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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류작가들의 글솜씨는 하나같이 찬연하다. 몇몇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페미니즘의 클리셰(Cliche)에 함몰되었다거나 지나친 공주병에 빠져 있다는 조소를 받기도 하지만, 각기 뛰어난 필력으로 한국 문단을 주도하는 그녀들의 활력活力이 나는 좋다. 공지영의 대중성과 신경숙의 섬세한 문체, 은희경의 냉소주의와 심윤경의 문학적 진화, 정이현의 동시대적 공감성과 전경린의 연애 서사 등은 한국 문단을 빛내는 여류작가들의 대표적 아이콘들이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 권지예가 있다. http://blog.naver.com/gilsa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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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라는 이름이 보였을 때, 고민하지 않고 냉큼 샀다. 제목도 좋다. 붉은 비단보...
이 소설은 조선시대의 여자가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재주 많았던 여인, 스스로의 이름을 항아라고 했던 발칙한 여인.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친구들과 이별하고, 시댁에서 생활하고 어머니가 되어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황진이 같은 사람에 비하면 별반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삶에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오랜만에 본 권지예의 소설이다. 잔잔히 흐르는 물결을 바라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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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 시대를 배경으로한 소설들을 참 좋아한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표지가 참 강렬하다. 제목과 걸맞게 붉은색. 이 책을 읽기전만해도 강렬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애절한 항아와 준서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난 항아의 일대기를 보며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항아, 가연, 초롱은 보통 여식들과는 다르게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여성이라는 신분적인 제약 때문에 뜻대로 그들의 재주를 펼치지 못한다. 가연은 셋 중 가장 먼저 양반집의 며느리로 시집가지만 글을 쓰는 가연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시달림을 받아가 실성해 미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연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또한 초롱은 그녀의 집안이 역적으로 몰리자 관비로 끌려간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어미와 똑같이 양반집의 첩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항아는 준수를 만나 사랑의 정을 나누지만 신분적 차이 때문에 아버지의 계략(?)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다. 순애보 같던 그들의 사랑은 붉은 비단보 속에 고이 간직되어있을 뿐이다. 그 둘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항아와 준수의 사랑이 예쁘게 그려지길 원했던 것은 큰 욕심 이였을까? 항아의 삶도 준수의 삶도 기구하기가 짝이 없다. 읽는 내내 안타까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지만 그들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는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런 안타까운 사랑을 하길 원하지는 않지만 준서와 같이 순애보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사랑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의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들의 삶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권지예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났지만 앞으로도 좋은 만남을 이어나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그러니 동심결이지. 두 마음이 하나가 된 거요. 이걸 멀리 떠나는 나한테 줄 수 있소? 홀로 지내는 이 몸이 이걸 간직하면 천하는 얻은 듯, 그대를 품에 안고 있는 듯할 거요. 어떻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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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자, 딸, 아내, 시집, 어머니, 며느리 그리고 '사랑'
어제 저녁 늦게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단어들이다. 그리고는 찔끔 울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런 내용에 울고 있는가.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는 형태를 띠면서 어쩔 수 없는 불행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모양이다. 차별이 있고 나면 차별받는 쪽만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차별하는 쪽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기득권이라는 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그 시대로 돌아가 살 것도 아니면서 나는 끝없이 그 시대 여인들의 삶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이러고도 살아야 했구나, 어떻게 이러고 살았는가. 하기야 여인네의 삶이 우리 민족에게만 고달팠던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야 조선시대보다 일부 나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른 나라 다른 민족 가운데는 여전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게 끔찍한 곳이 많다고 하니. 여성의 삶이 그러한 한 남성들의 삶도 끝내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을.
