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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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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만큼 제대로 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분야도 드문 듯 하다. 실수는 금방 티가 나는데, 잘한 것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번역사나 유명한 번역가에 대한 책이 별로 없는 것도 이 일환이려나.   이 책은 '번역사의 역사'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2지, 번역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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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만큼 제대로 하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면서도, 막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분야도 드문 듯 하다. 실수는 금방 티가 나는데, 잘한 것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번역사나 유명한 번역가에 대한 책이 별로 없는 것도 이 일환이려나.

 

이 책은 '번역사의 역사'에 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2지, 번역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번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있었고, 그 이후에 문명교류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야말로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에 읽은 꼭지는, 직역 대 의역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직역과 의역, 어느 쪽이 맞는 걸까? 개인적으로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를 재미있게 본 뒤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생겨 <일리아스> 완역본을 읽게 되었기 때문에, 무어라 딱 잘라 답을 못 하겠다. 지금 시점에서 개인적인 선호도를 꼽으라면, 나는 직역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건 한국 문화에서 생소한 옛날 외국의 문화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기꺼이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나 그렇다는 것도 인정한다. '문화적 차이'라는 것은 정마라 미묘한 부분이며, 직역 대 의역 논쟁의 중심에 있는 논란이기도 하다.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에는 번역도 엄연한 개인 저작으로 인정받았다는 것도 이채로웠다. 번역의 위상이 역사상 가장 높았던 시대가 바로 그 때가 아닐까. 르네상스 시대는 타인의 유명한 작품을 본인이 개작하는 것도 창작물로 인정받던 중세 직후의 시대인데, 그것과도 관련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다소 아이러니한 것은, 원저자의 권위와 입지가 강화될수록 번역자는 기술자 쯤으로 격하되는 상황이 여러 군데에서 빚어졌다는 것이다. 번역이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진대,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단순히 외국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번역가의 입지가 좁아진 걸까, 아니면 다른 연관성이나 이유가 있는 걸까.

p*******1 2010.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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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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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직업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 일이 어렵지 않아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서 편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도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뭣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외국어를 좋아하는 이유와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번역가라는 직업을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날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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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직업에 대해 잘 모를 때는 그 일이 어렵지 않아 보이기까지 했다. 집에서 편하게 커피 한 잔 하면서도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고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뭣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외국어를 좋아하는 이유와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번역가라는 직업을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날마다 번역으로 고생하는 한 사람으로서 시대도 작풍도 다른 수많은 작가의 작품을 잘도 옮겼구나, 그저 경탄할 뿐이다. 번역은 경험이 쌓일수록 어려움이 눈에 보인다.' 옮긴이의 말이다. 한 줄, 한 단어를 번역함에도 본 의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번역되어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도록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적이게 된다고 한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저자의 정신이 투입되어 스며들어 있고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지만 깊은 수정이 가해진’ 말이다. 그것은 살아서 고동치는 말이며 원문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다리를 뻗어 작품 전체와 긴밀히 얽혀 있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힌다. 따라서 저울의 또 한편에도 ‘똑같은 생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등가의 무게’가 필요하다.                                   ―발레리 라르보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늘 한탄하며 하시던 말씀이 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을 배울 때였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말이 번역하기가 까다롭다고. 도대체 어떤 영어단어가 '즈려밟고'란 말의 묘미를 잘 살릴 수 있을까. 우리 문학이 딱히 세계 문학에 뒤질 바가 없는데 노벨 문학상에 잘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선생님은 그렇게 봤다. 번역의 표현에 한계가 있다고. 같은 노란색을 표현하더라도 우리말에는 '누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누렇다', '샛노랗다' 등 다양한 단어가 존재하는 반면, 영어에는 'yellow'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어서 빨리 번역의 힘을 키워서 우리 문학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고 하셨다.


16세기 프랑스 번역가 뒤 벨레는 시의 표현력은 번역을 통해서 배울 수 없다고 보았다. 언어에는 그 나름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번역을 해놓으면 원문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은 사라져버린다고 주장했다. 특히 시의 번역은 "쓸데없으며 해롭기조차 한" 일로 고통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맡겨두면 그만이라고. 실력이 모자란 번역가가 얼마나 많은가 하고 한탄하며 "번역가(트라뒥투르)라고 하기보다는 반역자(트라디투르)"로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다 한다.


