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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의 일기장"이란 소설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전아리"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상을 휩쓸었고 글을 써서 대학에 간 천재적인 어린 작가의 이야기. 솔직히 "직녀의 일기장"을 읽을 때는 그런 천재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 또래 문학소녀라면 어느 정도 신경써서 쓴다면 그런 류의 소설은 충분히 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직녀의 일기장"은 술술 넘어가면서 잘 읽히는 문장으로 구성된 괜찮은 책이다. 다만 그 소재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동네 도서관에서 다시 "전아리"작가의 소설들을 보았다. 그리고 감탄했다. "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그 나이에 세상 모든 일들을 겪어낸 듯한 능청럽다 못해 혹 어린 소녀의 탈을 쓰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굽이침 없이 쭉쭉 나아가는 물줄기 같은 솔직 담백한 문체. 물론 다른 천재적인 작가들도 많이 있고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린 작가들도 많이 있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감탄의 연속이었고 그 나이에 "지금까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도 못해요"라는 다소 오만해 보이는 멘트도 날릴 수 있겠다 싶었다.
즐거운 장난은 전아리 작가의 단편 소설을 엮은 책이다. "직녀의 일기장"처럼 장편이 아니고 그동안의 소설들을 죽 엮은 것이라서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솜씨와 그 소재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지식 혹은 경험 - 간접 경험이라 할 지라도 - 을 알 수 있다. "강신무"에서는 "차"를 다루는 "무당"의 자식이 나온다. "메리 크리스마스"에서는 보험을 판매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외발자전거"의 난장이 부자(父子)이야기를 어찌도 그리 잘 그려냈을까. 서커스를 다닌 것도 아닐 텐데 책속에서 읽었을까. "작고 하얀 맨발"에서는 다른 남자의 아이을 밴 미혼모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는 종교에 빠져서 자신이 어렵게 얻은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일부러 내고 병원에 입원에서 돈을 뜯어낸다. "깊고 달콤한 졸음"에서는 아픔을 간직한 어느 스님이 나온다. "박제"에서의 서술을 한번 보자.
"큰 사이즈 메스의 날을 소독약에 헹군다. 눈을 감고 누운 남자의 코 안으로 마취제를 뿌린다. 두어 번 손가락을 가늘게 떨던 남자는 이내 정신을 잃는다. 남자가 정신을 잃은 후에도 나는 마취제를 한통 더 비운다. 나는 형광등에 빛나는 메스 끝을 울대 끝에 가늠해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다. 울대 끝에 슬며시 날을 대고 손끝에 힘을 준다."126p
작가에게 "박제를 많이 해보셨나요?" 하고 묻고 싶은 생각도 든다. 즐거운 장난에 등장하는 각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마치 주인공인 "나"가 전아리 자신이라도 되는 양 그려내고 있다. 대단한 솜씨다.
한편으로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잘생긴 주인공들을 등장시켜볼껄 그랬죠"하면서 작가의 말에 적어 놓은 것처럼 꽃미남 부잣집 자식 이런 것들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 등장을 한다. "범람주의보"의 주인공은 사채업자 밑에서 일을 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이경준"은 어릴때 머리는 좋았지만 빚을 얻고 비참하게 무너지는 사람으로 나온다. 다들 어렵게 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작가는 글을 서술해 나간다.
"너의 목소리는 희다. 부드럽고 달콤한 마시멜로 같다. 네가 촉촉한 입술을 달싹여 옹알거릴 때마다 내 귓가에는 부드러운 것이 엉겨드는 듯한 가벼운 전율이 인다. 너는 손을 뻗어 종종 내 빰을 쓰다듬는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작은 손가락들은 내 빰을 거쳐 입술과 턱을 만지작 거린다.~ 네가 웃을 때면 발갛게 상기된 볼 한쪽에 작게 파인 보조개가 좋다. 네 얇은 머리카락에서는 봄 냄새가 난다" 131p
한편 위에 인용문장에서 보듯이 문장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늘씬하게 잘 빠졌다. 잔뜩 복근이 잡힌 몸매처럼 다양한 수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뱃살을 쭉 빼서 독자로 하여금 쉽게 쉽게 글을 읽어가게 하면서도 적절한 비유를 뒤섞어 소설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 "직구없는 커브의 마력"이라는 제목으로 직구 같은 정공법으로 승부한다고 소설집 뒤에 해설편에 평론가가 적어놓았는데 그 말이 제대로 들어맞는 표현들이다.
