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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 사회는 에스키모들에게도 석고대죄해야한다.
"미국 백인 사회는 에스키모들에게도 석고대죄해야한다." 내용보기
<Beware, Pirates!>에 나온 미닉이란 이름이 분명 이 책에서 따왔을 것이다. 이젠 서구의 동화들도 탐험가, 해적, 군인들을 더 이상 미화하지 않고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괴롭힌 비열한 양아치, 무뢰한으로 그리는구나. 진전은 있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미닉의 일생을 통해 20세기 초의 백인 사회의 야만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 때 이렇게 무지하고 야만적이었던 백인남성들의 교만
"미국 백인 사회는 에스키모들에게도 석고대죄해야한다." 내용보기

<Beware, Pirates!>에 나온 미닉이란 이름이 분명 이 책에서 따왔을 것이다. 이젠 서구의 동화들도 탐험가, 해적, 군인들을 더 이상 미화하지 않고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괴롭힌 비열한 양아치, 무뢰한으로 그리는구나. 진전은 있지만, 그걸로 충분할까 

미닉의 일생을 통해 20세기 초의 백인 사회의 야만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 때 이렇게 무지하고 야만적이었던 백인남성들의 교만함은 지금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비서구사회를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한편 이 시기에는 전세계 어디를 가나 같은 인종에게도 마구 대했을 것이고, 조선 양반이 노비를 대하던 태도도 덜 독살스러웠을 것 같지는 않다. 인류의 의식은 한꺼번에 다같이 진전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딜 수밖에 없나 싶다.

책 읽는 내내 양산형 이명박과 트럼프들이 떼로 나와서 비열하게 구는 탓에 끊임없이 화가 치밀었다.

( ) 안의 글은 개인적인 생각.

북극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1897년 북극 에스키모 여섯 명을 데리고 미국 뉴욕으로 온다. 어른 넷, 아이 둘. 감기나 독감에 저항력이 없었던 에스키모들은 가장 어린 남자아이 미닉과 청년 우이사카사크만 빼고 곧 폐렴으로 사망했다. 우이사카사크는 북극으로 돌아갔고 아빠를 폐렴으로 잃은 미닉은 뉴욕에 남았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은 미닉 앞에서 미닉 아빠를 에스키모식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다. 미닉은 자연사박물관 직원 집에 입양되어 영어를 배우며 자라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미닉은 아빠 및 다른 에스키모들의 시신이 땅에 묻힌 것이 아니라 해부되었고 그 유골을 박물관이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장례식은 가짜였던 것이다. 이들의 시신은 자연사의 일부였다. 미닉 아빠의 뇌는 키수크의 뇌라고 꼬리표가 붙어 실험실로 갔다. 미닉은 아빠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무시당하고 북극과 미국 어디에서도 소속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이 책은 그 미닉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그 역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저자 켄 하퍼는 캐나다 태생으로 에스키모 거주 지역 누나부트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캐나다 정부의 영어전용정책에 의문을 갖고 에스키모 언어인 이눅티투트를 배웠다. 그리고 에스키모 사람과 결혼한 후 장모로부터 미닉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북극 에스키모들 사이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미닉의 삶을 추적하여 기록한 책을 1986년에 자비 출판한다. 이 때 잠깐 화제가 되었으나 자연사박물관은 계속 무시하고 거짓말로 일관하여 이대로 미닉의 이야기는 묻히는 듯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한 번 이 책이 크게 화제로 떠오르고 에스키모들의 시신을 반환하라는 여론이 들끓자, 1993년에야 유골을 반환한다. 에스키모들은 뉴욕으로 떠난 지 97년 만에 북극으로 돌아왔다.

97.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기에 거의 100년이 걸렸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한 잔다르크는 잔다르크의 늙은 어머니의 노력 끝에 25년 후에야 명예회복되었다. 80년 광주, 형제복지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한 세대가 넘도록 지긋지긋하게 오래 걸린 사례들을 생각하다보면, 어떤 싸움이든 녹록치 않겠구나, 어금니 질끈 물고 긴 싸움을 준비해야겠구나 싶다.

 

- 북극 에스키모들은 빙하와 바다로 가로막혀 다른 지역과 완전히 단절된 채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들은 19세기 초에 백인들과 처음 접촉했는데 세상에 자신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놀랐다. 200명 정도의 인간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다.

 

평생 200명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삶. 1년의 네 달은 해가 뜨지 않는 겨울. 1년의 네 달은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네 달 동안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칠흑같은 밤, 그래도 달빛은 있었겠지. 보름날에 눈밭은 꽤 훤했을 것이다. 종종 오로라도 나타나 약간의 밝기를 주었을 것이다. 고래기름 등잔도 있으니 생활 공간이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을 듯. 그러나 우울함은 떨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극의 날씨에 적응된 에스키모들에게는 뉴욕의 날씨가 오히려 견디기 어려웠다.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습기 때문에 체감온도가 더 낮았다. 극지방은 겨울의 습도가 낮아 체감온도가 오히려 더 높다. 일곱 살 때 북극마을을 떠난 미닉은 15년간 살았던 미국에서 내내 힘들어하다가 성인이 되어 북극으로 돌아갔더니 기후가 몸에 잘 맞았다고 말한다.

 

 

- 뉴욕 에스키모의 유골 전시에 대한 사과와 반환이 이루어지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에스키모 문화를 이해하면서 영어에 능통한 켄 하퍼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문제가 재점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영어 구사라는 발화권력을 통해 영어권 청중들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역사의 뒷길로 묻히고 마는가? 서발턴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켄 하퍼같은 존재가 없이 서발턴이 직접 말할 방법은 없는가?

 

- 켄 하퍼의 치밀한 취재와 글쓰기에 경의를 표한다. 사료의 무더기와 구전과 기억 속에서 100년 전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 미닉은 뉴욕에서도 완전히 혼자인 이방인이었고 북극에서도 역시 완전히 혼자인 이방인이었다. 그는 어디에 소속될 수 있었을까? 답이 없지는 않다. 이방인들의 커뮤니티가 있으면 된다. 이쪽 사회, 저쪽 사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할 수 없다면 자신같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사회에 속할 수 있다. 물론 첫 이민자들은 생경함을 감내해야하겠지만, 그래도 무리지어 이주했다면 그 역시 공동체로 기능할 테니까 미닉 같은 절대 고독의 상황은 아니다. 국제적인 대도시에는 이미 각 국적의 이민자 공동체들이 자리잡고 있다. 모어를 공유하고 외국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면서 동병상련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미닉은 뉴욕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에스키모말로 대화할 수 없고, 북극에서는 어느 누구와도 영어로 대화할 수 없었다. 언어를 빼앗긴 경험을 두 번이나 겪고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른이 된 미닉은 주변의 누구도 에스키모말을 하지 못하여 에스키모말을 전부 잊고 영어를 배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절대 고독, 언어의 사막에에 다시 한 번 내던져졌다. 그는 영원히 고향을 갖지 못하고 헤매도록 저주받았다.