르네상스 이전. 아직 문어로서 형성 과정에 있었던 프랑스어로 로마의 대작을 옮긴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번역가 베르슈일은 프랑스어에는 없는 정치 군사 종교의 다양한 용어를 프랑스식으로 바꿔 쓰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길흉을 뜻하는 auspice, 투항병을 뜻하는 transfuge, 대가를 치르다는 뜻의 expier 등이 그것이다. 베르슈일은 새로운 단어를 도입함으로써 프랑스어의 표현력을 풍성하게 살찌운 선구자의 한 사람이었다. 번역을 통해서 새로운 단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소재는 번역이다. 하지만 번역 기법이나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고, 번역이란 다른 나라의 언어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서 자기의 문화를 재창조하는 것임을 알려주는 책이다. 또한, 번역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고대부터 존재한 번역학교에 대한 이야기, 번역에 온 삶을 바치는 작가들의 이야기도 겻들이고 있어 흥미롭다. 국내에 소개된 서적 중 번역사(飜譯史)에 관한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f***y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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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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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느낌이 좋아서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내용을 좀 더 정리해보고 전반적인 서평을 깔끔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놈의 욕심이 뭔지...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이 책느낌을 덮어 지워버렸다. 글도 잘 못쓰면서 서평을 잘 쓰려고 한 나의 욕심은 책을 빛내주려고 한 마음이 아니라 책을 잘 읽었다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좋은 글을 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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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느낌이 좋아서 서평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내용을 좀 더 정리해보고 전반적인 서평을 깔끔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놈의 욕심이 뭔지...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이 책느낌을 덮어 지워버렸다. 글도 잘 못쓰면서 서평을 잘 쓰려고 한 나의 욕심은 책을 빛내주려고 한 마음이 아니라 책을 잘 읽었다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니 좋은 글을 쓸수가 있겠는가.
물론 지금은 나를 드러내려는 욕심이 아니라 이 책을 좀 더 빛나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하다. 하지만 그 욕심에는 능력이 따라야 하는 것이니 그저 내가 깎아내리지나 않기를 바랄밖에.
서평을 잘 쓰고 싶어할만큼 '번역'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번역가가 아니더라도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를 접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한번쯤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서평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열망을 갖고 번역사 오디세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어쩌면 이리도 비슷한가,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번역하는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원작자의 독특한 문체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말로 바꿔버린다면 그건 훌륭한 번역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문화에 맞게 번역을 해야하지만 그것이 역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태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번역은 삶과의 끊임없는 친밀한 접촉이다" 독서라면 그 삶을 흡수하여 소화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번역이라는 것은 그 삶을 "밖으로 끌어내 조금씩, 세포 하나하나마다 새로운 몸뚱이가 솟아오를 때까지 자기가 꽉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몸뚱이가 바로 번역가의 작품이다.(189)]

["결국 번역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선배와 동료와 이론가의 의견도 참고는 되지만 정답은 못준다. 번역자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줄, 한 줄, 그때그때 문체가 튀어나올 때마다 자기 손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번역의 묘미다. 그래서 번역은 재미있다"(161)]

이 책은 번역사 오디세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할때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프랑스의' 번역사인데 왜 프랑스를 빼먹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굳이 '프랑스'를 집어넣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번역사 오디세이는 프랑스의 번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번역과 번역의 역사'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알기쉽고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는 책인 것이다.
번역사란 다른 문화와의 관계를 발견하는 역사이기도 하며, 번역은 그 문화를 전달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자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자는 자신이 번역하려는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또한 자신이 속해있는 곳의 문화도 이해해야만 한다. 언어 역시 당연한 것이고.
아, 그래 이런 원론적인 것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에 더 쉽고 간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그저 이 책은 당신의 예상 이상으로 더 풍부하고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 다듬어지지 못하고 거칠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의껏 추천하고 있는 추천사라고 생각해주길.


r***2 2008.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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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오디세이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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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당초 한글로 쓰여진 책을 읽는만큼이나 한글로 "번역된" 책을 읽을 일이 많아졌다. 내 책꽃이에 꽂힌 절반쯤의 책은 번역서인 듯 하다. 그러면서도 책의 "번역"이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눈에 띄게 "거슬리는" 번역서를 빼고는 말이다. 외국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은 책이라고 자랑하고 있는데, 대체 이 책 어디가 그렇게 칭찬받을만하지?라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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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시당초 한글로 쓰여진 책을 읽는만큼이나 한글로 "번역된" 책을 읽을 일이 많아졌다. 내 책꽃이에 꽂힌 절반쯤의 책은 번역서인 듯 하다. 그러면서도 책의 "번역"이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눈에 띄게 "거슬리는" 번역서를 빼고는 말이다. 외국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은 책이라고 자랑하고 있는데, 대체 이 책 어디가 그렇게 칭찬받을만하지?라는 반발감이 드는 책들은 종종 있었다.  그럴 땐 생각했다. 내가 원문을 읽을 능력이 있다면 내 눈으로 직접 비교해보고 싶다고.. 원문에도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가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이유는  7글자의 제목 가운데 한 글자 "사"자 때문이다. 史. 얼마나 읽어야 충족될지 모르겠지만 史에 대한 내 허기를 조금이나마 채워볼 요량으로.. 번역史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번역사라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으로 듣고서는 인류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글, 책, 사람, 역사를 번역이라는 주제를 통해 알게 되지 않을까하고 기대했었다. 그리고 다행히 이 책을 통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지적 충족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번역사"에 대한 글을 "번역"된 책을 통해 읽고 있다는 느낌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경험이었다.

