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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문고판으로 읽었던 한권짜리 책 [장발장]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죄수였던 한 남자가 개과천선, 착하게 살아가며 남들을 돕게 되고 그를 추적하던 나쁜 형사도 결국 용서해주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대충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보게 된 [레 미제라블] 뮤지컬은 저에게 엄청난 감동과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냥 한 남자가 좋은 일들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단순한 내용이 아닌, 당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와 부르주아(bourgeois)간의 치열한 계급투쟁이 등장하고, 마치 우리나라의 5월 광주 민주화 운동과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며, <장발장>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유와 인권이 싹트기 시작한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숭고한 인류애와 민주주의에 대한 찬사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어렸을 적 읽었던 문고판 [장발장]과는 천지차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고,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다른 작품인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을 읽은 후, 정해진 순서처럼 이 책 [레 미제라블]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빵 한조각 잘못 훔친 죄로 19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 <장발장>이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요청하지만 모두에게 거절당하고, <미리엘> 주교의 도움을 받아 숙식을 해결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회에 대한 불만과 증오를 못 이겨 은혜를 원수로 갚기로 결심, 새벽에 주교의 은접시를 훔쳐 달아납니다.
그러나 아침에 다시 잡혀온 <장발장>에게 <미리엘> 주교는 그 은접시를 그에게 주고 자신이 준 물건이기 때문에 괜찮다며 오히려 경찰들을 책망하고, 은촛대는 왜 안 가져갔냐며 그것마저 <장발장>에게 주고, 경찰들을 돌려보냅니다.
이 사건은 잠들어 있던 그의 '양심'을 깨우고, 그의 내면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는 <마들렌느>라는 이름으로 [몽트레이유 쉬르 메르] 라는 소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고 구슬공업에 관해 연구하다가 신기술을 개발하게 되어 백만장자가 되며, 결국 시장(市長)에 오르게 되지만, 무고한 다른 사람이 <장발장> 이라는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채 재판소에 자진 출두하여 고백을 하고 다시 복역하게 됩니다.
복역중인 <장발장>은 교도소에서 노역중 우연히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그 사건을 기회로 탈옥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시장으로 있을 때 마음의 빚을 진 <팡띤느>의 딸 <꼬제뜨>를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양부모에게 학대받는 어린 여자아이 <꼬제뜨>를 데리고 빠리에 온 <장발장>은 우연히 수도원에 도피하여, 그가 시장으로 있을 때 커다란 은혜를 베푼 <포슐르방>을 만나게 되어 그의 도움으로 수도원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꼬제뜨>는 아름다운 숙녀가 되고, <마리우스>라는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집권 후 다시 찾아온 왕당파의 집권으로 <루이 18세>가 통치하던 시대...
공화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1832년 6월 빠리에서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대규모 시위를 하게 됩니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시위대에 합류하게 되고, 결국 모두가 군인들에게 전멸 당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마리우스>를 구출해 냅니다.
또한 그는 평생 그를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형사 <자베르>가 시위대속에 밀정으로 잠입했다 발각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그 또한 구해줍니다.
법과 정의, 질서의 수호에 평생을 몸 바친 <자베르>는 그의 정의에 대한 잣대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사람이 살아가며 무엇이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인지 되돌아보게 되며, 결국 <장발장>을 놓아주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살을 선택합니다.
<마리우스>와 <꼬제뜨>는 결국 맺어지게 되고 행복한 결말이 <장발장>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엄격한 양심과 도덕의 화신인 그는 행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를 따라다니는 마음의 족쇄인 '전과자' 라는 사실을 <마리우스>에게 고백하고, 그의 모든 재산을 <꼬제뜨>에게 물려준 후 자신의 과거 때문에 그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기 위해 남남이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 혼자 살아가며 <꼬제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꼬제뜨>의 어린 시절 양부(養父)이자, 희대의 악당이자 사기꾼인 <떼나르디에>가 <장발장>을 모함하고 금전을 갈취하고자 <마리우스>를 방문한 것이 오히려 <장발장>의 결백과 그의 영웅적이고 성인(聖人)과 같은 행위들을 밝혀내는 계기가 되어, <마리우스>는 그의 편협한 생각과 섣부른 판단을 후회하며 <꼬제뜨>와 함께 <장발장>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꼬제뜨>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내던 <장발장>은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입니다.
