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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예쁜 그림 화보와 그 사이 여유롭게 박힌 글들. 책의 생김새만큼 글의 분위기도 참 정갈한 책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파랑새>의 작가인 마테를링크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여러 다양한 꽃들을 매체로 해서 다양하게 펼쳐진다.
하물며 꽃도 이렇게 살기 위해서 열심히 애쓰는데 사람인 나는 왜이리 하루하루를 헛되게 보내는지 반성하게 만든다. 책을 읽다보니 꽃과 우리가 서로 참 닮았구나. 꽃의 관심과 성향과 욕망이 우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탄생과 소멸의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인상깊은 구절>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우리 인간은 이미 존재해 온 것을 다시 찾아낼 뿐이며,우리 이전에 생명이 걸어간 길을 그저 놀란 어린아이처럼 뒤밟아 가고 있을 뿐입니다.'
PS: 본문 꽃그림들은 나름 이쁜데 표지는 조금 아쉽다. 표지의 중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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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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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 예사로이 있는 꽃들을 예사롭지 않게 관찰하여 (식물관찰기록이 아닌) 꽃에 깃든 신의 섭리, 꽃에 깃든 우주, 진리를 따뜻하고 잔잔하게 이야기 한 아주 멋지고 품격 있는 소품같은 책이다. micro 는 macro 로 통하고 macro 는 micro 로 통한다. 인체가 바로 소우주란 말로 대변되는 동양의 철학, 우주관을 설파하는 듯한 작가의 멋진 혜안들...
책 말미의 "어떤 지적인 개체들이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보편적인 지성, 우주적인 기운이 이런저런 유기체를 관류하며 그 지혜를 나눈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무모한 주장일까..."는 그의 정신세계를 함마디로 함축해 놓은 멋진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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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글들>
자연만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무엇이든 인간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해 냈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지가 뻔히 드러나지요.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우리 인간은 이미 존재해 온 것을 다시 찾아 낼 뿐이며, 우리 이전에 생명이 걸어간 길을 그저 '놀란 아이'처럼뒤밟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특별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고, 조작하고, 치장하고, 발명하고, 추론하는 것은 개개의 꽃이 아니라 대자연 그 자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긴 우리 인간의 열띤 관심은 항상 그 모든 개체를 능가하는, 보다 중요하고 드높은 문제에 치중되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꽃의 세계곳곳에 깃든 대자연의 지혜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정작 무엇을 깨닫게 되는지요?......사실 인간이 스스로고유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큼 부실한 주장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건축학적, 음악적모티프들, 색과 빛에 관한 그 모든 조화의식이란 바다, 산, 하늘, 밤, 황혼등과 같은 대자연의 품에서 직접 빌려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 내면에 나무의 아름다움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나는 지금 땅의 권능이 됐든, 우리 본능의 중요한 근원이 됐든, 우주에 대한 감각이 됐든, 숲 속 명상거리로서의 나무 이야기를 넘어 나무 그 자체, 숱한 세월을 푸름으로 지탱해 온 한그루의 고독한 나무까지 더불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 존재안에 평정과 행복의 심연을, 그 투명한 동공을 구성해 온 무의식적인 이미지들중에서 아름다운 나무의 기억에 빚지지 않은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지적인 개체들이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보편적인 지성, 우주적인 기운이 이런저런 유기체를 관류하며 그 지혜를 나눈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무모한 주장일까요? 인간의 지혜는, 종교에서 흔히 신과 결부시키는 그 우주적인 기운에 가장 덜 저항하는 삶의 형식을 따를 때 비로소 온전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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