 

 

 

- 거의 20년간 북극에 있었지만 에스키모말을 하나도 배우지 않은 피어리를 비롯한 오만한 미국인들 가운데, 에스키모말을 익혀 능통하게 구사했던 유일한 사람은 흑인 매튜 헨슨이었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튜 헨슨은 에스키모 우타크, 욱쿠야크, 이기안우아크와 함께 피어리의 북극 여정에 참여했다. (만일 피어리가 정말 북극점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면) 에스키모들돠 매튜 헨슨도 똑같이 그 공을 나눠 가져야 한다.

 

- 에스키모들은 처음에 박물관의 지하에 수용되었다. 뉴욕의 가을은 에스키모들에게는 견디기 힘들만큼 무더웠다. 곧 여섯 명 다 폐렴으로 입원했다. 미닉의 아빠 키수크가 가장 먼저 사망했다. 퇴원한 나머지 다섯은 오두막에 수용되었고 매우 지루하게 지내야 했다. 다음 해 이른 봄에 아탕아나가 사망했고 이어 눅타크, 아비아크도 사망했다. 우이사카사크는 돌아가기로 했고 미닉은 남았다.

미닉의 삶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에 미국의 양부모가 미닉을 사랑하고 잘 돌보아주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인생에 온기는 있었던 것이다.

미닉은 종종 뉴욕의 신문에 등장했다. 미닉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음울한 극지대 서식지를 떠나왔으니 얼마나 운이 좋으며, 미국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를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어떤 기사는 한 술 더 떠서 미닉은 이제 미국시민이다. 이제 맥킨리 대통령은 원하기만 한다면, 뉴욕 주 트레몬트에 미닉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린란드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미닉이 14세 때 사랑하는 양어머니가 사망하고 양아버지는 몰락했다. 미닉은 양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았다. 17세가 되던 해 미닉은 다시 한 번 뉴욕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박물관이 미닉에게 가짜 장례식을 치러주고 아버지의 유골을 빼돌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미닉이 아버지의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뉴스가 실렸다.

미닉은 북극에 돌아가면 자신이야말로 북극점 정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인터뷰를 했다. 에스키모들의 노하우와 자신이 배운 토목학, 지리학 정보를 결합하면 누구보다도 성공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 계획과 미닉의 총명함에 감명받은 맨해튼대학교 총장인 브라더 피터는 무료 대학 입학을 제안했다. 안타깝게도 미닉은 맨해튼대학에 적응하지 못했고 가출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면서 그가 쓴 편지들이 언론에 알려지고 미닉을 함부로 데려오고 버린 피어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자, 피어리 부인은 피어리에게 악재가 되는 미닉을 북극으로 치워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어리 부인과 피어리북극클럽에서는 미닉에게 각서를 쓰게 한 뒤 북극행 배에 태운다.

뉴욕에서 떠나기 직전 미닉은 뜻밖에 한 치과의사로부터 치과용 기구세트와 응급용품 상자를 선물로 받았다. 북극에 도착한 미닉은 하선하기 전, 길고 긴 리스트의 각종 생필품과 연장, 총칼 등을 대량으로 받았다는 서류에 서명해야 했다. 피어리가 미닉을 자애롭게 대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치과 구급세트 하나만 달랑 들고 배에서 내렸다. 입고 있던 가벼운 스웨터, 얇은 외투, 바지, 목 짧은 양말, 일상화, 그리고 손에 든 치과 구급세트가 그의 소지품의 전부였다. 입고 있던 옷은 북극의 기후에 맞지 않았다. (어쩜 옷 한 벌, 책 한 권 주지 않고 북극 마을에 맨몸으로 내던졌을까. 거대한 북극 탐사선의 규모로 보면 미닉에게 약간의 생필품을 챙겨 주는 알량한 호의는 푼돈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책이라도 몇 권 있었으면 지적인 갈증을 약간이라도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닉을 기억하고 있었고 반겨 주었다. 친척인 속카크의 텐트에서 지내면서 빠르게 말과 사냥기술을 배워나갔다. 아직도 북극 에스키모 노인들 중에서는 미닉이 선조들의 방식을 얼마나 빨리 익혔는지 기억하며 경외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서부 그린란드 출신의 선교사, 목사 부부와도 친구가 되었다. (미닉이 북극 마을에서도 다정한 대우를 받았다는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가 성장기에 익힌 영어는 한 마디도 쓸 수 없었고, 영어로 소통하고 싶은 그의 갈증도 컸다. 겨우 1년만에 그의 영어는 많이 서툴러져있었다.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만큼 모어를 다시 익힐 때까지 괴로웠던 삶의 기억들은 그의 내면에서 곪으면서 고독을 먹고 자라나 마침내 사실과 환상의 터무니없는 조합으로 변해갔다. 모어를 충분히 말할 수 있게 되자, 미닉은 고향 사람들에게 미국 생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부잣집에 입양되었고 25세가 되면 유산을 받기로 되어 있고, 치과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다가(치과 기구 세트가 그가 가진 유일한 소지품이었으므로 고향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었다) 동물들의 이빨을 연구하려고 박물관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아버지의 해골과 마주쳤다.. 그리고 박물관에 복수를 하기 위해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무뢰한, 무법자로 살다가 극적으로 북극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고향 사람들은 미닉의 말을 믿었다.

미닉은 아르난우아크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얼마 후 헤어졌다. 아르난우아크는 잠을 자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섹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잠자는 것을 좋아해서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미닉의 아내가 하루 종일 대책 없이 잠만 자는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이 비극적인 책을 읽는 도중 유일하게 한 번 웃었다.)

언어와 사냥술을 익혔지만 미닉은 영어를 쓰는 탐험가들과 어울린 경험을 하고 나자 미닉은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결국 다시 미국으로 가고 싶어졌다. (자신이 제대로 설명만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줄 것이라는 미닉의 순수한 믿음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뉴욕에서 교육을 받고 문명에 적응했던 미닉은 단조로운 북극 생활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1915년 여름, 가까스로 떠 있지만 난파선과 다름없던 조지 클루이트 호가 입항했다. 배 상태를 보고 많은 백인 탐험가들과 선원들은 타지 않았지만, 배가 위험하다는 것을 모른 미닉은 배에 올라 몇 없는 승객과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도 정착할 곳은 없었다. 늘 불안하고 불안정했으며 다시 북극으로 돌아가려는 충동 또한 있었다.

코네티컷 강과 홀스 스트림 사이의 작은 자치국인 인디언 스트림 공화국이 있던 곳은 이제 피츠버그라고 불린다. 미닉은 이곳으로 와서 벌목꾼으로 일했다. 그리고 그 지역 농부 애프턴 홀과 친해져 그 집에 머물며 농장일을 같이 했다. 미닉은 홀 가족과 지내는 생활에 만족했고 행복을 느껴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 그러나. 때는 1918년이었다. 보통 감기에도 저항력이 약했던 미닉이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을 피해갈 수 없었고, 불과 며칠 만에 사망했다. 미닉의 이야기는 50년 동안 북극 에스키모 마을에서 전설처럼 전해졌지만, 아무도 그의 최후를 확신하지 못했다. 저자 켄 하퍼는 미닉의 여정을 찾아헤매다가 피츠버그의 인디언 스트림 공동묘지에서 미닉을 발견한다. 어린 소녀였을 때 미닉을 보았던 켄 하퍼의 장모도 함께였다. 애프턴 홀의 가족은 여전히 미닉의 작은 묘지를 돌보고 있었다.

