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갑내기 여선생님 두 분과 함께 ‘고전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같은 과 동기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고 친구가 흔쾌히 승낙하길래 용기를 얻어 옆에 앉은 짝지 선생님도 끌어들였다. 3명이서 일단 출발하기로 했지만 모두 사회과라 책 선택의 고민은 적었다. 고전 중에서도 문학보단 인문 사회과학 쪽으로 합의가 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0월의 책읽기 선정도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안광복 선생님이 추천하셨던 인문학 추천 도서 100권을 리스트 삼아 선택한 도서였다. 사회를 가르친다는 교사가 정치철학과 관련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만회하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당시(15~16C) 유럽은 종교에 대한 불신과 교황과 황제의 대립 등으로 종교의 권위가 많이 실추된 상황이었기에 군주에게 많은 권한과 힘을 실어주는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군주론』을 읽으며 계속 드는 생각은 ‘왜 이리 익숙하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와 비교한다면 입헌군주제가 아닌 전제군주제는 오늘날 이념과 맞지도 않을뿐더러 거부감이 들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군주론』에서 익숙함이 계속 느껴졌으니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 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이유를 내 나름대로 해석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미 우리 정치권에서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군주의 처세술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즉, 『군주론』에서 주장하는 바가 과거에도 그랬고 현실에서도 그랬고 정치권력의 공간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윤리와 도덕적인 부분에 접목하여 판단한다면 『군주론』의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불편하다. 인민을 은혜도 모르고 위선적이며 사리사욕에 앞서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데 절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군주가 인민의 눈치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의적인 인민들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71p)이다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래서 근대 사회계약사상으로 가는 길목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나보다.
★오타의심★ 144p 두 번째 줄 '고래' -> '고대'
![]() |
|
1.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 혹은 군주제 일반적인 국어사전을 보면 군주(君主)에 대해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을 때도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君主)를 그런 관점에서 보기가 쉽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군주제 국가와는 달리) 1인 통치자에 의한 지배체제를 의미한다.1)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제 국가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이며 어떻게 생성되는가? 군주제 국가는 크게 통치자가 오랫동안 같은 가문으로부터 내려오는 세습군주국과 전적으로 새롭게 탄생한 신생군주국으로 구분된다. 세습군주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군주제와 비슷하기에 따로 논의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개념인 신생군주국을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우선 국가의 형성이 자신의 무력과 역량에 의한 것인가 여부에 따라 다르고, 또 그 과정이 사악한 방법이나 용납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혹은 인민(populo) 또는 귀족(grandi)의 호의에 의해 군주가 옹립된 형태 – 2. 종교 혹은 도덕으로부터 정치의 분리 그는 동시대인이었던 사보나롤라 신부의 집권과 몰락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사적(私的) 윤리 –‘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공적(公的) 윤리 –‘를 구분함으로써 고상하며 현란한 수사(修辭)로 결코 존재하거나 목격되지 않을 이상적인 국가와 정치에 대해 논하는 대신 현실 속에 생동하는 정치를 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의 주장은 왜곡되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치 스페인 언론이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도한 대가로 1918년~1919년에 유행했던 독감의 명칭이 ‘스페인 독감’2)이라고 불리었던 것처럼. 3. 마키아벨리가 원했던 군주의 요건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가신(군주의 선임에 의해 국정을 보좌하는 자)의 도움이나 제후(오랫동안 세습되어온 귀족, 이하 ‘귀족’이라고 한다.)의 협조에 의존해서 국가를 운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가 본 조국 이탈리아의 현실은 신민들이 외세가 아닌 자신들을 향해 무기를 사용할 것을 두려워한 귀족들이 용병에만 의존한 결과 조국이 외세에 유린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생각했던 군주는 사보나롤라 신부처럼 말뿐인 예언자가 아닌 무기를 든 예언자가 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신부는 그에 대한 다중(多衆, moltitudine)의 믿음을 상실하자마자 그가 세운 새로운 질서와 더불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를 믿지 않았던 자들에게 믿게끔 할 뿐만 아니라 그를 믿었던 자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것입니다.3) 또한 타인의 무력과 호의(fortuna)에 의해 옹립된 군주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주는 귀족을 존중하되 인민의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하며, 나아가 인민에 의존하고 그들로 군대를 구성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무장한 예언자가 된 군주는 전통적으로 미덕이라고 여겨져 온 "모든 성품을 실제로 갖출 필요는 없지만,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4)하다. 이는 실제적으로 군주가 외양상 미덕으로 보이는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한다고 고집하다가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상황의 필요에 따라 선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오는 일을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로 독립된 조국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열망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인 26장에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이탈리아가 그토록 오랜 시일 동안 고대해온 구세주를 만나기 위해서 이 기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놓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모든 감정을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이들 이방인들의 범람으로 고난을 겪던 이탈리아의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흠모의 정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복수의 열망을 가지고, 얼마나 강건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충성심과 눈물을 가지고 구세주를 맞이하겠습니까!”5) 4.