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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 길이 없어 타국을 향해 보따리를 싸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은 사람들의 등을 떠밀었다. 디아스포라를 감행했던 용기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유토피아는 없었다. 단지 최소한의 먹을 것이 그 곳에 있었을 뿐이다. 살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했던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그들의 삶은 그 곳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이어가게 되었다. 남의 땅에서 그들의 언어를 쓰는 후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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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 <강아지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권정생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반영한 자전적 성격의 장편소설이다. 공간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일본 도쿄 근처의 작은 마을 혼마찌, 전쟁과 가난 속에서 조선 사람과 일본사람들이 섞여 산다. 준이, 하나꼬, 분이, 에이꼬, 용이...
여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들처럼 조선사람, 일본사람 편을 갈라놓고 욕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곧바로 친구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면 산다. 친부모가 죽고, 동생마저 고아원에 둔 채 혼자 부잣집 수양딸로 온 하나꼬는 가장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양부모에게마저 정을 붙이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낸다. 남몰래 독립운동 하는 큰형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작은형이 징병되어 일장기를 흔들며 떠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준이. 이런 준이를 사이에 놓고 하나꼬와 경쟁하는 에이꼬. 그녀도 전쟁과 가난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던 날 저 세상으로 간다. 조선 아이 용이와 분이의 모습도 '재일 한국인'이란 이름을 달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들의 모습들이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푸른 들판을 꿈꾸며 《이리와 아기 양들》연극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나들이 간 엄마 양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이리의 배 속에서 구해 주기를 바란다. 누가 이리이고 누가 엄마란 말인가? 아이들은 엄마 양이 올 때까지는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간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낯선 일본땅에서 일본의 상징인 나막신을 신고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어린이들. 한국과 일본의 문제라기보다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슬픈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에서 오히려 어른들이 반성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어린 목숨과 생명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과 사랑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
| 고유명사 이상의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작가 권정생의 여러 작품 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슬픈 나막신」을 빼놓을 수 없다. 2차 대전 당시 일본 땅에서, 그리고 일본 속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야 했던 조선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유년기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는 권정생 문학의 원류이기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몽실 언니」의 배경이 해방 공간 속의 우리 땅이라면 「슬픈 나막신」은 비슷한 시기의 일본 땅이기에 더더욱 권정생 문학의 대표성이 부각된다. 하지만 이전에 나왔던 「슬픈 나막신」은 애초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제목이 「꽃님이와 아기 양들」(새벗문고)로 달리고, 주인공 하나꼬의 이름이 꽃님이로 바뀌는 등 주제의식에 손상을 입고 잘못 출간되었다가 얼마 안가 절판된 채 십 수년이나 묻혀 있었다. 그런 작품을 약간의 손질을 거쳐 이번에 다시 우리교육의 '우리문고' 1호로 나왔다. 이번 개정판은 초판에서 왜곡됐던 것을 바로잡은 의미에다 판화가 이철수가 표지 그림을 그려 주제의식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어 특별하게 와 닿는다. 뱀 다리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면 이철수는 오윤의 영향을 받은 판화가로 독특한 글씨체와 묵직한 싯구 같은 글귀로 '이철수표 판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슬픈 나막신」에는 지금도 일본 땅 어딘가에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불편한(?) 이름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이 들어있다. 2차 대전이 한창인 일본 도쿄 근처 작은 마을 혼마찌. 다닥다닥 지은 나가야(여러 집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길게 잇대어 지은 집) 집에 일본 사람, 조선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 준이와 하나꼬가 주인공. 아이들은 때론 어른들처럼 조선사람, 일본사람 편을 갈라놓고 욕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배고픔을 달래려고 빨아먹는 살구 짠지조차 함께 나눌 만큼 본능적으로 서로를 위로하면 산다. 