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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꾸밀지 내면을 꾸밀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고민이다. 로르카의 에세이를 처음 만날 때 나는 부서질 것처럼 바싹 말라 아무리 짜도 물기 한 방울 안 날 만큼 팍팍함이 가득한 마음이었다. 어떤 책의 아무리 좋은 문장도 제대로 읽어내릴 수 없을 만치 무기력한 상태였다. 주제에 마음은 또 급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건설적인 해결은 엄두도 못냈다. 이제야 말이지만 가만히 멍때리는 시간도 좋아하는 내게 '독서'는 꽤 능동적인 작업이어서 시간을 내야 읽힌다. 재미로만 따지면 책보다 재밌는 게 세상에 훨씬 많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런데 왜 책이냐 물어도 별달리 해줄 말은 없지만 나보다 인생의 즐거움 하나쯤 덜 가졌겠거니 한다. 누군가를 설득해서 독서하게 만드는 건 내가 책을 읽으며 내 행복과 시간을 지키는 일보다 하찮다. 이 책을 만난 건 다 말라 쓰러져가는 화분에 물을 주는 것처럼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문장이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달콤한 키스를 청해온다. 뜨거운 키스를 하고 싶다는 어느 나이든 배우의 청춘시절을 듣고 있었는데 그새 말랑말랑해져서, 누군가와 뜨거운 포옹과 황홀한 키스를 하고 싶어진다면, 그날 <인상의 풍경>을 읽어도 좋을 거라 믿었다.
시인이니 일반인이 못 다루는 시어를 다루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지만 언어의 마술을 체험하기라도 하듯 언어가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나를 겨루는 <인상과 풍경>은 손에 잡히지 않는 풍경과 귀를 때리고 흘러가버리는 소리를 언어로 포착한다. 이게 글을 읽는 이유가 아니라면,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대체 무어라 예찬할 수 있을까. 내가 보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축에 속하던 나는 파리와 로마에 다녀온 후 근 6개월을 착시와 환각에 시달리며 보냈다. 첫 번째 여행이고 경험상 드문 이국의 풍경이었다고 해도 과장됐다. 무관심과 불만, 불평이 극해 달했다. 요즘의 나는 정말 책 읽기 좋은 상태가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서 언제나 용감하지만 가끔, 맨정신으로 대면할 수 없는 두려움과 싸운다. 여기서는 두려움과 마주한다는 게 중요하지 어떤 두려움인가, 그 뿌리에 뭐가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로르카는 글로 음악을 짓는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이는 것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과감하게 연주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황홀하게 만드는, 치열하고 고단한 풍경을 반추하는 계시와 같다. 읽을 줄만 알았지 쓸 줄 모르는 내가 로르카를 고스란히 옮길 수 없을까봐 조바심낸다. 말하는 대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무엇보다도 명확하게 주제에 가닿는 능력. <인상과 풍경>은 산문 중에서도 수채화폭처럼 부드러운 낭만의 달콤함을 머금은 로맨티스트가 쓴 글이다. 여행지에서 같은 풍경을 두고 감상이 각자 다른 것처럼, 같은 상황에 처해도 대처방법이 다른 것처럼, 로르카의 눈에 세상은 걸그룹 시크릿의 노래가사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샤랄랄라'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최악의 순간에 최고를 보는가.