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 <한비자(韓非子)>를 보면 유명한 ‘송 양공(襄公)의 어짊[宋襄之仁]’6)이라는 얘기가 있다. 적과 싸우는 상황에서 갑자기 군자의 도리를 들이대며 조국의 신민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도덕성만 제고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것이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일까? 차라리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선하지 않는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의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의 필요에 따라서 선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7)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다수의 행복을 위해 적합한 주장이 아닐까.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득권층인 귀족들을 비판하면서 군주가 자유에 대한 인민의 사랑에 의존할 때 비로소 국가가 바로 선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마키아벨리는 중세를 지배하던 종교 이데올로기와 귀족의 무력을 극복해야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마키아벨리는 이 책을 통해 개혁자들에게 종교나 도덕의 영역에 속하는 사적(私的) 윤리의 속박에서 벗어나 가치를 분배하는 공적(公的) 정치윤리의 독자성을 추구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개혁을 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조국 이탈리아의 자주독립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外 옮김, <군주론>, (까치, 2008), p. 13 2) 미국 시카고 부근에서 발생하여 최대 1억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독감. 현재 신종 플루라고 불리는 독감과 동일한 H1N1 바이러스에 의한 것으로 콜레라나 티푸스 등으로 오진되기도 하였으며, 0.1%에 불과한 일반적인 유행성 독감의 치사율의 최대 200배에 달하는 20%의 치사율까지 추정되고 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 정도가 20세에서 40세의 건강한 어른이었다는 특이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 언론만이 이 질병에 대해 객관적으로, 또 깊이 있게 보도하였기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3) 같은 책, p. 45 4) 같은 책, p. 120 5) 같은 책, p. 173 6)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초(楚)나라와 싸울 때, 송나라 군대는 진을 갖추고 있었는데 초나라 군대는 강을 아직 건너지 못한 상태였다. 이때 재상인 목이(木夷)가 적은 많고 아군은 적으니 적이 반쯤 건넜을 때 공격하면 적이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간언했으나 송 양공(襄公)은 군자는 전력을 갖추지 못한 적을 공격한다고 하여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 진형을 다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하여 송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고 양공(襄公)은 화살을 맞아 3일 후에 죽고 말았다. 7) 같은 책, p. 106 |
|
드디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원전으로 하는 번역판을 읽을 수 있었다는데 기쁨을 감출수가 없네요. 읽기 편한 여유로운 편집과 세세하지만 적당한 주석,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관련된 서신, 중의적인 용어를 풀어 보여준 용어 해설과 작내 수없이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 대한 인명 해설, 이해를 돕는 해제와 후기까지 완벽한 군주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추입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 사실 '마키아벨리즘' 이란 단어는 요즘은 인기가 별로 없어진 것 같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냉혹한 정치 행위를 뜻했던 마키아벨리즘은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무한 경쟁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으면서 관심이 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군주론을 읽으면서 앞에서 말한 '냉혹'으로 대변되는 마키아벨리즘을 접하길 원했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정도로 차가운 사상가가 아니었습니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시대로 교체되던, 자유로운 사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시대의 피렌체의 중심에 서있던 그는, 구태의연하고 억압적인 종교의 도덕율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실용성'을 강조한 정치 사상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를 바로 잡을 사람이 나와주길 절절히 갈망하는 모습이 행간에 깊게 배여있어, 그런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떠올리니 읽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찡했고, 그의 뜨거웠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대인과 마키아벨리의 사상... 현대의 회사에서는 직원들에 대한 복지가 강조되고 있고 사내 구성원간의 '경쟁'이라는 측면이 표면적으로나마 약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내 정치를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마 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지적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복잡한 세상을 하는 현대인이 리더가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태도와 거의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랫 사람의 지지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윗 사람과 손을 잡는 것이라던가, 여러 수단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관리하고 이득을 위해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수 없이 행해야 하는 차악(次惡)으로서, 피할수가 없습니다. 지난 수년간의 짧은 사회경험만으로도 마키아벨리의 생각보다 더 심한 권모술수를 경험했으니, 마음 약한 사람들에겐 사회가 너무 어렵습니다. 최근에 다시 본 드라마 '하얀 거탑'의 주인공인 장준혁이란 인물로부터 마키아벨리적인 인간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공을 향해 전전긍긍하는 현대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대표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본문이 길지 않고 문맥이 읽기 편하게 잘 번역되어 있어 가볍게 한 번 쯤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이 절대 가볍지 않긴 하지만 말입니다... |
|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해보자는 친구의 제안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고전이라 하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고 특히 군주론이라니......
