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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싹달싹하지 못하는 나의 삶은 쉽게 허물어지고 권태기가 찾아왔다. 이런 나에게 그의 글은 즐겨찾기 1순위가 되었고 비상구가 되어 주었고 쉽게 털어버지리 못하는 삶에 돌파구가 되었던 것이다. 주옥같은 글을 읽으면서 함께 호흡하고 기뻐하고 눈물 흘렸던 시간들이 보석처럼 내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노동효의 글을 왜 읽는가? 왜 사랑하는가? 묻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한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걸어간 한적한 길에서 읽는 한 편의 시, 사람이 붐비지 않는 해변가에서 부르는 노래, 나무 둥치에 앉아 바람의 실루엣을 느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의 열혈 팬이 될 것이다. 책 한권을 손에 쥐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곧 샛길 증후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로드 패르몬을 맡을 수 있는 감각만 가지고 있다면 무조건 떠나라! 그의 여행기 속으로! 그리고 당신만의 샛길을 찾아 떠나라! 그를, 그의 샛길을, 당신의 샛길을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8쪽에서 11쪽에 담긴 글을 한 글자, 두 글자, 혀에 대어 본다. 빨리 먹어치우기 아까운 음식인 듯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아주 조용한 소리로 낭독해 보았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나는 지하철 환승역 같았던 샐러리맨 생활에 굿바이!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 직장으로 통하는 환승통로로 들어서지 않은 채 '여행'이란 이름의 개찰구로 빠져나왔다.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고, 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다. 나는 낡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길을 떠났다.
-작가의 프롤로그 속에서..
여행자가 걸어갔던 샛길과 길 위의 풍경을 만나며 오랫동안 동행자가 되어왔던 나는 또 많은 사람들이 그가 걸어갔고 지나갔던 길 위의 여행자가 되어 보라 감히 권하고 싶다.
이토록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본 게 얼마 만일까? L형도 나도 말을 잊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별똥별 하나가 지나갔다.
-봤어?
-응.
지금껏 나는 L형과 가장 많은 별똥별을 보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별똥별을 말이다. 하여 누군가가 L형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리라. 그는 '나와 함께 같은 별똥별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또 오랫동안 그와 나는 더 많은 별똥별을 함께 보겠지. 봤어? 응! 그렇게 서로에게 묻고 대답하리라.
-[길 위의 칸타빌레] 122쪽에서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별처럼 빛나는 글 속에 살고 싶다. 제 2의 [길 위의 칸타빌레]가 나오길 기대하며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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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뉴스에 연재되는 노동효의 칼럼을 읽곤 했었다. 언제나 길동무와 함께하는 그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그 여행길에 나도 함께 했던 것만 같은 착각을 하곤 했었다. 그의 여행기는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단편소설 같았고, 그런가 하면 또 교양서적같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읽어왔던 노동효의 여행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갔고 책을 찾았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깔끔한 디자인, 잘 정리된 사진들과 김미월 작가의 리뷰였다. "훌륭한 책은 책장을 덮는 순간 저자를 사랑하게 만든다던가, 이미 연인이 있다면 독자여, 이 책을 읽지 말지어다." 김미월 작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특이한 종이에 씌여있는 프롤로그부터.
그로부터 머지않아, 나는 지하철 환승역 같았던 샐러리맨 생황에 굿바이!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 직장으로 통하는 환승통로로 들어서지 않은 채 '여행'이란 이름의 개찰구로 빠져나왔다.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고, 길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셨다. 나는 낡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길을 떠났다.
잭 케루악의 소설을 언급하며 끝나는 작가의 프롤로그부터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기며 나는 때론 작가의 능청스런 우스개 소리에 킬킬거리기도 하고 어떤 지점에선 눈시울이 젖기도 했다.
그렇게 뒤로, 뒤로 달려나가던 나는 이 책의 마지막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자신의 여행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히는, <부산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빠삐용>과 <쇼생크 탈출>을 언급하며 이어지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 오랫동안 내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잊고 지냈다는 것, 그러나 아직 내 속에 자유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내 안에서 부딪히며 터져나온 것이다. 작가에게 정말 고맙고 그래서 작가에게 큰 빚을 진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길 위의 칸타빌레> 2권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다음은 나로 하여금 울음을 터트리게 한 책 속의 마지막 문장이다.