아직 작가의 글을 다 읽지는 못했다. 앞으로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또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 나올때 마다 솔직담백한 문체로 풀어놓은 작가의 소설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일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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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청소년시절부터 웬만한 상을 휩쓸었던 사람. 그리하여 온갖 사람들의 시샘을 받았던 천재 작가. 이제야 그녀의 소설을 보게 됐다. 그녀가 상을 받았던 단편들 중에서 골랐다는 이 책.
읽다보니 알겠다. 과연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글이 좋다. 날카롭기도 하면서 부드럽기도 하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어설프게 희망타령하면서 글 끝내는데 전아리의 글은 그것을 벗어나있다. 조금은 아프게, 약간은 슬프게 끝내는 법까지도 알고 있다.
순수한 마음이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욕망에 대한 갈망도 크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두루 펼쳐낼 줄 안다.
허명이 많은 경우가 있는데, 소설을 보니 전아리는 예외인 것 같다. 대단하군. 한국 문학의 기대주가 탄생했다고 말해도 될 것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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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장난> (2008, 전아리 지음, 문학동네 펴냄)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한 단편들 10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하고, 중고등학생 때 수많은 상을 받으며 전설적인 존재가 된 작가는, 이제 겨우 대학 3학년생이다. 많은 수상작들 중에서 저자가 고른 작품들을 읽어 본다.
10개의 작품은 10개의 색깔을 지녔다. 강신무의 아들로서 집을 나와 찻집을 운영하는 젊은 남자, 남편과 이혼하고 딸아이를 혼자 키우며 책 전집과 보험 판매를 하는 삶에 지친 여자, 트랜스젠더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대학생, 가족을 잃고 구도의 길에 들어선 남자, 미혼모, 서커스를 하는 난쟁이, 사채업자의 해결사, 돈 때문에 장애인의 아내로 팔려간 젊은 여자 등 그가 구사하는 삶의 세상은 천태만상이다. 사채<범람주의보>와 농촌의 매매혼<파꽃>과 성폭행<팔월>, 트랜스젠더<내 이름 말이야,>는 최근의 현실을 많이 반영한 작품들이었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약간은 보편적인 배경이다. 강신무가 내림굿을 받을 때 신이 들려 작두에 올라서는 모습은 생생했다. 보험을 판매한 여고 동창생의 남편에게서 늦은 밤 전화를 받고 부은 발을 다시 구두에 밀어넣는 모습은, 지금의 내 나이와 모습에 가장 가까워서인지 그 간난한 마음이 짐작되어서 많이 쓸쓸했다. 그리고 내 딸아이 같은 아이가 나오는 '팔월'도 마음 아프게 읽었다. 작품을 자체로 읽어야 하는데 내 위치에 가까운 이야기에 더 공감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실감 나게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짧고 접속사가 없는 문장들을 즐겨 사용하고, 1인칭 시점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주변을 묘사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간결하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작가들이 내 나이보다 어려지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젊고 성공의 결과가 뛰어난 이는 처음이다. 표지의 속날개에서 보이는 작가는 여리고 곱게 자란 아가씨의 모습이다. 그 여린 모습 안에서 풀려나온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은, 경험은 나이와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내 생각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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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생인 작가 전아리, 그녀는 '문학천재'로 불리운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도 못한다니, 참 부러운 일이 아닌가. 어두운 표지의 "시계탑"보다 "즐거운 장난"의 표지는 따뜻한 봄 풀밭을 달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나를 반겨줄줄 알았다. 그러나 책속의 음울한 이야기들을 보며 가슴 서늘한 느낌에 몇 번이나 표지를 다시 쳐다보았는지 모른다. 저자의 경험을 이 책속에 녹여내진 않았을텐데, 왜이리 내 머릿속을 자극하는 것일까.
무심하게 책장을 넘겨가던 내가 단편 "내 이름 말이야"를 읽으며 열기가 등줄기를 관통하여 목뒤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을 받는다. 트렌스젠더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는 동아리 사람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영화 <헤드윅>의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작품을 위해서 그의 삶을 취재하지만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살아가고 싶은 그의 마음은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 "내 이름은 말이야. 모영욱이 아니라 '모영은'이거든". 다큐멘터리를 본 그가 '나'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이름 하나가 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너프 필름'이란 살인이라든가 신체절단 등 각종 엽기적인 행각을 셀프카메라처럼 찍어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만들어놓은 것을 말한다. 세상에 별난 필름이 다 있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읽었는데 "도진석"이라는 이가 다큐멘터리를 찍은 그에게 소포를 하나 보낸다. 도진석, 모영은의 애인인 그가 왜?. 모영욱으로 살기를 거부한 모영은이 자신의 신체를 잘라 낸 스너프 필름을 보며 충격때문에 나 또한 몸 속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느꼈다. 왜이리 끔찍한 글을 쓴 것일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타인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괴롭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미로 읽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것일까. 처절한 그의 삶을 보라고 내 얼굴을 잡고 누군가 움직이지 못하게 해 버린 것 같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다.