그런데 의외로 쉽게 읽혀졌는데 이는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 군주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설문'이니기 때문인 듯 하다. 굉장히 간단 명료하게 어떠한 주장을 내걸어 놓고 그에 관한 역사적인 비유나 예시를 들어서 차근차근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준다. 정말 고개가 끄덕끄덕 되도록~
가장 신기했던 것은 마키아벨리의 탁월한 인간심리에 대한 이해였다. 군주가 어떤 행동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서 그것을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지, 귀족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관해 조목조목 가능한 현상에 대해 예시를 들면서 설명을 한다.
약 600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현실세계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다니 역시 고전이 이래서 고전이라고 하나보다.
리더라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그룹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하므로 타 그룹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100% 착해서도, 관용만 베풀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느꼈다, 비지니스를 하거나 정치적인 리더들이 너무 타락하는 모습도 당연히 안되는 것이지만 이들에게 성직자 수준의 청렴결백을 요구한다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찌만 현재 내 상황에 가장 많은 인사이트를 준 부분은 평민으로만 살아온 사람이 군주가 되었을 때 통치하는 법을 몰라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부분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잘 적응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이었다.
콘래드힐튼이 호텔 벨보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스스로를 단순한 벨보이가 아니라 나중에 호텔을 경영할 사람이지만 현재 벨보이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언제나 리더가 될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있어야 결국 그 자리에 올랐을 때 잘 해낼 수 있을테고, 사회의 흐름에 늘 관심을 가지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변화에 대해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
고전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긴다. 누군가는 문학, 철학, 사학 전공자가 많아서 실업률이 높다는 말을 했지만, 역사도, 철학도 없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싶은 것인가. |
|
원래도 유명한 학자 마키아벨리가 한국에서 유명해진 건 아마 대중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이후가 아니었을까 하는 기억이 난다.
물론 정치학도들에게 필독서였던 덕분에 일찌 감치 몇번은 독파했지만 말이다.
어떤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공자랑 비슷하다. 늘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말단의 작은 관리였던 거 빼고는 제대로 현실에서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공자와 전혀 다르다. 덕에 의한 통치, 백성의 교화를 말하는 공자와 달리 마키아벨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정치를 바라본다.
아무리 군주론의 일부에서, 또는 마키아벨리 개인의 편지에서 뽑아와서는 군주론에서의 차가운 현실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마키아벨리 자신의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의 개인적인 인성에서는 역시 도덕과 덕성을 중요시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들다.
지극히 차가운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았으며 그 자신이 평생을 권력의 핵심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다만 우리는 그의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현실 인식에서 인간 세상의 어떤 부분들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어줍지 않은 성선설적인 믿음으로 세상에 대한 근거도 없는 낙관론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으리라.
그런 점에서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야 말로 정치학도 필독서인 동시에 삶을 좀더 명징하게 보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그 하나 하나의 명구들을 보고있으며 정치가 벌어지는 인간의 사회라는 것에 대한 핵심적인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다양한 서구 정치 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여러 '이해' 시리즈를 쓴 강정인 교수의 아마 감수와 김경희 교수의 번역으로 충분히 깔끔했다.
