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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책은 14-16세기, 즉 중세의 끝자락부터 르네상스 초기의 '영국'의 식생활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사실 엄청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주의해아한다. 13세기의 내용이 드물게 나오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14-16세기이다. 또한 '서양'이 아니라 100% '영국'에 대한 내용이다. 이 점을 꼭 기억하길 바라겠다. 영국에서 과거에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해 자료를 나열하면서 서술하는 방식의 책이다. 예를 들자면, '기록에 따르면 14OO년 OOO 백작은 1년 동안 소 XXX마리와 염소 XX마리, 닭 XXXX마리, 절인 청어 XXX만큼을 구입했고, 향신료로 어떠한 것들을 구입했으며, 맥주와 포도주를 얼마만큼 구입했다.' 이런 식이다. 제목에는 '음식과 축제'라고 나와있지만, 실제 요리된 음식에 대한 이야기나 축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과거 영국의 각 계층이 어떤 종류의 음식(식재료)들을 얼마나 어떤 구성으로 먹었는가. -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것들(구입처, 법률, 사건사고, 하인들, 식기, 조리기구 등)의 대략적 정보. 목차에 따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식량을 어디에서 구했나? → 이 파트의 내용은 목차의 소제목과 잘 일치한다. 2. 촌락인의 음식 → 가난한 촌락민과 부유한 촌락민이 어떤 종류의 음식(식재료)을 먹었는지. 그리고 영주와 촌락민 간의 몇몇 풍습이 어떠했는지. 3. 도시민의 음식 → 도시의 시장이 어떤 상품을 취급하고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상인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률들. 4. 젠트리의 음식 → 가난한 수도사들, 각 규모별 귀족들이 어떤 음식(식재료)들을 먹었으며, 손님들에게 어떤 음식(식재료)을 냈는지. 그들이 연간 소비한 물량은 얼마나 되었으며, 계급에 따라 어떻게 차등화된 식재가 지급되었는지. 소비물품이 기록된 장부를 기준으로 이야기. 5. 불순물 섞음질과 영양 →주로 식재료 판매에 관련된 법률들과 사건들. 당시 사람들이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을지에 대한 약간의 고찰. 6. 식사 예절 → 당시의 식사 시간과 식탁을 셋팅하는 과정. 사용한 식기와 하인들이 시중을 들던 모습. 식사의 준비와 주방에 대해. 그리고 아주 짧게 식사 매너에 대해. 7. 축제 → 왕이나 귀족의 연회의 모습. 어떤 요리가 나왔고 어떤 코스로 구성되었는지. 연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굳이 이런 내용을 적은 이유는, 이 책은 기대했던 내용과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중세, 늦어도 13세기 정도의 음식에 대한 내용을 기대했으나 이 책은 그보다 너무 뒤의 이야기였다. 사실상 15세기 정도가 메인이다. 또한 영국에 한정되었으며, 목차의 소제목들과 상당히 다른 내용들이 마치 대학 강의 중에 교수가 다른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내는 것처럼 튀어나온다.(이런 점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지만 목차만 보고는 알 수가 없었다.) 식재에 대한 내용은 나오나 요리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면 이런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이런 모든 것을 감안하고 읽는다고 했을 때, 이 책은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국내에는 특정 주제와 관련된 중세 유럽에 대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영국의 중세 후기부터 르네상스 초기의 영국인들의 식생활에 대해서 전체적인 틀을 잡아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사료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신뢰도도 높다. 예를 들어서 인터넷에서 '베이컨과 치즈는 천한 음식이었다.'라는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귀족 집안에서 상당량의 치즈를 구입했고 베이컨 또한 소모했음을 알 수 있다. 야채 또한 천시되었던 것은 사실이라고는 하나, 의외로 '고기만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원했던 시기의 정보는 아니라 시대적 오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내용면에서는 구입 의도와 달랐지만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은 심각한 문제를 한 가지 갖고 있는데 바로 번역이다. 조금 과장하면, 이 책에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된 문장은 단 한 문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 문장을 한국어 문장 구성을 생각하지 않고 직역한 느낌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번역하고 한 번이라도 스스로 제대로 읽어봤다면 고칠 수 밖에 없는 문장들이었다. 물론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의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돼서 문장의 의미를 다시 '번역'해보아야 하는 일이 상당히 자주 벌어지지만 대부분은 문제 없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다른 뜻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는 문장이 최소한 5~10문장. 그리고 아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번역된 문장이 한 두 문장 정도 있다는 것은 출판사와 번역자가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아래에는 이 책에 쓰여진 '일반적인' 문장을 두 개만 인용해보겠다. "전통적 조리법은 중세 음식이 준 중요한 인상을 적절하게 집약하여 나타낸다." "비록 구겨지고 다림질하지 않은 식탁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칭찬 받을 것 같아 보이지 않고, 주름을 잘 펴서 간수하는 것이 식탁보를 다림질하여 보관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이지만, 식탁보를 다림질하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단어의 번역 또한 아쉽다. 예를 들어 같은 문장에서 '하인'과 '시종'이란 단어가 나열된 적이 있다. 아마도 원문에서 이 둘은 다른 단어였던 것 같은데, 대체 한국어로 하인과 시종이라고 쓰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영문 단어를 괄호에 적어두기라도 하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의외로 '한국식'으로 번역을 해서 원 단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종종 있어서 아쉽다. 단위 또한 문제다. 단위를 영문으로 제대로 써두지 않았으며, 한국인이 알 수 있게 풀이하지도 않았다. 갤런이나 파운드와 같은 단위가 그대로 쓰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보면서 계산을 따로 해야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퀘터'라는 괴상한 단위이다. 아마도 quarter를 말하는 것 같은데, 대부분은 영문명이 쓰여있지 않으며, 어떨 때는 quart라고 써있고 어떨 때는 quarter라고 써있다. 문제는 이 책에 나오는 '퀘터'는 두 종류란 거다. 하나는 부피의 쿼터이다. 배스킨 라빈스에서 먹는 그 쿼터 말이다. 다른 하나는 무게를 이야기하는 퀘터이다. 한국인 중에서 '보리 20퀘터'라고 하면 알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영문 단위조차 적혀있지 않아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게 유추해냈다. 가끔은 (배스킨 라빈스 같은) 부피인지 곡물 무게를 말하는 건지 아리송한 부분도 있다. '보리 36부셸' 같은 단위도 정말 불친절하지만 퀘터보다는 나았다. 이 책에는 부피와 무게가 매우 자주 나온다. 그 중 반 정도를 차지하는 것이 부셸과 퀘터(곡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고 쳤을 때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우며 유익한 책이다. 무엇보다 국내에는 자료가 너무 적다.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들을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