<장발장>은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찾아온 <마리우스>와 <꼬제뜨>를 신(神)이 내려준 은총이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 해주고, 그들을 축복하며, 그리고 <미리엘>주교가 지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장중(莊重)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장발장>의 모습은 마치 <예수>와 닮았습니다.
그의 삶은 끝없는 고뇌와 시련의 연속이지만, <미리엘> 주교에 의해 도덕적인 각성을 한 후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도덕률 속에 인생을 살아갑니다.
[몽트레이유 쉬르 메르]의 시장으로 재직 중이다가 또 다른 <장발장>이 나타나 그의 과거를 완전히 지워버릴수 있는 기회를 만났을때, 그는 그 소식을 접한후 밤을 새우며 고민합니다.
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선과 악의 충돌...
마치 <예수>가 로마인들에게 체포되기 직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며 기도하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장발장>의 모습은 너무나 처연해 보이며 한편으로는 장엄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빅토르 위고>는 아마도 <장발장>을 통해 이상형의 인간을 구현해낸것 같습니다.
가슴속에서 울리는 양심과 정의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장발장>...
아마 그 모습은 <빅토르 위고>의 삶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을 공화정 수립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열망으로 살아갔으며, 정의와 양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간 그는 거듭되는 망명으로 타국에서 살아갈 때가 많았으나, 결국 프랑스 민중들의 열렬한 환호로 귀국했으며, 국회의원에 선출되었고, 그가 죽었을 때 국장(國葬)으로 장례식을 치르며 장례 행렬에 수만 명의 인파가 밀집 했다니 그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심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2002년에는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프랑스의 모든 초, 중, 고등학교에서 그의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개강식을 거행했다니, 아직도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6권에 달하는 긴 장편이기에 때로는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 특히 그의 해박한 지식과 '천재'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문장력은 종종 독자를 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 -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의 구조와 설정, 뛰어난 문체와 구성의 치밀함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곤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감동'에 있습니다.
<미리엘>주교의 선행, <장발장>의 자기희생, <팡띤느>의 <꼬제뜨>에 대한 사랑, 철저한 신념으로 바리케이트에서 산화(散花)해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과 - 특히 부랑아 <가브로슈>의 죽음은 엄청난 감동이었습니다... - 마지막 <장발장>의 임종 장면들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또한 뛰어난 시인이기도 하였던 <빅토르 위고> 답게 시종일관 미려하면서 절제된, 빼어난 문장들은 순간순간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한 감동을 안겨준 [레 미제라블]...
뮤지컬을 보고 받았던 충격보다 몇 배 거대한 감동을 안겨주니, 아마 뮤지컬을 볼 계획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을 꼭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
사족(蛇足)....
지하철이나 별다방, 콩다방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이 작품을 읽지 말기를 권장합니다..
저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정말 대략난감 했습니다...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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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기는 다른 출판사의 레 미제라블 완역본을 읽고 2007년에 작성한 것입니다. -------------------------------------------------------------------------
장장 일년여에 걸쳐, 총 1700여장에 이르는 독서(라기보단 대장정 같다)를 하고났더니 작품 자체에 대한 감동보다 길고 지리한 독서를 해내고야 말았다는 자아도취감이 더 크다. 이래선 안되는데..ㅍㅎ
일년 전즘 인터넷 도서쇼핑몰에서 여러가지 클래식 문학들을 검색하다, 근 몇년사이에 걸쳐 레미제라블이 완역본이 여러 출판사서 간행된걸 알게되었다. 각권의 두께에 따라 차이가있긴하나 완역본이라 자처하는 것들은 대부분 3 내지 5권, 심지어 6권짜리도있다. 대중적으로 널리알려진 레미제라블의 스토리라인은 참 단순한데, 무슨 얘기가 그리 더 많길래 책이 좀 두꺼우면 3권, 적당하면 5권까지나 될까. 단순한 서사에 덧붙여진 잔가지들이 뭐가있길래하는 궁금증이 너무커 결국 나도 레미제라블 완역본 읽기에 돌입했다.
