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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반점에 짬뽕을 먹으러 갔다가 11시 30분 개장이라는 직원의 말에 2층 서점으로 올라갔다가 시집 코너에 '외로이, 홀로' 꽂힌 <설운 서른>을 발견했다.
서른이 이렇게 구차하고 구질스럽게 다가오는거냐고 중얼거리던 요즘에 단비같은 삽질이 옹기종기 모여서 들이닥치는 기분.
얼굴을 가린 남자의 멈춤이 몰려들어서 서점 한 구석에 서서 설운 서른이래, 설운 서른이래, 키득거리며 시집을 뒤에서 부터 읽는다.
세로로 담담하게 쓰여진 문장들이 수직으로 가슴에 내리꽂히는데 날씨는 왜 그렇게 환한지.
내일 모레 서른이 닥쳐오고 있고, 내일 당장 서른이래도 바뀔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스물 아홉은 하등 나아질 것이 없고,
서른이 가만히 있다.
서른은 어른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네.
오만 잡다한 감정이 뒤섞이는 먹먹함을 누르며 어거지로 친구에게도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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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 서른은 지친 삶의 여운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로써는 서른이란 단어에 내재되어 있는 시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그러한 점에 있어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주었고 두려웠던 암흑에서 한 줄기 빛을 비춰주어 삶의 포근함까지 안겨다 주었다.
책을 덮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김충규 - 아비 중 "이승이 가혹한가, 소금을 꾸역꾸역 넘길지라도 그러나 아비는 울면 안된다."에서 아버지로써 겪어야 했던 인생론의 핵심을 한 구절로 구수하게 뽑아냈다. 냉철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쳐서 느꼈던 슬픔과 고독의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꼭 이래야 하는가 라는 또 다른 무서움이 선다..
삶은 하나의 즐거움이지만 박라연- 내 작은 비애로도 비유된다. 생각이 몸을 지배할 때까지만 살지 못하고 몸이 생각을 버릴 때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때면 비애든 모든 것이든 편안히 보낼 수 있을까..그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서른엔 저 표지처럼 내 눈에는 한 줄기 굵은 눈망울만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한다.. 그래도 살아간다. 사랑한다. 상처주고 상처받고.. 인간이란.. 나란 존재란.. 서른이나 스물이나..
후회는 안 한다. 하지만 설운.. 서글픈 내 안의 기억이란 존재가 가끔씩 나를 찾아온다.. 이젠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 고통을 함께 할 소중한 이들이 함께 있기에 내 등의 짐을 짊어줄 많은.. 사랑스러운 이들이 있기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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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삶을 살다가 보면, 자신이 스무 살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마흔이라고 불리우기는 정말 싫다고 느껴지는 때가 온다. 스물의 발랄함과 희망을 접고, 마흔의 그 알 수 없는 우울함도 뿌리치고, 아련히 남아있는 치기稚氣 나 생에 대한 긴장과 부담감 등은 서른이라는, 서럽다는 단어로 자리매김한다.
이 시집은 그런 책이다. 앞서 고민했던 많은 시인들의 그맘때 생각을 기록해둔, 보물같은 책이다. 비록 그들의 생각과 고민들이 나의 것과 꼭같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틈틈이 훔쳐보며 야릇한 쾌감과 묘한 센티멘탈, 그리고 진지한 성찰을 가까이 둘 수 있게 된다. 서른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마침 서른을 맞이한 이들에게, 또한 서른을 새기지 못하고 넘겨버린 이들에게 권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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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 서른" 책 표지가 너무 인상 깊었다. 나의 심정과 나이의 압박이랄까.... 평소 시를 관심 가지지 못한 나로서는 참 읽기, 아니 느끼기 힘든 책이었다. 시인분들의 표현도 익숙하지 않았고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들고, 만지며 손에 붙들고 있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올해 서른이네." 갑자기 책 제목이 생각이 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기하고 좌절하긴엔 너무 늦은 나이.. 똑같은 서른들은 내 마음과 같을까 하고 묻고 싶다. 나는 아직 멋진 인생이 남아 있다! 이 책은 묘한 용기를 전해주는거 같다. 만지고만 있어도, 표지만 바라봐도. 나름 멋진 시집인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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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 서른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뜨거운 마음으로 벅찼던 20대는 이미 지나왔다. 뭔가 결과가 보이지 않는 30대의 서글픈 마음이 '설운' 이라는 단어가 잘 표현하고 있다. 두 손을 모아 눈으로 가린 시집의 표지처럼, 즐거운 마음보다는 아련한 마음이 더욱 마음에 감싸는 나이 서른! 그 서른과 관련된 마음과 시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졌다. 머나먼 인생의 반환점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잠깐 시집을 보며, 마음과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믿는다.
