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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은 아주 재미 있다. 그의 사유의 자유로움과 시대 사조에 붙박힘이 얽혀 만들어내는 발랄한 생각들을 엿보는 일은 내게 있어서 어느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것 보다 흥미롭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서로를 피하게 한다면 정신적인 욕구인 정념은 서로를 가까이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마치 정신적인 욕구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아닌 듯이 사랑, 증오, 동정심, 분노는 배고픔이나 목마름과는 별개인 듯이 말이다. 말을 하지 않고도 포식하고 싶은 먹이를 쫓는다지만 먹이를 쫓지 않고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억양, 외침, 비명 등의 정신적 정념적 욕구는 먹이를 쫓는 육체적 욕구와 별개일 수 없다. 정신과 육체가 극단으로 분리되던 과학혁명기를 살던 사람답게 그는 과학주의 물질주의의 심한 반감아래 이런 글을 썼다. 그냥 감탄사가 언어의 기원이었다고 하면 될 걸 가지고 이처럼 물심을 분리해 물질적 체계에 대립되는 정신적 정념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래서 처음의 언어들은 음악적이고 시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물론 오래된 미분화의 것들이 더 복합적이니까 음악적이고 시적이긴 하다. 그러나 색과 음을 대립해 놓고 색은 영속적인 것 음은 연속적인 것 색은 고정되어 있는 것 음은 움직이는 것 색은 죽어 있는 것 음은 살아 있는 것 색은 공간적인 것 음은 시간적인 것 색은 동시적인 것 음은 이시(異時)적인 것 색은 지속적인 것 음은 사라지는 것 색은 절대적인 것 음은 상대적인 것 색은 독립적인 것 음은 상호적인 것 색은 자연적인 것 음은 인간적인 것 색은 물적인 것 음은 영적인 것 색은 지각적인 것 음은 비지각적인 것 색은 직접적인 것 음은 간접적인 것 색은 이성적인 것 음은 감성적인 것이라고 사뭇 시대적 편견을 강조한다. 사실 루소 이후 미술사는 많은 변천을 거듭해 왔다. 루소는 음악의 전성기를 살면서 아직 미술의 전성기는 맞이하지 못했다. 그래서 색에 대한 편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미술사의 소용돌이가 루소가 그토록 거부감을 일으킨 과학의 발달(사진기의 발명)에 기인한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루소가 조목조목 지적한 색의 편견들이 이후 미술사에 등장한 새로운 사조들의 경향들로 채워졌으며 조목조목 재발견된 색의 탁견들로 부활했다. 고전주의 이후의 모든 미술사조들은 루소가 지적한 빛과 색에 대한 인식의 미진한 부분들을 화려하게 소생시킨 결과물들이다. 천재 루소는 역설로서 미술사의 혁명을 예언한 것이다. 그의 역설이 오히려 혁명의 소용돌이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겹겹이 예언한 것이어서 더 놀랍다. 미술사와 과학사가 맞물려 돌아가면서 오늘날의 첨단 이미지시대의 사이버 문명을 낳아 종말적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화려한 퇴화의 해체시대를 열었으니 말이다. 그는 언어가 문법체계로 발전하면서 음악적 언어와 선율적 음악이 퇴화했으며 설득하는 솜씨를 연마하여 감동시키는 솜씨를 잃게 했다고 개탄했다. 선율은 에너지를 잃고 화음에 음악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에 기원을 둔 예술(음악)은 말에서 독립하여 자연의 목소리였을 때 불러오던 정신적인 효과마저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문자가 말의 아름다운 힘을 잃게 하고 음악성이나 시적 감성의 힘을 사라지게 했다며 진보 자체를 문제 삼던 그가 오늘날 더욱 분절된 인터넷 화상언어를 보면 아마도 종말적 언어라고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지 않고 이미지를 읽는 인터넷세대들은 어쩌면 문자의 단순화를 통해 이미지를 부활하여 자연을 이미지로나 즐기려고 손에는 핸드폰 귀에는 MP3를 꽂고 이미지의 음악화 살아있는 이미지를 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늘나라의 루소도 나처럼 세상을 재미있게 내려다 보리라. 사랑해요, 도와주세요, 루소씨.
오픈백과 등록 08.06.25 디렉토리 ; 철학 |
| '언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언어학의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루소의 생각이다. 당신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언어 기원과 관련된 각종 기발한 상상이나 민족주의적 억지 속에서 똑똑한 루소가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책을 읽어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몇 가지 언어 기원에 대한 주장들을 정리해 보면 재미있다. 1) 신수설: 하느님이 언어를 선물로 주셨다는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서의 기록인데, "~~가 있으라. Let there be ~~"하는 말(words)이 곧 창조로 이어졌다는 기록. 아담과 하느님과의 언어를 이용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기록. 바벨에서의 그 언어 '혼란'에 대한 기록. 2) 멍멍설 bow-wow theory: 다른 말로 의성설. 말 그대로 개소리^^;를 흉내내면서 언어가 시작되었다는 소리다. 3) 땡땡설 ding-dong theory: 유추설. 세상에서 나는 소리들을 모방했다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말들을 유추해 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4) 쯧쯧설 pooh-pooh theory: 감정표출설. 우리의 곰돌이 푸우가 꿀을 먹으려고 들어가다 굴 속에 쳐박히자 이를 보고 있던 그의 친구들이 '푸우-푸우!' 하면서 감정을 표출하다가 언어가 태어났다는 소문이~! 5) 아아설 sing-song theory: 가창설. 노래에서 음악에서 언어가 왔다는 설. 경상도 말을 들어보라. 6) 끙끙설 grunt theory, 엉기여차설 ye-he-ho theory : 둘이 합해 노동설. 어금니 꽉 깨물고 일을 해도 하도 힘이 들어서 그 어금니 사이로 소리가 나더라. 아니면 무거운거 옮길 때 같이 힘주고 같이 힘빼야 되니까 싱크로나이즈하기 위해서 말을 했다더라. 이 외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뭐가 되었던 신앙이나 맹종 외에는 달리 어느 편에 설 방법이 없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음악에 대한 설명에 치중되어 있고, 또한 워낙 옛날에 씌어진 책이라 근현대의 언어학적 연구 성과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는 21세기 인간들?에게 지적인 즐거움을 주기에는 다소 역부족이긴 하다. 그리고 다분히 루소 혼자의 상상과 추측 혹은 편견도 많이 들어 있다. 하지만 루소는 이 책을 통해 언어 일반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져주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연구해 들어가야할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 동시에 나같은 언어학 문외한에게는 언어가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또한 그 언어를 이해하려는 깊은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