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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가운데에 논길같이 난 가르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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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하면 서화담이고, 서화담 하면 황진이라고 할 정도로 둘 사이는 떼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의 절경을 한데 묶어 송도삼절이라 하였지 않는가. 하지만 황진이에 대해서 우리는 전하 절색에다 기예에 두루 능한 중종 때의 개성 명기(名妓)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황진이를 에워싼 인물로 야사(野史)에 전하는 것만, 철학자 서경덕(徐敬德), 재상 송순(宋純), 황진이와 동거했다는 종실(宗室) 이언방(李彦邦), 재상 소세양(蘇世讓)등이 있고, 망신한 이로 지족선사( 知足禪師)가 있고, 진이의 사적을 기록한 이로서도 허균(許筠)과 이덕형(李德炯), 유몽인(柳夢寅)등이 있다.
이렇게만 알려진 황진이가 오늘날 다시 태어났다. 소설가 김탁환은 『나, 황진이』를 통해 황진이를 부활시켰다. 물론, 야사와 그녀가 남긴 시조를 통한 고증을 하여 쓰여진 작품이지만,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역사 소설이라기 보다 평전에 가까운 역사서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저자의 노력이 깊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이 소설이 페미니즘과 미시사를 이야기하는 작은 재료가 되었으면" 이라고 자신의 바람을 토로하고 있다.
이야기는 서화담이 죽은 후 홀로 있게 된 황진이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 황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황진이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고백서와 같다. 맹인이 된 외할머니, 역시 맹인이 된 기녀였던 어머니 진현금, 그 천형같은 삶 속에서 황진이가 태어난다. 황진이가 태어나던 날 황룡이 하늘을 올라가고 설창의(신선이 입는 눈처럼 흰 옷)를 입은 것처럼 하얀 까마귀 떼가 우물에 빠졌으며 선죽교의 봉황꼬리가 밤새 어를 치듯 울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그녀의 고백은 소설의 사실성을 더해 주기 위한 작가의 노력처럼 보인다. 그만큼 이 소설은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들이 보인다. 이 책의 끝 부분에 실려 있는 황진이와 관련된 기록들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또 하나 이 책의 또 다른 맛 하나는 글 속에 숨어 있는 질박한 토박이 우리말과 황진이와 관련된 시조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사종과 만남을 일컬어 비익조(눈과 날개가 하나씩만 있어 두 마리가 힘을 합쳐야 날 수 있는 새)나 비목어의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것들 또한 감칠맛이다. 어찌 보면 소설의 한 장르를 연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지는 참으로 훌륭한 소설이라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스승께서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빙빙 돌면서 어깨춤을 추고 계셨어요. 한 마리 백학이었답니다. 한 달 내내 궁리한 온천의 이치를 깨달으신 겁니다. 온천이 생기는 이치를 음양으로 설명하신 것도 놀라웠지만 잉걸불(활짝 피어 이글이글 타는 불)이 타오르듯 덩실덩실 춤출 만큼 공부를 좋아하신 스승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답니다. |
| 이 책은 주석판까지 두권으로 출판되었다 들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것은 1권뿐이다. 하지만 그 1권만으로도 얼마나 독특했던지근래에 보았던 그 어떤 역사소설보다 깊이 새겨져있다. 저자의 말 대로 이 책을 이끌어가는건 몇 백년 후에 태어난 작가가 아닌 바로 황진이 자신인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황진이. 저자의 방대한 자료에 의하면,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 잘 짓는 총명한 기녀이기 이전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애처로운 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출생에 따라 미리 정해진 기녀로의 길을 걸으며 마음의 고통을 삭이기 위한 평생에 걸친 몸부림을 계속 하였다. 또한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던 만인의 연인이었다. 그녀의 한 맺힌 글귀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여인의 몸으로 전국 명소를 두루두루 여행하는 배포에 부럽기도 했으며, 천재적인 문인으로서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독특한 구성과 신비의 베일에 쌓여 있던 황진이의 진솔한 이야기.. 참 진한 감동을 남기기에 손색이 없다. 꼭 주변인들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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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던 황진이는 기생이라는 것 외에는 그 이름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걸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기생이기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삶을 소설을 읽으므로써 조금은 알게 되었다. 수많은 남자들과의 만남과 그로 인한 많은 부를 얻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보다는 더 큰 꿈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에 맞는 사내와 함께 정처없이 세상을 떠돌면서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풍류를 즐길 줄만 알았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시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사람들은 비난을 했지만, 그녀는 아무 남자와 만났던 것도 아니고, 돈에 눈이 멀었던 것도 아니다. 특히, 자신을 원하는 남자가 돈이 많다거나, 높은 지위의 인물이라고 해서, 또는 공부만 하는 선비라고 해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시와 음악에 재능이 있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서 자신이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당시의 성별과 신분에 따른 사회적 제약은 그녀에게는 너무 높은 벽과도 같았을 것이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병에 걸린 그녀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더욱 실감했을 것이다. 평생을 기생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자신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담담했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매우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언제든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정처없이 떠돌면서 시를 읊고,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타고, 춤을 추는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여인이었다.