 

 

- 미닉은 뉴욕의 기후가 맞지 않아 자주 아팠고 폐렴에도 자주 걸렸지만 운동 능력이 뛰어나 여러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또 언변이 좋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잘 샀고 언어 능력도 빼어났던 것 같다. 에스키모말을 완전히 잊고 나서 성인이 되어 다시 북극에 돌아갔을 때 처음엔 힘들었지만 결국 다시 말을 익혔고 솜씨 좋게 사냥 기술도 습득해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나는 미닉이 북극에 돌아가서 상인이나 길 안내인 같은 메신저 역할을 하며 지낼 줄 알았다. 전통적인 사냥을 익혀 생활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 에스키모들에게는 미닉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었다. 고전적인 에스키모들의 전설의 원형은 이렇다. 한 어린 고아가 악의에 의해 마술의 땅으로 휩쓸려간다. 그 고아는 개들이 남긴 찌꺼기를 먹으며 캄캄한 겨울을 견뎌내고 끝내 지혜와 힘을 갖춰 위대한 사냥꾼으로 성장한 후 복수를 한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 고아가 된 미닉을 북극 에스키모들은 동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 이미 고난을 이겨내 더 훌륭한 삶을 위해 단련되었으므로 영웅 전설에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완성되고 구원받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미닉이 다시 미국으로 떠난 뒤 그 영웅담의 결말은 에스키모들의 구전 속에서 환상적으로 각색되었다. 저자 켄 하퍼는 그 전설의 한 조각을 들은 후 미국 전역, 그린란드, 덴마크를 돌아다니며 미닉의 삶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독자들은 이제 알게 된다. 모든 영웅전설, 신화의 유래가 이러했겠구나, 우리의 구전 속에서 각색되었을 뿐 실제 영웅의 생애는 이렇게 쓸쓸하고 초라했겠구나.

 

- 저자는 이누이트라는 용어가 있지만 의도적으로 에스키모라고 사용했다. (이누이트들을 부르는 호칭도 종족마다 매우 다양해서 어떤 극지방 사람들은 이누이트라는 말을 싫어하기도 한다.)

 

- 서글프게도, 말도 안 되는 불공정무역의 결과로도 에스키모들의 삶의 질은 예전보다 향상되었다.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고래뼈나 해마뼈뿐이었던 에스키모들에게 목재는 너무나 귀한 재료였고 이 점을 이용해 피어리를 비롯한 백인들은 대량의 모피, 해마, 일각고래이빨를 받고 약간의 목재, , 바늘, 자질구레한 싸구려 물건들을 주었다. 터무니없는 불공정무역이었지만 그럼에도 에스키모들의 삶은 나아졌다. 하지만 불공정은 불공정이다. (일제의 통치는 불공정했지만 일제가 만든 탄광, 전기시설, 철도, 공장 등으로 조선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주장이 있다. 그 말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정은 불공정이다.) 그리고 피어리는 목적을 달성하자 그린란드 에스키모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은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덴마크에서 미닉을 도와주려는 움직임도 있었는데, 인도적인 차원이 아니라 다만 그린란드 소유권에 대한 미국과의 다툼에서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 백인들의 세계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미닉 말고도 우아사카사크, 그리고 소녀 에카리우사크가 있었다. 우아사카사크는 동행들이 폐렴으로 사망할 때 살아남아 북극마을로 돌아왔는데, 백인들의 도시를 묘사하는 그의 말은 에스키모들이 듣기에는 너무 황당해서 그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로 몰렸고 마을에서 비웃음을 샀고 뛰어난 사냥실력에도 불구하고 마을에서 낮은 신분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피어리의 아내가 1년 동안 미국으로 데려갔던 소녀 에카리우사크는 미국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이 아무리 물어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말하고 싶지 않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야 친한 친구에게 문득 말했다. “만일 백인의 나라에 갈 일이 있으면 절대로 그네들의 영혼을 많이 들이마시지 말아요. 그 영혼은 눈물을 부를 것이고, 당신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나쁜 놈들 열전

- 로버트 피어리 : 최고 나쁜 놈. 신분은 해군이었으나 인맥을 동원해 군복무하지 않은 시간에도 임금을 꼬박꼬박 받고 장기 휴가를 계속 얻어 북극으로 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져온 싸구려 커피, 비스킷, 사탕 나부랭이와 교환한 모피, 해마, 일각고래이빨 등을 팔아서 크게 이익을 남겼다. 모피, 상아, 뿔 등을 불공정무역으로 얻었을 뿐 아니라 극지방탐험 라이벌인 프레데릭 쿡의 저장창고에서 훔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선원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죽은 (바이러스성 질환이 없던 북극에 백인 선원들이 오면서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어떤 에스키모들은 해마다 배를 보기만 하면 아프다라고 말했다.) 에스키모들의 뼈와 시신을 무덤에서 약탈해서 뉴욕으로 날랐고, 에스키모들의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인 운석도 강탈해간 뒤 팔아넘겼다. 자기 탐험대원이든 에스키모든 목표를 위한 도구로 취급했다.

이따금 나는 스스로에게 이 세상에 에스키모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고 묻곤 했다. 그들은 상업적으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야망도 없다. 문학도, 더 정확하게는 예술도 없다. 여우나 곰처럼 에스키모들은 인생을 오로지 본능으로만 판단한다.” 그래놓고 에스키모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뻐겼다.

북극마을의 한 노인의 회상 피어리는 갑판 위로 비스킷을 한 통 꺼내놓는 게야. 사냥꾼 서넛이 카약을 타고 배에 올라 그 통 안으로 몸을 숙이곤 두 손으로 비스킷을 먹어. 나중에는 그 통을 바닷가로 가지고 와서는 해변에 비스킷을 쏟아부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비스킷 무더기를 개처럼 덮치는 거야. 피어리, 무지 기분 좋아했지. 그것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싸늘해져.”

북극 에스키모 지역에는 철 성분의 운석 세 개가 있었다. 에스키모들은 이 운석을 여인, , 천막이라고 불렀다. 에스키모들은 수백 년 동안 이 운석에서 철을 채취해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피어리는 에스키모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문화적, 정서적 가치가 있던 철 성분의 운석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가져가버렸다. 에스키모들에게 운석을 이동하는 일을 시켜 배에 실었다. 그리고는 에스키모들에게는 그 댓가로 비스킷 몇 통, , , 탄약 등을 몇 개 주었다.

