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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사회적 정의)을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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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계속 읽는 계기가 된 책이 '방황하는 칼날'이었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 유명한 소설가로 알고있다. 그리고 그는 공학부출신 엔지니어이다. 공학도가 이런 소설을 쓰다니 참 흥미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소설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나쁜짓을 일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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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계속 읽는 계기가 된 책이 '방황하는 칼날'이었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 유명한 소설가로 알고있다. 그리고 그는 공학부출신 엔지니어이다. 공학도가 이런 소설을 쓰다니 참 흥미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방황하는 칼날'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소설이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나쁜짓을 일삼는 청소년들인 '아쯔야'나 '가이지'의 범죄의 칼날인줄 알았다. 다 읽고나니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경찰의 칼날이었던 것이다. 법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나쁜 짓을 저지른 심지어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가이지'를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가족이었지만 '가이지'에게 복수를 하려는 '나가미네 시게키'를 죽여야 하는 경찰의 칼날이 '방황하는 칼날'이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나쁜 짓만 일삼던 '가이지'와 '아쯔야'가 평범한 회사원 '나가미네 시게키'의 딸 '에마'를 납치해서 흥분제나 각성제를 투여하고 유린하던 끝에 약물중독으로 '에마'를 죽이게 된다. 나가미네는 몇년전 아내를 잃고 딸 에마와 둘이서 살고 있다. 에마는 금년에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날은 '불꽃놀이'를 보러갔다가 귀가하는 도중에 가이지 일행에게 납치되었던 것이다.

며칠 뒤 나가미네의 딸 에마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가이지와 아쯔야의 중학교 동창으로 에마를 납치할 때 차를 운전했던 마코토는 에마가 죽자 많은 고민끝에 나가미네에게 딸을 죽인 범인이 가이지와 아쯔야라고 알려준다. 아쯔야의 아파트 주소와 우편함에 아파트 열쇠를 감춰두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준다. 아쯔야는 부모에게 대학입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혼자서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있다. 그 아파트가 가이지와 아쯔야의 범행 아지트이기도 하다. 밀고의 내용을 반신반의하던 나가미네는 아쯔야의 아파트에 가게된다. 거기서 가이지와 아쯔야가 에마를 유린하던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는 참을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가이지와 아쯔야는 자신들이 강간했던 장면들을 전부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에게 자랑거리 겸 피해자들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마침 그때 아쯔야가 아파트로 돌아오게 된다. 극도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나가미네는 마침 식탁위에 있던 칼로 아쯔야를 죽이게 된다. 죽이고 나서도 분을 다풀지 못하자 그의 성기까지 도려내고 온몸에 난도질까지 했던 것이다. 아쯔야를 죽인 순간 나가미네는 피해자의 가족에서 '범죄자'로 바뀌게되고 그때부터 경찰과 매스컴의 추적을 받게 되었다.

아쯔야를 죽일때 '가이지'가 나가노현의 팬션으로 도망갔다는 정보만 가지고 나가미네는 가이지를 찾기 위해서 나가노현으로 가게된다. 나가미네를 쫓는 경찰 '히키츠카'반장과 경력형사 '마노'와 신임형사 '오리베'는 자기들이 나가미네를 잡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진정한 정의인지 고민한다. 특히 오리베는 경찰의 일이 이런 것인가하는 회의를 가지게 된다. 히키츠카 반장도 이전에 '고등학생'이 친구를 잔인하게 때려 죽인 사건을 담당했다가 범인인 고등학생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게 아니라 '경찰'에 잡힌 것이 분하다는 것을 보고는 경찰이 하는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미성년자는 그렇게 친구를 사소한 이유로 때려죽여도 6년정도 징역이 구형되지만 대부분 3년 정도이 구속기간이 끝나면 집행유예로 나오게 된다고 한다. 미성년자는 그 이름이 신문이나 매스컴에 공표가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 대한 보상이나 관심은 없고 미성년자인 범죄자의 보호와 갱생에만 소년법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년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소설 속에서 나가미네의 '편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경찰에 자신이 '아쯔야'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에마를 유린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가이지와 아쯔야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쯔야를 충동적으로 죽였다. 그리고 소년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자기는 이제 자신의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에마가 죽고난 지금 가이지에 대한 복수만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일이라고 했다. 나가미네의 편지는 메스컴에 의해 전문이 공개되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다.