에스파냐 출신의 시인이자 극작가 로르카는 생몰연대(1899-1936)로 보면 단명한 편이다. 스페인 연극의 혁신자로 외국의 극단에 영향을 끼친 업적이 있지만 일단 이 책이 혁신적이으로 평가받는 희곡작품이 실린 창작물이 아니라 그의 희곡에 다가가기 전 맛봐야 할 가장 로르카'스러운' 산문집이기에 <피의 혼례>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관심과 배경지식을 일단 내려놓는다. 조금은 흐리고 또 뿌옇게 보이더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의심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제대로 보려면 영혼에 불을 지펴 다시금 떠오르게 하여 스스로 유일한 동시에 수많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로르카는 서문에서 말한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존재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곳을 보고, 현재에서 과거를 보고,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이고, 모든 것을 보며 모든 것을 느껴야 한다. 그외 다른 방법은 주어져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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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쾌락에 젖은 낭만적 영혼 일기
햇빛 내음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풍경의 화음과 전원의 향음(香音)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나른하게 기지개켜는 교회의 종탑은? 창고에 둥지를 틀고 있는 메아리는? 달밤에 빠진 시골 마을, 오후의 신비로움이 무지개 밭길로 출렁이는 들판과 밤의 그림자가 나뭇잎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숲, 그리고 퉁명스런 금속성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비에 젖은 도시와 희미해진 옛 사랑의 그림자를 꿈꾸는 정원의 풍경이 시인의 마음과 눈을 통해 인상적인 모습으로 흐른다.
새벽, 달빛, 작열하는 태양, 황금들녘, 그늘진 정원, 안개, 그리고 노을, 풀잎과 정오와 비...당아욱, 도금양 나무, 금작화, 아칸더스 나뭇잎... 이것들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러운 감정에 눈물이 터져나올지도 모른다. 한순간뿐일 세상의 모든 것, 저 넓은 들판으로 뛰쳐나가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검은 소나무 숲속에서 영원히 잠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침묵의 음악 속으로.
시인 ‘로르카’의 예술적 영혼이 담아낸 이 세상의 풍경을 그의 인상과 함께 그려나가다 보면 풍경의 화음에 세상의 소리가 담겨있고, 들판을 돌아다니던 메아리가 허물어진 길모퉁이와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창고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수도원 안에 은밀하게 스며든 달빛이 만들어내는 온갖 기괴한 그림자의 형상과 죽음 이후에 존재할 한없이 평화로운 세계, 뜻밖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깊게 내려앉는다.
시인이 거니는 그라나다, 알바이신의 마을과 수도원, 금빛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들녘, 폐허가 되어 흐릿해진 옛날의 전설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잎들의 온갖 향기와 달콤함, 낙조(落潮)의 쾌락에 젖은 낭만에 휩싸이기도 하며, 어둠에 쫓겨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노을이 되고, 삶의 고통과 슬픔을 아름답게 겪어낼 희미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시인의 인상이 담아낸 풍경에는 어둠의 소리, 알 수 없는 신비롭고 원초적인 힘이 흐른다. 아마 “웅장한 리듬이 노을빛을 휘감으며 풍경에 흐른다”고 말하는 시인의 느낌과 같을 것이다.
너무도 평범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들, 그것들에 내재된 쇠락(衰落)과 활기를 읽어내는 시인의 마음은 고요하고 슬픔 가득한가하면 화려하고 관능적이다. 그것은 “찬란히 빛나는 들판속으로 흐르는 고독”이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내 살결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이름모를 관능과 슬픔 같은. 그리고 담콤한 혼란 같은. 풀밭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서글픈 탄식 같은. 삶이란 오후의 쾌락에 젖은 낭만적 영혼이 느끼는 그런 한낱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든 수도사가 고개를 숙이고 평안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리는 모습에서, 먼 옛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풍경이 땅 속으로 가라앉아 전설이 사라지듯이 그런 침묵일 것이다.