 

    책의 저자 쓰지 유미는 그 자신이 프랑스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고, 프랑스번역사를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주제는 프랑스의 번역사에 관한 것이고, 그와 아울러 유럽의 번역사와 일본의 번역사에 대해서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책과 사람과 문화와 번역가의 역사라고 해야할까..? 동서양은 물론이고 고대에서 현대까지, 그리고 다양한 종교를 뛰어넘는 다양한 책과 사람, 문화와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그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번역의 중요성에 대해, 그리고 번역의 어려움과 번역사의 논쟁에 대해 알게 되었고, 번역의 중요성, 방법, 고마움까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무리 대작가라 하더라도 가끔은 유치하게 쓸 때가 있는데 번역가가 고심하는 순간은 그런 대목을 만났을 때라고 지드는 말한다. 역자는 원문의 결함이나 비논리성을 채워주어도 좋은 것일까? 원문을 수정한다는 건 아무래도 경솔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저자의 결함이 역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마련이어서 그대로 두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p181)는 말이 번역상의 많은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의 결함조차도 그대로 옮길 것인가, 부실한 미녀(벨 앵피델: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를 만들어 낼 것인가. 번역가는 번역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번역에 앞서 어떤 책이 번역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해내는 감식안이 선행되어야 하며, 번역이란 것이 창작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임에도 창작자만큼의 명성을 얻지도 못하며, "밥벌이"의 수단으로 시원찮은 그것.  작가로 유명한 앙드레 지드는 번역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아마 나는 원작자가 책을 쓰는 데 들인 시간보다 그 책을 번역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을 것이다."(p183)라고..

 

    저자는 이 책의 대부분을 프랑스의 번역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번역작업에 대한 소개로 채우고 있다. 내가 왜 이 사람들의 이름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반발심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박식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요즘들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겐 얼마나 사치스러우면서도 감사한 경험인가를 생각해본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어쩜 평생 옷깃 한번 스치지도 못할 저자와 이렇게 깊은 생각을 나누고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다. 지적 허기를 채워준 저자와 "번역가"에게 감사하며 책을 덮는다.

  

    "셰익스피어를 프랑스어로 읽을 때 거기에는 셰익스피어와 또 한 사람 번역가의 문장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p254)

 

h****i 2008.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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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오디세이] 프랑스 번역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번역 현실을 살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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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 번역가       번역, 통역 관련 수업을 한 학기 정도 받은 적이 있었다. 통번역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출판, 산업 번역쪽 강좌였다. 번역에 대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에서 번역은 시작된다.  오랜 세월, 많은 번역작품이 생겨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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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 번역가

 

 

  번역, 통역 관련 수업을 한 학기 정도 받은 적이 있었다. 통번역이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출판, 산업 번역쪽 강좌였다. 번역에 대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직업이라고 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에서 번역은 시작된다.  오랜 세월, 많은 번역작품이 생겨났지만, 번역가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프랑스 번역의 역사에 대해 쓴 이 책은 프랑스가 중심이지만,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다. 라틴어에서 프랑스어가 독립하는데는 프랑스어로의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한글 자체부터 번역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한문을 언문으로 옮기는 과정, 우리 글의 시작은 번역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까. 그렇기에 적확하고 멀리 내다보는 단어 선택이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번역가의 권리부터 번역에 대한 논쟁까지, 프랑스 번역사를 돌아보며, 우리의 번역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더욱 좋다 생각한다.

 

 
# 프랑스 번역이 걸어온 길.

 

  프랑스가 중심이지만, 프랑스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래된 파피루스의 번역문부터 성경과 불경 등의 종교 서적의 번역, 르네상스가 중심일 때, 번역의 역활과 원 작품의 원문을 그대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번역자가 전체의 내용을 이해해서 의역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에 대한 '부실한 미녀'를 비롯해서 일리아드의 번역에 관한 문명 논쟁까지 번역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시대별로 잘 잡혀 소개 되고 있다.

 

   이슬람의 번역이 발전하게 된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스교의 종교적 탄압으로는 많은 문명의 작품들이 사라져버렸지만, 이슬람에서는 '피난민 보호' 규정에 의해 일정한 세금을 내면 누구나 신앙의 자유를 인정 받았다는 점이 새로웠다. 이슬람교도 유일신만을 강요하는 줄 알았는데, 유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할까. 대출에 이자를 받지 않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와 함께 이슬람이 세계의 과학 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모습도 살펴 볼 수 있었다. 유럽의 번역의 흐름과 다른 문명까지 살짝 엿 볼 수 있어 좋았다.