이제 저자가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줘도 참아낼 수 있는 강심장이 되어 간다. 익숙해지는 것이겠지. 키가 아주 작은 아버지와 아들이 밤업소에서 묘기를 부리며 먹고 사는 "외발자전거"는 순간 다른 책 <완득이>를 떠올리게 되지만 그 어둠의 깊이는 확연히 다르다. "완득이"는 힘든 상황이지만 웃음으로 유쾌하게 버무려냈다면 여기 "외발자전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낸다. 아버지가 죽은 후 떠난 여행지에서 데려온 여자와 함께 살면서 작은 행복을 알아가던 그에게 불행한 일은 끝나지 않았고 밤무대 가수의 뒤에서 외발자전거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모욕적인 일이라며 거절하던 그 일을 하며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 것인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확연하게 다른 느낌의 "외발자전거"와 <완득이>는 세상에서 보여지는 모습뿐 아니라 다른 면의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단편 "박제"는 공포소설을 보는 듯 소름이 끼치고 "파꽃"을 보며 노름을 하는 어머니로 인해 망가지는 딸의 인생이 안타까워 가슴이 저리게 된다. "범람주의보', "팔월" 등 어느 것하나 평범한 단편들이 없다. 모두 어둡고 그늘진 이야기들 뿐이다. 왜 책 제목을 "즐거운 장난"이라고 지었을까. 표지때문에 책 내용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인생이 그저 즐거운 장난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차례 꿈을 꾸고 그냥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 하지만 그리 쉽게 살아지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전아리의 책은 솔직히 그녀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빨리 비워내고 싶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어 웃음짓고 있는 그녀에게 묻고 싶어진다. 경험하지 않은 소설속의 내용들이라면 그 어떤 것들이 이 글을 쓰게 했는지, 이런 일들을 보았냐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질문들을 보며 내 마음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은 더 끔찍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 그걸 알잖아" |
어릴 적부터 문학 천재라 불리며 문단의 관심을 받아온 전아리 작가의 첫 소설집 ‘즐거운 장난’에 3번째로 수록된 단편 ‘내 이름 말이야’. 어딘지 독특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을 보고 난 뒤 제일 처음으로 든 생각은 숨이 탁 막히는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주인공은 다큐멘터리를 찍는 아주 평범한 학부생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위는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다. 그는 교내 다큐멘터리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그의 지휘 아래 만들어지는 다큐멘터리들은 단 한 번도 대회란 대회에서 이렇다 할 실적을 낸 적이 없다.
최근 공모전에서 또다시 떨어지고 부원 모두가 예민해진 어느 날, 조금 사나운 분위기 사이 주인공은 ‘그’를 문득 떠올린다. 맞은편 빌라에 사는 그 남자. 와인색 계열의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팬티는 거의 검은색만 입는, 가슴이 풍만한, 다리의 알통을 곧추세운 채 하이힐을 신고 주인공을 스쳐 지나갔던.
과거, 직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친구 중 하나는 스너프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다_예찬에 가까웠다_갑자기 주인공의 작품을 아마추어라 칭하며 쐐기를 박았다. 특이하지 못한, 시선을 끌지 못하는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화제성에 대해 말하던 친구는 주인공에게 스너프 필름을 건네주고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현재, 주인공은 개의 사체를 찾기보다 개를 향해 트럭을 내몰기로 한다. 처음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결국 트럭의 손잡이를 손수 잡은 것과 마찬가지가 돼버린 그는 화장품 세트를 사 들고 부원들과 함께 맞은편 빌라의 남자를 찾아간다.
