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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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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거리에 어둠이 드리우고, 슬픈 동화가 시작된다당신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붉은 전율의 이미지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무서운 악몽 속에서 어쩌다 마주친 슬프고 아름다운 풍경. 따스한 물처럼 다정하고 안락한 죽음 가운데 박제된 인간들. 핏빛의 하늘을 나는 까마귀는 인간의 말을 하고 눈이 없는 소녀는 있을 리가 없는 환상을 바라본다.불과 16세의 나이에《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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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거리에 어둠이 드리우고, 슬픈 동화가 시작된다
당신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붉은 전율의 이미지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무서운 악몽 속에서 어쩌다 마주친 슬프고 아름다운 풍경. 따스한 물처럼 다정하고 안락한 죽음 가운데 박제된 인간들. 핏빛의 하늘을 나는 까마귀는 인간의 말을 하고 눈이 없는 소녀는 있을 리가 없는 환상을 바라본다.

불과 16세의 나이에《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로 이례적인 데뷔를 한 이래, 출간하는 작품마다 ‘상상을 불허하는’,‘유래 없는’이라는 수식이 따라다닌 천재 오츠이치가 이번에는 공포와 함께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유래 없는‘동화’로 우리 곁을 찾는다.

당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동화가 펼쳐지는 순간, 이제 누구도 책장을 덮을 수 없다.

오늘에야 램프 불빛이 밝혀진 그곳,
암흑은 계속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의 쇼크로 기억과 왼쪽 눈을 잃어버린 여고생 나미. 자신이 자신이었던 기억을 모두 잃은 그녀는 더 이상 사랑받던 자신으로 남을 수 없었다.

매사에 자신 있고 활발했던 예전과 180도 변모한 성격의 나미는 반의 중심이었던 학교에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는 한편, 사랑받아야 마땅한 어머니에게서조차 완전한 타인으로 취급받는다.

적어도 망가진 외모를 회복하기 위해서 받게 된 이식 수술. 그리고 이식을 받아 새로 얻은 눈은 놀라운 영상을 보여 주기 시작한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던 나미는 새로운 왼쪽 눈동자가 떠올리는 놀라운 풍경에 전율하며 빠져드는데.

푸른 벽돌의 집과 어둠 속에 가라앉은 작고 유령 같은 소녀의 얼굴, 그리고 조용히 불빛 너머로 비치는 지옥의 모습.

그 눈이 보아 온 거리와 사람과 추억들, 그리고 그 눈이 마지막으로 본 믿지 못할 풍경을 찾아 나미는 생명을 건 모험을 떠나고, 여정의 끝에 기다리고 있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핏빛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또렷한 실체보다 훨씬 두려운 흐릿한 실루엣. 그 어두운 방에 불이 켜지면 과연 그녀는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오츠이치 작가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님이다.

출간하시는 책은 거의 다 보았는데 필력이 정말좋고 상상력이 풍부하시다고 해야되나

소재가 엄청 끌리고 자극적인 내용이 많다.

그렇지만 이책은 조금 아쉬운 점이 많았고 중간중간에 동화같은 내용이 있어

까마귀가 쟤가 아닐까 하고 상상도 해보았고 또한 하드한 고어가 포함되어있다.

고어물에는 상관이 없지만 고어에 집중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읽는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고 좀 지루하고 재미없어도 참고 읽을수 있다.

j****5 2018.11.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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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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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검은 눈동자에 비친 마지막 풍경... 오츠이치 .. 첨엔 이사람이 누구지? ..라며 내가 이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계기가 뭐였는지도 생각이 나지않는다. 다만.. 제목에 이끌렸나? 그건 아니다.. 왜냐면 내가 항상 갖고 다니는 노트에  읽고싶은 책목록속에 이 "암흑동화" 가 있기때문이다. 그렇담 .. 어디선가 이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에 목록을 적어두었을텐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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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검은 눈동자에 비친 마지막 풍경...

오츠이치 .. 첨엔 이사람이 누구지? ..라며

내가 이책을 도서관에서 빌린 계기가 뭐였는지도 생각이 나지않는다.

다만.. 제목에 이끌렸나? 그건 아니다..

왜냐면 내가 항상 갖고 다니는 노트에  읽고싶은 책목록속에

이 "암흑동화" 가 있기때문이다. 그렇담 ..

어디선가 이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에 목록을 적어두었을텐데...역시 서짐인가?

아무튼 리뷰를 쓰기전 이 작가를 내가 알고있나?란 생각에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이럴수가?!...

내가 미스테리의 걸작이라고 칭하고 싶은 <ZOO> 의 작가였다니.. 난 이사람을 알고있었다.

 

<ZOO> 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첫음 편의 'SEVEN ROOMS' 을 절대 잊지 못할것 이다.

그 괴기한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에 알수없는 희열감마저 느껴졌던 작품이였는데...

그예외도 이 <ZOO> 에 담겨진 단편 하나 하나 모두 찬사를 연발하고 싶은 작품들 인것이다.

그런 작품을 쓴 작가가 이사람.. 오츠 이치..라..

하하.. 당신 오랜만이네요!..라며  악수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다.

왠지.. 이책을 읽으면서 알수없는 그리움이 느껴진다 했는데...

이런 느낌이란게 정말 우연처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어찌보면 이 상황 자체가 필연적일수 밖에 없는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암흑동화>  장편소설이라 했는데 첨엔 여러 단편의 묶음집 인줄 알았다.

우연히 극장안의 상영되는 영화를 보며 인간의 말을 듣고 말할줄 아는 까마귀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의 만남에서 이 암흑동화는 시작되어진다. 

까마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의 가여움을 느끼고 인간들의 눈을 그 길쭉하고 큰 부리로

쪼아 안구를 빼내어 소녀에게 가져다 준다.

소녀는 그 타인의 안구를 눈안에 가둬둠으로써 꿈을 꾸게 되어간다.

빵집의 아이..에서 시작되어서 세상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꿈..

첨엔 아주 행복한 꿈을 꾸는 소녀지만 항상 그 꿈의 끝에는

정체를 알수없는 검은그림자가 엿보고이고 소녀는 불안한 마음 한켠에

그나마 행복한 꿈을 꿀수있는것이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까마귀는 그 소녀를 위해 인간사냥을 계속 이어가고...