태종대 신선바위 틈 사이를 내려다볼 때마다 코코넛 열매 포대로 파도를 시험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망망대해에 떠 있던 빠삐용이 자신이 탈출한 섬을 향해 소리치던 대사도.
Hey, you bastards! I'm still here! 이 개자식들아, 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
살아가다보면 때론 이땅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 나는 꿈꾸곤 한다. 이 감옥에서 함께 지내는 내 이웃들에게 <피가로의 결혼>을 틀어주고, 시원한 맥주 한잔 안겨줄 수 있다면......
지금 음악을 함께 듣고, 술을 함께 나누기엔 너무 멀리 있는 그대여, 대신 나는 권한다. 부산에 가거들랑 꼭 태종대에 가보라고. 그리고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를 내려다보라고. 당신의 심장 한 가운데부터 하얗게 일어나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느껴보라고.
- 이 개자식들아, 난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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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와서 여행서적을 자주 읽는다. 나이가 들고보니 뒤늦게 가고 싶은 곳도 많고 갈 수 없어서 대신 책으로라도 하는 기분으로 읽는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은 새파랗고 예쁜 악세사리를 가진 듯한 기분이었다. 새파란 표지는 산뜻했고, 볼록 올라온 하얀 제목의 글씨 또한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속의 내용 또한 그에 알맞게 시중에 나온 많은 여행서적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그저 예쁘고 앙징맞은 사진들과 한번 가벼운 기분으로 읽고 던져놓을.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던져놓기는 커녕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처음부터 두번이나 읽고 말았다.
처음 읽을 때는 마냥 좋았다. 내가 지나가본 길이 있었고,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 있었고, 내가 지나가며 들여다 보지 못했던 자락들이 있었다. 저자의 글맵시를 따라 또 다시 갈 수 있어서 좋았고, 낯선 풍경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 좋았다. 때로는 느닷없는 웃음이 터져나와 당황스러웠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바람에 낯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자 정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여행기를 읽었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세상엔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책 속에 난 구멍을 통해 한 저자의 삶을 훔쳐본 것만 같았다. 멋지구나!
지난 페이지들에서 느꼈던 감동들을 한번 더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완독을 하고 난 이틀 뒤였다.
근데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한편, 두편, 세편, 네편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기존 여행작가들의 수필같은 여행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행문을 이끌고 나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남해 금산편에서 이성복의 시를 변주한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침대베게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다가 발딱 일어나 앉았다.
시와 소설을 적절하게 인용하는 대목들에서 저자가 문학에 대한 식견이 남다르다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의 기행문은 마치 숱한 복선과 상징들이 이면에 감추어진 단편소설로 읽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길 위의 연작소설이로구나!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시작한 글은 세살배기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강조하고, 어느새 모두 한 배에 타고 세상을 건너는 세태에 대한 경고를 오정환 시인의 시를 통해 드러낸 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오가지 않는 바다에서 자본주의의 바이블 "경제학원론"을 불태우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그저 일어난 일들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소설적이다. 마치 꾸며낸 이야기처럼.
그러나 작가가 이것들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발단과 절정 그리고 결말을 취사선택하면서 소설적 구조를 취하고 있을 뿐.
마지막 부분이 좀 더 길었으면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왕다방을 찾아서"연작기행문은 그 자체로 분단소설같다.
김주영의 <쇠둘레를 찾아서>를 변주한, 휴전선 일대를 따라 전개되는 기행문은 처음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중심>을 건드리며 시작된다. 그리곤 왕비와 왕다방에 비교하며 능청을 떨다가 첫 목적지로 임진각에 도착하면서 이 글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되리라는 냄새를 풍긴다. 김광석의 노래와 해리포터 환상을 통해.
왕다방 연작은 분단과 군대문제를 절묘하게 배치시키고 있다. 마지막 작가가 꾸었다는 직녀다방에 대한 꿈에 이르러서는 다소 작위적이란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열망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직녀다방의 꿈을 통해서라도 통일의 길을 열어두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씌어진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작가가 언젠가는 직녀다방에 이르는 기행문을 써줄 날이 오길 바라며.
