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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을 세세히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삶에 있어 작은 행복이 아닐까? 하루하루가 즐겁고, 온갖 모험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지친 일상에 활력소로 작용할테니까. 1951년 아이오와 주 디모인에서 태어난 빌 브라이슨의 어릴 적 이야기는 70년대 우리네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세계 전체 부(富)의 95%를 차지하고 있었던 1950년대의 미국 생활상이 전적으로 우리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냉장고와 세탁기가 등장하고 일반 가정집에 자동차 보유 대수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던 1970년대를 생각하며 그의 이야기는 마치 나의 추억인듯 빠져들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은 엄밀히 말해 유럽인은 아니다. 미국 태생이지만 20여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 더 타임즈 > 나 < 인디펜던트 > 등 거의 모든 매체에 기고를 해 온 칼럼리스트이자 여행작가이고, 몇 년 전부터는 다시 미국에 돌아가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특정 문화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냉정한 관찰에서 비롯된 유머와 재치가 넘친다. 일단 어떤 사물, 어떤 사람이든 그의 눈에 띄어 그의 머릿속을 통과하는 순간 즐거운 얘깃거리로 바뀐다. 추리닝 한 벌이면 운동복이자 잠옷이며 외출복까지 겸했던 우리의 70년대 그 시절은 차림새처럼 몸도 마음도 자유로웠다. 최소한 나이키 운동화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봄이면 물 오른 나무처럼 겨우내 숨죽였던 아이들 팔뚝에 기운이 돌고, 주체할 수 없는 기운에 윗동네 아이들과 밤늦도록 전쟁놀이.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흉내내어 망토처럼 보자기를 뒤집어쓰고는 골목을 내달리던 일.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과도하게 넘치는 아이들은 종종 동네 목욕탕의 김서린 여탕 유리창을 힐끔거리거나 영화 두 편을 동시상영하는 영화관 주변을 맴돌았다. 가끔 헌책방 아저씨로부터 구입한 외국의 성인잡지를 학교에 몰래 가져와 영어공부에 목마른 친구들에게 한 장씩 찢어 돈을 받고 팔기도 했었는데, 수업시간에 서랍에 숨겨놓고 보다가 선생님께 들켜 혼이 나기도 했었다. 발가벗은 여자를 보고 싶어하던 우리를 위해서는 <플레이보이>를 멋지게 장식한 사진들이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덜 알려진 남성용 정기간행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그런 잡지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동쪽 끝에 줄줄이 늘어선 허름한 잡화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목소리를 두 옥타브쯤 낮추고 1939년생이라고 주장하며 하느님한테라도 맹세할 수 있다고 무표정한 점원에게 거짓말하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P.169) 빌 브라이슨의 표현은 사실관계에 그치지 않고, 모험심과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의 감정을 섞어 배를 잡고 한참을 웃게 한다. 그의 고백을 신부님이 들었으면 웃음을 참지 못한 신부님이 고해실 밖으로 뛰쳐 나가거나, 냉전체제의 두 주역인 흐루시초프와 아이젠하워가 웃으며 악수를 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빌 브라이슨은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핵무기 경쟁과 같은 당시의 커다란 사건들도 만화책의 지어낸 이야기인듯 심각하거나 우울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나 자신의 기억들을 그저 단순하게 나열만으로 그쳤다면 이야기는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었을까? 오늘 하루를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준 저자에게 감사라도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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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다 비슷한 유년의 기억들
본인의 100자 서평 중 일부분이 이 책에 개재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기억이 남는 책이 되었다.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미 영국 '타임스'로부터 '가장 재미있게 글을 쓰는 생존 작가'라는 평을 받은이라 한다. 그런 거창한 별명은 이 책을 통하여 여실히 드러난듯 하다. 필자는 195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고 미국 근처에도 못 가본 사람이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수다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1950년대의 미국을 살다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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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빌 브라이슨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묘하게도 내 어린 시절과 닮았다. 물론 미국의 화려했던 그 시절이 요즘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말이다.