아쯔야의 부모와 가이지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들이 그런 나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리가 없다고 한다. 아쯔야의 어머니는 나쁜 '가이지'의 영향이었다고 하고, 가이지의 어머니는 죽은 '아쯔야'가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마코토의 아버지도 어떻게 하든 자신의 아들에게 아무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나가미네는 나가노현의 펜션들을 전전하지만 가이지를 찾지 못한다. 우연히 묵었던 펜션 '크레센토'의 딸 와카코에게 정체가 발각되지만 오히려 그녀는 나가미네를 자신의 아파트에 숨겨주게 된다. 와카코는 결혼후 어린 아들을 남편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다가 부주의로 미끄럼틀에 어린 아들이 혼자서 놀다가 죽게된다. 어린 아들이 죽은 것이 남편탓이라는 원망이 남아 있어서 였다. 그 어린 아들의 오래된 사진을 나가미네가 친절하게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로 고쳐준다. 어쨌든 와카코는 나가미네의 딸을 잃은 심정을 이해하고 그를 숨겨줄 뿐 아니라 가이지를 찾는데도 도움을 준다. 경찰과 거의 동시에 나가미네는 밀고자로 부터 폐업된 '펜션'에 '가이지'가 숨어었다는 연락을 받게된다. 그 펜션을 찾았지만 경찰이 먼저 와 있어서 그는 그 근처 전철역으로 가게된다.

경찰이 그 펜션을 덥쳤지만 가이지는 없고 '유우카'라는 어린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전에 가이지와 아쯔야에게 강간당했던 피해자 였지만 가이지의 협박으로 가이지의 잠적에 동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협조거부로 가이지의 체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이지는 드디어 마코토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돈'이 없으니 빌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마코토와 우에노역에서 저녁 8시에 만나기로 한다. 마침 다카자키시 레스토랑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나가미네는 와카코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권유로 자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로 가이지가 저녁 8시에 나가노역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얻게된다. 나가미네는 그녀에게 자수하겠다고 하고는 나가노역으로 가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설은 슬픈 결말로 끝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서두에서도 얘기 했듯이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결말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와카코는 나가미네가 가이지를 죽여서 '복수'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나가미네'의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이지'같은 불량배때문에 '나가미네'의 인생이 '감옥'에서 허비된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일이고 또한 죽은 나가미네의 딸 에마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가미네가 혼자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았고, 그 삶은 에마가 없더라도 보다 가치있는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밀고로 오히려 더 슬픈 결말로 이끌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결말은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방황하는 칼날의 주제가 소년법에 대한 문제제기이기 때문에 그런 결말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총을 들고 나가미네(전에 엽총 동아리 활동도 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서 엽총을 가지고 있었다.)가 엽총을 들고 나타날 경우 오리베(신임형사)는 그를 자기 총으로 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고민한다. 자신은 도데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경찰이기에 범법자를 잡아들이는게 일이다. 그러면 악을 단죄하는 것인가? 오히려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법범자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보복을 하려는 누군가로 부터 국가가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자신들이 정의의 칼이라고 믿을 수 있는가? 정말로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인가? 올바른 방향을 견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 칼날은 정말로 악을 단죄하는 힝믈 가진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오리베 형사의 고민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분노한 피해자 가족이 '범인'을 때릴려고 했던가 어쨌든 범인에게 다가가자 어떤 형사가 그 피해자 가족(아마도 중년의 아주머니였던 것으로 생각된다)을 이단 옆차기로 신나게 발로 차서 거꾸러 뜨린 뉴스를 본적이 있다. 소설과는 다르게 그 형사(우리나라)는 자기의 칼날이 언제나 온전히 정의의 칼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우리나라 소년법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법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딸을 가진 아버지의 입장에서 '나가미네'의 행동과 고민이 참으로 공감되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시되는 것 같은 법 현실이 좀 더 공개적으로 토론되어서 '성범죄(특히 아동대상)'나 강호순 같은 범죄자의 얼굴은 공개되어도 좋을 것 같다.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왜 범인들의 '얼굴'을 가려주는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피의자 신분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범행현장을 재현할 때는 굳이 얼굴을 가려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법도 인간이 만든 제도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와 시스템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러니 법도 계속 개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무원들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공무원들은 업무수행에 대한 근거를 남겨야 하는 입장이 있다.) 규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칼날이 펜대가 정말로 정의를 집행하는 최고최선의 도구인가를 늘 고민하는 모습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진정성을 가지고 고민하는 정치가, 법조인, 공무원이 늘어날때 이 사회가 좀 더 살기좋은 사회가 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k*****a 2010.07.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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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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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조금은 민망하고 어찌보면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싶은 소재. 성폭력.   그 무거운 소재를 피해자의 부모의 입장에서 아주 잘 서술하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 같아도 저런 상황이라면 절대 가해자를 가만 나두지는 못했으리라. 물른 살인 자체가 죄악이고 인간이 인간을 단죄해서는 안되지만 사람이고 부모인이상, 아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 저런 일을 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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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조금은 민망하고 어찌보면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싶은 소재.

성폭력.

 

그 무거운 소재를 피해자의 부모의 입장에서 아주 잘 서술하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 같아도 저런 상황이라면 절대 가해자를 가만 나두지는 못했으리라.

물른 살인 자체가 죄악이고 인간이 인간을 단죄해서는 안되지만

사람이고 부모인이상, 아니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 저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있을수는 없을 것이다.

 

주인공은 흥분하지 않는다. 아주 점잖다. 하지만 복수의 칼날을 가며

줄곧 가해자의 행적을 뒤쫒는다.

 

충분히 공감하는 행동이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칼날이다.

 

추천작 중 하나.

e****o 2010.09.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