이렇게 이야기는 단락지어지는듯 하는데..

 

일본의 어느 공간에서 사건은 일어난다.

길을가던 여학생이 어느 우산의 끝에 눈을찔러 안구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 그녀는 그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미' ...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미' 가 아닌것이다.

기억상실...사고가 있는 그날 후부터

그녀에게서 '나미' 는 찾아볼수 없고 또다른 '나미' 가 되어 간다.

그녀는 빠르게 눈이식을 받게 되었다.

눈 이식을 받은 그날 그녀는 병원안의 달력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고 알수없는 왼쪽눈의 이상감지...

어떤한 물체나 공간을 보면 이 왼쪽눈에 알수없는 '열'이 발생하며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장면들이 보여진다.

과거의 나미가 보았던 장면이 아닌 그 이전의 누군가의 기억이

이 왼쪽눈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것이다.

왼쪽눈의 꿈... 이 꿈은 어떤 매개체에 의해 그 일련의 장면들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나미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나미는 어느순간 이식한 왼쪽눈에서 보여지는 장면들이

이 눈의 주인의 기억임을 알게되고 그가 보았던 그 기이하고 몽롱한 장면들과

그 장면속에 나오는 소녀가 아직도 살아있을거란 희망과 구해내기위해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가 살던 고향으로 길을떠난다.

이렇게... 이 소설은 2/4를  지나가고 있다.

 

이 소설의 간략한 내용은 한쪽 눈을 잃고 기억까지 잊은 나미..라는

소녀가 이식된 눈의 주인의 기억을 본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속에 파란 지붕의 집 지하실안에  한 소녀가 팔다라가 없이 몸통만 있고

그 소녀를 구하기 위해 그 집으로  몰래 숨어들다 집주인에게 들켜

산속을 헤매이다 차사고를 당했다는것.

그 눈의 주인이 살던 곳으로 가서 그 눈의 주인의 누나와 그주변의 인물들을 만나고

홀로 소녀를 찾고 구해내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 소녀를 구해내는것..

그리고 점차 이전의 자신의 기억을 찾아 내는것.

결국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소심하지만 정의감이 넘치는 한 용사가 '악' 으로부터 '소녀'를 구하는

'정의' 가득한 모험담 소설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인간' 이란 생물에 대해 이질적이지만 왠지모를

신기함과 끈질김을 이 책 곳곳에 담아두고 있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곳에서 보여지는 '인간'은  인간이 가진 존엄성은 무시되어지고 그저 단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물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하나의 유기체 (機體) 일뿐이다.

- 내가 본 스미다는 더 냉정하고  과학자 같았다. 나는 회상한다.

기면서 내장을 질질 끄는 나를 그가 조용히 내려다보는 장면을.

그 무시무시한 기억 속에서 어째서인지 그는 의사 같은 백의를 몸에 걸치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상상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인간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분해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

라는 '나미' 의 대사에서 처럼말이다.

 

그리고 또하나.. '눈의 기억'...우리 인간의 몸은 신비롭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볼수 있을것이다.

 어떤 '이'가 가슴속에 품은 열망이 그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채 끝이 나버렸다면..

그 열망은 소멸되어진다..라고 생각할것인가?

반대로 '극도의 공포' 에 시달린 사람이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그 공포의 깊이도 사라진 것인가?

이 책의 표지에 '깊은 눈동자에 비친 마지막 풍경' 이란 말이있다.

이처럼 우리가 죽음이란 순간을 맞이할때 죽음 마저도 초월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소멸되지 않고 우리의 신체 어느 기관에

뇌의 기억보다도 더욱더 맹렬하게 각인되는것은 아닐까?

이 소설에서는 신체의 부위중 '눈'이 매개체가 되어 그 기억을 가득담고

기억을 잃은 '나미'라는 대타를 찾아온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열망이었든... 극도의 공포감이이었든..

맹렬하게 각인되어진 기억이 차츰

그 실마리를 풀고 해결이 되어지면 자연스레 새로운 기억으로 융화되어 스며든다.

-잊어가고 있었던 그 감각이 되 살아난것은 바로 그때였다.

가즈야에게서 받은 왼쪽 안구가  갑자기 열을 띠었다.

.....왼쪽 눈을 통해 본 나는 풀이 다 시든 언덕을 걸으며 바인더를 손에 든 채 보고있었다.

그것이 가즈야의 기억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왼쪽 눈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이자와 히토미의 모습을 찾아서 범인을 쫓았던 것,

파란 벽돌 저택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던 것, 고독을 참으며 바람속을 걸었던것,

어쩌면 좋을지 모를 불안에 가슴 졸였던 것, 눈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

...이렇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기전의 '나미'와 기억을 잃은 '나미'의 분리에서  기억을 되찾은 '나미'의 독립적 존재!

<나> 이면서도 <나>가 될수없었던 <나>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잊지않은 <나>

-그때의 기억은 내 머리에도 아직 남아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당시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흥미의 대상도 다르고, 순간적인 반응에도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그녀는 아마도 내가 아니었다.

기억을 잃고 불안했던 그녀는, 그녀 자신이 느꼈던 것처럼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그녀' 의 소멸은 한 명의 인간의 죽음과 동등한 것이었다.

 '그녀'가 그저 존재하지 않은 단순한 기억장애의 부스럼에 불과했다는 소리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듣고 싶지 않다. '나'와는 다른,

훨씬 요령부득이었던 '그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게다가 분명,

눈이 보여 주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닌 누군가 다른 이의 기억이니까....-

 

이 소설의 마지막 구절...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강하게 살았던 너를 언제까지나 기억할거야.-

'나미' 가 '나미' 를 잊지않고 기억할거라는 말..!!

나또한 기억을 잃은 '나미'를 잊지 못할것같다.