 

 # 무명의 번역자에 대한 부각!

   

  유명한 작품 뒤의 무명의 번역자 들에 대한 언급이 잘 되어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앙드레 지드와 발레리 라르보 등의 유명한 작가가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점도 좋았지만, 퀴리부인을 불어로 옮긴 드니즈 클레두앵, 종의 기원을 번역한 클레먼스 루아이에, 뉴턴의 저작을 번역했던 가브리엘 에밀리 뒤 샤틀베 등의 잘 알려지지 않는 번역자들을 알 수 있어 즐거웠다.

   우리나라에도 열심히 활동했던 뛰어난 번역가들이 존재했을 텐데, 그에 관한 저작은 하나도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박사 학위를 받기 힘든 나라중의 하나인 일본에서는 빼어난 번역작품을 출간했을 때, 그 작품만으로도 박사 학위를 인정해 주기도 하고,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번역도 오랜 세월 대를 이어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17세기에 지금보다 더 높았던 번역가들의 위상도 볼 수 있었고, 꾸준히 번역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 딱딱한 전문서가 아닌, 부드러운 문화 에세이.

 

 

   프랑스 번역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딱딱하고 읽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어려운 부분은 피하고 번역자와 흐름에 초점을 맞춰 쉬운 표현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가 번역가들을 찾는 과정, 도서관 등의 에피소드와 번역가들이 번역 논쟁으로 겪어야 하는 에피소드, 삶과 밀접한 관련까지 끼쳤던 사례들을 통해, 번역가 들의 번역관과 번역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어렵지 않게 읽게된다.

 

  번역가 조직인 프랑스 번역가 협회와 출판 번역가들의 분리, 다른 번역 회의 등을 통해서는 번역가들이 실제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인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적정한 인세에 대한 논의가 협회 차원에서 지켜려고 노력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정부에서 제공해주는 시스템을 보며 한국과 다른 현실과 비교해 마음이 아팠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법률이 제정되어 많은 번역가들이 활동할 수 있고, 일본, 중국, 유럽 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들을 교류할 수 있는 토대들이 활성화 되길 바란다. 또한  한국 번역의 역사에 대해 흐름을 정리할 책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7******e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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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과 만나는 이름-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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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진정한 책을 만나게 되면, 나는 꼭 책의 번역자를 다시 한 번 찾아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멋진책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번역가란 그런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들. 하지만, 번역이 부실하다거나 작가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된다. 내가 외국어에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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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으로 깊이 들어오는 진정한 책을 만나게 되면, 나는 꼭 책의 번역자를 다시 한 번 찾아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멋진책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번역가란 그런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들.


하지만, 번역이 부실하다거나 작가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타까움에 탄식하게 된다. 내가 외국어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번역가 없이 원서를 줄줄 읽어내려갈 수만 있다면 책의 저자와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양가감정을 가진 이들이 매우 많았다는 사실에, 책을 읽어가며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번역가 역시 이와 같은 고민으로 하루하루 보낸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번역이라는 것은 비단 어떤 책을 자국어로 풀어 옮기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자국으로 소개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른 나라의 우수한 문화나 과학 또한 번역가의 훌륭한 번역으로 인해 자국에 소개되고, 뒤쳐진 것에 거름 역할을 해서 더 훌륭한 것으로 발전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프랑스 번역사에 대해 소개한 이 저자는 번역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주었는데 번역에 대한 역사, 번역에 대한 논쟁, 번역에 열정을 바친 숨은 번역사들의 활약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번역사에 대한 이미지와 달리 중세 프랑스에서는 번역사들이 머리말이나 후기를 통해 번역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작품에 대한 소개를 곁들이며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번역은 창작의 또 하나의 분야로 잘나가는 번역가는 세상의 관심과 이목을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하지만 잘나가는 번역가들 역시 책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길 것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생각과 자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옮길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실한 미녀' 논쟁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말 그대로 겉은 화려하나 내용은 그저 그런 번역들이 판을 치기도 했던 것이다.