위트있는 문체와 재밌는 과장법으로 참으로 글을 달달하게 쓰는 작가가 빌 브라이슨이다. 그런, 빌 브라이슨의 어린시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경험은 매력적이었다.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어찌나 낄낄거리게 되던지. 1951년 미국 중부 지역인 아이오와 디모인에서 베이비 붐 세대의 중간 즈음에 태어난 저자는 자신이 엘렉트로 별의 볼튼 왕이 부모님께 맡겼다고 생각하며, 우연히 발견한 낡은 스웨터로 '선더볼트 키드'로 완벽 변신했다. 나의 어린 시절 보자기를 목에 묶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리던 것이 생각나며, 어렸을 때 그 마당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재미난 아버지와 독특한 어머니에 대한 묘사, 뛰어난 어린이 과학자로 시험정신이 뛰어나 집을 날려버릴 뻔한 월러비 형제, 화물차에서 맥주를 차떼기로 훔친 그 유명한 스티븐 카츠 등 빌 브라이슨의 뛰어난 기억력과 묘사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물들은 내가 아는 악동들 이야기 처럼 재밌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계속 즐거운 것은 아니다. 엄청난 소비, 변화하는 세상의 넘쳐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 광고, 아버지의 직업과 연관된 스포츠, 넘쳐나는 전자제품과 건강에 좋다고 포장되었던 담배와 무지로 인해 방사능 낙진이 몸에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강제로 민방공 훈련을 받는 중 혼자 책상에 멀쩡히 앉아 있다가 혼난 일들,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빨갱이 색출과 같은 별로 접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이들에게도 있었다는게 씁쓸한 웃음을 나게한다. 뭐, 진즉에 알고는 있었지만 미제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번 더 한다. 물론, 이런 갑갑한 이야기도 빌 브라이슨이 쓰면 경쾌하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원서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저자를 만나 그럴듯하게 수다를 떨었으면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꼭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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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흐뭇한 마음으로 읽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시절을 다 기억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렸을 때 쓴 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상상력을 되살리고 예전 기록을 찾아서 끼워 맞춘다고 해도 이토록 실감나게 50년 전의 일을 다 떠올릴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처 생각못하는 기억력 좋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더러 있는 것일까.
빌 브라이슨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시간과 공간은 1950년대인데, 어째,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의 우리나라와 겹치는 부분이 이렇게 많을까. 20년의 시간 차이와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공간 차이를 다 메꾸어 버리는 닮은 꼴의 삶의 풍경들. 낯설지 않다는 것에 도리어 낯선 느낌이 들어, 이 책이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이 아닌가 되물어보곤 했다.
작가도 글도 그 내용까지도 마음에 든다. 정말 세상은 살아가기에 재미있는 곳일 터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온갖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어서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에게 어지간한 영작 실력만 있었다면 이 고마움을 이메일로 보냈으리라.
가끔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 보는 일도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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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내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어릴적 일들을 어제 일어난 일마냥 이리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적을수 있을까 ~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모든것이 충만했고 부유했던 빌 브라인슨의 성장이야기 작은 것과 작은것이 조금씩 커가는 과정을 다룬 책. 작은 회고록 이라고 말하기엔 넘 큰 그의 이야기들 ~ 닮은듯 다른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후덥지근한 오후의 교실에서는 시간이 다섯배쯤 느리게 흐리고, 생일, 크리스마스, 여름방학을 앞 둔 주에는 굼벵이처럼 흘러가는 시간 대공항을 겪으며 성장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엇이든 버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버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이야기 햇볕에 까맣게 타면, 언젠가 몸의 크기와 똑같은 투명한 허물을(뱀의 허물처럼) 벗겨낼 수 있을 날을 학수고대했다던가 매년 초여름, 모기가 활개를 치기 시작할 즈음 살충제 연기를 뒤집어쓰면서 뛰어다녔던 일 그 시간속 그의 어린시절만큼이나 나의 어린시절도 충만했던 것 같은데 소소한 일 하나하나 나열해보자면 그랬을까 ? 그랬던가 ? 아리송한게 ~ 그랬던 내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그런 마술같은 힘이 있다. 이 책이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그 기억속으로 과거로 가는, 추억속으로 흘러가는 타임머신이 되어줄 것이다.