현대적이고 시적인 표현과 수채화 같은 그림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생 황진이, 한 여인으로써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그녀의 일생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인상깊은구절] 또래들과 엇비슷하게 배우고 자라고 늙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길로 갔던 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남김없이 허물고 지나가겠다는 욕심이 생겼지요. 가슴에는 항상 꽃기운이 넘쳤고 불덩이가 이글거렸답니다. 한 번 타오르면 결코 꺼질 줄 모르는 열망이었지요. 자책만으로도 부족한 시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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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모 여인 보세요. 당신이 남긴 기나긴 글을 읽기 전까지 저는 단지 저 유명한 동짓날 밤 지은 시조와 함께 항간에 떠돌았던 숱한 남자들과의 소문들로만 당신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용모가 뛰어났으며 시와 서에도 능한 기녀였다는 것, 그것이 제가 아는 전부였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을 줄로 압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 글을 통해 당신의 발자취를 세세히 살펴보는 계기를 맞게 되었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에 대해서, 당신과 함께 했던 많은 학자들과 객들에 대해서 그야말로 무지몽매했던 저로서는 당신을 진정으로 알게 되는, 사뭇 산뜻하고 뜻 깊은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신을 한낱 일개 기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와 대부들조차도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그리하여 더더구나 즐기지도 못하던 시와 풍류를 그야말로 좋아하고, 이해하고,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당신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진정한 학자가 누구인지 가릴 줄 알았으며, 그 모든 것을 버리고도 노래하는 이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또한 당신은 누구도 함부로 거스르지 못하는 대학자라 할지라도 그 뜻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자신의 뜻을 과감하게 밝히는 용감함도 보였습니다. 일개 남자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기량과 뜻을 세상에 떨쳐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채워야 했던 것은 시대를 잘못 타고남에 한탄해야 할까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당신이 살던 그 시대와는 참 많이도 달라졌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법으로 아무리 불법이다 정해놓았다 해도 당신과 신분이 같았던 여성들이 겪었던 질곡 많던 삶은 지금도 참 여러 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어느 날부터 얼굴에 분을 바르지 않는 행동이 어쩌면 당신의 본디 얼굴이 아름답게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르나 그것보다는 자신에 대한, 여자로서의 자존이 점철되어 표출된 하나의 반항적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지금 이 시대의 여성들은 당신이 살던 그 시절보다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어진 권한과 자리가 높아지고 많아졌다고도 합니다. 허나 많은 여성들이 제 마음과 정신보다는 얼굴 가꾸기에 좀 더 많은 시절들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뭐가 많이 변했고, 뭐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랍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을 모두가 눈여겨보는 세상이고, 거기에 맞춰 가려는 이들이 딱해 보입니다만 따지고 들면 저 자신 또한 홍진의 분네 중 하나임이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글들을 보면서 제가 가장 깊게 느낀 바는 바로 당신이 가진 그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 놓인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한 그 자세였습니다. 어쩌면 저와 지금을 살고 있는 이들뿐 아니라 훗날의 많은 여성들이 깊이 새기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미년 6월 14일 자시에 이 글을 띄웁니다. [인상깊은구절] 돌이킬 수 없는 일들, 돌아갈 수 없는 곳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인생일까요. |
