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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시의 세계 - 곽은영 시집 『검은 고양이 흰 개』
『검은 고양이 흰 개』(랜덤하우스, 2008)에서 곽은영 시인은 “사랑에 미친 가님”(「불한당들의 모험 6」)이란 존재를 표현한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으며 / 내가 하는 것을 한다”고 분명하게 밝히는 이 존재는 ‘에덴의 불칼’을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특이한 존재이다. 그래서 ‘검은 모자의 사내’는 “건방진 것, 넌 미쳤을 뿐이야”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가, 곽은영의 시는 이렇게 건방지고 미친 존재가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엿본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남들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이지만, 시인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이 일로 삶의 환희를 얻는다. “내가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으며 / 내가 하는 것을 할 뿐”(「불한당들의 역사 8」)이기 때문에 시인은 시를 쓴다고 말한다. 자신이 믿는 것을 즐겁게 하는 것이야말로 시인이 행복하게 시를 쓰는 이유이다. 시 쓰기 자체는 고통을 동반하지만, 시가 있기에 시인은 행복할 수 있다. 시를 통해 그녀가 꿈꾸는 세계는 이렇게 ‘사랑’이라는 말로 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소위 ‘미래파’라 불리는 젊은 시인들의 시가 그렇듯 곽은영의 시에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동화적 상상력의 세계가 시의 밑바탕에 스며들어 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은 규정되지 않은 날것으로 시인의 앞에 서게 된다.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들의 상상력은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일상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 사물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시인의 상상력은 동화를 대하는 어린아이들의 행복감만큼이나 경이로운 세계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맑음」이라는 시를 보자. 야구 게임이 벌어진다. 나(시적 화자)는 투수가 되고, 그림자는 포수가 된다. 바람은 응원단장이 되어 멋들어진 파도타기를 유도한다. “전력투구”가 “야구에 대한 나의 견해”라고 밝히는 시적 화자는 그림자의 사인에 항상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자신이 보낸 사인으로 공을 던진다. 그림자는 “부서진 몸을 너 혼자 기워야 하잖아”라고 경고하지만, 시적 화자는 그림자의 경고에 개의치 않고 “항상 패전투수”의 결과를 기꺼이 수용한다.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놀이로서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스크림을 핥듯이 경기를 부드럽게 즐기는 데 있다. 구원투수가 없기에 투수인 시적 화자는 어깨가 부서질 정도로 공을 던져야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화자에게 공을 던지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일 뿐이다. “덜 아문 어깨”를 걱정하는 그림자에 비한다면, 나는 야구라는 놀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전력투구하는 존재에게는 놀이라는 현재만이 오롯이 부각되어 있다. 놀이의 세상에서 ‘노는 현재’에 전력투구하는 시인의 마음은 ‘오늘 맑음’이라는 시의 제목처럼 놀이의 행복감으로 부풀어져 있는 것이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빚어진 「눈사람」에도 타자와 하나가 되는 시인의 독특한 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한 겨울, 당신으로 불리는 눈사람이 나에게 눈을 달라 하고, 입을 달라 하고, 손을 달라 한다. 시인은 기꺼이 눈사람에게 그것들을 준다. 시인에게 눈과 입과 손을 받은 “당신은 당신의 발로 걸어갔다”. 그런데, “눈이 없어지자 / 눈물이 안으로 고였다 / 입이 없어졌기 때문에 울음이 안으로 잠겼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거울을 보고 싶은데 “손이 없어진 내가 / 어떻게 거울을 열까 / 눈도 보이지 않는 내가 / 어떻게 거울을 볼까”라는 질문을 시인은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염없이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눈도, 입도, 손도 눈사람에게 내준 존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얀 눈은 토닥토닥 세상을 덮고 까만 밤의 지붕들을 덮고 당신의 발등을 덮고 어둠 속에서 혼자 녹았다가 밤새도록 꽝꽝 얼었다 아주아주 커다란 거울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내 발로 걸어가 차갑고 비릿한 거울에 볼을 대었다 심장은 똑딱똑딱 - 「눈사람」 부분 거울을 볼 수 없는 존재에게 눈이 내린 하얀 세상이 거울이 되어준다. 끝없이 눈이 내리는 겨울밤에 어둠 속에서 꽝꽝 얼어버린 눈사람이 거울이 되어 시인의 앞에 나타난다. “아주아주 커다란 거울을 만들어주었다”. 눈도, 입도, 손도 없으니까 당연히 “나는 내 발로 걸어가 차갑고 비릿한 거울에 볼을 대었다”. 그러니 “심장도 똑딱똑딱”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눈이 없어, 입이 없어 울음을 삼켜야 했던 시인 대신 눈사람들이 실컷 울어준다. “울고 있는 눈사람들이 아주 많은 계절이었다”는 시의 결구는 타자의 세상에서 타자와 하나가 된 시인의 형상을 보여준다. 타자에게 무언가를 주는 일은 무언가를 타자에게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시인이 이루어내는 큰 세계의 아름다운 모습은 동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시인의 시적 건강성을 방증하는 사례라 보면 좋겠다.
「스탕달 신드롬 3」은 신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문이 없는 방에서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카드를 돌리며 웃고 있다. “손가락을 빨며 웃으시고 기저귀를 만지작거리며 웃으시고 / 머리를 땋으며 웃으”신다. 닳아서 반질거리는 어두운 갈색 계단을 “나는 네발짐승처럼 기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달은 여섯 번째 계단에 턱을 괴고 앉”아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작은 흥얼거림이 넘쳐흐르는 공간은 일상의 공간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신화적 세계이다.
“늙은 채 태어난 것들의 웃음소리”와 “여섯 살 몸에서 한뼘도 자라지 않은 채 오그라”든 존재를 표현한 「스탕달 신드롬」이나, “차곡차곡 거울로 지어올린 헬렌의 방”을 묘사한 「스탕달 신드롬 2」에서도 동화적 상상력과 신화적 상상력이 맞물린 기묘한 세계가 드러나고 있다. 현실과는 이질적인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시인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시적 세계의 형상을 구축한다. 그 세계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위험한 세계이기에 일상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미친 세계’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호호호 불빛이 흩어지는 이곳은 그러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네요”(「스탕달 신드롬 3」)라고. 곽은영은 기묘하고 낯설지만 우리가 가야 할 어떤 세계를 시적으로 묘사한다. 그 세계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몫이겠지만, 그 세계는 분명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시인 역시 그 세계에서 시를 쓰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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