중세를 넘어오며 그리고 현재에도 번역가들의 위치는 중세만큼 대접받지 못하는데, 그저 남이 쓴 것을 옮길 뿐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작가는 번역가로서, 그리고 프랑스 번역사를 연구한 학자로서 그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나 역시 그렇다. 현재 우리가 읽는 책의 절반 이상은 번역서일진데, 그 책들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숨은 번역가의 힘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가의 노력에 대해, 그들의 위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 번역에 대해 읽어 내려가며 우리 나라의 번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번역'이라는 흥미로운 분야에 대해서도 더 큰 호기심이 생겼다. 그저 어떤 외국 작품을 글로 옮기는 수동적인 분야가 아닌, 넓은 혜안을 가진 번역가는 자신의 생각과 시대상을 반영하여 책을 옮긴다. 능동적인 분야인 것이다. 앞으로 번역서를 볼 때면 번역가를 더 유심히 관찰하여 책을 읽어내려갈 것만 같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창조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p******0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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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 말의 무게를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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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통 평범한 사람에 비해) 조금 많이, 꾸준히 읽는 편이지만 번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번역된 책을 읽을 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나 몇 번을 읽어도 그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껄끄러운 대목이 나오면 ‘이게 내 한계야...’라며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아이의 그림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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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통 평범한 사람에 비해) 조금 많이, 꾸준히 읽는 편이지만 번역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번역된 책을 읽을 때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나 몇 번을 읽어도 그 뜻을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껄끄러운 대목이 나오면 ‘이게 내 한계야...’라며 넘어가곤 했다. 그러다 아이의 그림책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문장이 매끄럽지 않거나 단어나 용어의 선택에 의심가는 대목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눈으로 읽는 글과 입으로 소리내어 읽는 글에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을 줄이야!) 그림책의 역사애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라는데 내 아이는 외면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린이독서지도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번역'의 문제였다. 그럴때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원문을 비교해서 확인해 본다지만 한글 외엔 어떤 나라의 외국어도 모르는 내겐 불가능했다. 번역자가 누구인지 확인해보고 책을 선택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번역사 오디세이> 이 책은 프랑스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번역가인 저자가 쓴 프랑스 번역사이다. 번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로 얘기를 시작한 이 책은 서유럽과 아랍권, 다시 프랑스를 아우르며 그 곳에서 어떤 분야의 책이 주로 번역되어지고 그 번역이 어디로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그리하여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학창시절 세계사를 배우지 않아선지 사실 이 부분은 그리 쉽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 서유럽이 십자군 원정을 통해 이슬람을 정복했지만 그 이슬람의 문명, 아랍문화에 놀라게 된다. 자신들이 야만족이라 여겼던 이슬람에서 따로 번역기관을 두고 그리스, 로마의 문명을 고스란히 받아 아랍어로 번역하고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에 자극을 받은 서유럽은 번역에 몰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번역의 힘이란, 실로 놀랍다.






번역의 질을 거론하면서 ‘벨 앵피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벨 앵피델은 글자 그대로 말하자면 ‘부실한 미녀’인데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프랑스가 라틴어보다 우월하고 아름답다는 우월감이 아름답지만 정확하지 않은 번역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번역사마다 번역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었다. 그 유명한 <율리시즈>를 번역한 발레리 라르보는 한 권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을 연애와 비슷하다고 했다. 자신이 번역하는 책은 바로 먼 나라의 공주님이어서 그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남편의 지위를 얻고 얼마나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지는 바로 번역자의 열의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무척 인상깊었다.






의외의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작가 중에서 번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저자 알렉상드르 뒤마가 <햄릿>과 <아이반호>를 번역했으며 프랑스문학의 대표작가인 앙드레 지드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는데 2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햄릿>을 번역하기 위해 몰두했다고 한다.






2년전인가? 국내 모방송국의 아니운서가 번역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다. 얼마후에 그 책은 다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아나운서 자신이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던 책에 엄연한 번역자가 따로 있었던 것, 즉 대리번역을 했다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었다. ‘번역도 엄연한 창작’인데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독자를 우롱했다며 반환소동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번역은 창작이다. 당시엔 그 말이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번역사 오디세이>를 통해 번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또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번역은 반역’도 아니다. 번역은 단순히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저자와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둘 사이에서 안내와 조언을 하고 더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예술, 철학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 표현하고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의 전달은 바로 번역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기억하자.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또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 둘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울에 올리는 것은 사전에 정의된 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그것은 살아서 고동치는 말이며 원문에서 벗어나 있다 하더라도 다리를 뻗어 작품 전체와 긴밀히 얽혀 있다. 저울에는 그 생명의 무게가 얹힌다. 따라서 저울의 또 한편에도 ‘똑같은 생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등가의 무게’가 필요하다. -- 발레리 라르보 .











h*******8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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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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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시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동시에, 번역을 담당해온 사람들에게 조명을 가하는 일이다. -15    고3 수능을 마치고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을 보기 위해 문고에 들러 번역본을 둘러보았다. 당시에는 두 곳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완역이라는 이름을 걸고 진열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두 책 앞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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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시대에 어떤 책이 어떻게 번역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동시에, 번역을 담당해온 사람들에게 조명을 가하는 일이다. -15


