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도 회사의 바타비아호를 타고 항해를 떠나게 된 이들 중에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집밖으로 내몰려져 불투명한 미래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얀이 있다. 여의치 않은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것을 찾기 위한 힘겨운 승선이었기에 더욱 열심인 얀, 그러나 별볼일 없는 자신을 선택해준 댓가라는 이유로 옥죄어 오는 부상인 코르넬리스로 인해서 왠지 낯설고 두렵기만 항해가 더욱 힘겹기만 하다.
거부할 수 없는 부상인 코르넬리스의 힘 앞에서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말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우연한 상황에서 알게 된 반란의 기운은 닥쳐올 불행의 것을 제대로 헤아려 볼 수 없게 만드는 혼란과 공포로 다가온다. 그러한 상황의 것으로 인해 겪게 되는 갈등과 외면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음모와 배신의 행동들은 온전한 것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인양 인식하게 만든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힘의 크기 앞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채 삶의 것을 위한 좌절과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끔찍하고도 잔인한 만행의 짓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되고, 이들의 죽음 앞에서 가해지는 판결의 것으로 얀과 발터는 미지의 섬에 남겨지게 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깨우쳐 가게 되는 얀과 달리 갈등과 번뇌의 것으로 발터는 속절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선택을 한다. 이전의 삶을 다시금 살아갈 수 있는 상황도 입장도 아니기에 스스로 지금의 자신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섬의 원주민들과 동화되기 위한 선택을 하는 얀. 극한의 지경에 이르러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고통과 아픔은 온전한 삶의 것을 누려갈 수 없게 만들었지만 존재의 가치 그것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거듭한 결과의 것은 또다른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모험 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의 것들이 그 스스로를 성장하게 하고 그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진정 그만의 선택된 삶의 것은 외롭고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란 기대를 해보게 된다.
|
|
3.4 1628년 10월 동인도회사의 배 바타비아호가 출항을 합니다. 배는 1629년 6월 4일 새벽에 파선을 하는데 9월 17일에 사르담호가 구조하러 올 때까지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 책은 그 이야기에 끼어 있는 얀이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몇 가지 설정상 헛점이 보이는데, 먼저 얀은 16살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당시로써는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사업에 뛰어들었어야 할 나이지요. 요즘 16살과는 다르니까요. 두번째로 병사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게 이상합니다. 대부분은 무식했거든요. 대접받는 것을 보면 배 밑창에 갖혀 살다시피합니다. 그것처럼 공부도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하사관도 겨우 읽을까 말까하는 지경인데 일반 병사들이 글을 안다는 게 이상하네요. 부상인으로 되어 있는 코르넬리스의 전직이 약제사면 중인밖에 안됩니다. 당시엔 약제사의 지위가 매우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귀중한 화물을 잔뜩 실은 배의 선장이 반란을 꾀한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러기엔 후환이 두렵지요. 아무튼 이야기를 위하여 얀은 서출이여서 집에서 쫓겨납니다. 당시엔 장자가 재산을 독식하는 제도였으니 아버지의 아내가 형식상 큰아들이었던 얀을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 얀도 다른 데 가서 그냥 둘째나 세째처럼 굴었더라도 됩니다. 어차피 다른 아들들도 다 그렇게 먹고살아야 하는 게 당시의 세상인심이었으니까요. 얀의 죄는 큽니다. 선상반란을 알고도 고하지 않아 문제를 현실화시켰으니까요. 교수형을 당하지 않은 것은 큰 시혜입니다. 선장은 부하도 없이 어찌 반란을 획책했을까요? 아마도 회사에서 파선한 책임을 지우기 위해 선장에게 죄를 나중에 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구명보트를 타고 인도쪽으로 가서 먼저 가던 배를 만나 되돌아온 것을 보면 적극적인 반란을 하지 못한 것이니까요. 100310/10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