적어도 5번은 이 책을 읽은 옛날의 정치학도로서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도움이 될 책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
|
마키아벨리에 관한 내용은 인사관리 시간에 리더십 이론을 배우며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 때 배웠던 마키아벨리적 리더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리더십으로 소개되어 있어 과연 이 리더십이 적절한 가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 읽고 난 지금 내가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에 생각이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탈리아의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헌정사에서 화려한 보물이나 재산 대신 자신이 연구하고 깨달은 최고의 지식을 선물하겠다고 쓴 그의 글에서 나타나 있듯이 군주론 전반에 걸친 내용은 마키아벨리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이와같은 글을 썼는지 여실히 나타내어준다. 정성스레 글을 적는 마키아벨리의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될 정도로 군주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속에 나타난 정성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총 26장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군주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방편이 나와있다. 군대를 다루는 법, 민심을 얻는 법, 국가를 다스리는 법 모두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꼭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아니더라도 작은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덕목이 우리에게 편한 내용만은 아니다. 그는 철저히 이탈리아의 번영을 위해 다른 국가를 이용하는 것을 서슴치 않으며, 적절한 공포의 조장 역시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사실이 불편할 지언정 틀린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불편한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복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한 후에 그가 저지를 필요가 있는 모든 가해행위에 관해서 결정해야 하며, 모든 가해행위를 일거에 저질러서 매일 되풀이할 필요가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합니다." -p.66
"가해행위는 모두 일거에 저질러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일으킵니다.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 p.66
가해행위에 대해 논하는 마키아벨리는 냉정하지만 효율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민중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아니라 효율적인 통치를 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지만 전쟁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때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조언은 적절한 상황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전쟁 상황에서는 따뜻한 인정보다 냉정한 칼이 더 힘을 얻는 법이니까.
"자신의 나라에서 사려 깊은 사람들을 선임하여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그것도 군주가 요구할 때만 허용해야지 아무 때나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에 관해서 묻고, 주의 깊에 그들의 견해에 귀를 기울이고, 그 뒤에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나아가서 군주는 그의 조언자들의 말이 솔직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들의 말이 잘 받아들여진다고 믿게끔 처신해야 합니다." - p.156
이 부분은 꼭 왕이 아니라도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의 단점을 지적하는 자가 필요한 법이지만 그런 자가 많아지면 조직은 와해되기 쉽고 통합되지 않는다. 조직에 신선한 충격을 제공하되 조직의 통합을 깨지 않을 만큼의 조언과 간언은 어디까지인지를 구별하기가 참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지 말하고 있다. 물론 그가 수학공식처럼 어느정도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고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의 대안정도는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불편하다. 철저하게 군주와 국가의 안위를 위해 쓰여진 글이고 그 밑에 있는 민중은 그저 다스려야 할 도구로써 묘사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 글을 배척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손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 그의 글은 불편할지언정 틀리지는 않았으며 많은 깨달음을 준다. 어차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착하고 선하고 평화롭게만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냉정함에서 지혜를 얻는다면 적어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
대한민국에서 애낳고 전업주부로 사는 여자가 군주론을 읽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냥 한 번 흥미로 훑어나보자.
책을 읽고 독서모임에서 토론을 하기 전까지는 저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토론을 하다가 깨달았다.
이 책은 모두가 읽어야해!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 인간이란, 사회란, 정치란 것은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세계, 이상적인 그 무언가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군주는 철저하게 비열해야하지만 겉으로는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투표를 할 때 후보들의 재산과 세금과 체납과 병역과 전과와 기타 등등을 살펴보며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인한테 표를 주려고 하지만(일부는 출신 지역과 정당을 보기도 하지만...)
그들이 정말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를 펼친다면 가장 분노할 것도 바로 우리다.
간디의 비폭력저항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만약 북한이 핵쏜다~ 전쟁 일으킨다~ 할 때
도덕적으로 너무나 깨끗한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쏘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위해 비폭력저항을~ 이런 소리 한다면
국민들은 저 무능한 대통령! 이라고 할 껄?
결국 국민들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정치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짓을 저질러서라도 나의 이익과 안전을 보장하는 군주를 원한다.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것일뿐... 나는 어떤 명분에 의한 전쟁이더라도 전쟁은 다 반대한다.)
하지만 군주론에서 말하듯이 아무리 비열해도
겉으로는 정말 깨끗하고 고결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저 사람은 완전 나한테 이득이 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대신
'저 사람은 착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고 어쩌고'하지 않겠나.
이 책을 읽으면 정치는 정이네, 사람의 도네, 인간성이네 어쩌네 하는 걸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유럽은 우리나라처럼 정통성으로 국민들 다스리던 곳이 아니다.
철저하게 권력으로 다스리던 곳이기에 이런 책이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초점을 맞춰본다면, 우리나라는 권력보다는 정통성이었다.