“시인은 손을 들어 머리를 더듬어 본다. 그 많던 머리숱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슬픈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있다.” 삶이란 이런 것일 게다. 태양을 그리워하다, 달빛의 흐느낌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싶어하기도 하고, 빗방울의 부드럽고 정겨운 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하면, 화사한 아침을 만끽하고, 열정과 관능의 쾌락에 젖어들다 그렇게 주름진 낯선 얼굴을 발견하는 것, 그것일 것이다. 이제 알지 못하는 영원의 대상에게 조용히 기도할 줄 알게 된다. 어느 오후의 쾌락 같았던 삶을 추억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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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뿌리가 없다면 시를 쓸 수 없다. 영혼의 뿌리는 시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잘 짜여진 기교만 있을 뿐 시에 영혼이 없다면 이는 무척이나 가련한 일일 것이다. 영혼의 밀도도 중요하다. 영혼의 밀도가 높을수록 윤이 나는 튼튼한 줄기를 올리고 찬란한 꽃을 피워낼 수 있다. 한 행만 읊어도 마음을 울리는 시가 존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영혼이 없는 시는 울림도 없다. 아무리 되뇌어도 밋밋하고 겉보기만 예쁘장하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스페인의 시인이다. 이번에 안 그래도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꽤 설렜었다. 초역인 데다가 혹시 중역일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로르카의 글들은 매끄러웠고, 잘 살아 있었다. 로르카를 처음 만난 건 세계 3대 시인이라고 극찬한 정현종 시인이 번역한 시집을 통해서였고, 그 후, ‘강의 백일몽’이라는 동명의 소설을 낸 하성란 소설가 때문에 또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로르카의 빛나는 관찰력, 넘치는 감성은 산문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산문집 <인상과 풍경>은 로르카가 스무 살 무렵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받은 인상과 풍경들을 담은 책이다. 몰아치는 듯 격렬하다가도 어느 순간 고요하고, 섬세한 고요함은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 다시 크게 일렁인다. 만일 로르카를 읽을 때 펜을 잡고 있다면 그림을 그리게 되고, 옆에 누가 없기라도 하다면 절로 노래가 나올 것이다. 묘사에서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느낌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뿜어내는 20대의 정열은 산문집에 고스란히 녹아난다. 보통은 시나 소설 등으로 이름이 나고 산문집을 내는 것이 수순일진대, 로르카는 산문집을 먼저 내고 후에 시집을 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산문집은 정제된 것이 아닐 수밖에 없고, 오히려 청춘 로르카의 눈을 통해 본 풍광들과 내면의식의 토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집을 먼저 접한 이들의 의견은 분분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정제되지 않음 역시 이 산문집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렇게 젊은 시절의 넘치는 섬세한 감정들이 시를 낳았고, 위대한 시인을 탄생시키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생각하고 읽으면, 어느 순간 떠오르는 매직아이처럼 바투 와 닿는 감동이 있다. 열정적인 스페인의 시인 로르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찬미해마지 않았던 로르카의 젊은 시절의 한 모습을 <인상과 풍경>에서 그대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펭귄 클래식을 이 책으로 시작하게 되어서 다행스럽다.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로르카의 시를 한 편 소개하며 줄인다. 어떤 영혼들은...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시간의 갈피에 끼워놓은 아침들을, 그리고 꿈과 노스탤지어의 옛 도란거림이 있는 정결한 구석들을.
또 다른 영혼들은 열정의 환영들 로 괴로워한다. 따뜻하고 - 먹어버린 과일들. 그림자의 흐름과도 같이 멀리서 오는 타 버린 목소리의 메아리. 슬픔이 없는 기억들. 키스의 부스러기들.