 



 고3 수능을 마치고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을 보기 위해 문고에 들러 번역본을 둘러보았다. 당시에는 두 곳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완역이라는 이름을 걸고 진열대 맨 앞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두 책 앞장을 비교해가며 번역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자 시도했다. 그래봐야 독자로서 ‘번역’의 비읍도 모르는데, 그냥 감으로 ‘이 문체가 읽기 편하네. 정도로 고르는 것이었지만 꽤 오랜 시간 책 앞에 서서 고민을 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외국어와 관련해서 호기심이 많았다. 어린이였을 때에는 주말마다 해주는 몇 안 되는 외화를 잊지 않고 챙겨 봤고, 시리즈물도 통달했었다. 만화영화도 더빙판이 더 많았던 그때 자막판을 구해서 보려고 했었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부모님을 졸라 만화영화 OST를 받아내어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따라하던 기억이 난다. 그땐 요즘처럼 취학 전 알파벳은 물론이고 기초 영어를 떼는 때가 아니었다. 입학 전에 자기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되고, 구구단과 알파벳을 미리 외우는 아이가 으스댈 수 있던 때였다. 학생 때에도 가요보다는 팝송을 많이 들어서 노래방에 가면 따라 부를 노래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팝송을 유창하게 따라 부를 정도였던 것도 아니었다. 흑.) 한 때 나의 꿈은 통역사가 되는 것이었다. 원서를 읽은 것은 그로부터 먼 때의 일이지만, 팝송을 들을 무렵 어설프게나마 사전을 찾아가며 뜻을 풀려고 해보면 이미 누군가 번역해 둔 한글 가사와 내가 직접 영어로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좋은 기회로 고등학생 때 다른 아이들보다 체계적으로 중국어를 배울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장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시간에 느끼는 쾌감은 남달랐다. 통역이 아니라 번역이라도 좋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의 나는 외국어를 업으로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짬을 내어 원서를 읽거나 중학생 때부터 해온 해외 펜팔을 하거나, 중국 영화가 나오면 아무리 유치해도 관심 있게 보게 되고, 외국 여행을 가서도 영어가 아닌 말이 나오는 TV를 보아도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마치 노랫말처럼 아름답게 들려서 꼭 저 언어도 배워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외국어는 나에게 첫사랑과 같은 존재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꾸만 생각나는.



 


 기회가 되면 취미라도 좋으니 번역 공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게 실현가능한지는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번역이라는 큰 희망사항까지 뻗쳐서 이제는 그와 관련된 글이 나오면 일단은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주로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는 짤막한 지식이 담긴 것이라도 인문서적 비슷한 것은 모두 먼 나라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또한 반쯤은 의무감에서, 나머지는 호기심에서 가끔은 손에 쥐고 읽어보려 노력한다. 마침 번역사에 관한 책이 나왔다고 하여 먼저 손을 뻗어 쥐고 읽어 보았다.



 


 읽기 전에는 솔직히 이걸 발췌독을 해야 하나, 몰라도 무식하게 읽어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알다시피 ‘무슨무슨 역사’라는 제목의 책은 열이면 아홉이 지루하기 짝에 없다. 깐따삐야 별처럼 멀리 있는 대상의 기원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이다. ‘번역사 오디세이’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무시무시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읽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이윤기’라는 이름 때문이다. 책을 직접 손에 쥐기 전에는 이 책을 이윤기가 썼구나, 했다. 그래, 난 낚인거다. 이윤기님은 안드로메다의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기마다 독자를 구원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줄 거란 믿음!


 


 이 책은 사실 ‘쓰지 유미‘라는 일본작가가 썼다. (책의 말미에서야 작가가 여자라는 걸 알았다;;) (스스로) 낚고 낚였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이미 책이 수중에 들어와있으니 외면하긴 어려웠다. 그래 일단 읽자.



 


 흥미롭게도 이 책은 번역사 중에서도 ‘프랑스’에 초점을 맞추었다. 왜 하필 프랑스인가, 그것도 작가는 일본인이 아닌가?