서문, 그리고 감사의 글을 읽다보면 고마운 사람들을 쫘르륵 나열해놓은 부분이 있는데 그 젤 마지막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정력적인 어머니 메리 맥과이어 브라이슨 여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이 책에 쓰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까. 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추억을 더듬거리다보면 날 행복하게 해줬던 것들이 크나큰 선물도 아니고, 많은 돈도 아녔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형제,자매 많은 대가족 속에서 뭐든 경쟁해야했고 그래서 잘해야만, 이겨야 만 갖을수 있었던 많은 것들. 고사리손으로 차근차근 농사일을 도우면서 배웠던 생명의 귀중함, 무엇하나 쉽게 얻어질 수 없고 시간의 흐름속 땀흘리는 것만이 최고로 여겨졌던 그 때 비오는날 가족들과 둘러앉아 나눠 먹었던 호빵 하나, 수박한조각 등등 금방 잊혀지고 말 소소하지만 진한 '가족의 정' 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그 시절에는 나역시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걱정하나 없었다. 조금 있으면 환갑인 아버지, 여전히 건강하시고 활동적이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단 생각뿐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게 행복인지는 과거를 조금만 회상해봐도 알 수 있다. 그 쉬운길을 왜케 몰랐나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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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본 순간 제목이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 "재밌는 세상"이란 제목을 가진 이 책은 과연 어떤 책일까? 나를 정말 재미있는 세상 속으로 데려다 줄까?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감성적이고 유쾌한 이야기로 가득 찬 아련한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누구나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어린시절은 누구에게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번 꼭 돌아가고 싶은 그런 시절일 것이다. 나 또한 어릴때부터 학창시절을 보낼때까지 어떤 시절은 꼭 한번 다시 되돌아가고 싶지만, 어떤 시절은 절대 가고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그 어린시절에는 작은 일로도 뭐가 그렇게 즐겁고, 또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나는 내가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갈수 있다면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뛰어놀았으며, 많은 추억이 있던 그곳... 예전부터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운동장이 넓기로 유명했고, 운동장에서 몇 팀이 축구를 해도 좋을 만큼 광활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커서 우연한 기회에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게되었다. 내가 어릴떄 뛰놀던 그 넓은 운동장이 맞는걸까? 운동장이 줄어든 것인지, 내가 너무 커버린 것인지, 운동장이 작아져 보이는만큼 내 마음도 아련해진다. 학교앞 건물들이 모두 바뀌고, 같이 뛰놀던 친구들은 없다. 세상이 온통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내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 같았던 어린 나도 없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 잊혀져서는 안되는데 잊혀지는 기억들,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모습,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나를 빌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에서 본다. 대공황 시대를 지나 미국의 황금기를 보낸 주인공의 어린시절이 마치 1980년대를 지나 조금은 풍요로워진 199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나같아서 그리움이 느껴졌다. 나를 그 시절로 되돌려 보내준다면, 빌 브라이슨보다 더 짜릿한 글을 남기고 싶다. 지금은 아련하고 가물가물하기만 한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빌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을 통해 아련하게 잡힐 듯하여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하고, 또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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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정겨운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To Sir, With Love' 라는 1967년작 영국 영화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이다 보니 어릴때 TV를 통해 몇차례 보긴 했겠지만 노래만 알고 정작 영화 내용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1년전쯤 어느 일요일 오후 EBS를 통해 제대로 된 영화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는 말썽 꾸러기 학생들이 가득한 도시 빈민가의 어느 고등학교에 흑인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내용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던 나는 심각한 한 대목에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선생님이 좋은 조건의 직장을 제안받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목이었는데 그 좋은 조건의 직장이란 바로 '트랜지스터 라디오 공장'이었다. '세상에 라디오 공장에 취업하려고 고등학교 교사 자리를 버린다는 말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960년대 당시 라디오 공장은 지금의 삼성전자 수준이었다고 한다. 