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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김용철 편
힐러리는 아칸소 주에서 가장 유명한 로펌인 로즈 법률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린이 보호 재단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아칸소 대리인협회"의 공동발기인이 되었으며 카터 대통령이 법적지원재단의 이사로 임명되어 1981년까지 일하였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으며 초기 9천만 달러였던 재단예산은 그녀의 임기 동안 3억 달러로 늘어났다. 1978년에는 남편 클린턴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9년 초, 아칸소 주 역사상 최연소로 주지사로 선출된 남편은 그녀를 농촌지역건강지원위원회의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던 아칸소의 가난한 지역들의 의료시설 확충을 위해 노력하여 연방예산을 따내는 실적을 올렸다. 1979년 로즈 법률회사의 공동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하였으며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들어가기전까지는 그녀의 수입이 항상 남편보다 많았다. 이때 여러 투자로 재산을 불렸다. 후일 문제가 된 화이트워터 개발 회사의 부동산 벤처 사업에 투자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힐러리는 대선 패배가 확정된 11월 9일(현지시간) 진행한 패배 연설에서 “우리의 가치와 비전을 위한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며 “미국 유권자들은 최선의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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