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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기 왕조는 이 여인의 손에서 숨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나라가 시작되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한족의 명나라를 몰아내고 누르하치를 필두로 중국을 통일한 청나라. 다수의 한족을 소수의 만주족이 다스린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청나라의 건국은 4대 강희황제와 6대 건륭황제로 오면서 기틀이 마련된다. 그러나 9대 함풍제로 오면서 청나라의 세력은 기울기 시작한다. 술과 여자, 그리고 아편을 사랑한 함풍제. 함풍제의 인생의 곡선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끊기게 된다. 많은 후궁들 중 유독 권력을 쥐게된 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훗날 황후가 된 자희와 자안이었다. 자희는 서태후로 불리워지며, 자안은 동태후라고 불렸다. 이들이 함풍제를 이어 아주 어린 나이에 10대 황제에 오른 동치황제의 정치를 도와주는, 아니 대신하여 섭정하는 형세를 취하게 된다. 자희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잡기 위해 혼신이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서태후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 '야심찬 여인', '악날한 음모의 여인', '어린 두 황제를 괴롭힌 모후' 등등. 어떤 표현에서는 동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인물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어떤 한 인물을, 서태후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서태후는 한 면만을 보고 평가하기에는 여러 면을 두루 지닌 인물이었다. 70세까지 젊음을 잃지 않았던 아름다웠던 여인으로 그녀를 설명해야 할까, 현명하고 유능한 대신들을 적절히 중용하여 동치중흥을 이뤘던 인물로 묘사해야 할까, 남편을 26살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아들을 39세의 나이에 잃고 외로운 여생을 홀로 보낸 고독한 여인으로 그려야 할까, 정치나 외교 문제에 있어서 단호했던 정치가로 소개해야 할까, 만주족과 한족의 결혼 금지령 철폐와 여성의 전족(발을 작게 하기 위해 작은 신발로 묶었던 것) 금지를 실시했던 진취적인 전략가로 표현할까, 청을 하늘 아래 가장 큰 나라로 여기며(천조대국) 정치했던 보수적이었던 인물로 묘사해야 할까. 어떤 하나가 그녀를 단정지어 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녀의 모습 중 단면들이 이러할 뿐이다.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이라는 책 제목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인간 경영학에 집중하여 소개하였다기 보다는 '서태후, 그녀는 누구였을까?'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간 경영학보다는 차라리, '서태후 미용 건강법' 내지는 ' 서태후 고독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란 제목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인간 경영학이 아닌, 청 말의 시대적 분위기와 서태후의 전체적인 인물 이해 내지는 그녀의 정치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책으로부터 많은 부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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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역사 속 위대한 여인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가 여자라서 더 관심을 많이 쏟는 이유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의 강함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작용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보다 여성들의 지휘가 현저하게 낮았던 옛날에 오히려 자신들을 위대함을 세상에 내 비추었고 혼란과 전쟁이 수 없이 반복되었던 역사속에서 남자들 못지 않게 힘을 발휘하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여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존경심이 일어난다.
서태후는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여인 중 한명이다. 그녀는 청나라 함품제의 후궁이었고, 함풍제 서거 이후 자신이 낳은 아들 동치제가 6살에 왕위에 오르자 섭정이 되었다. 왕이라는 이름만 동치제가 가지고 있을 뿐, 실권은 그녀가 가지고 있으면서 정사를 돌보았다. 이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살 아들 광서제를 즉위시켜 그녀는 또 한번 섭정이 되었다. 그녀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골라 곁에 두었고, 그들과 협력하면서 한편으로는 세력을 견제하기도 했는데,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조화롭게 잘 다스린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서태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중국 역사 속 한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정에서는 여자로서는 엄마로서는 행복한 삶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26살에 남편을 여의고 이후에는 정치에만 관심을 가지고 아들의 교육이나 사랑을 주는 일에는 인색한 어머니였다. 결국 동치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주색에 빠지고 말았고, 서태후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현실로 맞닥뜨려야만 했다. 권력에 대한 욕심대신 조금 더 여자로서의 행복을, 어머니가 가지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랬다면 조금은 더 따뜻한 인물로 기억되지 않았을 까 생각된다.