라디오 공장건은 시대 상황에 맞춰보면 충분히 이해할만한 내용이었지만 그 다음 어떤 여학생이 두눈을 부릅뜨고 - 아마도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이었던 듯 - 선생님을 노려보며 던진 대사는 놀랍기도 놀라웠거니와 어이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여학생은 꾸짖는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며 '우리는 지금 어느때보다 멋진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걸 우리가 누리면 안되나요?'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그런 의미의 대사였다. 어이가 없었던 건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저런 무모한 발언을 할 수 있나 하는 거였다. 황당하면서도 바로 깨달았던 건 '아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10대 시절을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로 기억하는구나'였다. 가난해서 굶기를 밥먹듯 하고 지저분한 마을 공터에서 폐타이어를 가지고 놀아도 10대의 기억은 모두에게 소중하게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경제력과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와 세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안 사려고 했던 빌 브라이슨의 책을 또 사버렸다. 국내 출간된 그의 책을 거의 보았지만 개인적인 책에 대한 평가는 너무 극단적이다. 끝내주는 책 한권과 끝내줄 듯 말 듯 하다가 실망해서 집어던지게 되는 나머지 모든 책. 이 책도 그렇게 되리라는 게 뻔했지만 - 간질간질 하다가 결국 기침이 안나오는 것 처럼 - 어쩌다보니 장바구니가 진지한 책들로만 가득차서 균형 유지 차원에서 결국 주문하고 말았다. 제일 좋아하는 '발칙한 유럽산책'이 지하철이고 카페고 어디서고 킥킥대느라 주위 사람들에게 말못할 창피함을 안겨주었다면 이 책은 가끔, 아주 가끔씩 '풋'하고 웃게 만드는 책이다. 어짜피 망신스럽기는 매한가지이지만. 한국이 전쟁의 상처에 고통받던 1950년대가 미국인들에게는 꽤나 행복했던 시기였나보다. 빌 브라이슨은 건망증이 심각한 어머니와 아래는 벗은채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잠을 자는 아버지, 가족들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0년대의 미국이 7,80년대의 내가 자란 한국의 모습과 너무 닮은데 놀라고 또 못된 사람을 태워 죽이거나 여자들의 옷속을 투시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꼬마의 모습에서 잊고 있던 어린시절이 떠올라 웃음짓기도 했지만, 하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내가 읽은 그의 책 중에 가장 저널리스트로써의 본분을 잊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고 행복하지만 공산주의자들과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어린이는 어른들의 사고에 강요받았고, 모든 아이들의 삶은 어른들의 축소판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얼마 후 우리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자본주의 사고의 폭발 시점이기도 했다. 모든 가구들은 소득과 상관없이 가구당 적어도 자동차 2대씩은 있어야 되는 듯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고, 세탁기나 TV처럼 우리 생활기반을 바꾸어버릴 필수 품목 외에도 별의별 기계들이 미국 가정에 끝도 없이 배달되었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그 후로 몇십년간에 걸쳐 미국을 확 바꾸어 놓았다. 저자인 빌 브라이슨이 안타까워 하는 것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속절없이 지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그렇게도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데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추억을 포기하고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하루종일 빨아도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이 크고 울퉁불퉁한 사탕을 입에 물고 곰곰히 생각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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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브라이슨의 재밌는세상
이책은 제일처음 가제본으로 받아보았다. 원작 제목은 '선더볼트키드의 생애' 책제목만봐도 어떤내용인지 이해가 가리라...
누구나 어른이라면 가지고있을 어린시적의 모습(추억이 가슴속에 잔상으로 남아있으므로) 그 아련한 모습을 담아낸 책일 것이다.
예상은 그리 틀리지 안흥듯하다. 1940~50 년대, 그러니까 이젠 늙은 모습으로 삶의 황혼을 맞이하는 나이인 빌브라이슨의 어린
시절, 그당시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겪었을 일들, 그사회당시의 배경, 문화를 마치 영화를 보듯 적어놓았다. 외국소설과 한글 소설
의 차이, 그괴라감은 언어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가슴 짜릿한 문장도 해석이란 필터를 거치면 맹맹한 물같이 변해버리기 마련,,
하지만 이번 소설은 아!그랬을거야! 이렇게 맞장구치며..
필체가 너무 대단허다. 작가가 소설내내 어린아이 시절의 관점으로 그시대의 모습을 적어나간다. 그래서 느끼는건지도 모른다.
문화가 달라도, 사는방식이 달라도 어린시절이 있었다는건 누구나 같은것처럼 누구나 늙는것처럼, 사탕을 물고 동네를 달리던때
놀러나갔다가 머리가 깨져 집에 돌아온다거나, 어머니의 음식에 한번쯤 불평을 늘어놓는다거나.... TV를 보려고 아픈척 조퇴를
한다거나,, 사탕이나 군것질 거리를 몰래 빼돌려 본다거나...
작가가 내게 말한다. 내손을 잡으라고,, 그두껍지만 따뜻한손을 잡고있는 나는 이미 어린아이다. 빌브라이슨과 과거의 미국을
천천히 걸어다닌다. 주위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아직도 포장되지 않은 황색먼지날리는 길을 타박타박 걸어간다. 하나하나 지
나간다. 집에들어가 작가가 풀평하던 타버린 스테이크를 옆에서 보며 웃고 사탕가게를 돌아다녀보고 디즈니랜드도 가본다. 이런
느낌이다. 이소설은....
