이가 영원히 유지되지 않고 반드시 적지 않은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제발 내게로 오라, 소원성취의 마법이여.'를 마음으로 외친 적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마을 축제에서 오십센트씩을 내고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카드를 산 네 사람에게 벌어지는 소동. 소동이라기에는 그 결과가 자못 크고, 끔찍하기까지 해서 읽으며 아이들이 어떻게 느낄까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말 대신에 개구리 울음을 뱉어내게 된 아이, 좋아하는 남자가 나무로 변해버린 소녀, 집과 농장이 물바다가 되어 버린 소년. 이 세 명의 소원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는 이야기. 자, 해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저 뱉어버린 소원이 불러오는 나쁜 결과와, 사람의 행복은 일순간의 소원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 이주 초기 미국이라고 하는 시대배경이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흥미를 배가하고, 이야기도 드라마틱하다. 그래서 뉴베리상을 받았겠거니 싶다.
만약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난다면 당신은 무얼 부탁할 것인가? 잘 생각해 둘 일이다. 미리 미리. 그러나 기억할 것은 그 요정은 착한 요정이 아니기 십상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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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69페이지, 21줄, 28자.
스튜어트 메드(스튜 미트)는 잡화상 주인인데 어느 유월 셋째 토요일 날 마을 축제가 열린 곳에서 사디어스 블린이라는 사람이 차린 '소원을 들어주는 카드'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곳에는 열한 살 된 폴리 켐프, 열다섯인 로위나 저비스, 열여섯인 애덤 피스크가 있었습니다. 각자는 50센트씩 내고 빨간 점이 찍힌 카드를 받습니다. 블린은 그 점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소원을 빌면 된다고 말하곤 사라집니다. 스튜는 던져버리고 잊었지만, 폴리 등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소원을 빕니다.
폴리는 상스러운 욕을 하면 개구리 소리를 내게 되고, 로위는 농기구 판매상 헨리 파이퍼를 땅에 뿌리박히게 하고, 샘은 농장에서 물이 솟아나게 합니다. 물론, 과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스튜에게 달려와 아직 사용하지 않은 그 카드로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1984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이라네요. 어디선가 본 기록에는 뉴베리 상은 메달과 아너로 구분되고 메달이 이른바 대상이고 나머진 아너라고 하더군요.
단편 셋을 모은 셈인데 글 자체는 잘 써내려갔습니다. 술술 읽힙니다. 짧아서 단편이지만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아, 제가 단편집을 좀 싫어하거든요.
그나저나 헨리 파이퍼가 불쌍하네요. 물론, 장사속으로 로위나를 꼬드겼지만, 느닷없는 마법의 후유증을 그대로 받았으니까요.
130113-130113/13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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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무척이나 망설이게 될 것이다.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는 것은 분명 여러가지일텐데 어느 하나를 먼저 이야기할까 하는 것으로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질 만큼 우리는 바라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기에......
설마라는 생각이 더 컸지만 혹시나 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주하게 된 사디어스 블린과 오십 센트에 맞바꾼 빨간 점이 박혀 있는 카드 한 장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채 그렇게 흩어지지만 우연찮은 각자의 소원 결과는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하면서 또다른 의미를 깨우치게 한다.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이들의 놀라운 소원은 결코 즐거운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는 말을 할때마다 개구리 소리를 내야 했던 폴리는 소원하던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위한 절제와 순화의 필요성을 그리고 사랑하는 헨리 파이퍼가 코븐트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떠나지 않기를 바랐던 로위나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경험케 된 것이다. 또한 귀한 물을 위해 지겨운 노동을 해야만 했던 애덤은 물을 소망한 것이 완벽한 듯 여겼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누구나 더 나아지기 위해 같은 소원을 빌었을 것이란 아버지의 이해와 다독임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네 사람의 새로운 만남을 하게 만든다.
진정 바라는 소원을 소중히 신중하게 원했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세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남겨진 마지막 소원은 그들의 소원이 취소되고 그러한 소원으로 인한 불행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쉽사리 안타깝게 사용되어버린 이전의 것들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마지막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소원을 위해 자신이 행해야 하는 노력과 진심을 알게 되었으니까.
간절히 바라는 것에 대한 신중한 선택과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분명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그러한 것을 깨우치게 하기 위한 사디어스 블린의 흥정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되어지고 있을텐데...., 과연 나를 비롯한 주변의 이들이 진정 바라는 소원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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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카드요.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주니 신중을 기해 소원을 비시오.'라는 엄중한 경고(?!)와 함께 카드 한 장이 내게 날아들었다면? 십중팔구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현실성없는 이야기려니와 그 카드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 정체도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면 더더욱. 그러나 한편 어느 순간 행여나 하는 마음에 건성으로 소원을 빌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너무 직설적으로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는 버릇을 가진 소녀, 일년에 두 번 마을을 찾아오는 세일즈맨을 외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물이 나지 않는 곳에 농장에 살아 물긷는 일이 너무 힘든 소년. 이 세 사람은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카드에 대고 자신의 소원을 빌었고, 마법의 카드는 그 소원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똑바로 들어주고야 만다. 문제는 '금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단순명쾌한 소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게 그렇지 못하고 복잡애매한 소원이었다는 것.
소원은 이루어졌으나 주인공들은 예상치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동안 스스로 깨닫고 변화해가면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 특히 아무렇게나 말하던 소녀의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부러워 동경하던 대상에게 멋지게 한 방 날리며 자신의 자존감을 갖게 된 이야기가 흐믓하다. 또 그렇게나 물을 원했던 소년의 이야기는 뜻하지 않은 역경 속에서도 가족이 힘을 합쳐 다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가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마법같은 이야기이지만 현실감이 녹아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독자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진정으로 원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또 비록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카드가 자신의 손에 없을지라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될 터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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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네 도서관서 빌렸다. 그냥 서영이도 읽고 나도 읽고 그럼서...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결론은 재밌었다. 늙은이의 눈엔 유치하기도 했지만.
마을 축제에 사디어스블린이라는 마술사가 소원들어주는 카드를 준다. 폴리,로위나, 애덤,스튜 미트에게 다들 반신반의했지만... 나름대로 다들 소원을 빈다. 소원땜에 다들 문제가 생긴다. 스튜미트 빼고. 그리고...다들 조금씩 자란다.
폴리는 말을 막하는 친구다. 나쁜 아이는 아닌데 그냥...개굴거리게 되다가 이제 나아졌다. 로위나는 겉모습만 보고 누구를 좋아했다가 소원카드 덕분에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애덤이 제일 현실적이고 안됐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부모님이 힘들여 장만한 농장에 물이 부족해서 힘들었다. 그래서 농장에 물이 있었으면 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거 제대로 쫌 들어주지. 이 소원카드의 문제는 아주 극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거다. 주목받고 싶으면 개굴거려서 머무르게 하고 싶으면 나무로 변하게 해서 물이 있었으면 하면 물에 잠기게... 스튜 미트가 소원을 되돌리는 소원을 빌어 모든 일이 해결된다. 애덤의 농장은 아직도 물이 부족하게 되지만 애덤이 다른 길로 일어서고 ...그 점이 동화답지 않긴 했다.
살면서 말조심하고 소원을 빌때도 말조심하고 폴리나 로위나 처럼 겉모습에 혹하지 말고 모든 일엔 그 이면이 있을거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 기타등등기타등등...
근데 나 ...이런 종류의 동화책을 읽기엔 좀 늙은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