내가 읽은 것은 중딩시절, 금성출판사 방문영업사원의 화려한 영업전술에 넘어가신 우리 어무이가 아부지몰래 월부로 구매해 씽크대 찬장에 숨겨두었다 한달만에 건네주신 금성출판사판 세계문학대전집의 35, 36, 37 권차.(이 사연많은 클래식 전집은 이사할때마다 제일먼저 싸서 제일먼저 옮기고 제일 먼저 풀러 정리하는 것. 각설하고...) 이또한 완역본이라 자처하는 것이며 다른 완역본들은 안 접해서 모르나, 금성출판사판 전집 시리즈의 대부분 이 그렇듯이 레미제라블의 번역 또한 매우 훌륭하다. 번역본일지라도 위고 특유의 호흡긴 만연체가 억지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즉 앞뒤 문맥도 잘 이어지고, 의미 전달도 잘되도록 단어도 잘 선택되었고 주석도 이해를 도우면서 귀찮지 않을정도로 적절히 삽입되어있다. 문제는 번역이 아니고,역시나 위고 특유의 긴 만연체로 된 집요한 묘사. 레미제라블을 완역본을 읽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말 그렇다.
<노틀담 대성당>에서도, 챕터 5장이던가. 여튼 그 챕터 전부가 중세시대 파리를 동서남북으로 뻗쳐 지리학/지형학적으로 묘사한 것이었는데, 그 5장 부분을 읽는 시간이 5장을 제외한 나머지 책을 읽는데 걸린 시간보다 더 길었었다. 별첨된 지도나 삽화도 없이, 수십페이지에 걸쳐 단락나누기도 잘 안된 깨알같은 글자들로만 여기 강이있네, 흘러 어디로 가다 얄라리얄라셩 언덕을 만나고 그 모양은어떻고, 언덕은 어디로이어지다 무슨 교회가 어디있고 한다면? 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라기보다 좀 미련한 편이기에 그것을 다 읽어냈다라고 여겨진다. 정말이지, 이 할아버지 작품엔 좀 인내심으로만은 읽어내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 위에서 잠깐 말했듯이 챕터 5장에 마주하여 챕터 오장의 마지막 페이지수와 남은 장수를 헤아리며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었으나, 으레 언제나 노틀담대성당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중세시대 파리의 지형을 먼저 이해해야한다는 위고할아버지 농락에 넘아가, 그 사람 질식시키는 장을 다 읽고야 말았다. 진짜 고약한 취미다. 책을 다 읽고나서 보니 그장 쏙 빼고 읽었어도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고 감동받는데 아무 지장없다는 걸 알게된다.(조금 도움 된건 사실이나)
완역본에서 위고소설의 단순한 스토리라인 - 뮤지컬로, 영화로 잘도 채용되는 그 스토리라인-에 덧붙여진 잔가지들의 절반은 그런 것들이다. 레미제라블에선 워털루전쟁, 수도원과 수녀, 근대 파리 하층민들이 사용하던 은어, 필립 5세, 근대시대 파리의 하수도, 프랑스 혁명. 하도 오래 끌며 독서하는 바람에 초반에 나온 위고식 집요한 서술들이 더 많았으나 이젠 그런 것들이 무엇에 대한 것들이었는지 일부를 제외하곤 개념조차 통째로 망각해버렸다. 그래도 워털루 전쟁부분은 비교적 잘 기억이 난다. 사실 이부분은 매우 재밌게 읽었던지라. 워털루에 대해서 그 이전 이후 더 알아본적 없아서, 난 위고가 소설에서 묘사한 그대로를 워털루의 진실이라 믿고 있으며, 나폴레옹의 패배원인도 위고가 알려준 그 어떤 우연한 한 계기 때문이었으리라 확신한다(궁금하심 읽어보라..ㅋㅋ)
집요한 묘사지문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절반은 무엇이냐. 장발장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인연의 타래로 얽어가는 인간사의 복잡한 운명들. 즉 소설의 대줄거리.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토리라인에 잘 등장하지 않으나, 완판에선 중심이 되는 인들물보다 더 인상적인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앙졸라스, 에포닌, 쁘띠 가르보슈를 너무 좋아했다. 미리엘주교는 너무 절대선의 존재여서 인간적이라기보다 신에 가깝단 경외심이들고, 장발장은 너무 처절하다. 레미제라블에 가난한 사람들이란 것외에 비참한 자들이란 뜻도 같이 있다던데, 장발장의 인생사를 보면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자들로 해석되야 더 맞을듯하다. 