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주례사를 비평해야 할 필요성이 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가질 겨를도 없이 신문의 리뷰를 통해 주례사 같은 비평을 비판하는 책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주례사 같은 비평 행태 자체에 문제가 있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을 제외한 책에 거론된 소설 작품은 다 재밌게 읽은 작품들이었다. 특히 신경숙 작가를 좋아해서 모든 작품을 찾아 읽으며 감동했던 나는 책을 펴자마자 난도질당하는 신경숙 소설과 그 비평을 보며 처음 당하는 일에 난감하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평소에 이 책에서 거론된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작가들을 존경했고 책 말미의 비평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이런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니!'하고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지 때문이었는지 맹목적인 경외감 때문이었는지 정보의 왜곡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내 눈은 한참 가려져 있었다. 책이 쏟아져 나온다. 책을 읽어야겠는데 어떻게 고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책을 고르는데 이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는다더라 하는 말을 듣고 집단주의에 편승한 안일한 시각으로 무턱대고 집어든다. 이 경우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그 책이 좋은 책임을 입증해 주었다고 치자. 작가의 이름을 보고 책의 출판사를 보고 메이커 상품을 고르듯이 책을 고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는 어리석게도 계간지를 내는 출판사 책은 우선 믿었다. 특별해 보였고 있어 보였다. 지적 집단이라는 것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런 행위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작가가 계속 작품집을 내며 독자의 기억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출판사가 '밀어주기'때문이었다. 마치 연예인이 기획사에 소속되듯 작가가 출판사에 소속되어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우리 문학계의 현실임을 몰랐다. 한 출판사에서 그 출판사의 문학상을 통해 신인작가를 뽑는다. 그의 작품을 계간 잡지에 실어주고 비평의 탈을 쓴 찬사로 그 작가와 작품을 띄워준다. 잊혀질 만 하면 또 계간지에서 특별기획으로 다루어준다. 그러다가 그 출판사에서 작품집이나 장편소설을 내준다. 물론 그 책의 말미에는 그 출판사에 소속된 비평가가 찬사 일색의 비평문을 써준다. 심지어 사람들이 책을 고르는데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책표지 뒷면이나 띠지에도 작품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기까지 한 찬사를 써준다. 이렇게 책에 대한 겉치레가 끝나면 이제 매체에서 띄워주는 일이 남았다. 기자들은 작품집 말미의 찬사 일색인 비평을 토대로 다분히 직업적으로 대충 짜깁기해서 신문, 잡지 등의 리뷰에 싣는다. 신간이 많이 나오는 요즘에 독자들이 책 선택을 신문, 잡지의 리뷰에 의존하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런 기자들의 모습은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처럼 무지하고 책을 고르는 비판적 시각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정보들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맹목적으로 추종할 수밖에 없다. 물론 문화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독자가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최대한 그 눈을 가리려고 들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문학상의 상금이 거액이다 보니 신인을 발굴하여 작품집을 내면 그 책이 많이 팔려야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들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그 정도의 가치도 되지 않는 문학작품에 독자는 돈을 날리고 정신도 팔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문학계의 비평다운 비평의 부재를 지적했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 사회에서 비평가들이 출판사에 소속되어 있거나 출판사의 돈을 받고 부업으로 비평문을 쓰는 한 주례사 비평을 근절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전문적이지만 인터넷 서평에 희망을 갖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려고 고르다 보면 그 책을 먼저 읽은 독자가 올린 서평을 볼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다고 한 것은 그들의 직업이 그 쪽 방면에 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쪽에서 언급한 것일 뿐이지 내용 면에 있어서는 조목조목 충실하게 비평을 잘 해놓은 서평도 많이 있다. 그들의 서평은 어떤 이익과 결부되어 잊지 않기에 신랄하고 투명하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전에는 '이 책은 돈 내고 샀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형편없는 책이다.'라고 '솔직하게' 써 놓은 서평을 본 적이 있다. 곧 문학권력이 인터넷마저 장악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인터넷의 익명성은 개선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아직은 오염되지 않은 서평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이제 정말 책의 비평이나 신문, 잡지의 리뷰를, 작가와 출판사의 이름을 믿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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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 비평을 넘어서/김명인 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이 책에서 언급, 비판되고 있는 다른 책을 함께 읽으면서 책에서 말하는 주례사 비평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일부 문화 권력을 가진 출판사들이 자신들이 키우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계획적으로 광고, 기획, 제작하여 책을 발간하면서 자신들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비평가를 통해 서문이나 표지에 소개의 글을 싣도록 하데 그 평문이 평문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귀 밑머리 파뿌리가 되도록,,,,하는 주례사에 버금가는 찬사와 호평으로 얼룩진 글을 실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책을 사서 보게 만들며 또한 그 작자는 그런 호평의 평문과 여러 기획된 시나리오에 힘입어 베스트셀러의 작가의 길로 들어서 성공가도에 진입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평문이 무조건 어떤 작품에 대해 혹평만을 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좋은 점은 칭찬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는 평문 역시 비평가의 역할임을 부인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씌어진 평문이 아니라 일부 거대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찬탄이요 감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에서 출판한 작품에 대한 평문을 쓰는데 어떤 비평가가 작품에 문제를 제기하는 신랄한 비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런 평문을 쓴다면 출판사에서는 보나마나 그 비평을 채택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다음부터는 그 사람에게 비평을 의뢰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당장 자신의 밥줄과도 연관이 있는지라 그 비평가는 어쩔 수 없이 찬사와 감탄으로 이어진 비평을 쓸 수 밖에 없었으리라. 