예상했다시피 그는 트렌스젠더였다. 에스트로젠 주사에 의지해 마냥 건전하지는 못할 업소에서 일하는 그는, 그리고 그의 집은 어딘지 어둡고, 습기 찬 느낌을 주었다. 부원들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상상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리라. 가는 몸매에 섹시한 얼굴을 가진 여자이기를 바란 걸까. 덩어리에 가까워 보이는 커다란 가슴과 화장실에 놓인 남성용 면도 도구들이 주는 이질감은 기대에 부풀어있던 그들의 눈을 냉소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주인공, 그리고 부원들의 태도가 마치 우리들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즉 하염없이 흘러가는 사회 속 우리들의 편견, 실망, 그리고 곱지 않은 눈초리가 주인공과 부원들의 행동을 통해 보이는 게 아닐까. 윗옷 사이로 흘러나온 브래지어, 화장실에 놓인 면도 도구, 치마 사이로 미끄러지는 듯 보이는 그의 시선,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찾아간 업소. 모든 것이 그 몰래 영상 속에 담겼다. 마치 그 몰래 모두가 그를 비웃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오직 그만을 제외하고 그에게 보이지 않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가령, 이 소설 속에서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라고 불리지 못했다. 인정 받지 못한 것이다. 그는 뒤늦게 자신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처참한 다큐멘터리_결국 그 다큐멘터리는 대상을 탔다_를 보게 된다. 마냥 좋은 사람들이라 믿었던, 그들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은 과연 어떨까. 단지 내가 되었을 뿐인데 이 세상, 사회에서 동떨어져, 마치 아무도 없는 바다 위 섬이 된 듯한 기분을 그는 느꼈을까.
결국 이 소설의 제목이 가진 뜻은 그가 아닌,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편견과 실망과 눈초리를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악다구니가 아니었을까.
며칠 후 주인공은 발신자가 불분명한 택배 하나를 받는다. 그 안에는 스너프 필름이 담겨 있었다. 한 사내의 성기가 잘려나가는 짤막한 스너프 필름 속, 터져 나오는 비명을 주인공은 그의 소리라 생각할까, 혹은 그녀의 소리라 생각할까.
이 세상에서 그 누가 그녀에게 피해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저승엔 염라대왕이 있다 치더라도, 염라대왕도 없는 이 세상에서, 수군거리기도 바쁜 우리 가운데 그 누가 그녀에게 피해보상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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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모든 글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특정 작가에게 미쳐있지 않는 한 그렇다. 재미난 글에 몰두하는 편이라 누군가의 글을 찍으면 한동안은 그 작가의 모든 글을 샅샅이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작가의 글이 루즈해지거나 발전이 없어 재미가 떨어지면 또 다른 작가를 찾아 나선다. 그런 독서편식을 가지고 있는 내게 작가 전아리는 관심밖에었다. 먼저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고, 친구가 좋다고 내미는 책에 별로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좋은 상을 탔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좋은 추천을 받아도 내가 관심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독서에도 이렇듯 타이밍이 중요하다 친구가 내민 [직녀의 일기장]이 좋은 글인 건 알지만 나를 혹하게 만들진 못했기에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기억속에서. 그런데 즐거운 장난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못 진지해졌다. 애벌레는 허물벗기를 여러차례한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작가 전아리는 직녀의 일기장에서 보여주던 재기발랄함이 아니라 어느 새 또 다른 허물벗기를 하고 있었다. "차의 맛은 물의 온도, 찻잎의 양, 우려내는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로 스타트를 끊어낸 [강신무]는 제목의 깊이와 첫시작의 도약이 아주 훌륭했다. 첫문장에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고 어느 작법서에서 얘기 하지 않았던가. 사실이다. 처음을 사로잡히고나면 한동안은 곁을 두지 않는다. 연애와 책읽기는 이런 점에서 다르지 않다. 깊어지고, 점점 더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가는 발전성. 이런 그녀가 무한히 부럽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자신을 깍아내면서도 그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으니. 문장문장이, 단어단어가 틈이 없다. 하나라도 없으면 안되는 제자리에 꼭 박혀 있다. 국화차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애상. 애처로움도 느끼기전에 죽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졸업식의 부끄러움과 마지막 내림굿이 오버랩되듯 기억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에서 교훈따위를 찾아내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의도나 작가의 변 따위도 찾아내고 싶지 않다. [강신무]는 그저 강신무가 쏟아내는 눈을감게 만드는 이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 전아리의 단편들로 이어진 이 책은 하나하나가 다 보석같다. 전아리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단 한권의 책이다. 이게 시작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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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관련 기사를 통해 '전아리'라는 이름을 알게되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그녀의 이름은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다. 86년 생. 