새로운 '나미'는 어딘가에서 다시 소생하고 있을것이다.

a*****n 2010.01.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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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것이 망막에 새겨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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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마귀의 둥지는 영화관 처마 끝에 있었기 때문에 벽에 뚫린 구멍으로 스크린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말을 익혔다. 영화관이 철거되자 고향에서 쫓겨난 까마귀는 홀로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산기슭에 있는 큰 저택에 갔다. 거기에서 까마귀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여자아이는 까마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까마귀는 바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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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마귀의 둥지는 영화관 처마 끝에 있었기 때문에 벽에 뚫린 구멍으로 스크린을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의 말을 익혔다. 영화관이 철거되자 고향에서 쫓겨난 까마귀는 홀로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산기슭에 있는 큰 저택에 갔다. 거기에서 까마귀는 여자아이를 만났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여자아이는 까마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까마귀는 바로 알았다. 여자아이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까마귀는 사람의 말로 여자아이한테 말했다. 그렇게 까마귀와 여자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아이는 자신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여자아이한테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맨 처음으로 빵집 소년의 눈을 빼다가 여자아이한테 갖다줬다. 여자아이는 그 눈을 자신의 눈구멍에 넣었다. 다음날 까마귀한테 자신이 빵집 아이가 된 꿈을 꾸었다고 했다. 기뻐하는 여자아이를 본 까마귀는 더 많이 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까마귀는 여자아이한테 마을 사람들의 눈을 빼다가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까마귀에 대해 알게 되자 눈을 가리고 다니거나 까만 새들을 죽였다.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눈은 여자아이한테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언제나 괴물이 나와서 무섭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자 여자아이는 눈 수술을 할거라고 한다. 까마귀는 여자아이가 수술을 해서 눈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냥 이대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여자아이가 말한 괴물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자아이가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눈을 선물하려고 한다. 하지만 눈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여자 시체를 무덤에 묻으려는 것을 본 까마귀는 거기에서 눈을 뺐다. 여자아이가 그 눈을 넣자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눈을 뽑아낸 시체는 죽기 직전까지 학대당하고 상처받으며 이 세상의 슬픈 것만을 새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소설 속에 있는 또다른 소설이다. 사람의 말을 할 줄 아는 까마귀 그리고 여자아이가 나와서 밝은 동화 같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까마귀가 뽑아다가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눈을 끼워넣은 여자아이는 눈에 새겨진 기억을 보는 거였다. 눈알에서는 피가 흐른다고 써 있는데, 여자아이는 정말로 그것을 못 느꼈을까? 아무리 눈이 안 보인다고 해도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소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키 나미가 겪는 일과 관계가 있다.

시라키 나미는 왼쪽 눈이 빠진 충격으로 기억을 잃는다. 부모님, 학교 친구, 그리고 선생님 모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나미는 왼쪽 눈 이식 수술을 받는다. 읽으면서 안구이식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눈은 망막이식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나미는 이식한 왼쪽 눈이 꿈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꿈이 아닌 왼쪽 눈의 기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눈의 주인이었던 후유쓰키 가즈야가 살았던 곳에 찾아간다. 거기에 간 것은 어딘가에 갇혀있는 아이자와 히토미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히토미한테는 팔 다리가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동화작가라는 작은 제목으로 미키 슌의 이야기가 나온다. 앞에 있는 까마귀와 여자아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다. 까마귀가 마키 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키는 어렸을 때 곤충으로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어느 정도 다쳐야 죽는지에 대한. 그리고 신기하게도 미키가 손대는 곤충은 쉽게 죽지 않았다. 자신한테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 죽음에의 인력을 끊는 가위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렸을 때는 연구 대상이 곤충이나 동물이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런 마음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물건 취급당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나 살아있을까 하는 실험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미는 가즈야가 살았던 마을에 가서 누나 사오리를 만난다. 그동안 왼쪽 눈으로 봤기 때문에 사오리나 마을이 친근하게 느꼈졌다. 자신의 기억이 없었던 것이 가즈야의 기억을 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미는 가즈야가 봤던 파란 벽돌집을 찾아가지만 이렇다 할 증거를 잡지 못한다. 신문에서 오려온 아이자와 히토미의 사진을 사람들한테 보여주면서 본 적 없느냐고 물어본다.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나미는 파란 벽돌집에 살고 있는 시오자키가 범인이라 믿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반응을 본다. 그런데 그날 뒤로 시오자키가 보이지 않았다. 나미는 스미다와 함께 파란 벽돌집에 간다. 이때는 나미의 이야기와 동화작가 이야기가 번갈아 나와서 같은 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오자키가 미키 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키 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꽤 빨리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사람이 수상해 보이기는 했다. 그 뒤에는 별다른 게 없어서 위험한 사람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감쪽같이 속았다. 나미는 히토미를 구한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돌아왔다. 기억을 잃었을 때 자신은 자신이 아니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어머니하고의 관계도 좋아진다.

기억을 잃었을 때의 나미를 또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때의 불안했던 나미가 본 것을 왼쪽 눈이 보여준다. 끝날 때 나온 것인데, 나중에도 다른 기억을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끔찍한 부분도 있었다. 어떻게 상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어둠 속에도 동화가 있다는 것 같다.



희선


이달의 사락 n***8 2010.03.24.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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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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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서평임.오츠이치의 다크 계열의 책인 암흑동화에 흠뻑 빠져 본 시간이 즐거웠다.제목은 암흑동화이지만 부제는.. 'The memory of eye'로 인간에 눈에 관한 이야기를 단펀으로 구성할 줄 알고 읽었다.근데 이 저자의 함정에 빠진 독자들은 중반부의 책을 읽다포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스토리 전개 미쳤다.이렇게 연결되는 이야기였어?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이무튼 이 작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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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서평임.


오츠이치의 다크 계열의 책인 암흑동화에 흠뻑 빠져 본 시간이 즐거웠다.
제목은 암흑동화이지만 부제는.. 'The memory of eye'로 인간에 눈에 관한 이야기를 단펀으로 구성할 줄 알고 읽었다.

근데 이 저자의 함정에 빠진 독자들은 중반부의 책을 읽다포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스토리 전개 미쳤다.이렇게 연결되는 이야기였어?라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무튼 이 작가는 미친 작가가 맞다.미쳐도 제대로 미치면 천재다.인정..

이 책은 인간의 눈이 가진 기억을 소재로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을 가진 책이다.
분명하게 오츠이치의 다크계열의 책이 맞다.
잔인하면서 서늘함이 있다.
근데 이 작가 또 애잔함과 씁쓸함을 다크에 녹여 놓았다.