역사를 통틀어서 왕보다 더 높은 권력을 휘둘렀던 신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왕보다 더 높은 권력을 가진 신하였을 뿐, 왕은 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알에서 나왔네, 하늘에서 내려줬네, 태몽이 어쨌네, 몇살 때 부터 뭐를 읽었네 하면서
왕의 씨, 왕가가 신하와 백성들을 다스리는 것은 선택되어진 일이라는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권력을 가졌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도 정통성이 없는 왕들은 권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더 이상 정통성으로 국민을 다스리는 시대는 지났다.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전 대통령의 딸이라서 당연히 대통령이 되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퍼스트 레이디 역활을 수행했고, 아버지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니까~ 라고 말했지...
(이거나 저거나 둘 다 개소리이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제 안다. 과거 이 책은 정말 군주들만이 읽는 비법서였을지 몰라도
(실제로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득권한테 핍박받던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애 낳고 전업주부로 사는 나도 쉽게 이 책을 손에 넣었다.
기득권들이 어떤 방법들로 우리를 현혹하려고 해도 이 책을 읽은 나는
열에 다섯번 정도는 저것은 바로 꼼수다!하고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소득에 상관없이 한 사람당 한 표의 투표권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서 군주의 권력은 재분배 된다.
군주의 권력은 결국 백성들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권력의 핵심인 우리들은 더욱 더 공부를 해서 올바른 권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다들 이 책을 읽으시고 투표하세요.
정치가 아무리 더럽고 신물나게 지겹더라도
우리가 가진 공평한 권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나의 이익이기 때문에!
행사하지 않는 권력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기득권들의 이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
|
내가 대학 교양과목으로 신청한 과목 중 ' 고전명작읽기(정치학)' 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강의에서 군주론을 읽는 수업이었는데, 시험이 책의 내용을 기억해서 찾아서 적는 것이기 때문에 ' 괜히 신청했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군주론을 억지로라도 계속 읽게 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옛날 고전명작 ' 군주론 ' , ' 플라톤 ' 같은 것을 잘 읽지 않는다. 책 내용이 따분하게 보일 뿐만 아니라, 제목부터 이미 거부감이 들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하지만, 강의시간 과제나 시험 등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해서 읽게 되니 역시 책은 무엇이든지 제목으로, 겉으로 판단하기전에 내용을 어느정도 읽고 판단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강의를 할 때마다 교수님이 한 가지 말씀해 주신 것이 있다. "너희가 이런 수업이 아니면, 언제 이런 책을 한번 읽어보겠노?" 솔직히 그 말이 딱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 전쟁의 기술'을 읽으면서 '언젠가 군주론도 한번 읽어야지'하고 생각만 했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 , 이 수업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이 책을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쓰는 글을 보고 누군가 군주론을 펼쳐준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멋진 행운이겠는가 ^^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치나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정말 필수라는 것이다. 군주론을 처음 딱 펼치면 어렵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어떤 책이든 한번에 다 이해할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처음 내용이 어렵더라도 계속해서 읽어가라. 이해가 안되면 다시 그 부분을 읽어라. 그렇다면 책을 , 마키아밸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너무 어려워서 다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 만화 군주론 '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기서 , 마지막으로 꼭 읽어보길 바라는 장의 일부분을 남긴다. 제 25장 운명은 인간사에 얼마나 많은 힘을 행사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운명에 대처해야 하는가 운명은 가변적인데 인간은 유연성을 결여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인간의 처신방법이 운명과 조화를 이루면 성공해서 행복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해서 불행하게 된다고 결론짓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중한 것보다는 과감한 것이 더 좋다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운명은 여성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성을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보다는 과단상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운명은 여성이므로 그녀는 항상 청년들에게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청년들은 덜 신중하고, 보다 공격적이며, 그녀를 더욱 대담하게 다루고 제어하기 때문입니다. |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가장 강렬한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이익에 눈이 어둡다.’ 이것은 여러 나라를 다니며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마키아벨리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말인데 군주론을 읽고 있으면 실제로 인간이란 이렇게 영악한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마키아벨리의 이런 결론이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우선 군주와 신민의 역학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군주는 인민을 억압하고 그들의 피를 빨아먹는 강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군주는 신민들의 지지를 잃으면 그의 모든 생명을 잃는 것이지만 신민들은 군주가 바뀌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 또한 군주는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잃을까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반면 신민은 잃을 것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다. 