그렇게 26편으로 이루어진 기행문은 한편 혹은 여러 편이 시리즈를 이루며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나아간다.
그것은 저자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으로 놓은, 자유이며 여행예찬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서 우리들 삶에서 잊지 않아야 할 가치와 인간이 추구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두번째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마치 여행을 통한 <자기계발서>를 읽은 듯했다. 돈과 권력이 만나는 꼭지점에 있는 성공이 아니라 인간과 자유가 만나는 꼭지점을 향한.
책 속에 씌어진 문장들 중 시간이 지나도 머리에 남는 문장들이 유난히 많았다. 그 중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의 마지막 페이지에 씌어진 다음 문장들은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수수께끼같다.
"'인류'의 이상이 사라진 세기는 불행한 세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기를 살아가는 이들 역시 불행한 이들일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미경'이 아니라 '깃발'이며, '무덤 파는 자'들이 아니라 그곳으로 넘어가는 '지도를 그리는 자'들일지도 모르겠다."
노동효는 <길 위의 칸타빌레>라는 책을 통해 '그곳으로 넘어가는 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지도가 무척 기대되는 여행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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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나는 지옥보다 심심한 천국이 더 좋았다. 그곳에 오래오래 나의 발을 담가두고 싶었다.(p.152)
누구나 출근길, 핸들을 꺽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날마다 누르며 산다.
어릴적 한번쯤은 가봤던 여행지, 내가 살던 고향을 외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재미.
신나는 지옥의 일거리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박차고 나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내 여행기를 좋아한다. 해외여행도 물론 좋지만 일상에서 나처럼 소심한 인간에게 작은 용기만으로도 가능하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데드라인을 맞추고 열심히 일한 나에게 가까운 국내여행이라는 선물을 선사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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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샐러리 맨인 나는 거의 지하철에서 하루 세시간 정도를 보낸다. 그래서 이책 저책 기웃거리며 지하철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꾸준히 주문하는 것을 낙으로 산다. 특히 베스트 셀러는 놓치지 않고 주문을 하는데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를 사려다가 이 책을 주문하게 되었다. 여름이 되서 그런지 답답한 회사를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고 반복된 나의 생활을 좀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컬쳐뉴스에서 연재된 저자의 글도 가끔씩 봐서 그런가.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 주문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정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느낌도 들고... 시간이 나서 인용글을 올려본다... 참고가 되시길... 내용면에서 별 네개, 구성에서 네개를 주었다.
그의 여행기는 잘 알려진 관광지가 아닌 샛길을 찾아, 길이 뿜어내는 페로몬을 좇아, 은둔하는 절경을 찾아, '출입금지' 팻말을 무시하면서 진행된다. 또한 각 여행길에는 시와 소설, 영화와 음악이 적재적소에 길동무로 동행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지적 탐구에, 《지구별 여행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깨달음에 관한 사색, 《On the Road》(잭 케루악)의 자유로운 정신이 한 권에 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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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워진다. 이맘때쯤 해마다 홍역처럼 돌아오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삶은 참 마음대로 안된다. 365일중 2-3일의 여행이 강렬한 기억이 되어 화석처럼 딱딱해지듯, 작가의 화석같은 기억이 담겨져 있는 책이 나왔다. 여행은 시간을 갖는 행위라 한번에 다 읽지 않았다. 작가도 그걸 바라진 않겠지.
자.... 홀로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 이름 난 여행지에 왠지 거부감이 있는 사람.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사람. 내성적인 여행자. 뭔가 개인적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
강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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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때 우선 책 사이즈가 가장 맘에 들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고 약간 길쭉해서 손에 쥐기 좋다. 그리고 종이가 특이한 것이 우리가 흔히 소포 쌀때 쓰는 소포지와 미색 종이가 번갈아서 넣어져 있어 옆에서 보면 초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이쁘다. 소포지에 인쇄된 사진들의 묘한 느낌도 좋고 미색 종이에 쓰여진 느낌도 같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보는 재미가 있다. 좀 아쉬운 점이라면, 종이의 두께를 좀더 얇게 했으면... 그리고 차라리 소포지 전체에다 했으면 느낌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은 술술술술 읽힌다.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아도 직접 가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느낀것과 같고 작가의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인용구들과 잡문이 매력적이다. 제돈주고 사기 아깝지 않은 생각이 든다.
