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부터 서준식 옥중서한을 읽고 있다. 83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의미 넘치는 말들이 내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서울법대 재학중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1971년 부터 88년 까지 17년간을 교도소와 보안 감호소에서 푸르른 청춘을 잿빛으로 퇴색시키고 불혹의 담을 넘어 출옥한 고독한 수인의 편지글 모음이다. 한 장 한 장 읽을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멘다. 국가라는 거대한 독재 권력 앞에 양심의 자유를 건사한 한 개인의 인권이 이리도 오래, 이리도 무참히 짓밟힐 수 있다는 사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도 저 푸른 하늘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하게도 한다. 여전히 반인권, 반민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 사회에서 어쩌면 나 역시 더러운 주류로 편입되고픈 욕망에 몸부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정신이 맑아지는 책을 대했다. 너무나 솔직하고 진실해서 감동을 주는 책이다. 한 나약한 인간의,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피눈물나는 자신과의 투쟁 과정이 가슴 깊이 각인된다. 우리 서로 진실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진 자 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의 편에서 정의의 편에서 얼마나 그들과 함께 아파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매우 곤혹스런 의문 앞에 고민하게 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인격 앞에, 사상 앞에, 현실 앞에서 망설이며 서성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흔이 넘어 내다 본 담장 밖의 푸른 하늘은 그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느낌의 글이 이리도 무거워짐은 좀더 가볍게 살고픈 욕망의 반영인지도 모르겠다. |
| 처음 책의 쪽수도 살피지 않은채 비싼 책값에 망설이다가 김규항씨가 이게 책이다 하는 심정으로 책을 냈다는 말에 산 이 책은 쪽수만으로도 그 값은 하고도 남음이거니와, 그 속에 담긴 내용면에 있어서는 알량한 34000원이라는 책값이 오히려 부끄럽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구금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인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잘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면서 책의 저자가 전향을 거부해 17년간 감옥에 살다 나왔고, 인권운동을 한다고 했더니 좀 이상한 사람에-정신이 아니라 사상이- 세상 물정모르는 사람 치부를 하여서 슬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았는지, 서준식씨가 이상한 사람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맑고 밝게 바라보며 그렇게 모두가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줬음 한다. 아울러 이 책은 각박하게 살아가는 내게 많은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의 표현대로 족제비처럼 돈과 물건을 모으기에만 여념이 없는 요즘의 나의 생활에 얼마나 큰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세상을 향해 품은 뜻은 사라져가고 일신의 안위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수많은 나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한때의 기억을 더듬고 다시 자신을 추릴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더불어 그의 예수와 성경에 대한 생각에도 너무 깊은 공감을 표하고 싶다. 너무도 반예수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일부?) 교회들, 신학자들이야말로 또한 나처럼 반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모로 별 다섯개와 돈 34000원으로는 표현할래야 표현할 수 없는 이 책의 깊이에 대해 여러 사람이 느끼기를 바란다. 지난 수년간 읽은 수백원의 책이 이 책에 비하면 쓰레기같이 느껴질 정도니 말이다. 덧붙여 김규항씨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그의 객기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이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때론 객기가 고전을 사수하는 유일한 힘이라는 그의 말에 깊은 공감과 감사를 보낸다. 그가 어떻게 결혼했는지-책에 나오는 L양과 결혼했을까?- 그의 형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가 옥에서 나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조화시키며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그의 근간을 읽으면 나와있을까? 그 책 역시 빨리 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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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에서 자란 서준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유학와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이던 1970년 형 서승과 함께 북한에 다녀왔다. 이듬해 1971년 '유학생 간첩단'으로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형기를 마쳤지만 '사람의 생각은 누구도 규제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전향을 거부함으로써 석방되지 못하고 다시 10년 동안 사회안전법(1975-1989)에 정해진 보안감호처분을 받았다. 1988년 5월 비전향 좌익수로는 처음으로 석방되었다. 이 책은 17년 세월이라는 수감생활 중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썼던 편지를 모은 옥중서한집이다. 930페이지의 육중한 모습이다. 이는 세상에서 고립된 자가 수행하는 마음 다스림의 기록이면서 한편으론 한국 정치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통과하는 어떤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1989년에 형성사에서 나온 《서준식 옥중서간집》은 약 2년만에 절판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에 야간비행에서 나온 《서준식 옥중서한》 또한 약 3년만에 절판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출판 실적 자그마치 2권을 자랑(!)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지금 나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 대해 감사하다기보다 차라리 송구스럽다. 이 손바닥만한 규모의 연구소가 감당해 내야 할 나의 책의 무모한 두께와 무게가 송구스러운 것이다."