쓰지 유미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번역가로서 자국에서 일었던 번역 논쟁과 오역론을 경험하면서 번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지금의 일본이 번역사에 있어서 시끌벅적한 때라면,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 있었다면 외국의 번역가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갔을까 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쓰지 유미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번역사를 연구하여 일본을 조명하자고 다짐하고 수년에 걸친 연구를 했다. 이 책은 그녀의 연구 결과를 7번 정도로 나누어서 연재했던 것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번역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녀가 느낀 어려움과 고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나는 그 이유를 ‘재미’에서 찾는다. 흔히 번역사와 같이 방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하다보면 엄청난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과정 전부를 스스로 즐기면서, 과정 중간 중간에 얻어지는 결과들에 환희를 느끼고, 연구와 관련하여 만나는 사람들을 반가워했다. 그렇기에 책 속에서 잠깐씩 연구의 어려움을 비추기는 해도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프랑스인이 아닌 일본인이, 프랑스인조차 관심 밖이었던 프랑스 번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한 권의 책으로 망라했다는 것에 나는 크게 감동하고, 부러워했다. 번역사 또한 역사의 한 부분이기에, 세계사 또한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서양사와 예술사, 관련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써놓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번역사라고 해서 번역만 다룬 것이 아니라 배경지식 또한 풍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번역은 암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암호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풀이할 수 있는 해독가가 있어야하듯, 외계문자로 여겨졌을 외국어를 나의 말로 바꾸어 주는 것이 번역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남의 것이었던 문명이 돌고 돌아 나의 것이 되었다. 특히 번역가는 언어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만약 의학서적을 번역한다고 했을 때, 의학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정보를 쉽게 얻고, 똑똑한 사람도 많아져서 번역이 마치 기계로 책을 찍어내듯 생각될 때도 있고, 예술이면 예술, 과학이면 과학, 소설이면 소설하는 식으로 번역도 전문분야별로 나뉘어져 있지만 아주 옛날에는 한 사람의 번역가가 창작을 하기도 하고 (앙드레 지드도 번역가이자 창작가였다.) 다방면으로 지식을 통달하여 번역하기도 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번역의 과거와 현재를 적절하게 연결하여 흥미를 잃지 않도록 이끄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어서 딱딱하지 않은 책이 되었다. 어찌 보면 창작물에 비해 구석진 곳에 조용히 자리 잡던 번역이라는 일이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을, 독자들에게는 흥미와 존경심을 심어주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한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 번역을 제외하면 일본처럼 번역자가 ‘머리말’이나 ‘후기’를 쓰는 관행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관습대로 많은 번역자가 ‘머리말’을 쓰고 거기서 번역론을 전개했다. 그것이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모르긴 몰라도 번역가의 지위가 격하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130


 



일본 문화든 그 어떤 문화든 남한테서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란 있을 수 없다. 어떤 문화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갈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 문화도 서양 문화도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을 모두 포함해서 그 나름의 변용을 이루면서 일본 문화에 이미 끼어들었다. 자기들 문화의 원천을 매장하려는 행위에는 어딘가 자기파괴에 가까운 요소가 있다. -151


 



근대파의 대두와 함께 합리주의적 미학이 과도하리만큼 우위를 점했다. 근대파는 자신들과 자신들의 시대를 숭배한 나머지 의기양양하게 남으로부터 양식을 얻기를 거부하고 프랑스 문학, 나아가 프랑스어에만 틀어박히는 결과를 낳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논쟁(번역의 신구 논쟁)의 결과로 문학의 세계에 한 편에는 학자, 또 한 편에는 자기들의 시대에만 관심이 있는 작가와 지식인이라는 단절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작가와 지식인은 ‘하나의 문명을 계승하는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석학과 수도승, 나중에는 학자에게 양도해버린 지식을 넘어서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게 되었다. -152


 



결국 번역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선배와 동료와 이론가의 의견도 참고는 되지만 정답은 못 준다. 번역자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줄, 한 줄, 그때그때 문제가 튀어나올 때마다 자기 손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번역의 묘미다. 그래서 번역은 재미있다. -161


 



번역은 프랑스 문학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앙드레) 지드는 생각했다. 지드에게 번역은 거의 작가의 일에 버금가는 활동이었다. 외국 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자국어에 대한 인식 또한 깊어진다. 지드는 “국가는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시간의 일부를 외국 걸작의 번역에 쏟아 붓도록 강요해도 무방하다”라는 도발적인 언사를 던진 적도 있다. -177


 



단어를 옮기지 말고 문장을 옮겨야 한다고 지드는 강조한다. -183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번역서의 약 절반은 유럽에서 출판되고 있다. -248


 



번역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세계 각지에서 갈수록 목소리가 높아가는 민족주의의 경향이다. 타인의 편견과 우월의식에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자기한테도 그런 편견과 우월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277

y*******0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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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양서들도 우리글로 마음껏 읽을 수 있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번역때문에 투덜대기도 하고 우리나라 저자가 쓴 것처럼 깔끔한 번역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좋은 내용을 찾아 기획하고 출판하는 출판사의 열정에 힘입어 지구촌 곳곳의 사상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번역에도 역사가 있나? 그렇다. 번역은 고대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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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양서들도 우리글로 마음껏 읽을 수 있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번역때문에 투덜대기도 하고 우리나라 저자가 쓴 것처럼 깔끔한 번역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좋은 내용을 찾아 기획하고 출판하는 출판사의 열정에 힘입어 지구촌 곳곳의 사상과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번역에도 역사가 있나? 그렇다. 번역은 고대부터 있어 왔다고 한다. 이집트의 책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고, 수메르어는 바빌로니아어, 후르어, 히타이트어로 번역되어 영웅서사시인 '길가메시'를 전파시켰다.