# 마음을 다독여 주는 시들.
서른 고개를 넘으면 / 더 넓은 땅이 보이리라 생각했다 /
아니 최소한 가로막힌 언덕이라도 / 명료해지길 기대했다 /
나이를 먹는 건 /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
열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다 /
스무 살이 수월하게 멀어진다 /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
살아, /
기다리는 것이다, /
다만 무참히 꺽여지기 위하여. //
최승자,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무의미한 삶의 좌절과 서글픔이 가득 찬 설움을 시로 씻어내고 나면, 좀 더 하루를 살아볼 용기를 내게 된다. 시를 읽는 시간들은 내게 마음 속 응어리를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자주 보진 못하겠지만, 곁에 두고 마음 속 비상구로 삼고 싶은 시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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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 서른... 뭐가 그렇게 서러울까.. 서른이면 그렇게 누구든 다 서러울까...? 생각보다 얇은 책에는 뭔가 고뇌하는 듯, 서러운 듯한 누군가가 책표지에 들어와있었다. 두손으로 눈가를 누르고 있는 그는 서러운 이 시대의 모든 서른을 대표하는 듯 했다.
우선, 책을 펼치면 책의 짜임이 먼저 눈에 확 들어 온다. 세로쓰기로 되어있고, 읽으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방식으로 읽어야하는 책이다. 처음에는 '뭘 이렇게 보기힘들게 불편하게 구성해놨나.' 했는데 이러한 세로쓰기방식에 큰 의미가 있었다. 글을 배치한 방식에 '아!' 하고 내 자신의 조급함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세로쓰기 방식은 시인들의 마음을 한땀한땀 정성들여 쓴 시를 빠르게 훑지 않고, 차근차근 음미하게 하려는 생각으로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조그마한 배려로서 한번에 훑어내려가지 않고 조심조심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설운 서른이라는 제목을 지닌 이 독특한 책은 모두 50편의 시로서 말 그대로 서러운 서른을 나타내고 있었다. 서른살의 비애와 고뇌, 후회, 고민 등을 담아내고 있는 시도 많았지만, 딱히 서른이라는 제한에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몸도 마음도 순수하면서, 성숙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시도 많았다. 많은 시 중에서 중.고등학교 때인가 배웠던 시도 있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가 그것이다. '낙화'는 학교에서 배워서 그런지 익숙하고 내가 아는 얼마 되지 않는 시중에 좋아하는 시라서 더 눈에 확 들어왔다.
그리고 독특하고 멋있는 화려한 문장이 많은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하얀 날들' 이라는 시는 표현도 내용도 너무 아름다워서 꼭 하얀눈 속, 판타지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렀다.
요즘 들어 나는 자작나무와 함께 기상하여 얼음으로 만든 거울 앞에 서서 밀 같은 머리칼을 이마에서 빗질해 넘긴다.
나의 숨결과 섞이면 우유가 눈송이 모양이 된다. 이런 새벽이면 우유는 쉽게 거품을 낸다. (생략)
'하얀 날들' -잉게보르크 바하만
특히 다른 많은 시들 중에서 고재종 시인의 '길의 길'이라는 시는 현재의 모든 것에 망설이는 나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시였다.
(생략) 누구나 길에 나서나 다 같은 길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이되, 우리가 아니어서 배회했다 웃자란 형극 속에서 길을 헤치곤 했으나 나의 어려움은 되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생략) 근사한 말만 만나면 빛나는 잠언을 쏟아내며 길을 노래하곤 하는 무수한 시인들이여 조주도 물었다,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생략)
'길의 길' -고재종
나는 아직 30이라는 나이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20대 초반의 나이이다. 그렇지만 이 설운 서른이라는 책속에서 시인들이 말하는 시들은 내 마음에 와닿는 것이 참많았다. 내 진로, 길은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지, 나의 10대는 후회로 젖어 있지 않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실천하고 있는지 등등... 나뿐만 아니라 30대 이상, 이하 생각있는 남녀노소라면 모두 이런 생각 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시들은 고뇌를 가지고 있는 모든이들에게 공감가는 시가 많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 책을 접하고 한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너무 고뇌에 찬, 우울한, 절망적, 회의적인 내용들을 담은 시들이 많아서 가슴이 많이 답답하기도 했고, 나에게 다가올 서른이라는 나이가 무섭고 무겁게 느껴지기까지했다. 서른이라면 대부분이 이렇게 고뇌와 슬픔에 차게 되는걸까? 후회와 슬픔, 절망, 고민을 껴안고 살아가는 걸까?... 서른이 되지 않은 내 나이에 이렇게 고민과 회의, 의문에 가득차 지금도 괴로운데, 나이를 더 먹는다고 이러한 의문과 고민들이 사라지지 않고 더 부풀게 되는걸까?