서태후 이외에도 징기스칸을 도운 어머니나 아내, 다른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서태후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또한 그 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들도 함께 접할 수 있어서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얻었다. 다른 책에서 보았던 그녀의 여름궁전인 아름다운 이화원에서 그녀의 숨결을 느끼고 그녀의 삶을 한번 더 되짚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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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이화원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있다. 중국관광의 필수 올레 코스는 자금성과 이화원을 빼놓을 수 없다. 서태후가 죽어서도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제위를 군림한 그녀는 정치인이 아니고 권력의 화려한 스펙트럼을 거대 중국대륙을 48년간 수렴청정하며 19세기말 중국의 정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부처라고 칭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야심이 가득했던 여인,고대 왕조를 반세기 동안이나 지배한 태후, 악랄한 음모가, 어린 두 황제를 처절하게 괴롭힌 모후, 청나라의 국운에 재앙을 몰고온 장본인 을 두고 역사학자들은 저마다 조명을 달리하고 있지만, 시경,논어에 통달하고 연연(燕燕),식미(式微),간혜(簡兮)를 막힘없이 해석할 정도로 책을 섭렵했으며 글 짓는 솜씨까지 뛰어나 3000 궁녀 중에서 청나라 9대황제 남편인 함풍제(咸豊帝)를 매료시키며 권력과 부드러움, 온화함과 냉정함 여자로서의 요염함과 지혜로 권력의 최고자리에 오르면서 권력욕과 이성으로 한 나라를 48년간 지배했다는 사실만으로로 연구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직하다.
중국의 근대 역사에서 후궁들이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불씨는 섭정(攝政)과 수렴청정(垂廉聽政)의 정치적 틈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황제가 일찍 죽고 어린 황자가 황위에 오르거나 태후나 황후가 병든 황제를 대신할때, 황제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면 태후는 군신들의 요구에 따라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 황제를 등극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서태후(자희)의 권력에 대한 신조는 1.누군가 나를 잠시 불쾌하게 만든다면 나는 그를 평생 불쾌하게 만들리라. 2 욕심은 적게 하지만 용기는 크게를 가슴에 품으며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파란만장한 삶의 돛대를 달고 권력의 향해를 시작한다.
16세의 꽃다운 나이로 처음 궁에 들어왔을때 그녀의 이름은 난아(蘭兒)였다. 입궁한지 얼마 안돼 함풍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서태후가 26살에 과부가 된 이유는 함풍제에게 기인한다. 함풍제의 인생 3락은 첫째는 술이요, 둘째는 시, 셋째는 여자였다. 그 중에서도 권력을 한 순간에 짋밟는 것이 곧 여자가 으뜸이었기에 색을 밝히는 함품제는 자희의 품을 떠나 세상과 이별한다.
자희가 지독한 권력탐욕자로 청나라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후대에도 수 많은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독서가 곧 생활일 정도로 독서광이라는데 주목할 만하다. 일생 동안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책 세권 1.자치통감(資治通鑒) 1.시경. 3.홍루몽(紅樓夢) 이다. 자희가 평상시 자신을 가태군(賈太君)이라 자처하며 그녀의 침실과 처소를 책에 묘사된 그대로 꾸미라고 분분했을 정도로 지식에 대한 탐욕 또한 대단했다.
함풍제의 사랑을 독차지한 자희는 후궁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아니었지만 가장 매력적인 여인었다. 그녀의 시와 노랫소리는 함풍제를 홀리기에 충분했고 '밥 없이는 사흘을 견뎌도 여자 없이는 하루도 못 견뎠던' 함풍제의 아들(청나라 10대황제 동치제)을 낳으며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의 자리에까지 올라간다.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옥좌에 봉황(용은 왕을 상징하고,봉황은 황후를 상징한다.)을 새겨 넣은 여인이자 황제들을 능가할 만한 크기의 무덤을 가졌던 황태후였다. 정치는 그녀에게 무한한 존중을 가져다 준 동시에 천고의 오며을 남기게 된다.
자희는 마음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훗날 그녀의 수렴청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긴 했지만, 그녀를 청나라 왕조의 황후로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황태후가 된 이후에 자희는 그녀의 며느인 동치 황제의 황후뿐만 아니라 광서의 황후에게도 큰 압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후궁 출신이었던 자희가 황후 출신인 정비 자안보다 권력에 더 열중하며 조정에 많은 열정을 쏟은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다.