이 소설에는 이른바 나쁜 인물, 악한 인물, 몹쓸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다들 서글픈 운명을 안고 살아간다. 희망이라는 게, 꿈이라는 게 그리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는데도, 이루지 못해 그리움만 키우다 키우다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꿈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이 무거워서 나는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삶은 이어지고 그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갔듯이 우리는 또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뒤에 올 미래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를 안타깝게 여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과 삶에 대한 연민, 시간을 초월하여 오랜만에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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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잠시도 책을 놓을수 없었네요... 너무나 애절한...가슴절절한 사랑... 끝끝내 어머니로써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한... 밤새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시대에 태어난 여인이라면 참으로 행복한 삶을 누렸을텐데...하는 안타까움... 얼마나 가슴아팠을지 생각하니 책을 다 읽고도 한참을 표지를 들여다 보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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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예가 출중한 데다 잘 보듬어주는 부모를 만나 자신의 그릇을 더욱 깊고 그윽히 만들던 항아(恒我)는 운명처럼-이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정인을 만난다. 서자출신에 역적집안까지 된 그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데 모든 걸 걸고 둘은 머리카락으로 동심결을 묶어 정표로 나눈다. 하지만 항아를 사랑하는 부모님에 의해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항아는 그 그리움의 샘에 붓을 담가 그리는 그림과 글씨로 남은 생을 꾸린다. 그리고 늘 마주하던, 자신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둘러싼 것에 대한 사랑을 잘 갈무리하여 자족의 삶을 살아낸다. 둘은 빛이며 어둠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빛은 어둠을 더욱 도두라지게 하고 어둠은 빛을 더욱 환하게 하는 것. 그렇지만 나는 푸른 비단보의 부덕(婦德)이 붉은 비단보의 정념이 온 생에 드리는 빛을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반을 선사처럼 같은 처지인들과 화전으로 일구려했던 것 역시 항아가 보여준 삶과 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예전 박지원의 산문을 읽을 때처럼 온갖 산수와 풍치가 정경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경험을 한 것도 색다른 맛이었다. 작가로서의 타고난 언어감각에 자료 조사의 성실성, 전체 짜임에 나타나는 지적인 면모까지 탄탄한 소설이다. 우리가 혹 절절한 사랑이나 세 여인의 한에 갇혀있을까싶어 보자기를 다시 꽁꽁 여며두고 빈이를 금강산에 보내는 친절..ㅎㅎ
공굴려~, 살빛. 고졸하다~. 마음이 베이다~, 동심결, 거폐스럽다~ 등 고운 우리말이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것도 이 소설의 미덕이다.
모든 작품은 작가를 떠날 수 없겠지만 이 작픔은 특히 작가가 품고 있는, '예'의 그림자를 일상과 함께 평행으로 잘 엮고 싶다는 바람이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작가와 추천글이 말하듯 사임당과 초희, 명월의 풍문이 느껴지지만 내게 보인 것은 이문열의 <선택>이며 <시인>이었다. 옛것에 대한 나의 편협한 지식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이런 글법으로 정경부인 삶을 엿보았더라면 우린 기꺼이 그네들의 삶에 박수를 보냈으리라.
일은 밀려있지만 마감 시간이 되면 어떻게든지 해내게 되는 것. 조금의 짬을 찾아서라도 날 위한 시간을 여투어놓는 데 해갈의 단비로 내린 권지예의 <붉은 비단보>를 다시 여며놓으며 소회 적어놓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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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이 이렇게 심심했었던가. 화려하진 않지만 엺은 꽃잎같았던 글들이 떠오르는데... 장르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읽는 내내 도무지 긴장감이 생기질 않았다. 허난설헌과 신사임당과 황진이와 등등등, 우리네 역사속에 유명세 떨치는 여인네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듯 밋밋한 캐릭터와 그러함이 당연한 듯 물처럼 술처럼 흘러가는 이야기는 밋밋하여... 지루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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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별점은 다른 사람들이 너무 후한 점수를 줬기에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높게 평가받을 책이 아닌데, 너무 높은 것 같아 점수를 많이 짜게 줬다. 실제로는 별 2개 정도 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여성의 끼가 인정받지 못하는 조선 시대에 예술가의 혼을 가지고 태어난 세 여인을 통해 직업적 예술가 이전의 운명적 존재로서의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것을 위해서 신사임당의 외면적 조건들을 모티브로 가져왔다고 말이다. 하지만 모티브라는 것은, 어느 정도 기반을 두되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가 갖다 쓴 몇몇 에피소드는 어릴 적 신사임당의 위인전에서 읽었던 내용 그대로였다. 주인공이 신사임당이 아니라 항아였을 뿐. 두 친구 역시 허난설헌과 황진이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항아의 아들이 어머니의 쾌차를 밤새도록 비는 에피소드는 율곡 선생 그대로이지 않은가.. 허구적 인물임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성격적인 측면이나 재능, 하다못해 에피소드라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했지 않을까?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세 여인을 한 데 모아두고는 "이건 모티브만 따온 거에요. 캐릭터는 허구에요."라고 외치는 건 어쩐지 꼴사납다. 이럴거면 차라리 신사임당을 모델로 한 소설을 내놓던가! 허구적 캐릭터로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곳곳에서 거슬리는 에피소드들 때문에 결국 짜증만 나도 말았다.