피어리는 미국에 가면 따뜻하고 멋진 집, , , 기타 등등을 주겠다며 미국으로 같이 가자고 강력하게 권유하고 강요하여 에스키모 여섯을 배에 태웠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3만 명이 에스키모들을 구경하러 배에 올랐다. 물론 피어리는 이 구경꾼들에게 살아 있는 에스키모 구경을 위한 입장권을 팔았다. 자신이 강권해서 데려왔으면서, 에스키모들이 오기를 원해서 그저 그 요구에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데려온 뒤 그들을 한 번도 만나러 가지 않았다. 에스키모들이 차례로 폐렴으로 죽어갔을 때조차도. 피어리는 관심받는 것을 좋아했지만 자신이 욕 먹을 일에는 숨어버리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1898년 피어리는 북극탐험에 대한 글을 쓰면서 북극 사람들에 대한 향수를 언급했다. “이텔레크의 해마사냥꾼, 웃는 얼굴 키수크” “나의 충성스런 사냥꾼이요, 개썰매꾼인 눅타크에 대해 쓰고 있던 이 시점은 석 달 전 키수크가 뉴욕 병원에서 죽고 며칠 전에 눅타크가 죽었는데도, 마치 그들이 건강하게 그린란드에 살면서 그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가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어린이들을 위해 쓴 눈나라 이야기에서 피어리의 날조는 더 심해진다. “키수크 아저씨의 아들은 나중에 미국으로 왔답니다..” 피어리가 데려왔다는 이야기는 빼고 키수크가 죽었다는 이야기와 미닉이 아직도 미국에서 힘겹게 살아있다는 이야기도 뺐다.

피어리는 에스키모들이 오직 자신하고만 거래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하여 무역을 독점하였으나, 북극점 탐사라는 목적을 달성하자 자신과의 무역이 끊긴 후의 그린란드 에스키모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은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미국 자연사박물관 : 미국 선주민, 즉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박물관에 자기들 조상의 유해를 적절히 다뤄달라는 운동을 지속해왔고, 그 결과로 1990년 미국 원주민 분묘 및 매장보호법이 통과되었다. 법안에 따르면 미국의 박물관들은 원주민 집단이 반환을 요구하면 유골을 반환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이 통과된 후에도 자연사박물관은 에스키모들은 미국인이 아니라 그린란드 사람들이었으므로 해당되지 않는다며 유골을 반환하지 않았다! 더 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할 수 없이 유골을 내주었다.

미국자연사박물관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기마상이 있는데, 오른쪽에는 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선주민이, 왼쪽은 흑인이 견마가 되어 잡고 있다. 충격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동상으로 2017년에 항의의 표시로 빨간 페인트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2020년 현재까지 그대로 서 있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Fountain of Magical Brethren 또는 Magic is Might 동상의 실사판이라고나 할까.) 자연사박물관에는 백인들만 빼고 다른 인종들의 문화도 다 전시되어 있다. 백인만 인류고 다른 유색인종은 전부 자연사의 일부라는 뜻이다.

 

프란츠 보아스 Franz Boas : 자연사박물관의 지리학자. 피어리에게 살아있는 그린란드 에스키모를 데려오라고 한 장본인. 이전에도 래브라도 에스키모들을 비롯해 전세계 민족들을 데려와서 시카고콜럼비안엑스포에서 전시했는데, 그 중 몇 명의 에스키모들을 포함해 많은 전시품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시신들은 엑스포 박물관에 영구 소장했다. 보아스는 이 엑스포의 인류학 수석 보조원이었다. 컬럼비아대학의 에스키모 소녀 시신을 미이라로 만드는 과정도 보아스가 관여.

 

에일스 허들리카 Ales Hrdlicka : 뉴욕 에스키모들을 연구한 인류학자. 골상학에 따라 사망한 에스키모들의 뇌 형태를 연구했다. 키수크는 논문에서조차 익명으로 남지 못하고 뇌 모양이 낱낱이 분석되고 공개되었다.

 

컬럼비아대학 : 본인이 시신 기증을 명시하지도 않았는데, 폐병으로 사망한 에스키모 소녀를 미이라로 만들어 인종표본으로 만들려고 함. 이 계획에 항의하는 시민에게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에스키모의 내부 기관을 조사해 이들이 다른 조건과 기후에서 자라난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자 한다. 이 시신을 놓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본인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번 갤로더 명의의 성명서)

 

벨레뷰 병원 : 키수크의 시신을 놓고 자연사박물관과 싸움. “시체 처분 문제가 어젯밤 조정되었다. 두 기관의 합의에 따르면 시체는 벨레뷰 병원 해부학 교실 학생들이 이용하고, 뼈들은 자연사박물관에서 표본대에 올려 보존하기로 했다.” 물론 키수크나 미닉에게 전혀 의사를 묻지 않음.

 

백악관(루즈벨트 대통령) : 미닉의 교육이 붕 떠버리자 펜실베이니아의 인디언기숙사학교 칼리슬학교에 미닉을 보내라고 제안함. (미닉이 인디언도 아닌데 이 무슨 황당한 제안인가. 백인 아닌 모든 미개인들은 한 덩어리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미닉은 거부했다. 그 학교의 공인된 목적은 미국 원주민의 백인화였다.

 

덴마크 영사 : 덴마크 정부에 만일 미닉을 송환한다면 에스키모 말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우선 남부 그린란드로 보낼 것을 고려하라고 제안함. 선의에 의거했지만 실제로 남부와 북부 언어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실제로 미닉이 남부 그린란드 말을 먼저 배우고 다시 고향으로 갔다면 또 한 번 좌절했을 것이다. 역시 에스키모를 한 덩어리로 보는 무지에서 나온 황당한 제안.

 

모리스 제섭Morris K. Jesup : 피어리의 후원자. 피어리북극클럽의 회장. 자연사박물관의 회장. 윌리엄 월레스의 상사.

피어리가 불공정무역으로 들여온 모피, 상아 등은 자연사박물관 표본으로 탁송되어 연구용 물건으로 처리되어 관세를 물지 않았다. 꼼꼼하게 무관세로 들어온 이 물건들은 박물관에 일단 도착하면 피어리북극클럽으로 넘어가서 장물아비에게 넘겨졌다. 일부는 미국 대통령 등 고위층에게 뇌물로 바쳤다. 피어리는 북극 최북단의 곶에 제섭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자연사박물관 회장으로서 뉴욕에 온 에스키모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미닉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발뺌.

 

허몬 캐리 범퍼스 Hermon Carey Bumpus : 제섭 이후 자연사박물관장. 우둔하고 고압적이면서도 소심하여, 미닉에 대한 박물관의 책임을 있는 힘껏 부인하였다. 아무도 그에게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고, 그가 부임하기 전의 일에 대해 규명해달라고 요구했을 뿐인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윌리엄 월레스 : 미닉의 양아버지. 미닉을 사랑하고 아껴주고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했다. 미닉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횡령꾼, 사기꾼이었다. 제섭 아래에서 20년간 일했으므로 피어리북극클럽, 자연사박물관, 피어리, 제섭의 결탁과 매매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였으나 결국 몰락하였다. 미닉이 14세가 되었을 때 더 이상 미닉을 교육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미닉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제레마이어 에임스 : 미국의 대령이며 코네티컷 강을 따라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확정짓는 파리 협정 현장 조사를 위해 파견되었으나, 현장에 와서는 홀스 스트림Hall's stream을 따라 국경선을 긋고는 그곳의 인디안 추장에게서 홀스 스트림과 코네니컷 강 사이의 땅을 사들여 자기 땅으로 만든 양아치.