아서 H. 스미스는 당시 자희의 험난한 세상에서 정치적 지혜를 연마한 대목을 이렇게 표현한다. " 자희가 최고 통치자로서 가장 큰 지혜를 발휘한 부분은 바로 그녀가 조정 대신 중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걸출한 정치가, 가장 총명한 고문, 가장 안전하고 능력있는 지도자를 중용했기 때문이다."
자희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 이유는 첫째 황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신유정변(황제가 애매모호하게 권력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태후와 찬양정무대신들이 권력을 나우어 가진 상화에서 공친왕 혁흔이 자희와 힘을 합하였다. 자희가 공친와 혁흔과 연합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공친왕 혁흔은 다른 여덟 대신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희가 야심가이자 계략와 지모(智謀)가 뛰어난 정치가임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것이 바로 자희가 함풍제의 총애를 받던 후궁이 아니었음에도 청나라를 48년간 통치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다.
공친왕 혁흔은 함풍제 혁저와는 이복형제로 함풍제가 넷째,공친왕 혁흔이 여섯째다.함풍제에게 응어리가 맺혔던 공친와 혁흔은 함풍제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줄곧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자희와 노선을 같이하게 된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희의 사치스러운 사생활은 극심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연구에 의하면 '여자가 심리적,감정적 상실감을 과도하게 느낄 때 물질로써 이를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끝없이 팽창한다고 한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욕망의 물질화'라는 필연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광서20년(1894) 10월10일 자희가 환갑을 맞이 했을때 청나라 총수익의 17%에 달하는 금액을 환갑연에 사용했다고 하니 서프라이즈다. 늙어서도 젊어지려는 욕망은 더 심화되어 매일아침 모유(母乳)를 마셨다고 [어향표묘록]에 기록 전해진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젊은 만주 귀족 부인중에서 체격이 좋고, 예쁜 유모로 선발된 부인들은 매일 아침 돌아가면서 모유를 짜 자희에게 바쳤다고 한다.
계략가 자희에게 정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권력만 존재했을 뿐이다.
만일 19세기말 청나라가 권력의 부조리와 부패의 그늘과 서태후의 반세기에 걸친 국민을 위한 권력의 탐욕이 없었다면 오늘날 역사의 지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대한민국에도 정치는 약 10%만 존재하고 권력은 90%가 타락하고 있다. 정치가 90%이고 권력이 10%되는 날이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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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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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제목을 보고,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던 책이다. "서태후의 인간경영학". 역사책은 즐겨 읽지만, 자기계발서류의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제목이 "서태후의 인간경영학"이라니.. "서태후"라는 단어에는 무척 관심이 가지만, "인간경영학"이라는 단어는 그닥 끌리지 않는다. 제목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두고 자기계발서일까, 역사서일까 성격을 가늠해보기 힘들었다. 인터넷서점 몇 군데를 둘러봐도 마찬가지. 경영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곳도 있고, 동양사 중에서도 중국사로 분류되어 있는 곳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경영이나 자기계발서로 분류하기보다는 서태후라는 인물과 그녀가 살았던 시기의 중국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서로 분류해야 맞을 것 같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내겐 참 다행이지만, 이 책을 자기계발서류의 책으로 알고 읽기 시작한 사람에겐 다소 실망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솔직히 책을 다 읽고서는 이 책의 제목을 "서태후를 통해 본 중국 근대사"라든가, 단지 "서태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시아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서양제국주의의 침략이라는 외부의 위협과 근대국가로의 변모를 지향하는 내부의 움직임이 혼재했던 우리나라나 중국의 근대사의 서막은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고 자부하지만,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선 각종 사건들과 인물들이 머리 속에서 짬봉이 되어버리곤 한다. 다양한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이 혼재했던 그 시기, 그 공간에 대한 혼란스러움 때문일까. 사건의 흐름을 대충은 파악은 하겠지만, 원인과 결과와 인물 간의 관련성 등은 늘 "왜?"라는 의문이 남지만, 대충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버리기 일쑤였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 마음에 든다.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약 50년을 권력을 쥐고 있었던 서태후와 그 주변인물들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을 살펴봄으로써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 책의 주요내용은 함풍제의 사(死,1861)후로부터 서태후의 사망(1908)년까지 서태후가 어떻게 청왕조의 정권을 장악했으며, 그녀는 어떤 성격의 인물이었는지, 그녀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그녀의 삶이 갖는 중국사에서의 의의는 무엇인가 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보자면,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 광서제의 두 어린 황제를 연달아 즉위시키고, 황제가 어리다는 것을 이유로 수렴청정과 훈정을 했으며 그를 통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던 서태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남자들보다(이런 표현엔 어폐가 있다만..) 훨씬 권력욕이 강했던 여인 서태후.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친아들과 조카를 황제자리에 두고서도 오히려 그들을 폐인으로 몰고 간 장본인. 두 황제 뿐만 아니라 청왕조의 멸망을 재촉했던 그녀의 삐뚤어진 권력욕을 보며, 어떤 조직에서나(국가라면 더더욱 더) 지도자의 역량이 사회 발전 혹은 퇴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녀의 끊임없는 사치는 그 시기 평범한 중국인들이 겪었을 물질적 정신적 고통과 빈곤과 대비되기에 더욱 눈에 고깝게 보였다.