그래. 생각해보면 서른이라고 나아지는건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생각하고 답을 찾다보면 당연히 10대든 60대든 고뇌와 슬픔, 이런것은 누구나 갖게 되는 감정이다. 이렇게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물어보고 찾아가면서 자아를 성찰하게 되고, 점점 성숙하고, 나아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소녀와 여자, 소년과 남자의 경계선인 서른살에 자아와 정체성의 성찰을 남,녀 인생의 전체를 대표해서 서러운 서른살로 비춰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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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짧게 평하자면 다음과 같다.
표지나 전체적인 디자인 : 굿 내용 :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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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책을 보게됐는데... 표지나 디자인이 마음에 확들어왔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라서 더 땡겼을지도 모르겠다.. 난 서른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철 없는 것이 중학교 수준정도?..인데 그다지 사는게 설웁지는 않다.
이 책은 서른이 왜그리 설웁다고 하는걸까?
여러사람들의 시를 하나씩 하나씩 모아놓은 설운서른은... 내가 읽기에는 조금은 어려운 책이었다. 내가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ㅋ
(사실 내 나이 서른이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데.. 이 책 덕분에.. 특히 '내 나이 서른이라는 것에 대하여' 때문에... 괜히 잊고지내던 내나이가 생각나고, 그동안 해놓은것 하나없음이 생각나고,, 뭐 그런것들이 생각났다고해서 서럽기까지 한건 아니지만,, 나란인간.. 조금은 걱정된다. ^^)
ps. 요즘같은때에 시집을 내다니.. 이 책 얼마나 팔릴까 궁금해진다. 잘됐으면 좋겠다.. 홧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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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를 떠나던 날,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정보자료실에 있던 지원선생님께서 점심식사 후, 깜짝 선물로 시집을 한 권을 주셨다. 오랜만에 그리 친하지 않는 지인에게서 책을 선물을 받아서 가슴이 설렜다. 그
책의 제목은 ‘설운 서른’이라는 시집으로, 쉴레의 자화상을 떠올리게 하는 한 남자가 책 표지에 스케치 되어있다. 이제
곧 서른을 맞이할 나에겐 너무나 뜻 깊은 선물이었다. 책 앞에 소중하게 짧은 메시지도 잊지 않으시는
센스를 보여주셨다.
이십대 초반, 나도 늘
읽은 책을 이렇게 메시지를 적어 후배들과 친구들에게 나눠주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읽은 책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욕심쟁이 삼십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를 읽은 후부터
이런 사실이 더욱 마음에 걸린다.) 19살에 알게 된 한 누나의 추천으로 신영복 교수님의 ‘더불어 숲’을 시작으로 시작된 나의 책 읽기는 벌써 10년이 됐다. 책 읽기가 풍요롭게 만들어준 이십대가 끝나가고, 삼십대를 앞둔 나에게 한 번쯤, 그 나이대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어떤 언어로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지 느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기에 참 고마운 선물이다. 이 시집은 누군가 한 명이 서른에 대해 다룬 시가 아니라, 김종길, 기형도, 안도현 등의 시인의 시중 서른과 관련된 혹은 서른 즈음에
읽으면 공감이 될 것 같은 시를 가득 싣고 있다.
나는 서른에 들어서기 직전 이십대 전체를 돌이켜보면서, 나는 참 재미있게 십 년을 보냈다고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것 같다.
남들처럼 취업전선에 뛰어드느라 힘들지도 않았고, 스펙을 쌓기 위해서 무언가를 치열하게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 삶이 치열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최소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고, 마음껏 설렜고, 마음껏 배웠다. 마음의 그릇이 작아서 그 크기는 크지 않더라도 내 마음껏 했다는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
서평에서 시의 특정 부분을 발췌하려니, 시의 맥락에서 읽지 않으면 어차피 의미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기로 한다.
작년,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전기순 교수님의 ‘스페인현대문학’에서 다양한 스페인어
시를 공부하면서, 교수님께서는 늘 시를 감상하는 팁을 주셨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시의 한 행은 호흡의 단위다’라고
하신 말이다. 몰랐던 건 아닌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그리 가슴에 깊이 박혔었을까? 그 수업 이후, 처음으로 읽는
이 시집과 마주하는 내내 나는 지하철에서, 침대 위에서, 카페에서
조용히 화자의 호흡을 느끼기 위해 중얼중얼거리며, 이 시집을 읽어 내려갔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군가와 호흡을 맞춘다는 건.
