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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내내 끕끕하고 불쾌한 기운이 온 몸을 감돈다. 그 어떤 것도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을 웃음으로 가장하며 방어했고, 그래서 일평생 불행했고, 인간으로서 실격된 삶을 살아버린, 요조.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식구들조차도 얼마나 괴롭고 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손톱만큼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겁을 낼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서먹서먹함을 견딜 수 없어 어느 새 익살꾼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컨대 나는 어느덧 한마디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던 겁니다.”
사람이 성숙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모든 것을 관대하게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게 아니다. 자신의 한계, 치졸함, 욕심, 허영, 그리고 인간사의 부조리, 모든 말도 안 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체념>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는 자세가 성숙이라는 게 아닐까.
요조는, 자신도 다른 인간들의 ‘무섭고 욕심 많은 모습’과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데서 실패했다. 희망을 갖고 낙천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천박하다 여긴다. 서로를 속고 속이면서도 맑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신감을 경멸한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자신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아닌 것처럼 타인과 거리를 둔다.
그래서 타인들이 분노하는 모습에 같이 분노를 하지 못하고, 또는 무시하지도 못하고, 단지 무서워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분노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익살로 포장한다. ‘장난꾸러기’란 가면으로.
나이가 들면서 요조는 더 이상 장난꾸러기 소년이 아닌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의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뭇 여성들의 모성애를 자극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혐오도 느끼지 못하는, 오로지 인간에 대한 <공포>만을 느끼며 도망가는 요조는
“점점 더 모든 자신감을 잃고, 점점 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어 의심하고, 이 세상의 일에 대한 모든 기대, 기쁨, 울림에서 영원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의 불행은 나의 죄악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누구한테도 항의할 수 없고 또 우물거리며 한마디라도 항의 섞인 말을 건네면 넙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용케도 그런 말을 한다며 어이없어 할 게 분명합니다. 나는 속되게 말하는 제멋대로인 사람인지 아니면 반대로 기가 너무 약한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요조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점점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가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간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 요조는…….. 결국 인간도 아니요, 또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스스로 그런 사람이 있다. 환경이 어떻건 자신의 객관적인 능력이 어떻건, 나는 나약하고 우울하며 상처받는 사람이라고 자기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의 꾸정물에 몸을 담글 수 없는 사람이라, 나와는 맞지 않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 속물이 될 수 없기에 다른 이들을 속물이라 경멸하고, 행동을 하기엔 귀찮기에 스스로를 무능력하고 보잘것 없다 낮추는 사람들.
이 <인간실격>이란 소설이, 그런 모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 상처는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저절로 한쪽 정강이에 나타나더니 성장하면서 치유되기는 커녕 점점 기어지기만 하고, 뼈까지 이르러 밤마다 아프고 괴로운, 끝없이 달라지는 지옥이라고 말하지만 그 상처는 점차 내 혈육보다도 친해졌습니다. 요컨대 그 상처의 아픔을 상처의 살아있는 감정 또는 애정의 속삭임처럼 여기는 그런 남자.”
…
요조, 그리고 요조와 깊이 감정이입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스스로를 그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얼핏 보기에 스스로의 내면을 파헤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요조는 단 한 순간도 자신에게서 벗어나 멀리 떨어져 스스로를 보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에 취해- 끝없이 허우적댔을 뿐이다.
타인들이 서로를 기만한다며 비웃고, 그들의 기만에 상처받았다 여긴 요조는, 일 평생 스스로를 기만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