죽음이 임박해서도 또 한번의 권력 장악을 위해 겨우 세살 된 부의를 황위에 앉힐 것을 결정한 그녀건만, 그녀의 생에 마지막 말은 그녀의 삶과 비교해 보아 아이러니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대사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니 여성이 많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p483)라니... 그러는 당신은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런 말을 할 만큼 당신은 국가의 대사에 관여하지 않았던가..?
그간 이름만 알았지 실체를 몰랐던 서태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즈음의 중국역사에 대해서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고마운 책이다. 경영서 혹은 자기계발서보다는 중국근대사를 다룬 역사책으로 분류하는 쪽이 더 적절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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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이지만, 책을 읽고 난 지금 서태후에게서 굳이 경영의 미덕을 찾고 싶지는 않다. 서태후가 사람을 잘 다루고 능수능란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쪽 세력을 적당히 다투게 하여 그 사이에서 이익을 꾀한다거나 임기응변에 능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 등 정치인들이 취하는 비열한 수단과 방법이 그녀의 통치 시기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러나, 서태후가 아니더라도 처세술을 배울 만한 대상은 많을 것이기에, 본받지 말아야 할 점이 훨씬 많은 이로부터 뭔가를 얻고 싶지는 않은 고집 같은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마지막 황제'의 장면도 간간히 떠오르며, 서태후 즉 자희에 의해 이용당했던 두 왕인 동치제와 광서제에 대한 연민이 생겨났다. 20세가 되기도 전에 천연두와 매독으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사망한 동치제는 그 유약함으로 황제감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권력욕에 휩싸인 생모로부터 정도 느껴보지 못한 채 향락을 즐기는 소극적 방법으로 반항하다 간 인생이 처량하다. 황제인 것이 부럽지가 않은 인생역정이었다. 그에 비하면 광서제의 죽음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안쓰럽다. 국민을 짊어지고 있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변해가는 세월에 맞게 개혁을 추진했던 그가 서태후에 의해 날개가 꺾이지 않았더라면 청나라의 말기 역사를 조금은 변화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황제로서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한 인간으로서의 사랑도 무너졌다. 평생을 으르렁대며 살았던 황후는 서태후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여 남보다도 못했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후궁은 우물 속에 내던져진 채로 죽임을 당한다. 역시 서태후에 의해서다. 광서제가 승하한 다음날 약속이나 한듯이 서태후가 그 뒤를 따랐으니, 이모와 조카 사이인 둘은 악연의 골이 참으로 깊었나보다.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매일 모유를 마셨던 서태후를 위해 전용 유모가 있어야 했고, 식사 때에는 백여 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차려졌었다고 한다. 48년의 집권 기간동안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방식을 위해 낭비된 돈도 아깝지만, 죽은 후에 무덤을 꾸미는 데 들어간 자금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20년 후 도굴당하면서 그 많은 금은보화들은 자취를 감추었다는데, 진정 그 금은보화를 지닌 채로 하늘까지 가고 싶었던 것일까?