초코렛 15%에 85%의 다크로 만든 다크 초코렛같은 글이다.쓰면서도 달고 달면서도 끝에 씁쓸함이 남는다.

이 작가의 글에 다크는 이제 나는 감이 조금 잡혀 간다.


무조건적인 다크가 아닌 인간의 결핍에서 다크함을 추출하여 정제하여 인간의 지식이나 앎으로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슴,영혼으로 읽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난 오츠이치의 퓨어계열의 애잔함과 따스함, 아련함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다크계열이 주는 압도적인 소재와 스토리 구성은 당분간 나에게 기담,괴담에서 상위에 포진 할 것이라고 생각되며,그 매력에 빠져 보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음으로 감히 추천한다.


이 작가의 다크 계열의 스토리는 전혀 예상이 안된다.라고 독서노트에 적고 마무리한다.

전혀 예상이 안되는 점이 이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자...최고의 매력이다라고 생각한다.

기담,괴담,이스테리물을 읽다보면 철학책에서 얻어지는 생각의 깊이라는 것이 있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죄악의 근원을 악이라고 보지 않는 저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한다.


당분간은 오츠이치를 넘어서는 저자를 찾기 힘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넘지 말기를 소망한다..





YES마니아 : 로얄 w*****3 2020.05.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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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기억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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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가 수술로 남의 장기를 이식받고 그 수술 이후로 그 장기의   기억을 만나게 되고, 그 장기가 기억하는 기억을 찾아가다 모험을 하게 되는 것, 그   리고 결국 그 장기가 기억하는 일을 해결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   재다. 조금씩 그 장기의 위치를 바꾸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기억이 남   겨진 것이 사람의 장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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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장애를 입은 이가 수술로 남의 장기를 이식받고 그 수술 이후로 그 장기의

 

기억을 만나게 되고, 그 장기가 기억하는 기억을 찾아가다 모험을 하게 되는 것, 그

 

리고 결국 그 장기가 기억하는 일을 해결하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소

 

재다. 조금씩 그 장기의 위치를 바꾸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 기억이 남

 

겨진 것이 사람의 장기에서 때로는 목걸이나 특별한 물건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 구

 

성은 대부분이 비슷하다. 그렇게 이제는 또 그런 이야기냐고 할 정도로 익숙한 이 소

 

재를 작가 '오츠이치'는 새롭게 만들어낸다.

 

  '오츠이치'의 이 소설 '암흑 동화'는 그 제목만을 보면, 한동안 유행했던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가 연상이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갖고 책을 펼치는 독자들을 비

 

웃듯이 작가 '오츠이치'는 독자들이 '뭐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

 

를 그 시작에서 풀어놓는다. 어느 소녀가 우연한 사고로 시력을 잃고, 그 시력을 잃

 

은 것과 함께 기억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해서 학교와

 

집에서 배척을 받는다. 그런 상황에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안구이식 수술을 받은 소

 

녀는 그 안구의 주인의 사진처럼 지나가는 기억을 찾아, 그 안구의 주인이 살았던 곳

 

으로 떠난다. 그리고 의외의 모험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이 시작을 지나면, '암흑 동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

 

가 된다. 그것은 중간 중간에 진짜 '암흑 동화'로 삽입이 되는 '까마귀와 소녀'의 이야

 

기가 주인공인 여고생 나미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면서 독자들에게 식상한 재료로 만

 

들어내는 특별한 이야기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죽은 소년의 기억을 따라가는

 

나미가 만나는 그 모험의 세계는 마지막에 작가 '오츠이치'가 만들어 놓은 특별한 반

 

전을 통해서 이야기에 빠져서 끝까지 간 독자들에게 의외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그렇

 

게 작가 '오츠이치'는 마치 흔한 재료를 사용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특급 요리

 

사의 솜씨를 이 '암흑 동화'를 통해서 펼쳐낸다. 더불어 언제나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로 사용이되는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이 작품 '암흑 동화'에서 만날 수 있

 

기에 '오츠이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매력적인 작품의 세계에서 큰 즐

 

거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d 2012.01.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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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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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긴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호러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한터라 내성이 없는 독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울 내용이 있으니 이점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접하라고 하고 싶다. 그나마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같은 작품을 접해봐서 약간의 내성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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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이긴 하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호러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한터라 내성이 없는 독자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울 내용이 있으니 이점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접하라고 하고 싶다. 그나마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남의 일''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같은 작품을 접해봐서 약간의 내성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문장을 읽는 중에 토악질이 나오는 흔치 않은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되었다.

   그밖에는 흠잡을 곳이 없는 책이라 생각된다. 나같은 독자는 상상할수 없는 상상력과 표현력의 경지가 일단 놀라웠고, 쉽게 깨기 힘든 모럴의 벽이랄지 상식의 벽이란 것을 거리낌 없이 깨뜨리고, 상황을 착각하고 오해하도록 독자를 리드하면서 보기좋게 반전을 펼쳐내는 테크닉에는 놀라 자빠질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 부쩍 작가의 작품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솔직히 나보다 어린 작가란 선입견에 얕잡아 보고 있었던가 보다. 새삼 작가의 엄청난 내공에 무릎을 꿇고야 만 이 기분..... 착잡하기도 하고, 우습게 생각했는데, 거한 작가를 발굴한 기쁨에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복잡하다.

  이 책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이 바로 범인이라 생각된다. 그는 사람을 쉽게 죽이지 못한다. 그가 손을 대게 되면 치명상을 입어도 그 상대가 죽지 않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때문에 범인은 희안한 실험들을 수행한다. 정말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짓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당사자는 고통을 느끼기는 커녕 묘한 황홀감에 빠져든 채 그런 상황을 용인하고, 받아들인다. 정말 역겨운 상황묘사와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실행되고,유지되고, 발전(?)하는 문장속의 세계는 내가 사는 세상의 기반이 기우뚱하는 듯한 충격을 받을 만큼 기이하고도 경악스러웠다. 정말 말도 안된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신체가 무시무시한 기형을 일으키고, 해체되고, 새롭게 조립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과연 어떤 사람이 제정신일수 있을까??? 아프지 않다고 해도 그 극심한 상실감과 박탈감과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인다는 것인지.... 근데 작가는 그런 세계를 만들어선 보란듯이 이리저리 주물러 그 안에 미스터리를 녹여내고, 트릭을 설치하고, 반전을 펼쳐보이고, 조목조목 차분하게 설명까지 덧붙여 준다. 머리 나쁜 독자를 위한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이란.......