친부모가 죽고, 동생마저 고아원에 둔 채 혼자 부잣집 수양딸로 온 하나꼬는 양부모에게마저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밤마다 찾아오는 머리 없는 소복 귀신이 유일한 친구다. 남몰래 독립운동 하는 큰형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작은형이 징병되어 일장기를 흔들며 떠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준이. 이런 준이를 사이에 놓고 하나꼬와 먹을 것이 없어 푹 꺼진 배를 잡고 놀다 하늘이 핑 돌아 쓰러져 버리는 에이꼬가 서로 경쟁하다 하얀 눈이 혼마찌를 소복하게 덮던 날 에이꼬는 저 세상으로 간다. 조선 아이 용이와 분이도 우리 가슴을 아리게 한다. 용이는 조선애는 무조건 나쁘다며 때리는 히로시 형에게 맞지만 콧물 질질 흘리면서도 거기에 맞선다. 납작코에 괭이눈의 분이 역시 엄마의 웃는 얼굴 한 번 보고 싶어 쇳조각을 주어 팔아 5전을 만들어 엄마에게 갖다준다. 이런 군상들이 애면글면 살아가는 삶이 펼쳐지는 이 작품은 결국 어느 날 폭격으로 동네가 풍비박산 나고, 그 폐허 위에서 아이들이 푸른 들판을 꿈꾸며 '이리와 아기 양들'이란 연극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대체 엄마 양은 누구일까? 미국일까? 그럴 리 없없다. 비행기로 폭탄을 날리고 사람을 죽이는 미국은 엄마 양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들이간 엄마 양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엄마가 오면 이리 배 속에서 구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 다시 고아가 된 하나꼬가 준이네 집 마루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른다. 그 옆에서 준이도, 자기들이 만든 까까중 인형에 대고 두 손을 모아 쥔다. "내일은 해가 반짝반짝 나게 하셔요 /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 맛나는 사탕물을 드리겠어요" 하지만 비는 아직도 주룩주룩 구슬프게 내리고 있었다. |
|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일본 도쿄 근처의 작은 마을, 다닥다닥 잇대어 지어진 나가야 집에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이 섞여 산다. 준이, 하나꼬, 분이, 에이꼬, 용이...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 '슬픈 나막신(권정생 글, 우리교육 출판)'은우리의 아픈 역사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야하는 어린 생명들을 조용히 응원하며 어루만진다. '나막신'은 비가 올 때 신는 굽이 높은 나무신으로 1940년대까지 많이 이용된 일본식 신발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준이와 분이, 하나꼬, 용이, 미쯔꼬와 그녀의 어머니 모두 나막신을 신고 있다. 비가 올 때나 개였을 때나 줄곧 나막신을 신는다. 아이들은 나막신으로 신발 점치기 놀이도 한다. 그러므로 '슬픈 나막신'이란 이국따에서 영문도 모르고 일본식 나막신을 신고 자라난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 2차 세계대전으로 몸서리치던 1940년대 초반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적절히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나가야에서는 일본 아이건 한국 아이건 큰 구별이 없으며 거의 모두 계속되는 전쟁과 가난으로 고달프고, 불안할 뿐이다. 준이는 굶어죽는 미쯔꼬의 개 매리, 병석에서 고생하다 앙상하게 죽어가는 에이꼬의 아버지, 푹 꺼진 배를 잡고 놀다가 하늘이 핑 돌아 쓰러진 에이꼬, 하나꼬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양부모를 가슴 아프지만 덤덤히 바라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에. 준이에게 조선은 '바다 건너 먼 나라'다. 준이는 조선에도 아침마다 해가 뜨는지 형에게 물어본다. 준이는 조선 사람이 싸움을 잘하는 시끄러운 사람들이고, 대부분 고달픈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준이는 남몰래 독립 운동을 하는 큰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작은형이 일장기를 흔들며 입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형을 위해서는 일본이 꼭 이겨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참 가슴 찢어지는 현실이 아닌가? '폭격으로 부서진 나가야의 빈터에 구슬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전쟁으로 피곤해진 아이들의 모습처럼...'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공습훈련과 배고픔 속에서 준이와 하나꼬는 "내일은 해가 반짝 나게 하셔요."라고 목놓아 노래한다. 그러나 비는 아직도 주룩주룩 구슬프게 내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누구나 전쟁의 참상과 힘없는 조국의 아픈 과거로인해 가슴 아파할 것이다. 전쟁을 겪으신 어른들은 당시를 회고하며 슬며시 눈물을 닦으실런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말처럼 비가 그치고, 지루하고 고달픈 전쟁도 끝나야 하는데 우린 여전히 분단국에서 살면서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에. 욕하고 싸우다가도 금방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처럼 의견의 차이를 인정해주고 대화로 풀어가는 남북한이 되었으면, 휴전이 아닌전국?되었으면 참 좋겠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전쟁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없다. '슬픈 나막신'은 선배의 증언을 통해 전쟁과 평화의 역사와 현주소를 느끼게 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결심하게 돕는 책이다. 그 당시에는 해 나오기만을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소년처럼 우리의 처지가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젠, 그리고 앞으로는 가만히 기다리다 잡혀먹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리를 막을 방법, 우산으로 비를 피할 방법, 우리의 우리를 튼튼히 할 방법, 우리끼리 지혜와 힘을 모을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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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61 너도 나도 가엾은
《슬픈 나막신》 권정생 우리교육 2002.8.10.