강추!!! 여름에 여행길에 배낭속에 쏙 넣고 다니면서 무전여행을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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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기행문 이야기를 좀 할까합니다. 최근에 꽤 좋은 느낌의 책을 접했거든요.
기행문이 가지는 최고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섬세한 묘사? 세상 곳곳에 박혀 살아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 일상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을 던져주는 벅찬 글귀들? 내가 가진것과 가지지못한것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객창감?
네... 다 중요하죠. 이 모든 것들은 기행문을 기행문답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들일 겁니다. 하지만 .. 어쨌거나.. 제 생각에는...
기행문이 가지는 최고의 미덕은, 또는 기행문의 가장큰 존재가치는 아마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기행문은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 글을 읽은 뒤 모든것을 접고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꿈틀 솟아나야합니다. 그런 욕구를 일깨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행문이아니라 그냥 그저 그런 여행안내서 정도겠죠.
욕구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길위의 칸타빌레'는 내가 만난 두번째 좋은의 기행문입니다. (첫번째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고 세번째는 '하루끼의 여행법'이었습니다.)
작가 '노동효'의 글 속에는 기행문의 기본 아이템들이라 할 수 있는 풍광과 사람과 해방감과 객참감... 이 모든것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꿈틀대고 있는 커다란 욕구가 있는 거죠. 역마살이 전염병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바이러스 덩어리일 겁니다.
작가의 첫번째 저서라고 하던데.. 물론 다소 설익은듯한 표현도 있지만..묘사적인 표현과 서술적 나열을 적절히 섞어놓은 문체는 마치 단편소설처럼 꽤나 맛갈스럽습니다. 부담없이 줄줄 읽다보면 작가의 선량한 낙천성과 깊은 인간애가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모 투자회사의 직원으로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지방출장이 잦은 편인데요. 출장을 다니다 보면 운전은 항상 지겨운 것이었고,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깝게 사라지고 있는 청춘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었습니다.
지난 주말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떠나는 출장길에서 전 '길'과 '차'에 대한 저의 자세가 조금 바뀌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앞차와의 간격에 여유를 두고 넓은 시야로 운전하기 시작했던 거죠. 말하자면 주변의 풍경을 즐기기 시작한 겁니다. 출장일정에 잠깐이라도 여유를 만들어 어느 시골의 샛길에 호기심어린 차바퀴를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누구든 지방출장이 잦은 업무를 직업으로 가지는 분이라면 이 책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물론 출장 자주 안가시는 분들께도 매우 좋은 책입니다.
결론은?... 사서 볼만한 책이란 거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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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때론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원하지 않은 대학, 직장등......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갑갑한 생활에서 벗어나 '자기멋대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곤 한다. 하지만 결국 마주칠수 밖에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는 그 것이 매운 힘든것임을 알고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반복된 하루속에서 느껴지는 권태로움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것에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는지를 점차 잊어버리곤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잠시나마' 한번 걸어봄으로써 점점 잊고있었던 자신을 찾게되는 그러한 과정.
이 책의 필자는 바로 우리가 부러워마다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책 속에서 줄곧 포장되지 않은, 남들이 가지않았던 길을 걷고있다. 때론 흙탕물이 튀고, 때론 가시에 찔리기도 하는 험하지만 자유로운 그런 길 말이다.
그는 그런 길들 위에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생각과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인가를 하나하나 깨달아 가고있었다. '환승'이 아닌 여행이라는 '출구'를 통해 나온 그는, 반성하고 깨달으며 감동에 젖는다. 그리고 이런 그의 감정들이 이 책을 읽고있는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필자가 갔던 그 곳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책은 나에게, 반복되는 바쁜 생활속에서 잠시나마 다른 길을 걷도록 '나의 등을 떠미는' 진정한 여행에세이가 되어주었다.
길위의 칸타빌레. 여행지의 표정을 담아 아름답게 흐르듯 이야기해주는,말 그대로 진짜 '칸타빌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