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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대중담론에 의해 가장 왜곡된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유목주의에 대한 대중담론들은 들뢰즈의 철학을 인스턴트 음식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들뢰즈의 급진성을 보수성으로 우회시키고, 혁명성을 광고 슬로건으로 전락시키는 짓이 국내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신지영의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은 이런 왜곡된 들뢰즈의 사상을 바로잡으려는 소장학자의 노력의 산물이다. 저자는[들뢰즈에게 있어서의 윤리학과 미학 : 도가 윤리와 비교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들뢰즈 연구가다.
"10년 전에는 '노마드'가, 그 이후에는 '차이'와 '타자'가, 어떤 때에는 '사건'과 '의미'가 유행했는데, '노마드'는 유비쿼터스로 상업화되고, 단순히 여행을 많이 하는 정처 없는 삶의 양식인 것처럼 세속화되었으며, '차이'는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자는 정치적 모토로 변질되었다. 이 모든 것이 들뢰즈의 개념들에 대한 철저한 오해이다."(21쪽)
책은 들뢰즈 존재론의 축을 이루는 차이, 의미, 욕망의 3부로 구성되어 있고, 들뢰즈로 말할 수 있는 7가지 문제들이란 바로 들뢰즈 철학의 역사적 의미, 소수성과 여성주의, 이미지의 잠재성, 삶의 윤리, 해학과 아이러니, 자본주의와 가족, 괴물성과 미학을 말한다.
"들뢰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수성'이다. 차이에서도, 의미에서도, 욕망에서도 그 기본적인 방점은 복수성의 유지에 찍혔다. 들뢰즈가 안티-헤겔리안임을 자처한 것도 그의 복수성이 가짜라는, 즉 진정한 복수성이 아니라는 데 있었고, 플라토니즘의 전복도 그의 이데아가 여전히 모방과 닮음이라는 동일성에 묶여 있기 때문에 채택된 과제이며, 베르그송의 기억에 대해 토를 단 것도 그것이 여전히 개인의 '동일성'을 보장해 주는 기제이기 때문이고, 칸트의 선험성이 미완이라고 말한 것도 그의 선험이 진정한 복수성을 생산하지 못하고 감각적 경험을 베낀 조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철학사가로서 이렇게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또한 비판하고 갈라선 지점은 시종일관 복수성과 무한의 문제에서였다."(28-9쪽)
개인적으로 저자의 의견에 크게 동감하는 것과 크게 반대하는 것 각각 한 가지씩이 있다. 동감하는 것은 들뢰즈의 철학이 선문답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반대하는 것은 무정부주의를 허수아비로 삼아 들뢰즈의 윤리학의 행동주의를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는 저자의 무정부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들뢰즈의 윤리와 미학은 무정부주의적이다. 저자가 박사논문에서 들뢰즈의 철학과 도가 사상을 비교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저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무정부주의는 윤리적 방종을 의미하지도 않고, 국회의사당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그런 행동주의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부단히 전환하라는 형이상학적 실천강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