방천시장에 있는 책방에 갔다. 책방에서 아기가 잔다. 책방지기도 소곤소곤 우리도 소곤소곤. 책방 어귀에 있는 종소리가 더 크다. 책방지기는 혼자 아기를 키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가 신발이 너무 작아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훑는다. 다시 신발을 보니 궁금하던 일이 확 풀렸다. 가족사진이 있다. 카프카를 좋아해서 책 언저리에 비슷한 모습을 보고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책방에서 엉뚱한 구경을 하다가 《슬픈 나막신》을 본다.
큰딸이 어릴 적에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하고 ‘강아지똥’하고 ‘검정고무신’을 곁에 두고 읽었다. 권정생 님은 내가 살던 안동에서 가까운 일직에 살았다. 언젠가는 권정생 님이 쓴 ‘엄마 까투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서 프랑스로 판다는 말이 오갔다.
《슬픈 나막신》을 읽는다. 권정생 님이 태어난 일본에서 어울린 아이들 이야기가 흐른다. “어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집을 부숴 버리고 죽이려 대들고 그러나 어른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바르게 착하게 자라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마음대로 삐뚤어진 것을 하고 있다.”라든지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은 왜 다른가? 조선 땅이란 어디 있으며 누가 빼앗아 가지고 있는 걸까? 모두가 똑같은 얼굴 눈 코 입이 있고 팔다리가 붙었고 노래도 부르고 웃으며 사는데 어째서 서로 빼앗고 빼앗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글자락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권정생 님 목소리로 그대로 들린다.
언젠가 권정생 님이 사는 마을에서 일을 했다. 종지기로 일하던 교회에 틈틈이 가 보았고, 권정생 님이 사는 집에도 몇 걸음 갔다. 밭자락 끝 폭 꺼진 자리에, 마을에서도 한쪽 끝에 집이 있다. 창살문에는 ‘권정생’이란 이름을 달아 놓았다. 찢어진 문구멍으로 안을 보니 방이 참 작았다. 책에 나오는 강아지 집터가 뒷간 앞에 그대로 있고, 시내가 흐르는 길 쪽에는 키가 큰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빨랫줄인지 전깃줄인지 마당을 지난다.
처음 이 방을 보던 날은 이렇게 단촐하게 사는 어른이 우러러보였다. 여느 할아버지처럼 생겼는데, 마음을 울리는 글을 이 방에서 썼구나 싶어 놀랐다. 한 사람이 눕기도 작은 방이다. 집도 마당도 작고 모두가 작았다.
살림처럼 작은 이야기를 꾸미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적은 글이 시냇물처럼 잔잔하게 흐른다. 나누는 말에도 글에도 할아버지 마음이 곳곳에 묻어난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따뜻하게 담겼다.
“조선 사람이 가엾다, 일본 사람이 가엾다” 하고 나란히 읊는다. 이 힘들고 고단하던 나날을 건너온 일본 아이들도 조선 아이들도 같은 마음인지 모른다. 일본이라고 하면 덥석 나쁘게 여기기만 하느라, 일본을 바탕으로 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손가락질도 할 테지만, 일본이든 조선이든 어디에서나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아이를 보는 어버이와 어른 눈은 똑같은 마음이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가난한 살림에 두 나라는 총칼로 싸움을 벌였다. 왜 그래야 했을까. 누가 총칼을 만들어서 앞세웠을까. 고단한 아픔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잔잔한 얘기로 그때 그 삶을 훤히 본다.