번역의 과정이 없었다면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잡은 기독교의 전파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발달된 학문과 지식을 다른 나라로부터 받아들이는 것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번역은 인류에게 매우 의미있고 가치있는 활동이었다.

 

놀랍게도 번역은 그리스 과학과 철학의 맥을 아랍 문화가 이어 다시 유럽세계로 전파시켰다고 한다.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를 걸을 때, 아랍에서는 주요 저서를 아랍어로 옮겨 바그다드에서 문명을 꽃피우고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의 개화를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유럽의 역사가들로부터 때때로 푸대접을 받는 아랍 문화가 중요한 저서들을 번역하고 전하여 인류 역사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은 아랍문화의 재발견이라고까지 느껴진다.

 

책의 목차에서 '부실한 미녀'란 말을 발견하고 무슨 말인가 했다. 알고 보니 아름답지만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번역가들은 작업시에 원문을 그대로 지켜낼 것인가, 어색한 부분을 수정하며 문장력을 높일 것인가의 갈등을 겪으며, 원문 밀착파와 문학적 번역파로 나누어져 이제까지 치열한 논란이 있어 왔다. 여기에 대해서 책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결국 번역에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선배와 동료와 이론가의 의견도 참고는 되지만 정답은 못 준다. 번역자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줄, 한 줄, 그때그때 문제가 튀어나올 때마다 자기 손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번역의 묘미다. 그래서 번역은 재미있다. (p 161)--

 

대표적인 유명, 무명 번역가들의 삶을 통해 열정과 애로점,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훑어본 것도 흥미있는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번역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인하게 해준 책이다. 번역가들이라면 놓치지 말고 읽어봐야 할 것 같다.

a******2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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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발자취를 더듬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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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번역가의 길을 꿈꾼다. 외국의 언어가 내 손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될 때의 기분이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전공한 나도 대학 때 짧은 분량의 원고를 두어번 번역한 적도 있었고, 한창 일본어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는 일본 소설책을 원서 그대로 내 손으로 번역하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때문에 번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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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번역가의 길을 꿈꾼다. 외국의 언어가 내 손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될 때의 기분이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전공한 나도 대학 때 짧은 분량의 원고를 두어번 번역한 적도 있었고, 한창 일본어 공부에 심취해 있을 때는 일본 소설책을 원서 그대로 내 손으로 번역하면서 공부하기도 했다. 때문에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지, 번역가들의 고충을 내가 조금은 이해한다고 하면 너무 자만하는 것이 될까.

 

세상이 좁아진만큼 내 책장도 이제 한국에서 태어난 책들 뿐만이 아니라,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도착하여 새롭게 탄생한 책들로 북적북적하다. 가끔 오탈자를 발견하거나, 문맥이 맞지 않아 읽기 힘든 책과 만날 때마다 '번역이 너무 이상해'라며 얼굴을 찌푸리기만 했지,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번역을 했는가를 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책을 홍보하거나 선택할 때 번역가보다는 저자에게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번역의 역사라니. 나는 순간 멍해진 기분이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지속되어 왔을 경우, 당연히 그 쌓인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 번도 번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번역사 오디세이] 는 번역의 탄생부터 중흥기를 거쳐 르네상스까지, 번역이 어떻게 생겨나고 오랜 시간을 보내왔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고대 카르타고에도 번역가 계급이 있었다거나, 그리스 시대의 문헌들이 아랍어로 번역되고 그 후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등 각 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번역의 진화(?)해 가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각 장마다 주요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프랑스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앙드레 지드도 번역에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이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국가는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시간의 일부를 외국 걸작의 번역에 쏟아 붓도록 강요해도 무방하다"(p177) 라는 부분은  외국 작품을 번역하다보면 자국어에 대한 인식 또한 깊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그는 " 몇 페이지 안 되는 분량인데 하루에 너덧 시간씩 꼬박 3주가 걸렸다.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난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p179) 를 통해 번역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번역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가 적어놓은 이방의 글을 그대로 우리의 언어로 옮기는 것? 아니면 저자의 글을 우리의 입맛에 맞게 맛깔나게 고쳐내는 것? 쉽게 결론지을 수 없지만, 번역이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익숙하지 않은 인명들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를 내용들이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얻은 것 같다. 번역가의 길을 꿈꾸는 사람 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을 멋진 교양서이다.

y********j 2008.06.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