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인물 평전
"인물 평전" 내용보기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책의 주인공은 실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한 단면의 비합리함과 슬픔, 전쟁의 아물지 않는 상처등으로 대변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젊은 열정, 운명에 맞서는 용감함, 인류애,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혈기를 느끼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실
"인물 평전" 내용보기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연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책의 주인공은 실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한 단면의 비합리함과 슬픔, 전쟁의 아물지 않는 상처등으로 대변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젊은 열정, 운명에 맞서는 용감함, 인류애, 목표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혈기를 느끼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베트남여행을 통해서, 전쟁에서의 화학무기(물론 원자력 무기와는 또 다른 것이겠지만) 사용이 2세들에 미치는 유전적 결과를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상태였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실제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인 경험자의 육성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을 접하고 나니까 정말 마음이 무너지듯이 아팠다. 그것도 지금 사회의 정점에 달하는 위치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나이의 남동생 같은 아이가 이렇게 평생을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행을 승화시키고 세상을 향해서 인류애의 외침으로 삶을 불사르는 열정적인 삶을 살아갔다는 사실... 그는 비록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은 정말 고귀하고 아름다웠노라고... 하늘에선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노라고...

m******2 2013.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은 일제의 억압에 힘겨워한 한국 국민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해방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원폭으로 인해 당시 두 곳에 거주했던 약 70만 명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대략 20만 명은 즉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내용보기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은 일제의 억압에 힘겨워한 한국 국민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해방을 기쁘게 맞이할 수 없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원폭으로 인해 당시 두 곳에 거주했던 약 70만 명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대략 20만 명은 즉각 사망하였다. 사망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인구의 1/3을 차지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일본으로 강제로 징용당한 한국인 7만 명이 피폭되었고 4만 명은 사망했다. 원폭으로 전쟁은 마무리되고 한국은 독립했지만 원폭 피해자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본 정부는 1957년 피폭자들의 치료를 지원하기 위한「원폭 피해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지원 범위를 일본에 사는 사람으로 한정하여 한국인을 배제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이에 반발하여 오랫동안 법에 따른 투쟁을 진행했고 2003년 8월이 되어서야 일본 정부를 통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일본에 거주하지 않으면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주지 않고 30만 엔으로 제한을 두고 있어 법에 따른 투쟁은 계속되었다. 2015년이 되어서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원폭 피해자들에게도 전액 치료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원폭 1세에 대한 치료 지원을 보장받게 되었다.


2016년 5월 원폭 투하 71년 만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한국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은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지원, 추모묘역과 위령탑 조성 등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2세 환우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되지 않아 또 다른 차별을 양상 하는 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원폭피해자 2세 환우 삶의 고통을 몸으로 증명한 김형률

 

원폭 피해 1세를 위한 지원은 70년의 싸움 끝에 마련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없다. 그런데도 원폭 2세 환우에 대해 언론에서 놓치지 않고 보도하고 있는 것은 김형률의 치열한 투쟁 덕이다.


김형률은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어머니의 배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반핵 운동에 뛰어들면서 이 병이 단순히 살다가 생긴 병이 아니라 모계 피폭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도 그가 원폭 2세라서 몸이 허약하고 병에 걸렸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특히 원폭 피해자였던 어머니조차 그의 병이 자신의 피폭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감추려 했다고 한다. 김형률은 원폭 1세들이 원폭 2세의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쉬쉬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폭피해자들이 반세기 이상이나 감수해야 했던 사회적 차별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다원폭피해자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너무 오랜 세월 방치되어왔다병든 몸에경제적 곤궁에주변의 따가운 시선에자식 걱정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살아온 세월의 무게가 너무 컸다혹시 내 아이도 아픈 것은 아니겠지멀쩡한 내 자식들이 혹여 결혼이나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피해 의식이 남달리 컸다형률 씨가 가끔 말했던 "억압의 구조화"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37p

 

원폭 2세 환우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형률 자신의 병이 피폭 때문인 것을 알게 된 것은 2002년 그가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이다. 우연히 자신의 병에 대한 논문을 읽게 되어 그가 모계 피폭에 따른 유전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논문은 1995년 김형률이 침례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치의가 그의 혈액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원폭 피해 2세들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다 보니 의사는 그 사실을 숨겼다.

 

"입원 한 달여 동안 제 자신에게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져야 했습니다그리고 조금씩 제 존재에 대해 조금씩 받아들어야 했습니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누구도 이 답답한 현실을 인정해주지 않은 냉혹한 현실을 혼자 힘으로 견뎌 내야했습니다."<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58p

 

2002년 3월 22일 김형률은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폭 피해 2세 환우라는 사실을 세상에 밝혔다. 기자회견을 통해서 그는 원폭 2세 환우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원폭 2세는 어떤 지원과 사회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 가장 소외당하는 사람들이다. 원폭 2세의 문제를 사회가 침묵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할 권리(생명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원폭 2세 문제 해결은 반전 반핵과 함께!

 

김형률은 외부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기보다 스스로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국 원폭 2세 환우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2005년 5월 29일 그가 죽기 닷새 전까지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가 이토록 집요하게 원폭 2세 환우의 문제를 파고들었던 것은 단순히 보상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김형률은 원폭 2세 환우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수탈 정책이라는 광기의 역사를 몸으로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일본 원폭투하는 많은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원폭 피해자 2세에게도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것과 동시에 원폭 2세가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 핵을 이 세상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한국 원폭 2세 환우들은 이 세상에 자국의 생존을 위한 핵이든강대국의 패권 유지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을 용인할 수 있는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반대합니다그리고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지켜야 하며 더 이상 전쟁의 위협과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기를 원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원폭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원폭피해자들과 한국 원폭 2세 환우들의 삶을 통해서 전쟁이란 무엇이며 전쟁이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남기는지를 분명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삶은 계속 되어야 한다> 259p

 

"핵의 평화적 이용은 허구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현에 위치한 핵발전소가 폭발하였다. 이 사고를 통해 1만 5,826명이 사망했고 생사가 확인되지 못한 사람만 대략 2,500명에 이른다. 그리고 현재 정부 집계로 9만 9천 명이 후쿠시마 현의 고향을 떠나 임시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사고가 난 지 6년이 흘렀지만, 아직 사고의 여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로 피난 간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후쿠시마에서 왔다고 차별받고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방사선 누출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사고 피해 범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방사선 누출로 인한 피해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2~3세게도 피해는 고스란히 이어지지만, 정부는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닮았다. 핵의 평화적 이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이 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한국은 핵발전소 25기를 가동 중이며 원전 밀집도 및 반경 30km 이내 인구수 모두 1위이다. 그리고 경주 월성 원전과 부산 기장 고리 원전 부지 반경 30km 이내 인구수는 약 419만 명으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인구수(약 17만 명)에 비해 25배 차이가 난다. 부산은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인재가 발생할 우려가 큰 지역이다. 그리고 지난 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관측 역사상 최대인 5.8의 지진이 일어났다. 한반도 또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활성단층 인근의 부산지역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부각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 3월 고리 핵발전소 3~4호기가 격납건물 내부 철판 부식과 원자로 냉각재 누출 사고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부산시민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2005년 5월 29일 원폭 2세 환우 김형률의 사망일이다. 그가 이루려던 꿈은 원폭 피해자 2세 환우에 대한 지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핵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당장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건설 중인 신고리 4, 5, 6호기 건설을 당장 멈추고 폐기하는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핵에너지를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 한다” - 김형률 묘비명

 

b*****1 2017.05.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