  정말 인정할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이 작가 천재란 것에 나도 한표!!!!

b***i 2010.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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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의 한줄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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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黑童話 :: 乙一가장 좋아하는 동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항상 일순위로 오스카 와일드, 그 다음으로 샤를 페로를 꼽는다. 와일드의 작품으로는 [행복한 왕자] 를, 페로의 작품으로는 [푸른 수염] 에 가장 애착이 깊다. 그 작품들에서 내가 느끼는 공통점은 연민 혹은 죄책감이다. 어린 시절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는 동상 왕자와 제비가 왜 그리 죽어가야 하는지, 푸른 수염이 왜 그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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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黑童話 :: 乙一

가장 좋아하는 동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항상 일순위로 오스카 와일드, 그 다음으로 샤를 페로를 꼽는다. 와일드의 작품으로는 [행복한 왕자] 를, 페로의 작품으로는 [푸른 수염] 에 가장 애착이 깊다. 그 작품들에서 내가 느끼는 공통점은 연민 혹은 죄책감이다. 어린 시절 처음 읽었을 때부터 나는 동상 왕자와 제비가 왜 그리 죽어가야 하는지, 푸른 수염이 왜 그토록 아내들에게 집착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 쉽사리 손에서 떼어놓질 못했다. 해피엔딩 일색의 동화들 사이에서 불쾌해야 마땅한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미안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어 몇년을 옆에 끼고 수십 수백번을 반복해 읽는 동안, 점차 나이 먹고 철이 들면서부터 조금씩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동화책들은 어느덧 나에게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츠 이치의 이 작품은 내게 있어 그야말로 '공명' 을 울리는 작품인 것만 같았다. 설정의 우연인지는 몰라도 [행복한 왕자] 와 [푸른 수염] 의 요소가 전부 들어가 있었다. 제비가 까마귀로 대체 되었을 뿐, 새가 움직일 수 없는 존재와 세상을 연결시켜준다는 설정은 [행복한 왕자] 의 그것이었고, 인체를 토막내어 수집하는 산장의 주인은 [푸른 수염] 을 여지없이 연상시켰다. 페로가 [푸른 수염] 을 집필하며 무슨 의도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동화사에서도 전례 없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그려냈다. 물론 페로의 동화는 대부분이 구전 설화를 엮은 것이니 아마도 실존했던 당대 살인마를 그대로 묘사했을 여지가 높지만, 기이하게도 [푸른 수염] 은 그저 악마같은 괴물로만 읽혀지지가 않았다. '왜 그가 아내들의 시체를 수집했는가' 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이유에서였지만 아마도 작가 오츠 이치도 전작을 미루어볼 때 동화 속 사이코패스에 큰 흥미를 느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작가는 [푸른 수염] 을 원형으로 한(것으로 보여지는) 새로운 사이코패스를 작품 속에 창조해낸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사이코패스에겐 기묘한 능력이 하나 주어진다. 그가 살아있는 존재에게 어떤 상해를 입힌다해도 상대는 아무런 고통도 못느낄뿐더러 심장만 손상되지 않는 한 죽지도 않고 도리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전인수격인지는 몰라도 여기에서도 [행복한 왕자] 와의 절묘한 크로스오버를 발견하게 된다. 불행하게 죽어가면서도 행복감을 느꼈던 왕자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은 납으로 된 '심장' 이었다. 사람도 아닌 존재가 비참한 모습이 되어도 '심장' 만으로 행복을 느낀다는 설정이 이 소설의 피해자의 모습으로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이만하면 [푸른 수염] 과 [행복한 왕자] 의 퓨전 크로스오버물, 혹은 재해석 패러디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여기에 한가지 더 추측되는 것이, 어쩌면 이 작품의 소재는 작가의 학창 시절에 발굴 되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코패스의 기묘한 능력은 과학 시간에 개구리를 마취 시킨 뒤 해부하는 모습을 연상 시키기도 하고, 그의 피해자들은 미술실의 토르소 견본이나 과학실의 인체 해부 모형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독하다면 지독한 하드고어물인데도 이 친근한 연상이 난처함과 동시에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인간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사람의 천진한 잔인함을 그대로 확대했을 뿐인 캐릭터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혹 학창 때의 미술 시간에 토르소를 보며 '저게 살아있는 존재라면' 하고 상상해 봤던 것이 아닐까. 개구리를 해부하며 '이것이 사람이라면' 하고 궁금해 했던 것이 아닐까. 미약한 생물에게도 심지어 무형물에게도 연민을 가졌던 그였기에 잔인한 묘사 속에서도 애처로움을 느끼게끔 해주었던 게 아니었을는지.

그 연민을 대변해주는 존재가 바로 주인공인 '나미' 다. 그녀는 눈이 뽑히는 참혹한 사고로 (※ [행복한 왕자] 역시 끝부분에 눈이 뽑힌다) 기억을 잃고 새로운 안구를 이식 받는다. 그런데 이 이식받은 눈에서 전 안구의 소유자, 가즈야의 기억이 재생된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단절된 나미는 가즈야에게 점차 동화되고 그의 불의의 죽음에 연민과 죄책감, 책임감을 갖고 범인을 찾으리라 나서게 된다. 여기에서 나미가 '기억을 잃어버렸다' 는 부분이 흥미롭다. 사고를 당한 뒤 그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극단적 설정일뿐, 부모나 친구들 사이에서 단절감을 느끼고 자아정체성을 찾느라 방황하는 모습은 크건 작건 여느 10대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이다. 작가는 판타지적 가설을 통해 불안한 10대들이 누군가와 무엇을 '공유' 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그려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작가 자신이 10대때 느낀 것들을 고스란히 가져와 조금씩 덧붙히고 미화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간혹 10대들, 혹은 젊은 20대들 사이에서 일명 '고스goth' 라고 불리는 어두운 내용에 열광하는 -주로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비교적 흔한- 이들을 보게 된다. 일종의 멋인양 유행처럼 즐기는 것 같아보이면서도 밝고 행복한 내용보다 어둡고 처참한 내용을 좋아하게 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이 들곤 한다. 아마도 대부분은 이미 어린 시절에 세상은 '동화' 같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 반발 심리에 의해서 탐닉하게 되었을테지만, 내심 실낱같은 행복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정한 정체성의 회복을 그 어두움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찾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암흑동화] 라고 명명한 제목 아래 연민이라는 빛을 남기는 이 작품이 그들에게나, 또 그들을 과거로 거쳐왔던 나에게나 고맙고 애착감 있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YES마니아 : 로얄 q****e 2008.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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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억을 쌓아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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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동화. 동화라 하면 순수하고 밝다는 이미지다. 그런데 암흑이라니?  사실 동화란 알고보면 굉장히 잔인하고 어둡고 무섭다. 그렇지만 그러한 어두운 면을 순수함으로 포장하고 끝에 가서는 무시무시한 결말로 교훈을 주는 데, 동화라는 그 장르 특성 때문인지 그 잔혹함에 대해서 인지하기 힘들다. 예로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등과 같은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있는데, 그 동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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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흑 동화. 동화라 하면 순수하고 밝다는 이미지다. 그런데 암흑이라니?