내 막내동생보다도 한 살 더 어린 그녀는 이미 무슨 상을 받았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의 엄청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펴낸 책 만도 세 권이나 되었다. (장편소설 <시계탑>, <직녀의 일기장>, 소설집 <즐거운 장난>) '문학천재'라 불리우는 그녀의 글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즐거운 장난>은 작가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최근까지 쓴 작품 중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가운데 열 편을 골라 실은 소설집이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이 작품은 몇 살 때 썼을까?'라는 궁금증을 떨쳐버리지 못했는데, 책 뒤에 수록작품 수상년도가 실려 있었다. 가만 따져보니 열여섯에 쓴 작품이 두 편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놀라움이라니! 어린 나이에 그런 작품을 써냈다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전아리의 이름과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전설적'이다. 문학사상사 청소년문학상 대상, 푸른작가 청소년문학상,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 최명희청년문학상...... 중고교 재학 시절 웬만한 문학상은 죄다 휩쓸면서 문학 청소년들 사이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까지 나왔다.'라는 기사 내용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즐거운 장난'이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으로는 상큼 발랄한 글을 기대했었다. 작가의 나이를 생각해서도.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단편 열 편 모두, 내가 기대한 발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지도 못하고 맞닥뜨리게 된 '어둠' '슬픔' '폭력'... 무녀 엄마를 둔 탓에 어려서부터 마음 고생이 심했던 청년, 난쟁이 아버지를 둔 난쟁이 아들의 외발자전거 쇼, 무엇이든 박제로 만들어 주는 박제사, 트렌스젠더의 일상을 담는 대학생 다큐멘터리 제작팀, 딸과 함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보험이며 서적 외판원으로 뛰어다니는 중년 여인, 힘든 삶을 피해 불교에 몸담고자 하는 청년, 사채업자를 도와 뒷처리를 해주는 '해결사'들... 이런 소재들에 적잖이 놀랐고, 마치 삶 속의 많은 경험들을 녹여낸 듯, 아주 자연스럽고 '능청스럽게' 써내려간 그 글들을 보며 더 놀랐다. 젊은 작가(라고 하기에도 너무 젊은!)의 어디에 이런 삶의 느낌들이 숨어 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 우리 사는 세상에 관심이 많은, 호기심이 많은, 그리고 애정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고, 관심과 사랑으로 보듬어 주기에 이런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앞으로 그녀가 또 어떤 작품들을 선보이게 될지 무척 기대되며, 이제 그녀의 장편소설들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전아리도, 즐거운 장난도, 정말, 대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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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정체성은 기존 문학의 자장으로부터 자신을 '단절'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또한 한국문학의 열매임을 오래전부터 의식하고 있는 듯한 역사적 감각이다 "
-정여울 문학평론가의 해설
전아리에 대해 오랫동안 알아왔음에도, 읽고 싶었는데도 그녀의 글을 읽지 않았다. 그녀의 화려한 수상실력이 오히려 내가 그녀의 글을 읽는데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이야기를 했든, 그녀의 작품은 읽고있는 나 스스로가 좋고 싫어야 하는데 그 화려한 경력이 나로하여금 그렇게 판단하는 것을 막았다.
나는 '젊은' 작가의 책은 잘 안읽는다. 기존 문단에 오랫동안 계셔온 분들의 글을 좋아하고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으며 기뻐한다.
이유를 말해보자면, 젊은 작가들의 코드. 애쓰는 엽기성과 창의성, 시크함이 싫어서다.
전아리는 한참 그럴 나이임에도 그런 젊은 작가들과는 매우 다른 길에 서있다. 기존의 한국문학의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나는 한국문학의 어두움" 이 싫다는 젊은 작가들과는 매우 다른 길이다.
그녀의 글에서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엿보인다. 하지만 신선하고 또 놀랍다.
그 낯익은 신선함을 유지할 것인지, 아닌지는 그녀의 움직임에 달려있다.
천재 문학작가로서의 전아리가 아닌 순수한, 작가 전아리로서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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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천재, 전아리. 그녀의 첫 장편 소설 시계탑을 읽고 나서 바로 펼쳐든 책이 즐거운 장난이다. 이미 세계 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너무 많은 상을 받아서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억도 못한다고 했던 전아리가 직접 고른 10편의 수상작들.
예전에 어느 소설에선가 작가로 설정된 주인공이 자기가 썼던 글의 모든 주인공들과 한자리에서 모이게 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이책에 실린 단편의 주인공들과 다 같이 모여 앉게 된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생각해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잘생긴 주인공들을 등장시켜볼걸 그랬죠, 라는 등의 실없는 농담이나 하며 머리를 긁적이려나.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내밀어보이게 된 등장인물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 작가의 말 中-
전아리의 10편의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싶을정도.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낼수 있었을까? 글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 10편의 단편소설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그 긴 여운은 뭐랄까 달콤한 사탕을 먹고 난후에 입안에 남아있는 그 단맛의 아쉬움과도 같았다.