작가는 "화려한 삶이나 비극적인 삶의 전형이 아닌, 반(反) 클리셰적인 예술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들도 충분히 클리셰적인 비극적 예술가이다. 끼를 가지고 있었기에 비극적이어야 했던 전형적인 여성예술가들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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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하고 자상한 어머니상,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으로 알려진 신사임당의 삶에 대해 한편의 소설로 나왔습니다. 신사임당은 아들 율곡 이이에 비해 크게 돋보여지지 않았으며, 글씨와 그림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강릉 오죽헌은 사임당 신씨의 시댁이 아닌 친정집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율옥 이이는 강릉에서 태어나,어머니 밑에서 공부를 하였고,어릴 적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으며 초시에 장원 급제 하여 한양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소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은 율곡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삶이 아닌, 조선 중기를 살았던 한 여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사람을 사랑하고 어릴 적부터 벗하였던 두 소녀 가연과 초롱의 이야기가 같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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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님은 얼마전 이상 문학상 수상작품의 뱀장어 스튜를 통해 만나본 적이 있는 작가였습니다. 붉은 비단보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장편소설로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기대도 되었습니다.
우선, 읽기 시작하자마자 묘한 매력이 사로잡히게 되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군요. 조선시대의 여인들의 삶을 어쩌면 현실감있게 잘 담아내었는지,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달동안 아버지와 형과 함께 떠났던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빈이는 반갑게 맞이해 줄, 어여쁜 어머니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어머니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는 동시에, 어머니가 몰래 꺼내보던 '붉은 비단보'가 떠올라서 궁금한 마음이 솟구쳐 올랐지만, 어디를 찾아도 없었지요.
그렇게 이야기는 어머니의 세월로 돌아가, 한 여인, 항아(恒我)가 등장을 합니다. 내리 다섯을 딸을 낳은 어머니. 첫딸을 낳고 두번째도 딸을 낳자, 할아버지는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하는 이름으로 둘째를 개남(開男)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학문에도 출중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개남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는 늘 아들로 태어났으면....하는 아쉬움과, 또 자랑스러운 딸이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타고난 재주를 가졌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마음껏 뜻을 펼칠 수도 없었던 그녀는 이름만이라도 항상 자신으로 있고 싶다는 뜻으로, 시대의 남아선호사상에 반기를 들듯 이름을 개남(開男)이에서 항아로 개명하지요. 그림을 그리며 꽃다운 나이를 보내던 어느날, 어릴 적 까치연을 날리던 도령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애틋한 첫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렇지만, 서자 출신인 준서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지요. 그렇게 홀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에게 시집을 가게 되면서, 그날의 기억들은 모두 <붉은 비단보>에 쌓여져 벽장 안에 놓여지게 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고 애틋한 느낌이 들더군요. 책에서는 항아를 비롯한 세 여인의 삶을 통해서 그려지는 조선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제약된 삶과, 또 타고난 운명같은 시대의 여인들의 한도 느껴지는 삶이 아름다우면서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더군요. 여인이 사랑했던 그림과 풀, 꽃, 자연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읽는 재미도 있더군요.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부분도 발견했어요. 항아가 잔치에 갔다가 얼룩진 치마에 포도 그림을 그려주었다는 대목은, 신사임당의 일화와 비슷하게 느껴졌고, 친구인 초롱이가 기생이 되었다는 부분은, 비슷하지는 않지만, 황진이가 연상이 되어 흥미롭더군요. 한편으로는 같은 여자로써, 당시의 시대를 살아갔던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또 평범하고 소박한 삶이지만, 제약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깨닫게 해 주는 책이었어요. 또,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항아의 어머니와, 빈이의 어머니를 보면서, 우리 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가슴이 시리더군요. 살아 생전에 잘 해야겠다는 마음도 들면서 깊은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