내 영혼은 오래 익어 왔다 ; 그건 시든다, 불가사의로 어두운 채. 환각에 침식당한 어린 돌들은 내 생각의 물 위에 떨어진다. 모든 돌은 말한다 : "神은 멀리 계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시집 「강의 백일몽」(1994,민음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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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위(諸位).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지나가는 모든 장면들은 추억과 풍경,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나의 인상(印象)이다. 아마 현실이 눈 덮인 하얀 세상처럼 우리 앞에 분명히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 마음속에서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마치 보름달의 빛이 들판으로 번져 나갈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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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사원'의 멋진 풍경 때문에 또한 '인상과 풍경'이라는 멋진 제목 때문에 책이 도착하기 전부터 책의 알수없는 약간은 미묘한 깊이를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로르카의 이 책을 무작정 펼쳐들고 읽다가 큰코를 다쳐버렸다. 그래서 이 책을 들고서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냥 펴들고 읽으면 나처럼 멍~해지는 위험을 겪을수 있는 많은 분들에게 내가 고민한 내용을 말해주고 싶다. 맨 처음 읽었을 때에 스페인에 대해서는 매우 생소한지라 (그나마 사전을 찾아야하는 번거로움을 달래주는)역주에 책갈피를 끼워놓고 번갈아가며 봐야했다. 역주에 상세한 설명으로 인해서 곤혹스럽게 만든 단어 내지 문장들을 소화할 수 있었지만 책 읽는 맥이 뚝뚝 끊겼다. 이렇게 무작정 읽다가는 왜 이곳에서 로르카가 이러한 느낌을 받았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주 앞에있는)작품해설에 눈을 돌렸다. 그랬떠니 처음에 읽었던 몇 몇 장들의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인상과 풍경'은 작품 해설을 읽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해설에서 알려주듯이 인상과 풍경은 정말 로르카의 스페인 일대 '인상'을 담은 기행문이다. 그러니 로르카의 묘사와 표현을 더 지지해줄지 아니면 그냥 이해만 시켜줄지는 모르겠찌만 차례에 나오는 몇몇 모르는 건물이나 지역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사진을 보고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도 시도해 볼 생각이다.) 나의 고심을 '인상과 풍경'을 읽으실 분들은 참고해 보시길.... '인상과 풍경'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건 이 책이 내던 음악소리이다. 쌩뚱맞은 소리냐 싶을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로르카의 표현에 말려들어 (물론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했던 소리들중 하나이겠지만.. 아마 클래식이 많이 들리지 않겠나... 내가 그랬으니까) 머리속에서 웅장함이 물결칠 때가 있을 것이다. 로르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잘 되지 않아도 그 표현에 나 또한 울적해 질때가 (슬픈 멜로디로) 많았다. 또한 읽다보면 느낌과 모든 것들을 얼마나 상세히 설명해주는지 옆에 하얀 노트가 있었다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주책!) 실제로 그림에 소질이 있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있따면 도전해 보시길... 물론 스페인에 대해서 많이 알고 깊은 숙고에 빠지지 않는 한 로르카와 같은 생각에 동조 하기는 힘들것이다. 하지만 인상과 풍경을 읽으면서 그곳에 서려있는 슬픔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엔 그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깊은 시에 빠져든다는 느낌으로 이 책에 빠져들었지만 다시 읽을 땐 꼭 알고 읽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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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사실 스페인지도 모양을 그려놓고 마드리드 위치를 짚어 보라고해도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바르셀로나, 세비야, 안달루시아같은 지명이름을 들어 보았지만 그 역시 스페인의 어디쯤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페인의 세계적 시인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첫 산문집인 이 책을 들여다 보면서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대해( 적어도 지리적인 것 하나조차도) 지독하게 무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로르카가 그라나다 대학교의 마르틴 도밍게스 베루에타교수의 인솔하에 스페인 각지를 답사한 후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시인은 교수를 따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카스티야 이 레온, 부르고스 지방을 돌아보고 그 인상을 이 책에 담았다. 그는 시골의 수도원과 수녀원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그곳에 살고 있는 수도사와 수녀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으며 마을의 풍경과 정원의 아름다움을 시적 감각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과 지나는 길에 만난 버려진 낡은 교회, 그리고부서진 아치와 쐐기풀과 덩굴나무로 뒤덮인 기둥만 남은 폐허마저 그에게는 예사롭지 않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음악이 귓전에 맴돈다. '무너진 교회'......