| 시대의 미인 황진이.황진이에 관한 구구한 설은 많지만 어느것 하나 신빙성을 가지기 힘들었던게 현실이었고 덕택에 우리는 황진이에 대해 알기보다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한 성찰(?)에 갖은 노력을 했다. 예쁠까? 아냐아냐, 옛날에는 두리뭉실한 여인이 미인상이라 얼굴이 둥글넙적할꺼야. 아냐. 저번에 Tv에서 황진이 가상복구를 보니까 예쁘더라. 이 시대 늑대분들 말도 많고 호기심도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황진이에 관한 책이 나오기란 힘들리라 생각했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설이고 그 설또한 양이 대단한 것은 아니라 한권의 책으로 엮자니 그 내용이 너무 빈약해 질것 같았다. 하지만 소설가 김탁환씨는 이것을 멋지게 극복했다. 이 책의 취지인 황진이에 대한 시선을 바로잡기에 대해서는 과연 이것으로 설득력이있을까는 의구심을 품게 했지만, 황진이가 마치 내 앞에서 자기가 살아온 시절에 대한 이야기, 한탄을 늘어놓는 듯한 구어의 문체에서는 마치 책 속의 대화상대로 내가 빠져드는듯 했다. 그리고 글 중간중간에 들어 있는 삽화는 그 시대 황진이를 생각나게끔 하기에 충분히 고상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아. 삽화를 그려넣으신 화가께서 나의 고향 출신이라 더 그런 맛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과연 황진이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요? (사실, 책이 평전이 아닌 소설형식에 자기 일생의 회고형식이라 어디까지 신빙성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소설의 특성상 황진이에대한 느낌은 오로지 그녀의 행동거지, 말투에서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 황진이는 시대의 구속을 싫어했다. 그녀는 여자라고 무조건 순종해야 하고 배움에대한 차별이 가해지는 사회의 구속성을 싫어했다. 그리고 한 곳에서의 구속을 떠나 유랑을 즐기곤 했다. 둘, 황진이는 거문고, 춤 등의 달인이었다. 사실 그 동안 `기생`이라고만 알았지 그녀가 무엇을 다루고 또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했었다. 황진이라 해서 시, 서, 화, 거문고, 가야금 등등 모두 다 하고 다 잘할 줄 알았다. 그래도 적어도 가야금은 도중에 그만 두더군..음..음. 셋, 황진이는 독신(?)이었다. 그랬다. 역시 시대의 기생이고 그 절개 또한 대단했기에 함부로 몸을 내맡기지도 않았고 누구의 첩으로도 들어가지 않았을 뿐더러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낭군 역시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한테 이 책을 읽고 황진이에 대해 안것이 무어냐고 나에게 자문했을때 떠오른 답이다. 사실 별로 대단하게 황진이에 대해 알았다고 할 수 없다. 구속을 싫어했다는 것이 과연 황진이였는지 작가의 상상속의 황진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고 나머지들은 황진이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디에서나 알법한 내용이다. 이런 `득`의 사소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자칭(자=우리나라사람) 시대의 미인이라고하는 황진이에 대해 제대로 된 시선을 지니자는 의도와 그 뜻을 설파하기 위해 나타낸 멋들어진 글에 있다 하겠다. |
| 우선은 표지에 나온 '호랑이보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나자신을 할퀴어보겠습니다'라는 글귀에서 압도당한 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김탁환이라는 무게있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나의 내부를 헤집어놓은 상태에서 책읽기는 시작됐다. '황진이'이라는 이름을 떠올릴때면 나역시 황진이 남자로서 '서경덕'을 떠올리는 우를 범해 왔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이제 다음은 서경덕과의 러브스토리겠구나..하는 짐작을 버리지 못했다. 서경덕과 어떻게 만났는지, 그들의 사랑이 도대체 얼만큼 대단한 것이었는지..그때까지도 나의 관심의 표적은 오직 황진이와 서경덕, 두 남녀간의 사랑 찾기에서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기 체험했듯이 나또한 책에 빠져들면서 이미 이글은 김탁환이라는 21세기 작가가 아닌, 황진이라는 16세기 여인의 마음을 풀어낸 글이라는 착각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황진이라는 여인이 황모에 불과했음을, 알았던 것은 단지 그의 이름 석자에 불과했음을, 부끄럽고 아프게 깨달았다. 역사는 쓰는 자의 몫이라는 말은 자못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극열풍으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이 역사의 진실보다는 야사와 흥미위주로 재편성되고 있는 게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다. 이 책을 덮은 지금도 황진이에 대해 이제 제대로 알았다,는 판단은 감히 하지 않는다. 다만 내용보다 풍성하게 붙어있는 주석에서 작가의 열정과 아름다운 소설쓰기의 진면모는 이제 충분히 알겠다. 고단했겠으나 결국은 풍요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준 작가를 생각하며 정성들여 내 서가 한쪽에 '나, 황진이'를 꽂았다. |