YES마니아 : 로얄 r****t 2020.04.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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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미닉...용서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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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중학생이상 어른 아래 글은 미닉이 미국에서의 생활에 지쳐 북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쓴 편지이다.  ...미닉은 오두막에서 비크로프트에게 편지를 썼다.  "아마 마지막 편지가 될 겁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몹시 불쾌하시겠지만, 이 말씀만은 꼭 드려야겠어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게 언제나 친절한 큰형이었던 아지씨께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에요. 두 번 다시 아저씨랑 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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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중학생이상 어른
 
아래 글은 미닉이 미국에서의 생활에 지쳐 북극으로 돌아가는 길에 쓴 편지이다.
 ...미닉은 오두막에서 비크로프트에게 편지를 썼다.
 
"아마 마지막 편지가 될 겁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몹시 불쾌하시겠지만, 이 말씀만은 꼭 드려야겠어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게 언제나 친절한 큰형이었던 아지씨께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에요. 두 번 다시 아저씨랑 수영도, 캠핑도, 보트도 타지 못할 거예요. 함께 아파하지도 못할 거구요.
돕 (미닉은 비크로프트를 이렇게 불렀다), 저는 이곳에서 열심히 길을 가고 있어요. 여기까지 돈 한 푼 없이 헤쳐왔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배도 많이 고팠고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이제 저는 캐나다에 있어요. 많이 아프고, 힘은 없어요. 죽고 싶은 생각을 이겨낼 힘이 없어요.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지요? 이제는 브리거스에 가도 포경선을 타기에는 늦었어요. 모지즈 바틀릿 선장이 쿡 박사 구조선을 출항시키고 아무리 내가 빨리 여행을 한다 해도 제시간에 닿지 못 한답니다.
돕, 아저씨는 내가 얼마나 슬픈지 모를 거예요. 집에서 끌려와 죽은 아빠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그 아빠를 매장하겠다고 유골을 돌려달라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낯선 땅에서 혼자 굶주려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몰라요.
그 사람들은 문명인들이에요. 훔치고, 살인하고, 고문하고, 기도하며, '과학'을 논하는. 가난한 우리 에스키모들은 우리가 사용하다가 피어리가 가져간 운석이 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몰라요.
하지만 에스키모들은 이건 압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를 채워줘야 하고, 추운 사람은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은 돌봐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에스키모들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만일 에스키모들이 그런 일들을 잊어비리고 문명화되어 친절함 대신 과학을 택한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죽어버리렵니다. 아저씨가 말씀했지요. 복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 이제 그 복수를 하려고 해요. 피어리와 범퍼스 교수, 그리고 정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죽겠어요.
사랑하는 돕, 이제 안녕입니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몸이 좋아지거나 집으로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자살하겠어요. 오래 기다리렵니다.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가능한 기회는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월요일이 마지막이에요. 약속을 지킬 겁니다.
사랑하는 친구, 안녕히 계세요. 특히 두 가지가 무척 고맙네요. 하나는, 이 편지를 쓸 수 있을 만큼 내가 교육을 받았다는 거구요, 또 하나는 아저씨를 알게 된 거예요.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자연이 만들어준 그대로 우리 에스키모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달라고요. 만일 백인들이 완벽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백인의 생활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말하라고 해도 좋아요. 아저씨, 만일 기회가 된다면 우리 에스키모들에게 자만심 가득 찬 위선자들을 경계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숨겨놓으라고 말해주세요. 나를 위해 울지 말아줘요, 돕. 그냥 기뻐해줘요. 나에게 해주었던 그대로 계시고, 제발 다른 사람처럼 변하지는 말아주세요.
부자들은 고양이게 집을 지어주지요. 하지만 누가 나에게 일자리라도 준 적이 있나요? 아저씨와 윌 삼촌뿐이랍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월요일이면 안녕, 안녕, 안녕히."

 

<읽고 나서> 
멜로드라마 같은 이 편지는 자살 협박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소년이 던지는 처절한 구원 요청이었다. 다른 곳에서 미닉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모든 불의를 생각해보라. 나의 아버지 유골이라 생각하고 묻었던 돌멩이와 나뭇조각을 생각해보라.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뭘 느꼈는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우월감이 많은 것을 망쳐버렸다. 다른 어떤 인종보다 자신들이 우수하다는 어떤 백인들의 그릇된 생각은 죄 없는 고귀한 삶을 수 없이 망가뜨리고 죽음 속에 몰아넣었다. 좀 더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인종들을 유린해왔던 그 어떤 백인들은, 지금은 전 인류의 삶의 터전인 하나뿐인 지구를 망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은 절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범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8살까지는 북극에서, 이 후 10여년을 미국에서 보낸 미닉은 두 사회의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었다. 그나마 미닉이 편안하게 지냈던 곳은 10대의 행복한 몇 년을 보냈던 곳과 분위기가 비슷한 시골마을에서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닉은 자신의 생을 마쳤다. 흙으로 돌아간 그의 아버지도 마침내  저 하늘 위에서 그렇게 예뻐하고 사랑하던 미닉을 만났을 거라고 믿는다. 그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차별과 속임수,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미안해, 미닉 용서하지마......
나는 내가 속하지 않은,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책도 좋다. 낯설기 때문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초기 북극 탐험 시대와 이누이트의 살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할 것이 많았다.

 

 

m*****y 2008.0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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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전달되는 문명의 무식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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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이라고 딱히 길게 쓸만한 건 없다. 미닉이란 사람은 참 불쌍하게 인생을 살았고,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문명인의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그건 그가 에스키모여서가 아니라 어릴적에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한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국 과학계의 무심한 범죄의 희생의 결과라는 것. 로버트 피어리라는 북극 탐험가라는 사람은 참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부족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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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이라고 딱히 길게 쓸만한 건 없다. 미닉이란 사람은 참 불쌍하게 인생을 살았고,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문명인의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그건 그가 에스키모여서가 아니라 어릴적에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한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국 과학계의 무심한 범죄의 희생의 결과라는 것. 로버트 피어리라는 북극 탐험가라는 사람은 참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 그런 등등의 치부에 대한 고발이 정리되었다.


말은 그렇지만, 그래도 참 나쁜 새끼들은 과거에도 많았단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나쁜놈들의 짧은 생각과 다수의 무심때문에 참으로 많은 생명과 종족들이 몰락하게 되었단 생각이 들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인류학의 성과일지 모르겠지만, 그를 위해서 희생된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우리네는 어떠한지...