한 잘나가는 국내 소설가가 유럽의 수도원 기행에 관한 기행기를 책으로 낸 적이 있었다. 그는 아마 로르카의 이 책에 영감을 받은 건 아니었을까. 로르카가 실로스 수도원에서 만난 오르간을 연주하던 수사와 대화하는 장면은 한적하고 어두침침한 교회안으로 초대받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신비로움만을 알고 있는 수도사에게 베토벤 음악을 전하는 모습,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그의 모습, 그리고 회랑을 소개해주었던 수도사가 나타나 그의 음악을 듣고 허망한 표정을 짓고 사라지던 장면과 나중에 그와 다시 만나 대화하는 중에 들은 말(음악, 그 모든 것은 허상일뿐 영혼의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한편의 음악영화를 보는 듯하다. 수녀원의 풍경은 더 정겨운 데가 있다. " 한수녀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수녀들은 다소곳한 자세로 듣고 있는 사이, 두려움과 전설이 수녀원 회랑을 가로지르며 돌아 다녔다." "교회안으로 들어서자 조용히 기도하던 수녀들이 무언가에 놀란 비둘기들처럼 달아나더니 구석에서 날 훔쳐본다.......작은 탁자위에는 빨간 카네이션 화분이 놓여 있고 새장속의 카나리아는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의 한 고아원에서 느낀 인상은 향후 그의 인생을 가늠하게 해주는 좋은 지점이다. 고아원의 현관문에 빗댄 그의 마음은 이렇게 묘사되어진다. "불안하게 서성이다가 몰래 자기 아이들을 내버리고 가버린 유령같은 인간들의 모습을 나직한 이 현관문은 말없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가엾은 인간들을 보며 속울음을 삼켰을 이 문이 갑자기 애처로워진다........굶주림에 지친 아이들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던 이 문은 언젠가 이들을 낳은 거대한 사회적 불의에 맞서 분노의 함성을 토하며 시 자선위원회 건물위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1918년에 이 산문집을 출간하고 36년 파시스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는 다수의 희곡과 시집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는 그의 전작들에 녹아 들었을 감수성과 상상력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저무는 저녁햇살에 하옇게 반사된 담장위로 묵주기도를 드리러 성당으로 들어가는 두 명의 할머니가 남긴 검은 그림자는 곧 성당의 깊은 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곳곳에 번득이는 표현들은 익숙지 않은 지명들과 낯설은 환경으로 인한 독자의 방황에 큰 위로가 되어준다. 또한 펭귄시리즈라는 보급판적 성격을 가진 책이지만 책말미에 덧붙인 작가연보와 역자해설및 역주들은 책읽기의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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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는 <알함브라 사원>이라는 그림이다.
이 책 <인상과 풍경>을 읽는 동안 내내 이 음악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바로 이 문장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그러나, 이 책 <인상과 풍경>은 읽는 내내 우울함이 가슴을 뒤덮었다.
" 시신 없는 무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따라 과거의 차가운 기운이 먼지처럼 일어나고 머나 먼 이상의 세계를 염원하며 끝없이 돌아가던 묵주알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나뒹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세계와 영원성 또한 무한한 꿈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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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르카가 대학교시절 은사와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등
이 책의 작품해설에서는 작가의 주변 모든 사람들은 작가가 장래에 물론 이 책에서도 보여진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세상이 근엄한 망토를 펼치자, 먼 솔밭에선 우수가 샘솟았다. 저녁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세상에 울려퍼지고 사람들의 마음솟으로 신비로운 기분이 스며들었다.... 먼 지평선은 밤을 꿈꾼다."
금빛으로 일렁이는 밀밭도, 온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도,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오솔길도,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물의 흐름도, "빛과 색은 우리 눈이 연주하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음악, 시, 여행. 이 3가지의 앙상블이 만들어낸 이 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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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폐인하면 난 플라멩고와 투우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정열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너무도 서정적이면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만나며 처음 적잖이 당황되었다. 이 책의 작가또한 스폐인의 천재시인이라는데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생소한 이름이로 당황스러움에 큰 몫이 되기도 했다. 이책은 그렇게 내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 전혀 다른 스폐인을 만나게 해주었다
1936년 스폐인 내전중 극우 민족주의자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천재시인 로르카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세상에 내비친 작품인 인상과 풍경은 교수님과 함께 스폐인 남부 카스티야 안다루시아 갈리시아 지방등을 여행하며 가졌던 20살 대학생의 순수한 감정으로 만들어진 여행산문집이었다.