또한, 그런 거대 출판사에 속하지 않는 비평가들이라 할지라도 그 출판사에서 밀고 있는 작품에 대하여 비평가 본연의 비평을 하기 어려운 것이, 혹시라도 그 출판사에 잘못 보이면 앞으로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르니 이 또한 쉽지 않는 일일 것이다. 만일, 어떤 강단 있는 비평가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글을 써 간다면 주위에서는 진정한 비평가라고 찬탄을 받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자신의 글 자리가 줄어드는 허무한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최근 평론집을 낸 백낙청 교수는 요즘의 평론을 일컬어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으면 된다는 식으로 너무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고, 비평은 안하고 자기 식의 해석에 작품을 맞추고 있는 면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비평을 해온 분이 피부로 느껴온 감상이며 이 책에서 거론되고 있는 거대 문화 권력의 대표적 매체로 지적되고 있는 창비의 편집인이 하는 말이기에 그의 충고는 더더욱 새겨둘만하다. |
| 문학 작품을 읽고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과연 이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일까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작품이든간에 작품의 뒤에 해설이 실려있는데 그것을 보고 나면 나의 생각과는 다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별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해설에서 작품에 대해 극찬을 해놓았을 경우 나의 수준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해설을 쓴 사람이 국내 최고의 문학 평론가일 경우 그런 생각은 더 심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문학계에서 횡행하고 있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을 생각한다면 굳이 그런 생각에 괴로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이 시대에 가장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기존의 비평들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현재 비평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비판이 이루어져야 우리의 문학이 올바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저자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이런 작업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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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이 있다. 비평이 결혼을 하기 전에 해주는 덕담처럼 되어 버린 경우를 빗대는 말이다. 이 책은 더 나아가 그렇게 된 원인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하나인 신경숙의 책과 책에 딸린 비평들을 분석하고 있는 글을 보면, 저자가 주장하는 비평의 제역활상실과 이를 방조한 대형 출판사의 문학적 자존심 버리기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요즘은 경제불황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예전보다 비실용서적이 더 안팔린다고 한다. 특히 깊이 되새김질해야 하는 명작들의 경우에는 절판되기 전에 책을 사놓아야 하는 마니아들의 근심만 더해갈 뿐인 것 같다. 이런 사정을 두고, 출판사들에게 예전과 같은 문학적 자존심을 지켜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현실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를 말해야 하는 사람들이 비평가들이라고 생각 한다. 마치 조선시대에 왕의 행동에 대해 목숨을 걸고 옳다 그르다를 간언했던 언관들처럼, 시대적 역활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2002년에 나왔다. 10년이 더 된 글인데, 요즘 신경숙이 표절 건으로 이미지가 급하락하고 있어서 새삼스럽다. 신경숙이 표절을 했다면 결코 잘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과하게 비판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도 신경숙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비판에서 오히려 객관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신경숙에 대한 매도를 보고 있다보면 마치 야구감독 김성근의 올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안타깝다. 어쨋거나, 신경숙의 대형출판사판 비평들을 조목조목 분석해준 저자 덕분에 대형출판사와 주례사 비평의 관계를 어느정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될 눈을 얻은 것 같다. |
| 나는 신간 소설책을 볼때면 서평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 작품에 대한 사전이해를 높이려는 목적에서이다. 그러나 서평을 보고 책을 읽고나서 종종 황당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서평을 보면 매우 뛰어난 작품같은데, 실제 내용은 별볼일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내가 감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서평을 쓴 사람의 책임인가? 결론은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한다. 설마 무슨무슨 평론가에 교수인 사람이 쓴 서평이 나보다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이들은 보았겠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작가와 평론가간의 동침관계에 있다. 작가와의 친분때문에 평론가는 비판대신 마구 칭찬을 늘어놓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감리를 해야 할 사람이 건축가의 사주를 받고 평가서에 에이를 메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동종근친을 해부하고 있는 책이다. 주례사 비평에 질린 분들은 읽아보면 좋을 듯하다. 단 글이 좀 딱딱해서 재미는 별로라는 단점은 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