전아리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독특한 시선으로 써내려가는 글들을 바라보면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문장 하나 하나를 읽으면서 굉장히 평범치 않은 표현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 뒤편에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강신무, 메리크리스마, 내 이름 말이야, 외발자전거, 박제, 작고 하얀 맨발, 깊고 달콤한 졸음을, 파꽃, 범람주의보, 팔월. 이렇게 10편의 소설을 쓰면서 전아리는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을까?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공통점이 없을 것같은 작품이지만, 뭔가 연결 되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은 우리사회에서 소외되고 주류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주인공들의 시선이 나를 한 곳으로 이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당의 아들, 책과 보험 외판원, 다큐멘터리를 찍는 학부생, 난쟁이 광대, 몸을 파는 여성, 예비 승려, 박제사.. 그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생소한 직업을 갖고 있는 가 하면 너무나도 평범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그들의 환경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에 동화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강신무에서 어머니를 무당으로 두고 전통 찻집을 운영하는 정인이 심정과 아들을 생각하는 어미의 마음. 그리고 무당이라는 하나의 직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글, 전아리의 눈으로 바라본 무당이라는 직업과 모성애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던 것같다. 뿐만아니라, 팔월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역시 그 무덤덤함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성애는 똑같은 모성애를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외에도 외판원, 몸파는 여성, 다큐멘터리를 찍는 학부생 등의 이야기 역시 색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굉장히 무미건조한 문체인것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찍어 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인간 내면을 깊숙히 바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 천재론의 중심에 서있는 전아리. 그녀는 이 두권의 책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결코 평범한것같으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천재이기 때문이기 보다는 소설 속에 진실성이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주인공이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을 제대로 처리하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겨우 스물이 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연륜이 있는 소설가들과 맞먹을 정도의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도 왠지 전아리의 팬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문학 천재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연륜을 지닌 소설가들에게 느낄 수 없는 젊음과 신선함이 글 속에 묻어나온다.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고 자신의 색을 제대로 들어내고 있는 느낌이다. 10편의 이야기, 전아리만의 10가지색 문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시계탑도 정말 읽어볼 만하지만, 이 10편의 단편 소설이 진정 전아리를 나타내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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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사춘기일 무렵 한번쯤은 문학소녀를 꿈꾸었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문학적 소양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었음에도 뻑! 하면 글을 쓴답시고 설치고 다녔다. 그런 나의 글 솜씨는 문학과는 전혀 상관없이 연애편지 쓰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글 솜씨라는 것이 1%의 노력과 99%의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소설을 쓰는 데에 있어서는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어린 작가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익히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그래봤자 스무 살 갓 넘어서 뭘 대단하게 잘 썼겠어?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문체엔 그녀만의 개성과 힘이 보인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긴 이십 대의 삶에서 전혀 나올 수 없는 소재들이 툭툭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내보이는 젊은 여자들의 해피한 청춘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박완서 선생이 노련한 문체가 보이기도 하고 백가흠 작가의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들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기성작가들의 작품에서 본듯한 내용들인데 뭘!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나이에 비한다면 어느 것 하나 험을 잡아 비틀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내림굿을 받은 무녀를 어머니로 둔 아들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면서도 그녀의 문체에서 새롭게 태어났고(강신무), 서적 외판원과 보험으로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한 여자의 삶은 도대체 엄마뻘 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겪어본 듯이 능청스럽게 풀어놓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메리 크리스마스). 어디 그 뿐인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내 이름 말이야,」의 마지막 장면은 경악할 정도다. 이렇듯 10편의 이야기 모두 각각의 소리를 내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하고 말조차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이 책에 실린 모든 작품들은 전아리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매체를 통해 응모하여 수상한 단편들이다. 즉, 그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춘문예나 유수의 출판사를 통해 등단한 작가가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10편의 작품들은 그녀가 받은 기억도 할 수 없이 많은 수상작들 중에서 전아리가 좋아하는 작품들로 뽑은 것이라고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각 단편들마다 등장하는 직업이나 성별이나 연령이 제각각이며 각자의 소리를 내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글을 썼기에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더 이상 길게 말해봐야 끊임없이 칭찬만 늘어놓을 것만 같다. 그러니 이만하련다. 다만, 문학을 좋아한다면 정말!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아리를 보면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단하다. 이 말만 자꾸 되풀이 되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