2023.12.1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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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 패망하기 직전의 상황에서 고아된 남매의 이야기이다. 혼마찌라는 작고 가난한 마을엔 일본 사람, 조선 사람이 섞여 살아간다. 초등학교 3학년 인준이와 스즈꼬, 용이와 분이, 그리고 에이꼬. 사소한 일로 아이들은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금세 잊고 다시 어울려 논다. 준이는 남몰래 독립운동 하는 큰형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작은형이 징용되어 일장기를 흔들며 떠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분이는 술장사를 하는 어머니한테 매일 두들겨 맞으면서도 고철을 주워 번 5전을 어머니한테 준다. 어머니가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분이는 그토록 열심히 쇳조각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푹 꺼진 배를 잡고 놀다 하늘이 핑 돌아 쓰러져 버리는 에이꼬. 하얀 눈이 혼마찌를 소복하게 덮던 날, 아이들은 에이꼬의 영구차를 떠나보내야 했다. 동네가 온통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었어도 푸른 들판을 꿈꾸며 연극놀이를 하는 아이들, 먹을게 없어 배 곯는 아이들, 여동생이 바니 드롭스를 좋아하는데 다 떨어지자 사탕통에 물을 넣고 흔들어 단물을 먹고 좋아하는 모습, 엄마의 죽음을 여동생에게 알리지 않고 그 슬픔을 참으며 운동장 철봉에서 몇바퀴씩 돌기만 하는 오빠. 희멀건한 감자죽만 떠먹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아이들은 생각한다. 전쟁이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큰 아픔을 줄지 몰랐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워서 가난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해주신 권정생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전쟁에 찌들어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 가슴을 정말 아프게 했다... [인상깊은구절] 비가 그치고, 그리고 지루하고 고달픈 전쟁도 끝나야 한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가 돌아오고, 어머니가 오셔야 한다. 불탄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살고 싶다. 동생 스즈꼬도 찾아야 한다. 까까머리 인형이 들어줄지도 모른다. 일본도, 미국도,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저 종이로 만든 인형이 해 줄 것만 같았다. 지금, 이 비 내리는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은 까까머리 인형을 만들어 놓고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한결같이 같은 마음으로 손모아 빌고 있을 것이다. 남을 때려눕히고 나 혼자만 살자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마음과는 다르다. 아이들은 칼을 들지 않고도, 총을 겨누지 않고도,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조용히 그러나, 가장 아프게, 쓰라리게, 기도로써 눈물겹게 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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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군화를 신었다. 비 오는 날은 흰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가기도 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검은 군화를 신었다. 군사 정권의 폭압이 있던 시절 교정은 최루 가스 냄새가 끊이지 않았고, 검은 군화를 신으면 저절로 적의가 불타올랐다. 검은 군화를 신으면 어깨도 곧게 펴지고 걸음걸이도 씩씩했다. 누구랑 맞짱을 뜨더라도 지지 않을 결기가 생겼다. 신발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가장 많이 신는 것은 구두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 그러나 구두를 신으면서 동경하는 신발은 세월에 따다 달라진다. 서른 살 무렵에 만난 젊은 채식인은 운동화를 신었다. 그이는 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옷은 양복을 입었다. 그렇지만 신발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그 어떤 신발도 신지 못한다고 했다. 그이를 만나 모임을 같이 하고 공부하면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마흔 살 무렵에 만난 까만 고무신. 권정생 선생님 작은 집 섬돌에서 빛나던 까만 고무신. 보리밥에 고무신을 신어야 맘이 편하다던 선생님. 선생님은 책을 통해 이미 나의 가장 큰 스승이었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만난 까만 고무신은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까만 고무신. 빛나는 까만 고무신의 주인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며 나막신을 신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신발 점치기를 했다. 밑바닥이 위로 젖혀지면 죽, 바로 놓이면 밥이라고 한다. “야! 우리는 떡이야, 떡!” 용이는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지른다. 나막신이 모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저기만큼 길바닥에 모서리로 간들간들 서 있는 용이의 나막신을 바라보았다. 용이는 자랑스러운 듯 앙감질로 가까이 가서 꼬득이 선 나막신을 발가락에 꿰었다. (61쪽)
권정생 선생님이 『강아지똥』(1969년)을 쓰고 난 뒤 처음 쓴 장편동화. 선생님의 체험이 담긴 작품이다. 그런 까닭일까, 이오덕 선생님의 사모님이신 이인자 선생님이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는 작품. 이 작품은 일제침략기 일본 도쿄 근처 작은 마을 혼마찌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 다닥다닥 지은 나가야(여러 집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길게 잇대어 지은 집)에 조선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이 섞여 살고 있다.
준이와 하나꼬가 주인공. 준이는 열심히 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며 독립운동을 하는 큰형을 자랑스러워하는 조선 아이. 하나꼬는 고아원에 동생을 두고 입양이 되어 온 일본 아이. 둘은 나중에 결혼하자고 약속까지 하지만 점차 전쟁의 그늘이 짙어지는 상황에서 약속을 이룰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이들을 포함한 아이들은 때로 어른들처럼 편을 갈라 싸우기도 하지만 배고픔을 겪는 것에 차이가 없는 것처럼 서로를 위로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나막신을 공중 높이 차 던져 신발 점치기도 하면서.