e****s 2012.04.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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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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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극의 정복자라고 알려진 로버트 피어리가 북부 그린란드에서 뉴욕으로 데려온 에스키모 소년 미닉의 이야기이다. 피어리는 보아스와의 협의로 살아있는 북극의 과학 표본을 뉴욕에 상륙시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이 바로 미닉을 비롯한 여섯명의 에스키모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 4명(그중에는 미닉의 아버지도 있었다)은 미국 풍토병으로 사망하고 한 명은 본토로 돌아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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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극의 정복자라고 알려진 로버트 피어리가 북부 그린란드에서 뉴욕으로 데려온 에스키모 소년 미닉의 이야기이다. 피어리는 보아스와의 협의로 살아있는 북극의 과학 표본을 뉴욕에 상륙시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이 바로 미닉을 비롯한 여섯명의 에스키모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 4명(그중에는 미닉의 아버지도 있었다)은 미국 풍토병으로 사망하고 한 명은 본토로 돌아갔다. 미닉은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되어 미국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닉은 자연사박물관에 유골로 전시되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는 박물관 측에 유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또한 육체적 정신적 병에 시달린다. 고향이 돌아가기를 원해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에스키모의 생활이나 언어를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고향에서 7년을 지냈지만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캐나다 벌목지에서 감기에서 발전한 폐렴으로 사망한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사람들을 과학표본으로 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모르고 있었던 간에 충격이다. 미닉에게 있어 미국인들은 아버지만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익명성 자체를 빼앗아버렸다. 미닉,그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고향을 찾지 못했다. 영어와 그린란드어 그리고 두 세계의 양식을 모두다 파악했지만 미닉은 언제나 외롭고 두려웠다. 그에 곁에 누가 있었다고 해도... 이 책을 읽고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살아있는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만행은 더이상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물론 죽은이도 마찬가지다. 미닉, 당신이 두려워하는 세상은 아직도 그대로이고, 피어리는 영웅이오. 그럼 당신은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하겠오?
m***7 2006.03.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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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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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끝끝내 지켜내야할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넘어 서 버린다. 이럴 때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항간의 말도 그저 천진난만해 보이기만 한다.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1년 12월 다큐멘터리 잡지 를 통해서였다. 이누이트 소년 미닉 일행이 소위 '문명인'들에 의해 어떻게 삶이 유린당했는지는 그리 길지 않은 기사에서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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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끝끝내 지켜내야할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넘어 서 버린다. 이럴 때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항간의 말도 그저 천진난만해 보이기만 한다.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1년 12월 다큐멘터리 잡지 <지오>를 통해서였다. 이누이트 소년 미닉 일행이 소위 '문명인'들에 의해 어떻게 삶이 유린당했는지는 그리 길지 않은 기사에서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지오>의 미덕은 글만큼이나 감동적인 사진이 있다는 점이었기에. 무엇보다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저자 켄 하퍼가 '문명인'으로서 느꼈을법한 죄책감과 분노 그대로를 자비로 출판하기까지의 노력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만하다 싶다. 역사를 유럽인들의 역사와 나머지 하등인류를 포함한 자연사로 간단히 나눠버리는 그들의 편협함과 '최초'에 열광한 나머지(이런 표현이 거슬린다면 "불원간 최초의 반열에 제 이름자 올리는 것만이 훌륭한 업적이라는 데 열광토록 교육받아온 결과") 탐험가들이 무릅썼던 반인류애적인 행태에 자못 울분을 느낀다면... 그렇다면 읽기를 권한다. 써놓고보니 나 스스로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등에서 교차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 부끄럽다. 식민지로부터 온갖 약탈을 일삼아 빛나는 유물, 유적의 위대한 무덤을 제 나라 한복판에 만들어놓은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장거리 운반의 편의를 위해 뻥 뚫어놓은 라메세스 2세상의 화강암 가슴 언저리를 마주했을 때의 슬픔이란 오래가지 못했나보다. 마침 어니스트 새클턴이 뛰어난 리더십으로 남극의 얼음구덩이에서 대원 모두를 무사귀환시켰다는 실패담이 한창이다. 이 실패담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최초'보다 더 중한 '인간애' 혹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r*****o 2003.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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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이고 식인적인 그들의 지적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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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작년에 접한 이 책은 서구인들의 박물관에 처음 접했을 때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내의 박물관만 접하다 처음 외국의 박물관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말로만 듣던 그들의 야만적이고도, 식인적인 그들의 욕구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내보이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것이었다. 식민지에서 훔쳐온 수많은 것들, 심지어 집, 기둥, 신전은 물론 그들의 신까지 마치 사형에 처하고 그
"야만적이고 식인적인 그들의 지적 호기심" 내용보기
우연히 작년에 접한 이 책은 서구인들의 박물관에 처음 접했을 때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내의 박물관만 접하다 처음 외국의 박물관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말로만 듣던 그들의 야만적이고도, 식인적인 그들의 욕구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내보이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것이었다. 식민지에서 훔쳐온 수많은 것들, 심지어 집, 기둥, 신전은 물론 그들의 신까지 마치 사형에 처하고 그 전리품이라도 되는 냥 싹뚝 목을 잘라온 것들까지 처참한 폭력과 강간과 살인의 현장을 박물관이라는 고고한 형식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 과거의 물건들을 소중히 간직하는 차원이 아닌, 박물관은 그렇게 가해자들의 전리품 보관소로 그 역사를 시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왜 알지 못했었던가. 이 책은 서구인들의 그 거대한 범죄가 어디까지 이어졌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은 우월감으로 하나의 인생이, 하나의 꿈이, 그리고 생명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짖밟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구인으로서, 백인으로서 그리고 가해자 미국인으로서 저자는 미닉에게 동정표를 던지지 않으면서 객관적으로 그의 삶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구경하러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 갇혀진채로 발가벗겨지고, 감기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미닉의 시선을 따라 이어지면서 충격과 분노, 연민과 슬픔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단,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의 불행한 삶 곁에, 우리의 인권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 역시, 그들에게 약탈당해, 미국에, 프랑스 파리에, 일본에 그들의 전리품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상깊은구절]
뉴욕 생활이 우리의 관계를 얼마나 가깝게 만들었는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병과 고통과 우리를 에워싼 낯선 존재들에 대한 무지... 이 모든 것 때문에 우리는 공포 속에 죽음이 찾아올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어야 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날이 갈수록 깊어갔다. 집을 멀리 떠나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아빠와 나는 더욱더 서로에게 의지하게 됐다. 평상시 그 어느 아빠와 아들보다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m******w 2002.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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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와 관련된 비극에 관한 슬픈 이야기_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_뻑보이(ffuckboy)
"에스키모와 관련된 비극에 관한 슬픈 이야기_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이 책은 19세기 말 서양인들에 의한 북극 정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창 이루어 지고 있을 때, 그들에 의해 인간이 아닌 동물과 같은 대상으로 취급되어진 에스키모와 관련된 이야기 이다. 산업혁명이후 급격히 발전한 서양인들에 의한 그들 중심의 세계관은 비단 이사례에서 뿐만은 아니겠으나, 그들 중심의 세계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가,
"에스키모와 관련된 비극에 관한 슬픈 이야기_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_뻑보이(ffuckboy)" 내용보기
이 책은 19세기 말 서양인들에 의한 북극 정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창 이루어 지고 있을 때, 그들에 의해 인간이 아닌 동물과 같은 대상으로 취급되어진 에스키모와 관련된 이야기 이다.

산업혁명이후 급격히 발전한 서양인들에 의한 그들 중심의 세계관은 비단 이사례에서 뿐만은 아니겠으나, 그들 중심의 세계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따른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가, 별 생각없이 받아들였던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서양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 태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온 우리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 나도 모르게 그들 관점에서 기술된 많은 것들을 무비판 적으로 받아들여온 나를 돌아본다.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는 그들을 은연중에 동경하고, 사대하지는 않는지? 우리를 잃어버린 우리라서 슬픈것이다. 그들의 세계관으로 창조된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육받으며, 우리를 잃었다는 생각조차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라서.