시가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게 시다. 이해가 되는 게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던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애써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다만, 읽다가 마주한 상당히 익숙한 시들이 십대 혹은 이십대에, 읽었던 느낌과 아주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책에서 시를 ‘세로 읽기’로 편집 해놓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통의 책보다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오히려 글자 하나하나
읽으며, 호흡을 맞추는 색다른 즐거움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
친구들이 세로로 쓰인 책을 읽을 때, 한국어를 저렇게 읽으면 참 느낌이 이상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참신했다. 편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디어는 독자인 나에게 즐겁게 와 닿았다.
조금 딴 소리를 하자면, 생각보다
시 읽는 사람이 없다. 나도 의도적으로 조금 노력해서 일 년에 한 권정도 겨우 읽지만, 정말 언어의 다양성과 언어의 고유성, 나아가 문화의 정체성까지 모두를
잘 들어내는 언어와 작가생각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마술인 ‘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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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춘의 다음장, 서른 당신이 중년을 코 앞에 두고 스스로 비릿해지며 조금씩 기울어질 때, 공감을 얻거나 위안을 받는 질료는 대개 TV 드라마나 대중가요 같은 세속의 유행들과 알코올, 니코틴 같은 탐닉의 중독물질이기 쉽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행이나 중독물질은 1회성 이상의 효용을 지속하지 못하고 그때마다 사르륵 휘발될 뿐이다. 삶에는 사용설명서가 없는 까닭에, 문제가 생기거나 길을 잃더라도 그 상황에 딱맞는 적절한 ‘대처’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삼십대에 들어서 비로소 인생의 어두운 면을 맞딱드리게 된 당신에게 그것을 미화하거나 감상으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그 나이대의 고민과 곤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 한 권이 나왔다. 바로 “설운 서른”(버티고 출판사, 2008)이라는 시집이다.
2. 설운, 서러운 서른
서른은 과연 어떤 순간의 연대기일까. 오십 명의 시인들이 적은 서른이라는 시간의 여행첩을 잠시 들춰보기로 하자. 최승자는 말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 수 없을 때”가 바로 그때라고. 시큰거리는 치통같기도 하며 놀라 부릅뜬 흰 자위의 경악이기도 하다고.
![]() 장석주는 고백한다. 공복과 쓰린 위, 닳아버린 구두 뒷굽, 말없이 걸려왔다가 툭 끊어지는 전화와 같다고. ![]() 송재학의 토로는 눈물겹다. 남은 인생은 부글거리며 썩어가는 강물처럼 느껴지고, 오래된 편지와 노래를 버렸으며, 연애(사랑)와 밥(생활)이 거품과 기억으로 뒤섞여 꺼멓게 덮여간다고. ![]()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대개 아프다. 그 아픔은 서른이라는 나이 자체에서 우러나왔다기보다는 청춘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처럼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거나 제 감정에 갇혀 삶을 버려둘 때도 지난 나이가 삼십대다. 그래서 서른은 두 번 서럽다. 한번은 젊음의 퇴장으로 인해, 또 한 번은 그럼에도 나이먹어 목놓아 울 수 없는 자신으로 인해. 3. 서른, 누군가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할 나이 이 시집은 황인숙의 ‘강’으로부터 시작해 조선희의 ‘좋은 나이 마흔’으로 끝맺는다. 편집자의 의도는 아마도 서른이라는 시간이 ‘강’을 건너는 일과 같으며, 이 불안의 한 시기를 지나면 ‘좋은 나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같다. 그도 그럴것이,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꼭 우중충한 장마 같은 날들로만 점칠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이 시집이 그리는 서른의 독특한 즐거움을 따라가보자. 첫번째로, 황지우의 절창 ‘몹쓸 동경’이다.
