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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 들고 나온 오후엔 세종문화회관 야외 테라스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인왕산을 보거나 그 뒤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광화문 뒷골목, 허름한 밥집에 앉아 단 밥을 먹고 기타가 있는 맥주집에서 포크가요를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혹은, 산에 다녀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순전히, 나의 선배 탓이었다. 광화문에 있는 높은 빌딩에서 이십 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그는 산과 바다 밖에 모르는 사람. 그는 주말이면 반드시 산 혹은 바다에 있었다. 그가 어느 날 내게 사진을 메일로 보낸 적이 있다. 산비둘기 열댓 마리가 그의 어깨와 손등 위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뒤로는 운무가 잔뜩 낀 산 정상에서의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제목은 북한산이었다. 그 뒤로 서울의 산을 종종 찾아다녔다. 북한산, 인왕상, 관악산…. 멀리 가지 않아도 산은 산이어서 좋았다. 그러고는 그가 그랬듯 광화문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셨다. 내게 있어 광화문은 그런 곳이다. 책을 읽다가 고개 들어 산 한번 쳐다보게 되는 곳, 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다시 찾아드는 곳. 주말엔 서점에서 시집을 한 권 사 들고 궁으로 간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어디로든 가도 나오는 서울의 궁들은 주말 오후를 즐기기에 만족스럽다.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오늘은 덕수궁으로 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현문(惟賢門) 앞의 계단에 앉아 시집을 펴 든다.
벽돌을 쌓아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유현문은 공간을 구획 짓기 위해 만든, 정관헌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예쁜 꽃담 사이의 문이다. 생김과 문양도 어여쁘고 이름도 좋고 공간도 고즈넉해 좋은 곳. 거기 앉아 소리 내어 시를 읽다 보면 시간이 고요히 흘러간다.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는다.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연인들이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다닌다. 믿지 않아야 더 좋은 말도 있다.
늦은 오후의 노란 햇살이 노란 은행나무 늘어선 정동길을 가득 채운다. 길이 온통 노랗다. 오후 산보를 즐기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점심시간에 나온 학생들도 보인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가니, 거기에도 오후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인다. 도시락을 싸 들고 나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점심을 먹거나 미술관 계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나무가 무성한 야외 뜰을 산책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바쁜 가운데도 여유를 즐길 줄 아는 마음을 배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1927년에 경성재판소로 지어져 1989년까지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다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르네상스식 건물이 고풍스러워 마음도 편안해진다. 정동제일교회, 이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은 백 년이 넘었다.
정동길의 운치를 더하는 교회당을 둘러보다가 계단에 앉아 시집을 읽다가 하늘을 본다. 하얀 창틀의 창문으로 가을볕이 교회당 안까지 깊이 파고드는 동안 은행잎은 더 노랗게 물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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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인 나는 서울 출신들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약간의 열등감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정서를 같이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일 수 있다. 살다보니 사람들을 출신에 따라 선입감을 가지게 되는데, 특히 가장 젠틀하고 깍쟁이라고 생각한 부류가 강남에 있던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일 것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강북 북촌 토박이는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이영미씨가 제대로 된 강북 북촌 토박이일 것이다.
전작인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비슷하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힘을 빼서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소개되는 노래도 많이 줄인 느낌이며, 국민 가수라고 불리우는 80년대의 조용필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과감하게 중요한 이야기만 한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 이후에 대해서도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 훨씬 풍성한 느낌이다. 그리고 정태춘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대해서도 여전히 느껴진다.
몇가지로 이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보자면, 50년대와 60년대의 경우에는 미국 모방이 극심한 시대였고,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시기였나 보다. 그리고 미국을 꿈꾸는 서울이 주요 부분이 아니었나 한다.
70년대와 80년대에는 이미 산업화된 청년들이 나타나서 좀더 세련된 포크세대가 있는가 하며, 대학 문화인 종로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식민지 시대의 북촌과 남촌에 대한 구분도 재미있지만, 종로와 명동의 차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같은 촌놈의 경우에는 그곳이 그곳인데 역시 다른가 보다.
70년대의 산업화에 의한 노동자의 문제를 빠지지 않고 이야기한다. 화려한 서울 이면에는 영등포역으로 대변되는 노동자들의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서울에 도착한 것은 영등포역이었고, 그곳에서 친척분이 사는 광명시로 간 적이 있었다. 80년대 초였을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제 강남과 강북의 문화로 바뀌여서 대변되고, 강남의 아이들은 아파트의 아이들이고 또 다른 문화를 지닌 세대들이다. 개인적으로는 한때 예술은 전당이 지어지고 있는 서초동에서도 일부 살았고, 개포동에서도 일부 살았지만, 역시 서울은 낯선 곳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한강을 건너 북으로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일이다.
여기에 추천한 가요114 사이트에 들어가면 옛 노래를 들어 볼 수 있다. 책과 음원을 같이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노래를 들으면서 난 참 편향적이구나 생각을 해 보았다. 예전 노래는 막걸리판에서 주로 불렀던 노래여서 익숙하기는 하지만 즐기지는 않았고, 70년대에 와서야 안심이구나 하면서 즐겁게 노래를 즐길 수가 있었다. 다시 90년대 이후에 가서 힙팝등의 노래에서 나하고는 안 맞구나 생각을 해 보았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도 좋지만 <한계령>과 <북한강에서>가 참 정서에 맞는 노래이구나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