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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 한참 지난 책에 대해 뒤늦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일도 없기에 리뷰의 제목을 어떻게 짓고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리뷰를 써 내려갈 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산뜻한 제목과 달리 작가가 제법 묵직한 주제들을 위트 있게 다루고 있었기에 찰나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그럼 슬슬 묵혀 놓았던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먼저 고백 하나 하고 넘어가자면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 그러니까 이 책에 길들여지기 전까지 나는 이 책을 욕하면서 읽었음을 고백한다. 원서의 어휘 수준이 난해해서였다면 차라리 속 시원할 텐데 그런 원초적인 이유보다 더 내 인내심을 수시로 박박 긁어댔던 건 다름 아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르륵 등장하는 주석들에 있었다. 소설 속 정황들을 이해하는데 이 주석들이 약방의 감초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틀림없었으나 한편으론 성가신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평점을 후하게 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 책에서 꽤나 멋진 진리 하나를 다시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내가 발견한 진리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그건 바로 인류의 끈질긴 생명력, 세대를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생명의 역동성에 있었다. 이 부분에서 번역서로 이 책을 만났던 분들 중 공감하는 분도 있을 테고 더러는 고개를 갸웃 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오늘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독자를 반겨주는 주인공인 오스카는 도미니카인으로 3대에 걸쳐서 트루히요의 독재로 인한 수난을 직ㆍ간접적으로 겪는다.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인 아벨라르에서부터 엄마인 벨리시아에 이어 누나인 롤라에 이르기까지 오스카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도 트루히요의 독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 어느 누구도 트루히요에 대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권리조차 없었던 그 억압의 세월을 견뎌내고자 미국행을 감행한 오스카의 가족에게 애석하게도 삶은 여전히 고난과 푸쿠(저주)의 연속이었다. 작가가 사용한 푸쿠의 모습은 각각의 주인공마다 다양하게 변형되어 등장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그 푸쿠가 근본적으로 겨냥했던 건 '사랑'을 추구했던 주인공의 삶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는 점과 또 이에 대한 각자의 대처법이 조금씩은 다 달랐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고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 푸쿠의 도전에 대한 주인공들의 진일보하는 대처능력과 강한 생명력이라는 점이다. 할아버지인 아벨라르는 딸들을 지키고자 하는 부성애로 목숨을 잃었고, 엄마인 벨리시아는 사랑하는 애인과 그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지키고자 모진 폭력을 이겨내야만 했고, 우리의 오스카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인 이본과의 마지막을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다. 혹자는 대항의 방법으로 오스카가 결국 죽음을 택한 게 무슨 진일보하는 생명력이냐고 내게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살펴보자. 푸쿠에 대한 아벨라르에서 오스카에 이르기까지의 저항의 방식이 다소 소극적인 모습에서 조금씩 더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맞서며 생명력을 발휘하는 모습이 당신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은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좀 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류의 끈질긴 생명력,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어 나갈 때 비로소 나는 작가가 왜 책의 제목을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이렇게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타인의 눈에는 항상 공상 과학에 빠져 지냈던 뚱보 오타쿠 오스카, 남들은 웃어넘길 사랑 따위에 목숨을 걸 정도로 멍청하기 짝이 없던 오스카가 자신의 삶을 둘러싼 푸쿠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던 그 모습이야 말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력의 결정체였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록 생애 대한 오스카의 불꽃이 짧게 빛났을지라도 우리는 그 불꽃의 강렬함을, 그 안에 숨겨진 모진 삶에 대한 짙은 열정과 적극적 용기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됨을 다시금 알려준 오스카에게 나는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오늘의 우리에게도 오스카가 보여 준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하기에 나는 그가 보여 준 결단력과 용기가 그 어떤 선택보다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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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퓰리쳐상을 받았을때부터 읽고 싶어하다가 작년에 드디어 샀는데 100페이지를 넘기기가 너무 힘들어 읽다 말다 반복을 하기를 몇번, 그러다가 지난주에 감기가 들어 몸져 누운김에 끝을 봤다. 하루 종일 누워서 책을 읽을 기회는 아플때밖에 없는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병을 도지게하는 우울한 책이었다.
나는 현대 문학을 이해 못하는걸까? 이 책의 target audience는 누구인가? Oscar 생애가 안됐긴 하지만 소설로 쓸만한 solid한 주제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무튼 퓰리쳐도 탄데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거 보면 뭔가가 있는데 나는 책을 잘못 고른게 아닌가 싶다.
첫째는 스페인어가 너무 많아 이해를 못한 부분이 다수. 사전을 찾을 실력도 안되므로 포기하고 넘겨버렸다. 그래서 책에 재미를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둘째, comic book (특히 watchman), 반지의 제왕, Sci-Fi소설, 게임 dungeons and dragon등의 언급, 발췌, 인용이 엄청 많은데, 나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라서 이해못함. (관심만 없는게 아니라 전부 너-무 싫어한다)
세째, 너무 긴 footnote, 어떨땐 한페이지가 전부 footnote이다. 주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 (특히 독재자 Trujillo)에 관한건데 그럴꺼면 역사에 대한 설명도 본문에 넣어서 글을 쓰면 될것을 왜 수많은 footnote를 집어넣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것도 욕을 왕창 섞어서 쓴 이 footnote는 짜증을 불러 일으켜서 반쯤부터는 안 읽었다.
네째, 책을 읽을 때는 좋아하는 인물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읽은 즐거움이 있는데 이 책은 모든 인물이 싫다. Oscar는 creepy fat geek guy who is obsessed with sci-fi and comic books. 착한 성격이긴 하지만 항상 자기를 좋아해주지 않는 예쁜 여자에게 온몸을 던져 사랑을 고백한다. 인생의 목표가 getting laid. 마지막에도 왜 이렇게까지 됐어야 했나? 나라를 위한 순국열사라도 되는듯했지만 사실 여자와 sex를 하고 싶었던것뿐이다. 그냥 살 빼고 geek hobby는 몰래 하면 해결 될일을 소설로 쓸것 까지도 없다. (라고 말하면 나는 정말 무딘것인가. empathy가 부족한걸까. 40 year old virgin이란 영화가 생각난 나는 바보인가)
다섯째는, 얘기하는 계속 화자가 바뀌는데 너무 헷갈린다. 중간쯤되면 화자중 하나가 lola의 전남자 친구 yunior란걸 갑자기 깨닫게 되는데 이 인물이 아마 작가의 분신인것 같다. 독특한 소설을 쓰고 싶은것 같지만 상당히 annoying하게 느끼는건 나뿐일까...
누나인 lola와 엄마 beli이야기도 그리 가슴에 와닿지 않고, 할아버지때 시작된 fuku (집안에 내린 저주)에 대한 내용도 산만하기도 하고 너무 쿨하게 쓴 문체및 욕들도 싫고 아무튼 쿨하지 못한 나에게는 맞지않는 책이었다. |
| 아픈 우리의 과거가 상각나게 해주었다. 틈틈히 시간 날때마다 읽으니 기간이 제법 늘어졌고, 앞부분과의 연계가 잘 기억나지 않을때도 있었지만은 전쳬적인 맥략은 한사람의 독재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절망을 안겨다 주었는지. 그래도 사람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어나가는 생명력을 보여줌을 나타내는 소설이다. 주석 많고 우리문화에서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 갭이 많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