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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이 책은 <어린 왕자> 다음으로 늘 다시 읽고 싶은 책 중에 하나이다. 중학교 때 이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던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책 읽는 사람이 세계를 이끈다>의 저자 김영진 선생님의 추천 때문이었다. 베스트셀러나 자기계발 도서 위주로 독서하던 나의 생활을 고칠현삼(古七現三) 독서법으로 인도해 주신 고마운 분이다. 고칠현삼 독서법은 전통적인 독서법과 현대에 맞는 독서법을 알맞게 조화시켜주는 이른바 옛 책은 일곱 권, 현대 책은 세권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김영진 선생님께서 자주 <노인과 바다>를 읽으신다고 하니 나 또한 고독한 노인의 일상이 그리워졌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문체 역시 꾸임 없는 하드보일드란 문체를 사용했는데, 하드보일드란 감정이 없는, 냉담한 자세로 주관적인 표현을 배제하고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전체적인 작품은 전체적으로 짧고 간결하다. 대체적으로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그의 작품은 폭력적이면서도 거칠지만 <노인과 바다>는 그의 작품의 반전을 가져다 준 책이기도 하다. 그 작품의 계기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무기여, 잘 있거라>, <해는 다시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헤밍웨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이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란 대체로 189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로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직접, 간접으로 전쟁을 체험한 데서 종교나 도덕, 인생의 방향을 잃고 절망과 허무에 빠진 미국의 젊은 작가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거친 그의 성격에 맞게 전쟁터에 직접 지원해서 갔을 정도로 박력이 넘친 남자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병정들에게 초콜릿을 배급하며 돌아다니다가 박격 폭탄의 파편을 맞아 큰 수술을 받게 된다. 그 후 꽤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연상의 여인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명작 <무기여, 잘 있거라>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소설은 그의 삶의 일부라 할 정도로 자신의 직간접 경험을 소재로 집필하였다. <의사와 그 아내>는 부모님의 모습을 담은 단편이고, <인디언 부락>은 어릴 적 아버지가 회진하는 동안 부락의 노인이 해주는 인디언 전설 이야기를 묘사 한 책이다. 어머니는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 어니스트가 음악하길 원해 첼로를 선물해 줬지만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아버지가 선물로 준 낚시도구와 엽총이 좋았살하고 어니스트 역시 엽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나이 61세 1960년 7월 2일에 자택에서 수수께끼 같은 죽음으로 일생을 마치게 된다.(네 번째 부인 메리 웰시가 발견) 플롯도 쿠바의 고독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삶을 담은 <노인과 바다>는 제목 그래도 노인과 바다만 나온다. 간혹 그를 따르는 소년 마놀린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노인과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이 소설은 소금이 들어가 있지 않은 심심한 소설이다. 그럼에도 노인이 먼 바다 한 가운데서 커다란 마알린(청새치)과 펼치는 거대한 싸움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사실 노인은 무려 84일간이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살라오 신세였다. 살라오란 스페인 말로 최악의 액운 상태에 빠졌다는 뜻이다. 노인에게 낚시를 배운 소년 역시 부모의 반대로 다른 배를 옮겨 탈 수밖에 없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노인은 한때 챔피언이라 불릴 정도로 힘이 장사였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깡마른 몸에 골이 패인 쭈글쭈글한 주름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누런 반점이 그의 나이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노인의 신체 중에서 눈은 여전히 노쇠하지 않고 지칠 줄 몰랐다. 평생을 바다 위에서 살아온 그의 눈은 어느덧 바다를 닮아 있었다. 세월의 무게로 어부의 희망이 끊어질 대로 끊어진 그였지만 오늘도 희망을 담아 노를 젓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바다위에 배 한 척 그리고 고독한 노인 하나. 쉽게 잡히지 않는 고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독이며 바다를 향해 외쳤다. 행운의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의 시작이고, 행운은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 언제 찾아올지 모를 행운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인생은 절망의 연속이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 왜냐하면 절망 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84일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간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경험이 있지만 절대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닌 어쩌면 그는 고독 속에 기쁨을 찾아 항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고독한 바다 위에서 큼직한 마알린(청새치)과의 싸움 정말 감동적이었다. 