책에 나온 노년의 서태후의 모습은 예상 밖으로 평범하다. 전족의 풍습을 없앤 것 외에 뚜렷한 치적을 찾을 수 없는 서태후는 전환기의 청나라를 이끌어나갈 인재는 전혀 못되었다. 서태후가 추구했던 것이 청나라의 번영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유지에 있었으므로 탐욕과 이기주의는 막을 수 없었다. 도덕성이 결여된 군주의 말로는 밝지 못했기에 당시 청나라 국민들은 힘겹고 혼란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혐한류가 번져가고 있는 나라 중국의 역사 속 인물이지만, 우리나라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기엔 화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중국의 역사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 서태후. 중복되는 내용도 간혹 있었고, 서태후의 여러 모습을 얘기하려다 보니 일관성이 결여된 부분도 있었지만, 자희라는 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시기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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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가 과연 청나라에 치욕을 안겨준 악랄한 여인인가 아니면 유연한 발상으로 반세기를 이끌어간 탁월한 통치자인가?! 하는 것은 역사적인 판단에 따라 다르다. 책을 읽어 보아도 그런 양면성을 계속해서 전해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공친왕 혁흔과 연합하여 숙순일파를 척살한 사건이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수많은 재물을 물쓰듯이 사용하면서 지낸 일들이나 자신을 경계하는 자안을 속이기 위한 그녀의 책술(자안이 아팠을때 인삼에 자신의 살점을 넣었다는 이야기), 아들의 죽음을 보면서 슬퍼하기 보다는 권력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잔인함과 교활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족을 없애고 한족과 만주족을 연합하려고 했던 면을 보거나 정치적으로 안정을 꾀하려는 모습, 인재를 활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서태후의 정치적인 능력을 높이 살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세 번이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코 운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단어이며 횟수이다. 이것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던 인간 경영의 놀라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본래 인간은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서태후를 어떤 관점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만을 놓고 생각을 해 본다.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이다. 다른 것은 차지하고 단순히 이것만을 가지고 책을 바라보면서 서태후를 본다.
1. 서태후는 인간경영에 있어서 사람을 사용할 줄 알았다. 공친왕 혁흔을 보아도 그렇듯이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반대하는 숙순일파를 물리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과 같은 한족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들이 농민봉기를 평정하고 러시아 세력을 진압하였던 사람들이었다. 2. 서태후는 인간경영에 있어서 전체적인 결과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야심가였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만의 사람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실행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음으로 해서 새로운 황제를 선출하고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져야할 시기에 4살난 조카를 왕위에 세움으로 수렴청정을 지속한 일을 보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또한 정변을 일으킴으로 서양에 의해 수도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추진력과 두뇌회전이 이런 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3. 서태후는 인간경영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이는 그녀의 고집스러운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신과 측근이 언제나 발빠르게 움직여 정치권력을 잡았던 것이다. 또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았던 사람이었다. 서태후의 인간경영학을 읽으면서 사람의 중요함을 본다. 그리고 그를 움직이는 사람의 가치관을 본다. 사실 서태후에 대해서 그리 좋은 시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왜 그녀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는지 측은한 마음이 든다. 권력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서태후의 모습속에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가를 생각하면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만들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만드는 것을 또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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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사극 드라마<대조영>에 나오는 청나라의 무측천의 모습은 실로 나의 호기심을 유발시킬 만한 인물이었다. 중신들을 호령하는 기상과 함께 화려한 의상은 같은 여자로서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분위기에 사람을 압도하는 눈매는 권력 앞에 친자식이라도 용납이 할 수 없는 모습이 서태후와 동일하다. 서태후.. 과연 그녀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여 책의 앞부분을 펼치니 역시나 위압감이 도는 얼굴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모습은 실로 입을 딱 벌리게 한다. 그 어느 시대를 보나 서태후처럼 화려함의 극치를 나타내는 의상은 없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사후 세계에까지도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들려다 볼 때, 서민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그녀의 삶을 볼 때, 심리학적으로 사치와 낭비를 하는 것이 정서적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서라는데,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했다는 사실이 이 책이 말해준다. 함풍제, 동치제와 광서제의 수렴청정에 이르기까지 48년간을 청나라를 통치하며 파라 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여인, 지혜와 미모를 겸비하고 학문에 조애가 깊었기에 그 오랜 기간 동안 최고의 권력의 권좌에 머물 수 있지 않았을까. 여성이라는 섬세함과 세심함으로 주위의 우수한 대신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던 능력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요, 그들을 찰흙 주물리 듯 주물려 자기가 원하는 뜻을 굽히지 않고 이뤄 나가는 능력은 남자라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확실히 서태후는 한마다로 대단한 여자다. 인간적인 면으로나 정치적인 면으로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기에 오늘날 서태후에 대한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을 읽으며 약간은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어 서태후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인간을 경영하는 부분을 통해 무엇인가 배울 점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에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멜라민 파동으로 온 세계의 식품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중국, 그 중국을 봐도 그 나라의 국민성을 짐작하게 한다. 나라를 다스림에 황제가 여인과 술을 가까이 하면 그 나라가 망할 징조였다면, 태후로서는 사치와 낭비가 그 원인을 제공할 것이다. 이왕이면 서태후가 조금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이었다면, 아마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서양의 여러 나라들 앞에 한 없이 무너지는 모습과 자신의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결국 양무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서제를 견제하기 위해 혁신을 가로 막았던 모습들은 개인주의에 치우치는 발상이라는 것을 나타내 준다. “‘누군가 나를 잠시라도 불쾌하게 만든다면 나는 그를 평생 불쾌하게 만드리라” 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던 오만한 그녀는 중국의 근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오명을 씻겨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오늘 날 우리의 의식에 새로운 교훈을 남길 것이다. |
서태후에 대해 아는가..