책마다 향기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실제 맡아지지 않는 무연의 향이지만 느낄수는 있다. 하지만 그 향기는 깊고 진해서
완전히 다읽기 전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깊이깊이 파고들어가서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 이미 느끼고있다. 따뜻한 책이 있는가 하면
날카롭고 차가운 책이있다. 은은한 풀잎향이 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고귀한 꽃을 보는 느낌의 책도 있다. 대게그렇다. 그 책의 향
기는 작가의 마음을 따라간다. 작가의 성격을 따라간다. 이번책은 봄의 왈츠 교향곡이 떠오른다. 이음악을 못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벼우면서 따뜻하게 감명깊진 않지만 잔잔하다. 오래되어 빛바래지 않고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책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다시 나의 어린시절로 돌아간다. 오늘은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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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와 삼촌 그렇게 셋이서 경주에서 보낸 시골 풍경이 내가 기억하는 어릴적 모습이다. 할머니가 장사하시던 시장골목이 내 놀이터 었고 허물어진 건물에선 빨간 벽돌로 고추가루를 만들고 잎을 따서 반찬을 만들면서 놀던 나와 친구들의 소꼽놀이 장소였으며, 어느해 여름은 고모의 연애를 감추기위한 수단으로 따라간 한밤의 오두막에서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사탕의 결과가 온 몸이 모기의 제물이 되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런 추억이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어릴적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어릴적 그 모든 일들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일기를 꾸준하게 365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 어릴적 일기장 조차 갖고 있지 않은 지금 몇년 도 몇월 몇일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하지만 여기 자신있게 몇년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빌이다. 나처럼 소중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선더볼트 키드의 생애]의 주이공 빌은 1950년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한권의 일기장을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자세히 쓰고 있다.
1950년대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 우리 아버지들의 세대의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의 1950년대는 전쟁의 고통으로 인하여 좋은 추억보다는 아픈 추억이 많았던 그때. 그래서 빌의 이야기에 나오는 일들이, 사건들이 다 꿈 같은 이야기로만 보였다. 1950년대에 벌써 자동차가 다니고 냉장고가 가정집마다 있고 tv도 있다는 사실이 한 없이 부러웠던 것은 내 아버지가 그 시대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하지만 핵 실험이 뭐지도 모르는 1950년대에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실험한 미국의 모습은 실망스럽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은 미국 사회의 발전과 핵 실험의 문제점을 이야기 한 책이 아니라 단지 1950대 살았던 빌이라는 한 소년의 시각에서 봐라본 자기만의 세상을 쓴 책이다. 그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있었을 법한 영웅이야기! 빌도 어느 날 지하실에서 번개무늬가 그려진 낡은 스웨터를 발견하고서는 그것을 입고 망토를 두르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고 이름도 거창하게 '선더볼트 키드' 란 이름까지 부친다. 이처럼 빌은 자기의 이야기와 가족의 이야기 말썽꾸러기 친구들과의 어릴적 추억을 스포츠 기자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재치있고 유머스럽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어찌보면 빌이라는사람의 짧은 전기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빌의 어린 추억을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장 한장씩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 이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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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과학상상화그리기, 글짓기 대회를 학교에서 매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주로 매번 손에 전화기를 든 모습을 그리고, 화상 통화하는 현장의 모습과 가만히 있어도 평지를 움직이는 레일과 알약 하나면 하루치 영양분이 공급되는 내용을 글짓기로 써대고는 했다. TV에서 방영되는 만화의 내용은 로보트가 적군을 물리치고, 우주로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우주선을 사람들이 타고 있으며, 모든 가사일을 로봇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상상으로 그리고 글로 썼던 그 모든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가끔 날씨가 흐리거나, 기분이 가라앉을때는 여지없이 내 어릴적 시절을 기억하게 된다. 동네 골목에서 자줏빛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내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된 듯이 뛰어다니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그 시절은 자줏빛 보자기 하나로 내가 철인이 된듯 했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빠는 들고있는 장난감 플라스틱 장검(플라스틱에 은색으로 칠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과 플라스틱 조립 탱크 장난감으로 나보다 더 힘이 세보였었다. 아마 누구나 어린 시절, 자신의 특별함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그렇다. 모든 이들이 어린시절에는 그랬듯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일단 해보고 싶은 대로 저질러보고, 혼날 상황에서는 도망도 쳐보고, 친구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이랬으면 좋겠다...' 꿈도 꾸고. 그 모든 어린 시절만 가능한 생활을, 작가가 겪어낸 것을 너무도 자세히 써놓아서 나를 다시 꿈꾸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