 사실 동화란 알고보면 굉장히 잔인하고 어둡고 무섭다. 그렇지만 그러한 어두운 면을 순수함으로 포장하고 끝에 가서는 무시무시한 결말로 교훈을 주는 데, 동화라는 그 장르 특성 때문인지 그 잔혹함에 대해서 인지하기 힘들다. 예로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등과 같은 안데르센의 동화들이 있는데, 그 동화들을 그저 동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추악함, 잔혹함 등을 볼 수 있다. 그런 잔혹함과 추악함이 로맨틱하게 바뀌고 순수함으로 포장되어서 바로 눈치채긴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은연중에 알아차리게 되어서 동화가 재밌게 느껴지고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아이들은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기 때문에 동화를 더욱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츠이치의 암흑 동화는 그런 점에서 동화스럽다. 잔혹한데 어딘가 순수한 면이 있다. 하지만 순수함으로 인간의 기괴한 면과 잔혹함을 굳이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본 책에서는 눈이 먼 소녀를 위해 다른 인간의 눈을 뽑아 선물해주는 까마귀에 대한 동화와 사고로 눈을 잃게 된 고등학생 나미가 다른 이의 눈을 이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람의 말을 하는 까마귀는 눈 먼 소녀에게 다가가 사람인 척 말을 건내며 대화를 통해 소녀와 친해지게 된다. 이후 그녀가 좋아진 까마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게 눈을 선물하기로 한다. 까마귀는 다른 사람의 눈알을 하나씩 뽑아와 그녀에게 선물하게 되고 소녀는 까마귀가 선물 해 준 눈을 통해 눈의 주인이 보아온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즉 타인의 시선을 통해 색으로 가득 찬 세상을 소녀는 체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눈 수술을 하러 가기 전 까마귀가 준 마지막 선물에 소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세상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것으로만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이었다. 늘 평화롭고 활기차며 즐거운 일상으로만 가득 찬 세상이 어디있겠는가. 삶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각 개인의 삶은 하나같이 다르다. 모두 행복한 꿈을 꿀 수는 없는 것이다.

  사고로 한쪽 눈을 다친 나미는 눈 이식 후 기억을 잃게 된다. 가족과 친구들은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거부하며 기억을 잃기 전의 자신의 상을 강요하였고 그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기억이 없는 나미는 주변에서 말하는 자신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꼈고 현재 '나미'라는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말하는 '나미' 자신을 별개의 사람으로 밖에 느낄 수 없었다. 주변의 반응에 나미는 갈수록 자존감이 낮아졌고 불안은 심해졌다. 하지만 이식 받은 눈에 축적 된 눈 주인의 과거 시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미는 그 시선에 매료 되어 간다. 기억이 없는 자신에게 그 시선은 마치 자신의 것과 같았으며 자신의 기억처럼 느껴져만 갔다. 하지만 과거의 시선 속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발견된다. 연쇄살인범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이에 나미는 눈의 주인이 살았던 마을로 향해 연쇄살인범을 쫓기 시작한다.

 서로 상이해보이는 이 두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까마귀가 가져다 준 타인의 눈알이 소녀에게 있어서 선물이었으며, 나미에게 있어서 이식받은 눈 역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눈 먼 소녀에게 있어서 까마귀가 가져다 준 눈을 통해 본 세상은 암흑이 아닌 색색으로 칠해진 멋진 세상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아온 암흑 속의 세상과는 달랐으며 소녀가 염원했던 빛의 세계였으며 소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구원과도 같았다. 까마귀로 인해 암흑 속의 나날은 색으로 채워져 갔던 것이다. 나미에게 있어서 이식받은 눈은 기억을 잃고 자신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였다. 나미는 그 시선에 깃든 애정과 마음에 동화되어 가고 기억이 없어진 자신의 삶 역시 동화되어 갔다. 기억이 없는 불완전한 자신, 그렇지만 눈이 보여주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의 기억이었던 것이다. 흰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듯이 채워져가는 타인의 기억. 남의 것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어진 나미. 그녀에게 있어서 그 기억만이 그녀를 몰아붙이는 환경 속에서 버티게 해주었으며 기억을 잃은 채 불안에 떨며 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었으며 가족에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고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선물과도 같았던 것이다.