나막신으로 무엇을 먹을지 점치기를 하던 아이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죽거나(에이꼬), 양아버지와 양아머니와 헤어져 다시 고아가 되거나(하나꼬), 형을 전쟁터로 보내거나(준이) 하며 저마다 힘든 세월을 보낸다. 그래도 꿈덩어리를 놓지 않던 아이들은 지금 어느 자리에서 어떤 신발을 신고 있을까. 혹여 이미 흙신발을 신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도 나는 구두를 신고 일터에 간다. 그러나 일터에는 내가 동경하는 이가 신는 흰 고무신이 있다. 권정생 선생님의 까만 고무신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 흰 고무신.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동경하는 신발의 삶과 점차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직접 동경하는 신발을 신으며 살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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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나막신》은 우리교육에서 발간하는 청소년문학 시리즈 ‘우리문고’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작가의 말’에서 책 발간에 대해 아래와 같은 심경을 밝히셨어요.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문경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인자 선생님(이오덕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읽었습니다. 사흘은 족히 걸리더군요. 책을 읽는 중간 중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숨고르기를 해야 했거든요. 2009년, 서울 지하철 안에서 저를 울린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되신 권정생 선생께서 40여 년 전에 쓴 작품,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살아있는 아이들의 마음 선생께서는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전하셨지만, 저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토록 진솔하게 담겨있는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모양새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지진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생김이 파닥대는 어린 새처럼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가더군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호감을 표시했다가 거절당한 소녀의 마음, 아끼던 강아지가 죽었지만 귀신이 되어 나타날까 두려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드러난 장면은 아이들 특유의 순진함과 솔직함이 묻어있어 슬며시 웃음을 짓게 합니다. 구걸하는 것처럼 보일까 망설이는 마음과 양어머니 몰래 음식을 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얽혀있는 장면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애잔함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렇듯 작품 곳곳에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여전히 아이의 마음을 가진 작가만이 그릴 수 있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친구, 하지만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 소년의 성장기인 만큼 민족정서나 반일감정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라 예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나 무조건적인 민족애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식민지 통치를 받는 민족들이 나라를 떠나 살아가면서 겪는 설움이 일상적 에피소드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촘촘히 어깨를 걸고 살아가는 아이들은 같이 놀이를 즐기고, 나막신을 덜그럭대며 어른들 몰래 시내 구경을 나서기도 합니다. 일상적 공간에서 이들 사이에 국적은 장벽이 아닙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이들은 ‘일본 아이’와 ‘조선 아이’로 분리됩니다. 아이들에게 “조선놈, 똥싸개!”라는 놀림을 당한 용이, 그런 용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준이. 그런 준이에게 용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너도 조선 애라고 밝혀달라고.
용이나 준이가 조선애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 굳이 ‘커밍아웃’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나는 똥싸개 용이와 한편이다’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 말을 해달라고, 용이는 요구합니다. 그 말을 들은 준이는 흔쾌히 그 부탁을 받아들입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만든 말인 듯 마침맞습니다.
반일감정을 넘어선 반전평화! 전쟁이 극에 달해 공습이 심해지고, 징병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나의 입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전히 이들은 이웃이지만, 가족들이 무탈하게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같지만, 전쟁의 승패에 대한 속내는 분명 다릅니다. 개인적 감정이나 관계를 넘어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이 부딪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저에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일본학생들, 해외여행에서 만난 일본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친구’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일본이라는 ‘국가’가 보이는 몰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는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일제강점기에는 어땠을까요? 군대로 끌려가는 걸이는 “일본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우겠다”고 합니다. 그런 작은 언니(성별에 상관없이 손위형제를 부르는 옛 우리말)를 전장으로 떠나보낸 준이는 헤어질 때는 하지 못한 말, ‘작은언니, 꼭꼭 이기고 돌아와요’를 혼자 중얼거립니다. ‘작은 언니를 위해서는 일본이 꼭 이겨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얼마 전 일본인성노예 생존자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았습니다. 성노예 생존자 중 유일하게 일본에서 생활하고 계신 송신도 할머니. 할머니는 일본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남자와 여자, 한국과 일본을 떠나서 절대 전쟁하지 마라.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고 외쳤습니다. 전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짓밟히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자, 말 그대로 ‘생존자’가 전하는 반전평화의 메시지는 엄청난 울림을 주었습니다.