마치 물고기를 형제 대하듯 친숙하게 말을 걸고 마침내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물고기에게 사과를 했다. 그 물고기 길이는 주둥이 끝에서 꼬리까지 18피트나 되었다. 무려 배 길이보다 2피트는 길어 잡은 후에도 배 위에 올릴 수 없어 한 쪽 끝에 묶어 육지를 향해 노를 저어 갔다. 노인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먹이사슬이다. 며칠의 사투 끝에 마알린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상어에게 지고 말았다.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때 손에 남는 것은 상처와 아픔과 고통뿐이었지만 여전히 내일의 희망이 남아 있음을 소년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처가 치유되면 또 다시 소년과 멋진 항해를 하기로 약속하기 때문이다.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주는 <노인과 바다>는 언제 읽어도 가슴에 따스함이 남는 것 같다. 인생은 고독하다. 어니스트가 인생의 고독함을 표현하기 위해 노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다위의 쓸쓸한 항해와 기나긴 물고기와의 싸움은 우리의 인생을 시사하고 있다. 행운의 운명이 다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 노인의 마지막은 살라오 신세였지만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강인함을 지닌 인물이다. 문득 <노인과 바다>를 읽고 있으니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양상을 말한다. 장미의 모습, 붉은 입술, 날렵한 손발이 아니라 늠름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향하는 마음을 떨쳐버리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세의 청년보다 육십세의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햇수를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잊어버릴 때 비로서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더하지만 정열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와 공포와 실망으로 기력은 땅에 떨어지고 정신은 흩어진다. 사람은 신념과 더불어 젊어지고 의혹과 함께 늙어간다. 확신과 더불어 젊어지고 공포와 함께 늙어간다. 희망과 더불어 젊어지고 실망과 함께 늙어간다. 육십세던 십육 세던 사람의 가슴속에는 경이함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이와 같은 미지의 탐구심 인생에의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는 나에게도 보이지 않는 수신기가 마음속에 있다. 자연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 그리고 힘의 영감을 받아들이는 한 그대는 젊은 것이다. 영감이 끊어지고 정신이 육신의 백설에 덮혀 비탈의 얼음덩이로 늘려져 있다면 이십 세라 할지라도 그대는 늙은 것이다.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파도 위에 올라 있는 한 팔십 세라 할지라도 그대는 청춘으로 끝날 수 있다.’그렇다. 노인의 몸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치 못해 늙어버렸지만 눈빛만은 푸른 바다 빛을 닮은 젊은이였다. 포기했을 때, 절망했을 때 그는 비로소 힘없는 노인이 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에서 삶의 희망을 보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또 하나 떠오른 말은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였다. 노인은 오랜시간동안 고기를 잡지 못해 소설 곳곳에 고기에 대한 강한 집념이 엿보인다. 하지만 생각지 못하게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생의 가장 큰 물고기를 잡게 되고 그 긴 싸움 뒤에 남는 것은 상처와 얼룩뿐이었다. 이내 노인은 물고기를 잡지만 상음이 들기 시작한다. 잡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상어를 해치울 수 있는 더 많은 도구를 챙겨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도 잠시 침대와 따뜻한 커피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결국 바다에 빈손으로 나갔다가 큰 물고기를 잡지만 결국 모든 걸 다 바다에 돌려주고 다시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는 노인의 일상을 보며 우리의 인생의 결국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여전히 살아 있기에 아름다울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낀 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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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안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제목만 보고 재미없고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서 읽기를 미루고 미뤄왔다.