'노사과연'의 판본이 이전과 달라진 점은 두 가지 점에서다. 우선 80개 항목의 주가 2040세대를 위해 새롭게 달렸다. 또한 저자가 청주 보안감호소에 있을 때 어느 목사부인에게 쓴 미공개 편지 15통이 추가로 수록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우연한 기회에 《신약성서》를 정독하고 예수를 존경하게 된 얘기를 토로한다. 저자의 눈에 비친 예수는 종교로서의 기독교나 제도로서의 교화와는 너무나 먼 존재, 다시 말해서, 사랑의 공동체를 치열하게 꿈꾸었고 그 꿈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그 어떤 권위나 기존 질서와도 첨예하게 대결했던 가장 순수한 형태의 무정부주의자였다. 물론 저자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무정부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들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나의 논쟁 행위였으며 고해성사였으며 절절한 기도였으며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
저자는 1992년에 출판된 일어판 서문에서 옥중서한의 '라이트 모티프'를 민족, 자생, 전향, 종교 네 가지를 꼽았다. 이 네 가지 주제 중 상당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테마는 바로 민족이었다. 민족의 문제는 '재일' 한국인의 원죄를 해소하는 일이고, 자생이란 도식적인 도그마를 벗어던지고 금욕의 아픔과 멜랑콜리의 극복이라는 진보적 과제와 직결된다. 전향은 사상전향의 문제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저자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삶을 본받겠다는 결심과 관계된다. 옥중서한에 나타난 '젊은 날의 자화상'은 결의에 찬 투사적인 면모와 더불어 내면의 고통과 동요를 솔직하게 드러낸 인간적인 면모도 발견된다. 일례로 고종석은 저자가 시인 김수영의 결벽증, 신경질, 자의식과 같은 뾰족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평한 적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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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쓴 편지를 겨우 8일 만에 봤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좀더 천천히 보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건 황인숙 님의 "인숙만필"에서다. 언제 한번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바로 볼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도서관에서 빌릴 책을 고르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내가 읽어야 할 때가 돼서 내 눈에 보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 싶은 거였으니 바로 빌렸다. 책이 두꺼운 것은 대개 글자가 큰데 서준식 옥중서한은 그렇지 않다. 그러고 보니 옥중에서 쓴 여러 편지를 봐왔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두꺼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렇게 많이 본 것은 아니던가?) 17년 동안 부모님, 동생, 사촌동생 그리고 조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편지는 한 달에 세 통밖에 쓸 수 없었다. 편지 쓰는 자유도 없다니... 처음에는 젊음이 느껴지고 갇혀 있다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힘이 넘쳐 보인다. 그리고 아마 책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했을 것이다. 세월은 흐른다.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하는 것이 보인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늘 책을 읽고 공부하라는 말은 당연한 것이다.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착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나는 착한 마음으로 책을 본 적이 얼마나 있는 줄 모르겠다. 그리고 나 또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선 [인상깊은구절]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글짓기' 훈련이 아니라 절실하게 남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그런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깊고 감성이 풍부해야 하고, 또 그러러면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성실하게 열심히 힘껏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글재주'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무얼 배우러 다닌다 해도, 또는 열심히 책을 읽는다 해도 그런 것들은 순자가 이 세상을 착하게 살아가기 위한 무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신분상승' 을 위한 수단이 되거나 좀더 시집을 잘 가기 위해 챙겨야 하는 장식품이나 교양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