“그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 다가간 창은/지복(至福)이 세상에//잠깐 새어들어오는 틈새:영혼의 인화지 같은 것이 저 혼자//환하게 빛난다(중략) 신열은 이 나이에도 있다. 혼자 걸린 독감처럼//목 부은 사랑이 다시 오려 할 때(중략) 지구 위에 저 혼자 있는 것 같아요,//라고 쓴 그대 편지를 두번째 읽는다” 고독은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또다른 고독한 이 앞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집어등(集魚燈)이 된다. 서른이라는 강을 건너가는 데에도 필요한 것은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 통속적으로 말하여 ‘사랑’이다. 사실 그것은 전 생애를 통틀어 한번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다. 그러나 삼십대, 사랑이 다시 도드라지는 것은 당신들이 더 이상 젊지 않기 때문이다. 生이 절정에 올라 빛을 발하고, 그 빛에 눈멀어 서로에게 빠져드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다. 그 특권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다시 찾아온 따뜻한 감정. 그 감정을 예전처럼 무조건 발산할 수만은 없기 때문에 사랑은 삼십대에게 ‘몹쓸 동경’이 되고 만다. 하지만, 사랑없이 살기에는 서른도, 사실 마흔도 너무 젊다. ‘몹쓸 동경’이란 제목의 방점을 ‘몹쓸’에 찍을 것인가, ‘동경’에 찍을 것인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꼭 그것이 연애가 아니더라도 사랑할 대상이 있고, 그(녀)를 아끼고 배려함으로서 서른 살은 비애를 넘어 '우아'에 이를 수 있다.
그 다음은 안도현의 ‘모항으로 가는 길’을 보자.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거야//(중략)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중략)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서 서기만 하면/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회 사이의 소통, 사람과 사물 사이의 조화를 알아간다는 걸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서른 넘어 좋은 것은 스무살 가파른 감정에 예전처럼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명확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였어도 스스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며, 이미 배우고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성숙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점에 있겠다.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부터 ‘이미 바다에 있는 것 같은 설렘’을 느끼는 것도 서른 이후가 주는 뿌듯함이 아닐까. ‘결여’를 메꾸기 위해 떠나는 갈증의 여행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 나의 충만을 위해 떠나는 만끽의 여행이 서른 살 이후에 우리가 배우게 된 것들이다. 강연호의 아름다운 시가 책 뒷부분에서 환하게 글자들을 밝힌다.
“(중략)한때 명도와 채도가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서른은 제 발로 서기 시작하는 나이다. 제 발로 선다는 건 결국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삶을 꾸린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하여 설령 도중에 실수하고 좌절하더라도, 아예 실패가 되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깨닫고 남의 눈에 휩쓸리지 않으며 생활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삼십대란 진정으로 환한 삶의 통로일 수 있다.
4. 시간에 보내는 편지, 설운 서른.
이 시집 제목인 ‘설운 서른’은 안현미의 시 ‘이와 같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보온 밥통의 마른 밥을 푸다가/서른은 온다”는 그녀의 문장처럼 삼십대는 느닷없이 우리에게 닥친다. 느닷없는 것,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감당해야 하는 모든 의무들은 견뎌야 하는 당사자들에게 서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서러운 와중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색깔을 발현하는 것은 의미있을뿐더러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 시집 <설운 서른>은 삼십대라는 예기치 않은 함정에 빠진 이들의 진솔한 내면 토로인 동시에 쓸쓸함과 비애를 딛고 새로운 행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또렷한 푸른 신호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설운 서른>은 삼십대라는 주제로 시인들의 시들을 골라 만든 편집시집이다. 대개 편집시집이란 독자 감성의 가벼운 배설욕구에 부응하거나 편집자의 스타성에 기대 반짝 매출을 노려 기획된 책들이 많았다. 그러나 <설운 서른>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리 삶의 무게를 반듯하게 짊어지려 하는 만만찮은 진정성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좋은 시를 모았다는 것 이외에도 여럿 있다. 세로쓰기 전용 서체인 ‘꽃길체’를 사용해 아름다운 글자체와 시읽기에 걸맞는 반발짝 느린 호흡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편집자의 배려가 돋보인다. 책 디자인 역시 또한 그 흔한 띠지 하나 없이 담백한 구성을 취해 오직 시만으로 독자의 평가를 받고자 하는 출판사의 자신감 또한 엿볼 수 있다.
서른은 김수열의 싯구처럼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스스로 신호를 발해야 하는 아픈 시간이다. 그 날선 통증의 시간을 안으로 삼키고 삼켜 오롯한 성숙의 나이테를 만들어내는 일. 가끔 비명을 쏟아내며 삶의 느닷없음에 눈물짓는 일. 바르고 즐거운 기억을 쌓아 삶의 후반기를 준비하는 일 모두가 서른의 명시되지 않은 과제물일지도 모른다. 그 간단치 않은 삼십대의 허전한 왼쪽 옆구리에 필요한 책을 꼽는다면 바로 이 <설운 서른>이다. 서른을 눈 앞에 둔 당신, 서른을 막 지난 당신 그리고 지금 서른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 감히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