위의 글은 대략적인 서태후에 대한 검색 결과이다..
당신도 역시 서태후를 떠올리면.. 야심 많고 욕심 많은 여자,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들까지 이용한 매정한 엄마, 청나라를 져물게 한 원인, 권력과 재력을 마음껏 휘둘렀던 악랄한 여인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이 책의 저자인 리아오는 보통 사람들이 서태후, 자희에 대해 가지는 이런 한가지 단적인 이미지에 조금의 수정을 요하며 이 책을 썼다..
사실 자희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몸짓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고 리아오는 말한다.. 노래도 잘 부르고, 책도 많이 읽고, 글 짓는 솜씨까지 뛰어났다고 하니, 청나라의 9대 황제인 함풍제를 사로잡을 뛰어난 외모에 지적인 모습까지 겸비한 보기 드문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럼 어떤 이유로 자희는 이런 부드러움을 감추고 48년간이나 거대 중국을 지배하며 사람들을 떨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자희의 권력이 생겨난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원인들까지 필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반세기동안 중국을 통치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해도, 한 사람의 가련한 여인이기도했던 '자희' 그 자체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저자 리아오는 그녀의 재치와 지혜, 상대방의 말과 안색을 통해 그 의중을 헤아려 그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는 능력.. 소위 말하는 자희의 남다른 수완에 주목하며 자희의 매력으로 독자를 이끈다..
근대 중국을 저물게 한 책임을 자희 그녀에게로만 돌려지는 것에 대해서도 리아오는 '역사는 결코 혼자 만들 수 없기에'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물론 자희 그녀가 청나라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는데는 이견을 내지 않으면서도 자희 그녀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두가지 모습으로 중국 역사를 쓴 여인!
'여자는 국정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등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등과 다 연결되어지는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했던 그 시대에 이토록 큰영향을 미쳤던 사람으로 기록되어진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아진다.. 물론 이것은 내가 여성인 입장에서의 항변같은 것이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능력과 덕을 함께 겸비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권력에 눈 먼 사람이 어찌 자희뿐이겠는가.. 그리고 기록하는 사람도 남성 우월 주의 사상에 알게 모르게 노출되어진 사람들이었다면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난 자희의 행각은 처음부터 편견에서 시작되어 해석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서태후, '자희'의 또 다른 면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표독스럽고 냉정함이 상징이었던 그녀에게도 우리와 다를바 없는 삶의 희노애락이 존재하였음을 알고 그녀의 외로웠던 마음을 헤아려보는 것.. 나름 의미있었다.. 물론 이런 점이 그녀의 모든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청대 말의 사건에 리아오가 적어내려간 자희의 흔적을 섞어보는 것은 역사의 또 다른 면의 접근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요즘 이미 알려졌던 역사의 기록과 해석을 뒤집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일면으로서의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태후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을지라도 첨가된 그녀의 이미지는 신선하지 않았는가.. 사람을 대할 때는 두 개의 상반된 측면을 모두 교려해야 한다는 옛현인들의 말처럼 자희의 한 단면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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