신민의 사랑을 갈구하고 애태우는 쪽은 항상 군주이고 시크한 쪽은 신민이다. 신민이 갑이다. 이것은 마치 군대 갔다가 복학한 선배가 파릇파릇하고 예쁜 새내기 후배와 초조해하면서 사귀는 것과 같다. 처음부터 힘의 균형이 평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배 주변에는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는 늑대들이 서성였고 선배는 이 모든 악당을 다 경계해야 했다. 이 상황에 남자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후배에게 밥도 사주고 영화도 보여주면서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예쁜 후배는 가면 갈수록 선배에게 잘해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어차피 자신이 잘해주나 못해주나 선배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배의 호의에 너무 익숙해져 종종 그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착각하기도 하였다. 이런 모습을 안타깝게 본 남자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직접 해준다.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그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군주론 中). 가끔씩 나쁜 남자가 될 필요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밀당’의 방법을 전수해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해주었다. 남자는 친구의 말에 정말 그게 사실일까? 반신반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여자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여친의 핸드폰에서 다른 남자의 문자를 우연히 발견한다. 남자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이 스치면서 ‘앞으로 내게 연락하지 말라’고 낯선 그에게 재빨리 답장을 하고 그녀가 오기 전에 모든 기록을 그녀의 핸드폰에서 지웠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남자는 페어플레이를 하기엔 자신이 너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그 이후에도 찌질한 반칙을 몇 번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그렇게 그 둘은 알콩달콩 잘 사귀다가 대학을 같이 졸업하게 되었다. 후배는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이 있어서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였다. 반면 남자는 당시 불경기라 취업이 잘 안 돼 1년 넘게 백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후배는 삼성에 다니는 어떤 남자의 끊임없는 유혹에 결국 넘어가 그에게 마음을 줘 버렸다. 그 삼성맨은 그녀에게 명품백도 사주고 suv차량으로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결국엔 멋진 프러포즈까지 해 버렸다. 그 추레한 선배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분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여친은 진짜 본성적으로 못됐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녀에게 맨날 밥 사주고, 리포트도 대신 써 주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먼 길을 돌아 집에까지 항상 안전하게 바래다주었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지? 대학교 때는 나를 평생 사랑하겠다더니.. 결혼까지 생각한다더니.. 진짜 그 아이는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데다 이익에 눈이 어두운 애다.” 이 러브스토리가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내용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연 이 여자후배가 본성적으로 나쁘냐 ’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남자는 친구들을 찾아가 너무 화가 나서 이성을 잃고 여자친구의 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은 원래 그 여자가 못됐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쉽게 정의 내려 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알고 봤더니 부모님에겐 효심 가득한 딸이었고 동생들에겐 좋은 언니, 누나였고, 친구들에겐 의리의 여신이었다.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교수님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그 선배와도 사귀는 동안에는 성의를 다했었고 헤어질 때도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녀는 앞으로 더 좋은 딸, 언니, 누나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삼성맨을 선택했다는 것을 선배에게 순순히 실토했다. 그녀는 의리의 여신이지만 결혼까지 의리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매우 단순하고 목전의 필요에 따라서 움직인다 (군주론 中).고 했는데 사실 나도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단순하고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과연 ‘악하다’ 라고 까지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수세기 동안 반복된 인간 본성에 대한 <군주론>의 핵심적인 질문인 것이다. |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인용한 걸 얼마나 듣고 보고 살았을까? 요즈음 인문학 열풍의 중심인 [논어] 만큼이지 않을까?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 대한 역사적인 시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일반화되고 도식적인 문장으로만 복사되어, 실제 마이아벨리가 의도한 내용에서 벗어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군주론]은 이상적인 군주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방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역사에서 군주가 처하는 상황은 어떤 것이 있었고, 어떻게 현실을 대면해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즉, 역사 속의 군주에 대한 평가인데, 독특한 시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키아벨리 당대의 이상적인 군주에 대한 갈망이다.
이탈리아를 이끄는 군주를 애타게 찾고 있는데, 16 세기 경에 이미 이탈리아라는 민족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것도 신선하다. 저자의 의도 자체가 군주에게 채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좀 귀엽기도 하다.
역자의 자부심 만큼 매끄러운 번역이라, 책을 들면 손을 뗼 수가 없다. 재미있다.
고전은, 이렇게 싱싱하고 좀은 까칠한 야채처럼 차려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