하지만 첫 장을 읽고서 여태 미뤄온것을 후회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재미있다. 낚시가 이렇게 수준높게 다이나믹 할 수 있는 것인지,
역시 픽션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겟지만
노인이 물고기와 교감하며 낚시하는 모습은 정말 역동적이고
스포일러는 정말 하기 싫어서 내용은 적지 않지만,
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여운이 남는 책이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이 소설이
왜 500~600페이지쯤 되는 다른 소설들 보다
더욱 깊은 여운과 감동을 주는지는 이 소설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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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저렇게 날씬하고 예쁜 꼬리를 가졌는지 정말 몰랐어요.”“나도 모르고 있었어.” 그녀의 동행인 남자가 대답했다. 길 위쪽의 오두막에서는 노인이 아직도 잠을 자고 있었다. 노인은 엎드린 채 잠에 빠져 있었으며, 소년은 그 옆에 앉아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의 꿈을 꾸고 있었다.
몇해 만에 <노인과 바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강남에 있는 백암아트홀에서 앵콜공연을 하는 <노인과 바다>를 보러가기로 되어 있어서, 쿠바의 노인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어렸을 때는 <노인과 바다>는 어떤 느낌으로도 다가오지 않는 그런 글이었다. 노벨문학상도 받았고 퓰리처상도 받았다는 그런 명작정도로 인식되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런 그저 그렇게 느껴졌던 이야기가 어느순간 내게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느낌을 아이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었다.
쿠바를 떠올리면, 난 체게바라보다 헤밍웨이가 먼저 생각난다. 야구를 좋아하는 쿠바에서 낚시광으로 이름을 높였던 헤밍웨이. 고양이를 좋아하고, 그가 살던 예쁜 집 안뜰에 아직도 그가 키우던 고양이 무덤이 있고 낡은 책상에 앉아 손으로 글을 쓰는 헤밍웨이가 떠오른다. 가가 1952년에 내놓은 소설이 <노인과 바다 / The Old Man and the Sea>다. 누군가 헤밍웨이보고 지성과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가혹한 현실에 감연히 맞섰다가 패배하는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힘차게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노인과 바다>는 그 표현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다.
대어를 낚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의지를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단편. <노인과 바다>. 이 작품으로 1953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7일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가 '살라오'가 되었다고 했다. 살라오라는 말은 에스파냐 어로 최악의 사태를 말한다. 그는 재수없는 노인네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바다의 냉혹함에도 불구하는 그는 누구도 나가지 못했던 먼 바다를 향해 물살을 가른다.작은 배를 이끌고 항해를 나설 때의 철저한 고독은 그가 자유로운 독백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해준다. 그는 그곳에서 바다와 사냥감과의 대결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한다.
노인과 거대한 청세치, 그리고 상어 떼. 자기 자신에 대해 한계를 느끼면서도 자신을 거대한 자연의 힘을 통해 강인함을 확인하는 산티아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것인 지도 모른다. 배에 붙어있는 청세치의 머리부분까지 상어가 먹어버린 순간에 말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도 소년, 마놀린도 알고 있다. 노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노인은 항상 꾸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해변에 사자 꿈을 말이다.