| 2003년에 책이 나왔는데 어느 사이에 절판인가? 그때는 몰랐는데 불멸의 이순신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또한 출판사인 푸른역사의 책은 신뢰할 만하다. (홍석중의 황진이나, 전경린의 황진이가 있는 것을 보니 유명한 소재인긴하다. 두분의 작품을 읽지는 않았다.) 인간탐구 - 황진이 - 그 동안의 풍문를 불식하며 깔끔한 소설이다. 황진이의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대기를 황진이가 쓰는 편지형태로 잘 엮어놓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하나 하나의 풍문들이 너무나 단편적이었고 오해있음을 알 수 있다. 황진이의 출생이 하나의 핵심 이슈임에 분명하다. 황진이가 양반집 규수로 어떠한 이유로 해서 기생이 된다. 이것이 종래의 이야기이다. 역시 드라마로서는 이 설정이 맞기는 하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김탁환이 설정한 양반이 아닌 기생의 딸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논리적이다. 또한 자료에 있어서 타당성을 부여한다.(별도의 책으로 나왔지만 읽지 않았다.) 사실 난 그동안 알고 있는 몇편의 시조와, 에피소드를이 전부였는데, 배창호의 황진이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 (마지막에 황진이가 죽나? 안죽나?도 궁금했었고.) 너무 황진이의 결말이 비극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쪽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땐 실망했었는데, 오히려 그 내용이 더 좋은 것 같다. 이 책은 논리있게 황진이의 출생과 유년시절,청년시절,장년시절등을 보여준다. 또 황진이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과 그의 스승 서화담(서경덕)과의 관계도 잘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작가의 자료 탐구와 풍성한 주석에 감사한다. |
| 황진이의 출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양반댁 규수에서부터 맹인의 딸에까지...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공을 초월하여 그녀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에 비하면 그녀가 남긴 작품은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하나하나가 천대받는 기녀로서의 삶의 애환과 질곡, 그리고 때로는 남정네를 능가하는 호방한 기세가 고스란히 담겨진 빼어난 작품들이라 하겠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소개된 그녀의 시조 몇 구를 접하면서 자연히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매료되었고, 이번에 나온 김탁환님의 이 소설집을 기대어린 눈으로 읽게 되었다. 화자를 황진이로 설정하여 시종 섬세한 여성의 어조로써 시적 운율이 은은히 느껴지는 서술을 함으로써 몰입도를 높이는데 상당한 효과를 거둔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끔씩 지나치게 추상적인 표현이 튀어나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삶을 피상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게 하는 점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내용은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이며 그와 적절히 어우러지는 배경삽화도 훌륭하고 재질도 무척 만족스러운 편인 것 같다. |
| 오랜만에 접하는 아주 뛰어난 소설이다. 이렇게 빼어난 소설을 만나면 우선 몸이 떨린다. 황진이의 삶을 황진이 자신의 고백형식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 소설은 조선 중기 여인네의 목소리를 아주 우아하게 재현해내는 그 문체실험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다. 작가 김탁한의 또다른 소설 '허균, 최후의 19일'에서도 느껴지듯이 작가는 유달리 조선중기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아직 엄혹한 주자학에 경도되기 전의 조선사회, 사상적 다양성이 넘치던 사회, 그 중에서도 화담 서경덕을 통해 그 사회의 역동성을 재현해낸다. 또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황진이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책은 대중판과 주석판 두 종류가 있다. 나는 이런 사전정보를 몰랐기에 대중판을 읽었지만 주석판은 본문보다 각주가 더많아서 소설의 창작과정을 유추해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기회가되면 꼭 주석판을 읽어본 생각이다. 玄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