쓸쓸함과 고독이 묻어나오는 우수 가득한 인간의 감성들 그에 반해 아름다움과 신비롭기까지한 자연의 생명력 폐허와 같은 성당을 마주하고 수도원과 수녀원 한켠의 정원을 바라보며 가지게되는 상상력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었다. 때론 섬뜻할만큼의 공포스러움이 느껴지고 때론 너무도 평온해 그 아름다움을 쫓고 싶어지기도한다
너무도 잔잔한 내용으로 무의식중에 읽다 감각을 잃어버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기를 몇번 그렇게 몇번의 실패끝에 겨우 읽을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빠르게 빠르게 진행되는 일상속에 길들여져있는 나의 조바심이 문제였다. 처음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던 첫느낌에서 이 책만의 매력을 찾게된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턴빈공간속에 나를 몰아넣고는 작가의 글을따라 그속에 몰입되어가는 과정속 느림의 미학을 발견하고 부터였다.
카라투하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의 거리풍경속에서 외로움을 읽고 성당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엣영광을 떠올려보고 소예배당에서 기도를 올렸을 사람들을 회상하고있다 현재의 시간은 과거가 있어 아름다울수 있었다. 찬란한 자연속에 우뚝 솟아있는 그곳의 한가운데서서 수도원의 역사와 함께 했을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고 예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상상력은 가히 끝없이 펼쳐지고 그가 느끼고 공유한 감성들이 아름다운 글의 향연으로 풀어져 있었던것이다.
그냥 읽어서는 안될것만같은 문장들 흥얼흥얼 읉기라도 해야할것같은 시적표현들 읽어나가며 나는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듯 그 풍경들을 머리속에 그려보게된다 그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더라도 " 아 너무 예쁘다 " 라는 한문장으로 끝나버리곤 했던 나의 감성들이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면서 아름답지 않은 풍경은 이세상에 없음이 또 하나의 진리가 되어 다가온다.
인상과 풍경속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을 만나고 느끼면서 나는 여행을 하는 또다른 감각을 발견하게되고 세상풍파속에 묻어버린 나의 감성들을 일깨우게된다. 너무도 아름다운 글속에 표현된 스폐인 남부의 여러지방들은 직접 보기보단 나의 상상속에서만 간직하고 싶어진다. 그것이 바로 여행산문집의 매력이 아닐까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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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은 글로 이루어진 그림이자 음악이다. 책을 막 펼쳤을 때는 현재 남아있는 성당의 모습이라든가 자연의 사진이 중간 중간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멋진 일러스트라도 있었으면 했다.
시각적인 자료가 먼저 눈에 보여지게 된다면 글이 주는 묘사를 대충 넘기게 될 것이고 그만큼 풍부한 상상력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반감시키게 될 것이다. 로르카의 글은 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뿐 아니라 우리가 못보는 것도 놓치지 않고 글로 멋지게 표현하는 예술가다.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자신의 표현력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우리나라의 색을 표현하는 느낌과 닮아 있다.
- 우리가 성당을 나왔을 때는 오후 햇살이 온 세상을 황금빛과 잿빛, 그리고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격정적인 선율을 연주하는 중이었다. 41p -
- 서산에 해가 뉘엿거리자 온 세상이 노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중략) 보석처럼 화사하게 빛나던 세상은 장밋빛 열정으로 불타오르다가, 결국 토파즈처럼 노란빛을 띠며 희미하게 사위어간다. 208p -
로르카의 글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들을 매력있게 되짚어 보는 안목도 가졌기에 더욱 특별하다.
<<인상과 풍경>>은 시각적인 표현이 어느새 청각을 일깨우고, 공감각적인 표현이 뛰어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