 결국 나미는 기억을 찾고 기억을 잃은 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각각 다른 하나의 개체로 본다. 기억을 잃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써, 한 명의 사람으로써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그녀 자신임에는 변함이 없었고, 기억을 잃은 뒤 보여준 그녀의 용기를 잊지 않겠다고 한다. 분명히 나 자신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이었던 그녀. 인간이란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의 개체로써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없다면 자신이 기억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을 기억해준 사람들까지 잊게 된다. 그렇게 되면 타인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과정이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 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래서 기억이란 곧 한 사람의 삶이자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

 오츠이치는 기억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생명이란 무엇인지 말한다. 연쇄살인범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곤충과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실험을 한다. 그 실험 대상 중에 남자와 여자의 하반신을 서로 이은 것이 있었다. 인간은 태초에 몸은 하나인 채 머리가 두 개인 원과 같은 형상이었다고 한다. 즉 두 사람이지만 하나였던 것이다. 하나는 완전함을 의미하는데, 신에 의해 둘로 나눠진 사람은 하나가 되어 불완전함에서 벗어나 완전함으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짝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는 성별과는 관련이 없으며, 오로지 완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나아갈 뿐인 것이다. 나는 처음 서로 붙어 있는 이 두 사람을 보고 연쇄살인범이 마치 자신이 신과 닮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원래 떨어뜨려놓았던 두 쌍의 인간을 다시 붙여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완전함이 갖는 행복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두 사람이 사랑을 해도 완전한 하나는 될 수 없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평생 불완전하고 그래서 고독하며 끊임없이 완전함을 위해 자신의 짝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그런 고독한 개체인 인간이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완전함에 도달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즉 사람은 진정한 행복에 도달 할 수 있는가의 가능성이었다.

 오츠이치는 육체적 결합을 통해 정신적인 결합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하나로 연결 되어 있다는 그 충족감이 완전함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그 둘은 숲으로 떠났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는 완전함 속에서 행복을 느낄까?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그들은 그저 기형에 가까운 산물일 뿐이다. 행동에 제한이 많으며 보통 인간들이 떠올리는 이상적인 인간 상과는 다른 것이다. 소위 괴물과 같은 형태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로 사람이 진화되어오기 이전에 우리는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만화 캣독에서처럼 한쪽은 고양이, 다른 한쪽은 개이지만 몸은 서로 공유하고 있는 그런 형태로 말이다. 하지만 캣독에서는 이들과 달리 육체적 결합을 하고 있음에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육체적 결합이 정신적 결합으로까지 나아가 하나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츠이치는 연쇄살인범을 통해 비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며 직접적으로 생명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삶과 기억으로 이어진다. 직접적인 인간의 분해, 즉 살인이 아니라 위와 같은 실험을 통해 생명이 무엇이며, 생명과 같은 삶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삶은 기억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츠이치는 눈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눈에 축적된 기억을 동화와 닮은 신비로운 현실 속 이야기로 풀어낸다. 처음엔 꽤나 여러가지 것들에 면역되어 있다고 자부했던 나는 이상하게도 이번 책에서는 잔인하다 못해 끔찍하고 징그러운 묘사에 마음 한켠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잔인한 미스터리 소설로 보기엔, 읽는 내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오츠이치 책의 최대 장점은 가독성에 있다. 잘 읽히고 재미있다. 손에서 책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가볍지는 않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잔혹한 상황에서도 그 말도 안 되는 순수함이 기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래서 내가 오츠이치 책을 그만 읽을 수가 없나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9 2011.05.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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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성숙한 공포의 세계 <암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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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사실 처음부터 '아이를 위한 이야기' 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등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후에 각색되어진 것이고 원작은 사실 대부분 아이들이 읽기에는 잔인한 이야기들이었다고. 나도 오래전 조금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모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정말 잔인하거나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많았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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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가 사실 처음부터 '아이를 위한 이야기' 는 아니었다고 들었다. 우리가 알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등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후에 각색되어진 것이고 원작은 사실 대부분 아이들이 읽기에는 잔인한 이야기들이었다고. 나도 오래전 조금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모두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정말 잔인하거나 비윤리적인 이야기가 많았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이 딱히 동화스럽거나 아이들이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 아닌데도 떡 하니 책의 제목을 '동화' 라고 지었다. 그것도 그냥 동화가 아닌 '암흑동화'.
 
단편공포소설 모음집인 <ZOO> 를 읽고 그 특이한 작가의 정신세계에 빠지게 되어 작가 이름만 보고 선택한 책인데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말에 끌리기도 했는데, 역시나 그 분량만큼 하고픈 말도 맘껏 담은 것 같고, 단편보다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표현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다. 다소 어긋난 시간순과 다중인물의 시점이 번갈아 진행되는 복잡한 구성과 원체 특이한 느낌을 담은 표현력이라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읽기는 했으나 이해하기 힘든 정도는 아니며, 오히려 몰입되어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 책 제목을 보니 얼마전 '아역배우' 라는 이름과 이미지 때문에 아역배우에서 진정한 '배우' 로 거듭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뉴스기사를 읽은 생각이났다. 배우면 다 같은 배우지, 나이가 많은 배우들은 '성인배우' 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아역배우' 라는 작은 틀에 매여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도 '동화' 라는 작은 틀을 만들어 두고 책 선택의 폭을 조금 줄이게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글쎄, 이 책의 저자 오츠이치가 이렇게 말하는것 같다.
어때? 이 책도 아이들이 읽는 동화에 넣어둘꺼야? 하고...
 
비디오 속 그녀는 아우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굴은 나와 같지만 그곳에 비치고 있는 것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나는 암흑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 p.73
 
하지만 대부분의 꿈은 눈을 뜸과 동시에 내용을 잊어버렸다. 기억이 되살아나면 마찬가지로 지금의 자신도 잊어 가는 건가. 지금 이렇게 고뇌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는 의식도 흐려져 가는 건가. - p.280
 
나는 설령 기억이 돌아와도 절대 지금의 자신을 잊고 싶지 않다. 사소한 일로 상처 입고 불안해했던 것을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싶다. - p.283
 
이 책 속에는 기억, 꿈, 눈, 암흑 이런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인간의 말을 하는 까마귀와 장님소녀와의 우정, 우산끝에 찔려 한쪽 눈을 잃고 기억까지 잃어버린 소녀, 그리고 눈을 이식받게 되면서 보이게 되는 어떤 소년의 추억 등
읽으면서 역시나 특이한 작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처음부분을 읽을때부터 도대체 극장가에서 살았다고 영화를 보며 까마귀가 인간의 말을 독학한다는 생각을 몇 몇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복잡해져가는 이야기의 구조.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나오고 저마다의 기억을 이야기 한다.
 