​다른 말보다 일단 책 내용을 많이 메모해 두었으니 그것 위주로 풀어가보자.

먼저 옮긴이의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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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뉴욕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박물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루스벨트라는 대통령의 기마상이 서 있다.​ 근육질의 말을 오른쪽은 흔히 인디언이라 불리는 미국 원주민이, 왼쪽은 흑인이 견마가 되어 잡고 있다. 문을 들어서면 티라노사우루스의 위협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화석이 서 있다. 공룡 화석이란 직접 보지 않으면 그 덩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목을 90도로 꺾어도 대가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룡 화석은 키가 크다. 중정을 들어서서 이리저리 눈을 돌리면 다음과 같은 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인 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러하다. 대통령 루스벨트기념관이 한 쪽에 있고, 그가 썼던 모자, 옷, 문방사우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들은 지역별, 생물별로 분류되어 있다. 북미 원주민관, 폴리네시아 해양생물관, 폴리네시아 민속관, 동아시아 민속관, 중앙아시아 민속관, 광물관, 천체관 기타 등등. 해양생물관은 천장에 고래뼈, 벽에는 온갖 바다생물의 화석과 박제, 멀티미디어를 총동원한 첨단 교육장이었다.

이 박물관의 이름이 무엇이던가.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유러피언의 역사를 제외한 모든 현상의 역사는 '자연사Natural History'라 정의된다. 박물관 꼬락서니를 보면, 지구상에서 벌어졌고 벌어지는 모든 자연현상이 다 전시되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 있으니 바로 유럽관이다. 백인 유러피언은 '인류'이고, 나머지는 '자연'이다. 박물관 이름이 자연사박물관이니, 어디에 대고 감히 유러피언의 역사를 자연사와 함께 전시하리오.

정문 앞 루스벨트와 흑인, 아메리칸 인디언과의 위계질서가 자연사박물관의 철학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국 정부들은 이곳에 자기네 나라 혹은 민족의 전시관을 확장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지구상에서 유이有二하게 미국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다는 나라, 중국과 일본이 그까짓 '자연사' 박물관 안에서의 위상을 높이려고 거액을 투자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같은 멍청한 투자를 게을리한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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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일은 과거의 얘기가 아닌 현재의 얘기다. 안타까운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각국 정부들. 무식하면 저렇게 된다. 부끄러워하고 지탄해야 할일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생각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배우고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제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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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피어리는 그를 사비크시비크로 안내해주겠다는 사람을 찾아냈다. 1894년 5월, 잉글필드 만에 있는 본부를 떠난 이들은 길고 험한 썰매여행 끝에 그곳에 도착했다. 눈을 걷어내자 큼직한 갈색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인 알레카치아크는 그것이 목 달아난 여인이라고 확인해주었다.

'흠, 이게 여자라니.'

상당한 상상력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며 피어리는 그 보물을 측량하고 스케치하고 사진찍으며 그날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그 돌의 주인이라고 주장했다.

"내가 그 운석의 발견자라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나는 그 금속의 표면에 거칠게 'P'라고 새겨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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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얘기는 19세기 말 북극을 탐사하고자 했던 서양인 피어리가 에스키모들이 수천년간 철을 얻는데 이용해온 운석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들은 이 운석을 여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에스키모들이 그 운석의 위치를 알려주고 서양인 최초로 운석을 구경한 그가 세계 최초 북극 운석 발견자가​ 되는 순간이 설명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아메리카 원주민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인 중 최초로 그것을 구경한 콜럼버스라는 사람이 세계 최초 아메리카 대륙 발견자가 된다. 여기에 아주 무서운 논리가 숨어있다. 서양인이 아닌 족속은 옮긴이의 글에 표현된 대로 그들 관점에서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 아니다.  ​세계 최초라고 하면 세계의 다양한 모든 족속을 지칭하는 말일텐데, 이미 살고 있던 사람은 완전히 무시되고 유일한 인류 서양인이 세계 최초가 된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서양인에 속하지 못한 우리같은 다른 족속들조차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무런 의심없이. 그것이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위의 피어리가 자신의 이름을 그 운석에 새긴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 아예 뉴욕으로 그 운석을 가져와 버린다. 남겨진 에스키모들은 이제 철을 어디에서 얻어 살아 갈까? 그들이 살든 죽든 피어리는, 이 문명인들은 관심이 없다. 자신이 북극 운석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

아래는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를 미국 탐험가 피어리가 최초로 미국에 데려왔을 때 미국 언론의 시각에 대한 부분이다. ​이 때 이 글의 주인공 미닉은 부모와 함께 왔는데 아마 7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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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닉은 때때로 주말판 신문에 등장했다. 당시는 미국으로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미국문화에 통합되던 시기였다. 신문에는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의 비전이 반영되었다. 기사들은 대부분 온건하지만 인종차별주의적이었고 -어떤 기사는 제목이 <어린 야만인 길들이기>였다- 미닉이 그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음울한 극지대 서식지"를 떠나왔으니얼마나 운이 좋은 소년이며, 미국에서 성장할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를 강조했다.

한 기사는 "미닉은 1년 전 자기에게 벌어진 결정적인 변화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라고 시작했다. 또 다른 기사는 "미닉은 삶이 단순히 물리적인 존재만을 의미하던 땅에서 태어났다가 우연히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미국의 가정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어떤 기사는 한술 더 떴다.

"미닉은 이제 미국시민이다. 이제 맥킨리 대통령은 원하기만 한다면, 뉴욕 주 트레몬트에 미닉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린란드까지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기사는 미닉이 지난 한 해 동안 지적으로 놀랍도록 발전했다고 전했다. 다른 모든 이민자들처럼, 사람들은 미닉이 '문명의 배려와 안락함'을 즐길 수 있는 기회에 대해 감사하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한 신문은 "미국에 살고 있는 그 어떤 아이도 미닉만큼 이러한 안락함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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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리라는 사람의 꼬드김에 의해 뉴욕으로 건너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박물관에서 전시되어진 살아있는 박물, 에스키모들은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따뜻한 곳의 각종 세균 바이러스 감염으로 대부분 죽게 된다. 관련된 것이 어떻게 간주되고 처리되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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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닉이 자기 아버지 장례식의 진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1899년, 박물관 직원들은 여전히 에스키모 시체를 확보하느라 분주했다. 모피 무역업자인 마이너 브루스 선장이 알래스카에서 뉴욕으로 데리고 온 열한 살 먹은 쌍둥이 계집아이 가운데 하나가 마운트 버논 병원에서 폐병으로 죽었다. 뉴욕 트리뷴지는 인계를 요구하는 친인척이 없을 경우, 시체는 컬럼비아대학에서 보존 처리된 후, 자연사박물관에 '인종표본'으로 넘겨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 의문을 제기했다.

"도대체 어떤 권한으로 컬럼비아대학교가 그 같은 일련의 행위를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법이 한 개인에게 자기가 죽은 뒤 시신 처리 방식을 지시할 권리를 허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가련한 에스키모 소녀가 그런 뜻을 밝혔다는 발표는 없다. 형법 306조에는 법률로 해부가 허용된 경우를 제외하곤, 뉴욕 주 내에 있는 모든 시신은 적절한 시간 내에 품위 있게 매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조항은 또 해부가 끝난 시신의 잔여물도 매장하라고 규정한다. 에스키모 소녀가 살아 있을 때 아이 자신이 명시하지 않은 한, 아이를 미라로 만들어 자연사박물관에 전시할 권한은 없다."