인간이기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를 겪는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실패를 통해서 한층 더 성장해 나간다. 사람의 성장은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도전을 하느냐, 이제 포기하느냐가 문제일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꿈을 꾸게 해준다. 내일을 위한 꿈과 용기를 일깨워 준다. 쿠바의 어부,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고통한 도전을 보여주면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길을 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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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전과 기다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마치 낚시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도전과 기다림 끝에 다가오는 짜릿한 성취감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노인 역시 도전과 기다림으로 점철되어있다. 어부로서 짧지 않은 기간, 84일간을 허탕을 치거나, 잡고기만 잡아오는 그런 기간 속에서 이틀 뒤 노인은 끝끝내 기회를 기다리고, 결국 기회가 왔을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여 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고, 상어와 혈투를 벌이게 된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하드보일드한 문장 속 노인의 일대기의 짧은 한 부분에서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인생을 바라보아야할 이상적인 관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첫 번째로 생각한 것은 과녁이 준비 되지 않은 곳에 화살은 날아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노인은 항상 자신의 주변 상황, 새, 해류, 날치떼 등 모든 조짐들을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또한 노인은 바다 거북의 알을 먹거나 상어 간유를 마시며 자신을 갈고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한 결과로 18피트에 이르는 커다란 청새치를 만날 수 있었다. 만일 이러한 과정이 없이 노인이 청새치를 만났다면 금새 놓지거나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곧 부러질 듯한 나뭇가지에는 작은 새는 앉아도 큰 새는 앉지 않는다. 노인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왼손에 쥐가 나면서 까지도 청새치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내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상어에게 거의 모든 부분을 뜯겨버리고 말았지만, 노인이 며칠을 분투하여 큰 청새치를 잡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만일 노인이 고통스러운 것을 못견뎌 포기했다면, 노인은 어부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긴 세월을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순간의 안식은 훗날의 성취보다 달콤하진 않을 것이다. 당장 눈앞의 편안함을 위하여 쉽게 포기하기보단 더 큰 기쁨을 위해 조금씩 조금씩, 조금 더 노력해가며 결국 완주하는 마라토너의 정신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항상 노력의 결과가 물질적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그렇듯 노인은 상어와의 혈투로 청새치를 팔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인의 노력은 빛을 바래지 않았다. 제 아무리 힘이 장사래도, 그 크기의 청새치를 잡는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인내심으로 이 청새치를 잡았다. 그 누구도 이 노인의 의지에 대해 사족을 달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력은 결과보다 그 과정만으로도 항상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나는 노인이 되기보다 소년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노인만이 아니다. 비록 노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노인이 허탕을 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를 믿고, 그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위해 헌신한 소년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단순히 노인을 위해 일을 한 부분 때문만이 아니다. 책 속에서 노인은 소년의 도움을 많이 받게된다. 아침의 커피 한잔, 저녁 식사, 다음날 쓰게될 정어리를 구해주기까지 했다. 노인에 대한 소년의 동정이 이러한 헌신을 하게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아니라고 절대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이 헌신이 소년의 많은 꿈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일거다. 자기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닌, 노인을 위한 꿈 말이다. 소년은 노인이 커다란 고기를 잡고 돌아오기를 노인 못지않게 진심으로 바랬고, 잡아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 역시 모두 인생에서 소년과 같은 존재를 여럿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누군가에겐 아내와 남편, 혹은 친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기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하고, 그 사람을 믿는 소년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 쓴 것들과 같이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내게 인생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물론 작가 헤밍웨이가 의도하던 방향의 결과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의 초짜인 내가 감히 하는 말이지만서도, 그가 경험해 온 인생에서 느낀 덕목들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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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작가의 대표적 작품이고, 노벨문학상 작품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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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언젠가는 한번 꼭 읽어 보겠다는 맘을 먹은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한 요즘 원작으로 읽어 보기 전에 읽어 볼 요량으로 읽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미사어구가 절제된 딱딱한 문체,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글...
84일간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에게 85일만에 찾아온 기회에서 고기와의 사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듯 했다. 잡기 위한, 잡히지 않기 위한 경쟁...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심적변화는 너무나도 사실적이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 종교는 없지만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는 내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고 거기서 느껴지는 연민의 정은 노인을 향한 것인지 나 자신을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둘 사이에 대결은 노인의 승리로 일단락 지어진다.
하지만 이미 글에서도 암시가 되듯 기쁜 일은 오래가지 못 하고 불행이 뒤를 따른다.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들과은 경쟁은 경쟁이라기 보다는 전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배제된 그 싸움에서 아저씨는 승리의 전리품이 손상되고 만다. 결국 노인은 머리와 꼬리만 남은 앙상한 고기를 배 옆에 두고 집으로 돌아 오게된다.
글은 바다와 고기를 배경으로 며칠간의 사투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사회와 경쟁자를 발견 할 수 있고 인생을 발견 할 수 있다. 이제 원래의 취지로 돌아가 공부를 하는 심정으로 원문을 읽어 보고 한번 읽어 봤을 때 발견 못 한 부분을 허밍웨이의 글 귀절 속에서 다시 한번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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