제 눈길을 잡아끈 장면은 송신도 할머니가 한국의 ‘수요 집회’에 참석했을 때였는데, 할머니는 오랜 세월 접어두었던 한국어로 말씀을 하다가 흥분을 해서 말할 때는 일본어를 쓰시더군요. 그 분에게 국가는 어떤 곳일까요? 자신을 낳아준 땅일까요, 반평생 넘게 살아온 땅일까요? 두 개의 땅덩어리 모두 할머니를 외면하고, 상처주고,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자명합니다.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전쟁 놀음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기보다 자신의 터전에서 정다운 이웃들과 건강하게 즐거운 일상을 꾸려가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소박한 바람일 겁니다. 《슬픈 나막신》에서 권정생 선생은 크고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급물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정성스럽게 꺼내놓을 뿐입니다.
구호도, 격문도 없는 이 작품 속에서 저는 ‘전쟁 반대’의 마음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당신이 이 작품을 읽는다면 저와 같은 마음일지 궁금하네요.
어때요, 지금 펼쳐보지 않으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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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혼마찌에서 살아가는 힘겨운 조선인들의 삶은 한창 꿈과 희망을 키워가야할 아이들에게 전쟁의 고통과 아울러 더부살이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불안함에 시달리게 한다. 어쩔 수 없는 타국살이에 이웃 아이들까지도 서로를 탓하며 니편 내편으로 갈라설 수 밖에 없게 되어 적대적인 감정의 골이 그대로 전하며 무시하고 배척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한 동심의 마음은 이내 서로를 알아가며 마음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단정하고 깔끔하게만 보이는 하나꼬는 보여지는 모습과 다르게 마음 속 깊이 빈가슴의 허전함으로 늘 외롭기만 하다.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었지만 깊은 속정보다는 그저 형식적인 사랑느낌을 더 많이 느껴서, 고아원에 두고 온 동생이 늘상 마음에 걸려서 주변 친구들의 궁핍함 보다는 그들의 삶과 사랑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에이꼬에게 자신의 밥 주발을 몰래 가져다 주고, 키누요와 친해지기까지는......
왜 서로를 미워하고 헐뜯는지, 짓누르려 드는 이들과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절규가 뒤섞인 곳에서 생겨나는 소소한 삶의 모습들은 고단하게 얽히고 섥혀만 간다. 삶의 정착과 누림을 할 수 없는 부평초 같은 조선인의 삶은 힘겹고 불안하기만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을 트집잡고 못살게 구는 일본인의 입장은 스스로의 반성없이 그저 막연하게 엇갈리는 음과 양의 모습처럼 다가오는 것 같게 느껴진다.
전쟁의 영향으로 팍팍한 인심과 그 안에 놓여진 아이들을 보듬지 못하는 현실은 불안함을 더욱 가중시켜만 가지만 친구와 동물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따스한 동심과 인정으로 그 모두를 이겨내고 사랑을 배워갈 수 있었던 것임을 깨닫게 된다. 두 손 마주 잡고 힘줘 부르던 아이들의 노랫말처럼 내일은 해가 반짝 나게 되었으면...... 본연의 문제에 모든 탓을 돌릴것이 아닌 모두가 수긍하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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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슬픈게 누구일까?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이 여자들과 아이들이라고 한다. 그럼 두 사람중 누가 더 큰 피해를 볼까.. 나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어린시절에 전쟁과 죽음, 그리고 기아란 아이들과 맞지 않는 단어와 먼저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슬픈 나막신>에 등장하는 아이들에게는 한가지 슬픔이 더 있다. 그들은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식민지 국가의 아이들로 그들이 사는 곳은 일본땅이다. 일본인들과 섞여사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참 밝고 건강했다. 일본 아이, 조선아이들 사이에는 식민지 국가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가끔씩 "조센징"이란 말로 일본아이들이 놀리기도 하지만, 그 말에 악의를 담지 않았고, 또 조선 아이들 역시 바로 맞받아치면서 싸우고 날이 밝으면 다시 하나가 되서 사이좋게 놀았다.
패전의 기운이 감도는 일본.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과연 살아서 돌아올까? 조선으로 돌아가게 될까? 일본 사람이 아닌 형은 누구를 위해서 싸워야 하나? 어린 소년는 궁금한게 많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속에서도 어둡고 아픈 전쟁의 상처는 다 걷어낼 수 없었다.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며,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 아이들에게 언제쯤 희망의 무지개가 떠오를까?
슬프게 비가 내리고, 폭격이 퍼붓고, 앞이 깜깜한 순간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음속에 또다른 희망을 품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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