컬림비아대학교는 번 갤로더 박사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이 같은 비난에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우리는 소녀 시신이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그녀는 에스키모다. 우리는 에스키모의 내부 기관을 조사해 이들이 다른 조건과 기후에서 자라난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고자 한다. 이 시신을 놓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본인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시신을 옮기는 작업은 보아스가 맡았다. 그는 당시 컬럼비아대학교 자연인류학 교수이자 동시에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였다. 그는 그보다 일주일 전 간단한 메모로 제섭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

"어린 에스키모 소녀가 마운트 버논에서 사망함. 해골을 확보했음. 15달러."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논평했다.

"브루스 선장이 떠날 무렵, 앓고 있던 쌍둥이 가운데 아무나 죽으면 대학교 측이 과학적 목적을 위해 시체를 가져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조사가 끝나면 시체는 보존 처리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는 친구인 피어리가 즐겨 쓰는 말을 덧붙였다. "과학을 위하여"라고. 갤로더 박사에게도 간단하게 메모를 보냈다.

"신문들이 호들갑을 떨어서 유감입니다. 해골을 박물관으로 보내십시오."​

키수크의 죽음과 가짜 장례식에서 미닉이 자연사박물관에 자기 아빠의 뼈가 전시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까지 여러 해가 흘러갔다. 그동안 미닉은 월래스 가족의 사랑스러운 일원으로 커갔다. 월래스는 소년에게 키수크의 운명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비밀로 했다. 그는 이 모든 구역질나는 사건에 연루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자기 양아들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웠다. 그러나 마침내 미닉은 진실을 알게 되고야 말았다. 월래스 말을 들어보자.

"신문들이 박물관에 있는 아이 아빠의 뼈를 찾아냈다. 가짜 장례식이나 코블스킬에서 있었던 뼈 소독에 대해서는 절대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해골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에 찍어댔다. 미닉은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에스키모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침내 미닉은 아빠가 묻히는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오래도록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닉이 뭔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챗다. 그러던 어느 날, 기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눈 내리는 오후에 미닉은 내 아들 윌리와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미닉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빠는 무덤에 없어."

그가 말했다.

"아빠는 뼈로 변해서 박물관에 있다구."

우리는 미닉에게 캐물어 어떻게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알아냈다. 하지만 이후 미닉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는 음울하고 잠 못 이루며 불안해 했다. 이따금 우리는 미닉이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떤 때는 여러 날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미닉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엇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다. 그는 함께 살게 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상실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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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내가 밝혔듯, 미닉의 아버지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병을 얻어 사망한다. 중요한 것은 미닉 앞에서 박물관 사람들은 장례식을 치러주는 척 하고 그 즉시 뼈를 해부에 전시관에 전시했다는 것. 그들이 아닌 인류는 관찰해야 할 동물이기에.

​좀 더 그에 대해 살펴보자. 성장하여 스무살 무렵이 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북극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올때는 마음대로 와도 갈때는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가? 그를 데려온 문명인 그 누구도 그를 북극에 데려다 주지 않는다. 이에 절망하여 혼자 북극에 가겠다고 돈도 없이 나선 그는, 절망 끝에 아래와 같은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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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는 힘을 내어 빤쯤 가라앉은 피난처를 더나 근처에 있는 오두막집을 찾아갔다. 여자 하나가 미닉에게 샌드위치를 주었다. 미닉은 오두막에서 브크로프트에게 편지를 썼다.

"아마 마지막 편지가 될 겁니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몹시 불쾌하시겠지만, 이 말씀만은 꼭 드려야겠어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게 언제나 친절한 큰형이었던 아저씨께 드리는 마지막 부탁이에요.

두 번 다시 아저씨랑 수영도, 캠핑도, 보트도 타지 못할 거예요. 함께 아파하지도 못할 거구요. 돕(미닉은 비크로프트를 이렇게 불렀다), 저는 이곳에서 열심히 길을 가고 있어요. 여기까지 돈 한 푼 없이 헤쳐왔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배도 많이 고팠고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이제 저는 캐나다에 있어요. 많이 아프고, 힘은 없어요. 죽고 싶은 생각을 이겨낼 힘이 없어요.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지요? 이제는 브리거스에가도 포경선을 타기에는 늦었어요. 모지즈 바틀릿 선장이 쿡 박사 구조선을 출항시키고 아무리 내가 빨리 여행을 한다 해도 제시간에 닿지 못 한답니다.

돕, 아저씨는 내가 얼마나 슬픈지 모를 거예요. 집에서 끌려와 죽은 아빠가 박물관에 전시되고, 그 아빠를 매장하겠다고 유골을 돌려달라는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낯선 땅에서 혼자 굶주려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몰라요..... 피어리가 가져간 운석이 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은 몰라요. 하지만 에스키모들은 이건 압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를 채워줘야 하고, 추운 사람은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의자할 데 없는 사람들은 돌봐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에스키모들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합니다.

만일 에스키모들이 그런 일들을 잊어버리고 문명화되어 친절함 대신 과학을 택한다면 슬프지 않겠어요? 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죽어버리렵니다. 아저씨가 말씀했지요. 복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 이제 그 복수를 하려고 해요. 피어리와 범퍼스 교수, 그리고 정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죽겠어요.

사랑하는 돕, 이제 안녕입니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몸이 좋아지거나 집으로 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자살하겠어요. 오래 기다리렵니다.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가능한 기회는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월요일이 마지막이에요. 약속을 지킬 겁니다.

사랑하는 친구, 안녕히 계세요. 특히 두 가지가 무척 고맙네요. 하나는, 이 편지를 쓸 수 있을 만큼 내가 교육을 받았다는 거구요, 또 하나는 아저씨를 알게 된 거예요.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자연이 만들어준 그대로 우리 에스키모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달라고요. 만일 백인들이 완벽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백인의 생활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말하라고 해도 좋아요. 아저씨, 만일 기회가 된다면 우리 에스키모들에게 자만심 가득 찬 위선자들을 경계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숨겨놓으라고 말해주세요. 나를 위해 울지 말아줘요, 돕.​ 그냥 기뻐해줘요. 나에게 해주었던 그대로 계시고, 제발 다른 사람처럼 변하지는 말아주세요.

부자들은 고양이에게 집을 지어주지요. 하지만 누가 나에게 일자리라도 준 적이 있나요? 아저씨와 윌 삼촌뿐이랍니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월요일이면 안녕, 안녕, 안녕히."

멜로드라마 같은 이 편지는 자살 협박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깊은 상처를 받은 소년이 던지는 처절한 구원 요청이었다. 다른 곳에서 미닉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 모든 불의를 생각해보라. 나의 아버지 유골이라 생각하고 묻었던 돌멩이와 나뭇조각을 생각해보라.​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가 뭘 느꼈는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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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부연하지 않으련다.

깊은 생각을.​

 

f******y 2015.0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