나도 전에 내 기억에 대해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나 자신의 어떤 감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죽는다면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걸까 하는... 그때는 나 자신이 죽었으니 깜깜한 암흑천지고 생각이란 것 자체가 없겠지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듯 또 누군가도 계속 '나 자신' 이 주체가 되어 생각을 할텐데 그 때의 '나' 는 누구인지. 내가 죽어도 세상은 계속 존재할텐데 그 이후, '나' 라고 생각하는 그 누군가는 나의 환생일까? 사실 이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는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의 연장선이고 '나' 를 생각하는 다른 '나' 가 '나' 일리는 없는건 당연하겠지만, '나' 라는 생각의 주체로 계속 세상을 보고 있다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나' 가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 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가?...; 설명을 제대로 한건지 모르겠다.
 
이 책속에서도 '나미' 라는 소녀는 계속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기억을 잃고, 눈을 이식받고, 그 눈의 원래 주인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 나는 과연 누구인지. 기억을 잃기 전 '나미' 는 타인처럼 느껴지지만, 결코 전의 '나미' 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지금의 새로운 '나미' 도 잊고 싶지 않아하는 이 소녀가 왠지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 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조금 다르게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인간은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지만 타인이 나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한, 나는 그 속에서 계속 함께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하게 확신시켜 준다. 책 속 주인공인 '나미' 는 기억을 잃고 불안해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불안불안한 자신의 모습도 인정하게 된다. 그건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잃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온 왼쪽 눈은 꿈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평소에는 평범한 눈처럼 기능하지만, 거기에 열쇠가 끼워지면 꿈이 흘러나온다. 그 열쇠가 바로 그네이고 레일인 것이다. - p.59
 
방문자. 그 말이 가슴속 깊이 가라앉았다. 내가 스스로를 어딘가에서 무슨 착오로 이 세상에 오고 만 여행자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틀림없이 '나미' 지만 '나미' 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어디서 온 걸까. 다시 말해 가끔씩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우연의 작용으로 이 세계에 도착해 이 가에데초라는 곳에 있다. 나는 방문자. - p.162
 
범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싶었다. 범인 빼앗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 p.168
 
과거는 흘러간다. 죽어 사라진다. 마을에서 길이나 선로가 사라져 가듯, 인간도 없어진다. 그리고 그때까지와는 조금 다른 세상이 되어 간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지금은 없는 사람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 p.253
 
스미다가 이야기해 준 것같이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기라는 것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저 여름 햇살을 받으며 흐르는 시간을 느낀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 p.272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세상은 암흑천지고 우리는 잠깐 살다가는 방문자일뿐이지만, 그래도 그 삶 하나하나는 저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고...
<끔찍한 공포의 세계를 특이하고 아름답고 몽환적인 표현으로 보여주는 작가 오츠이치에게 더 깊이 빠진 시간이었다.
 
j*******b 2008.07.1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암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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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 묵은지 책 읽기가 취미가 되고 있는 상황. 의외로 잼나다.  오래전 사놨던 책들을 이제서야 숨쉬기 운동 시키는 기분이. 그동안은 늘 사재끼기만 해서 이녀석들이 숨도 못쉬고 박스떼기에 파 묻혀 지냈건만... 간만에 숙제책들 걷어내고 내 책들 숨쉬기 운동 시키니 오히려 묵은지 책들이 새롭기도 하고 거기서 또 괜찮은 내용을 만나면 오~하고 감탄하게 되는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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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 묵은지 책 읽기가 취미가 되고 있는 상황.

의외로 잼나다.  오래전 사놨던 책들을 이제서야 숨쉬기 운동 시키는 기분이.

그동안은 늘 사재끼기만 해서 이녀석들이 숨도 못쉬고 박스떼기에 파 묻혀 지냈건만... 간만에 숙제책들 걷어내고 내 책들 숨쉬기 운동 시키니 오히려 묵은지 책들이 새롭기도 하고 거기서 또 괜찮은 내용을 만나면 오~하고 감탄하게 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니까 이 책은 심지어 내가 결혼하기 전에 사서쟁인 책이구만...ㅋㅋㅋㅋㅋ

그때 읽고 지금 읽었다면 혹 다른 맛을 느꼈을지도 모르는데..  한번 읽기도 버거운 책들 재독하기는 과연 쉬울까나.

그나저나 오츠이치.. 이 책을 굳이 뭐 두번 읽을 필요까진 없을 거 같긴 하지만서도, 초반에 제법 사재낀 듯 하다.

당최 어느작가가 좀 유명하다 싶으면 읽어보지도 않고 사서쟁인다.  우짤꼬.  물론 그러다보니 절판된 책들도 내 책장에 한가득 있다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도 있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세설이 길었구만....

 

암튼 초반 이 책의 분위기는 너무 싫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추리 이런 책 중에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들을 싫어하는 데 이 책이 딱 그런 기분.

마치 뭔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같은 그..뭐랄까... 아..글로 설명이 좀 안되는데....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데 이 책이 좀 초중반까지 그런 분위기를 이어간다.

심지어 잔인하기도 한데..... 이넘의 잔인성이 왜 또 치유와 연결이 되는건가?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를 찾는 이런 어이없는 거 무엇?

뭐니뭐니해도 까마귀가 눈알을 뽑으러 다니는 동화도 끔찍해서 으윽~ 상상하며 으슬거렸는데 그 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난무해서 역시나 일본소설 다운 느낌이 들었달까나.  일본소설 특유의 잔인성 뭐 그런거.

전체적으로 이 책 읽으면서 느낀건.. 이 이야기 OCN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는데?

장르드라마 스토리로 딱 어울리는 느낌.

눈알이 빠지는 이야기도 그렇치만 이식받은 눈알에서 이식한 사람이 본 영상을 본다니..

참신하다 참신해.  분위기는 좀 그랬지만..

심지어 주인공의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이 자신이 아닌 상황도 참 특이하다 특이해.

스토리가 엄청 재밌다. 

 

 

초반의 음울한 분위기가 지나면 진도가 팍팍 빠진다.  물론 스릴러 느낌답게 반전 뒷통수 한방도 팡~터져주시고...

늘 스릴러 공식 반전을 난 왜 이번책에선 깜빡했을까나.

그만큼 이야기의 마지막이 재미난 탓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좀 아쉬운 건... 너무 어린 주인공이 사건 해결에 다가간다는 거.

막 겁도 없어.  그러니 호기심도 팡팡 이겠지만...

암튼 오츠이치.. 재밌긴 함.

i****7 2021.07.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