마리위스와 코제트는 철딱서니 없고 저그들만 좋아서 남 고생만시킨다. 난 소설이고 영화고간에 더 나아가 픽션에서고 논픽션(현실)에서고 간에, 이런 인간유형들은 진짜 질색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깊은 인상과 감동을 준 저 세 인물들은, 가장 비참한 운명의 순간 앞에 직면하여서 자기가 믿었던 신념(사랑이든 사상이든)이냐 목숨이냐를 두고 신과 내기를 한다. 결국 그들은 목숨과 육체의 안위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숭고한 신념을 지키며, 험난했던 짧은 일생의 말로에서 섬광과도 같은 숭고한 빛을 발하며 죽어간다. 그들의 짧은 인생사의 모양새는 미저러블하였으나 그들이 살아온 이유(혹은 살게한 이유)와 죽어간 이유 (혹은 죽어야했던)이유는 너무 아름다워서 저절로 숙연한 마음만이 들뿐이다.
장발장은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인물이긴하나 소설 막바지에 거의 다 이르러서도 장발장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긴 소설 내내 장발장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작가는 다른 사물과 사람은 지루할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한다만 정작 주인공인 장발장에 대해선 그가 무슨생각을 하는지, 왜 그러려하는지 의뭉스럽게만 끄적여댄다. 그런 장발장이 죽기 전에 가장 많은 말을 한다. 아주 긴유언을 말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장발장이 코제트와 마리위스에게 남기는 긴 유언 중에, 미리엘주교의 촛불을 받고 자기는 사랑이란것을 알게되었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려 노력했다는 대목에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솟아났다. 주교의 촛대는 장발장이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후, 그에게 목숨걸고 지켜야할 신념이자 신앙이었고, 인생의 비참한 질곡을 넘어오면서도 그가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타인에게 나눠주어야 했던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러자 일년전즘 이 책의 초반부를 읽기 시작할때 미리엘주교가 그 촛대는 내가 그 사나이에게 준것이라오라는 유명한 대목에서 한번 훌쩍했던 생각이든다. 아아 그랬던거였어. 결국 장발장은 인생의 모양은 누추하고 피곤했어도, 진정한 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최대한 실현하고 죽음으로서 삶도 죽음도 헛되게 하지 않았다.
장발장의 죽음, 그리고 내가 사랑해 마지 않던 세 인물의 죽음을 돌이키며 퍼뜩 철학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나의 죽음은 어떤 가치를 지녀야겠는가 하는것이다. 죽음의 가치는 삶이 결정하겠지. 죽음을 빛나게하려면 생을 먼저 갈고 닦아야한단 생각을 한다. 음, 보여지는 삶이 누추해도 정신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해본다. 아직까진 막연히. 그렇게 당분간 이 길고 지난했던 긴 독서의 여운을 되새기며 살아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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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긴 레 미제라블의 여정이 드디어 끝났다.
항상 어떤 작품을 읽었을 땐 조심스러워진다. 감히 누구의 글을 평한다는 자체도 조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떤 작품을 대하고 즉시로 그에 대한 감상을 논한다는 건 어쩌면 좀 바보같은 짓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직후에 어떤 감상을 논하지 않는다. 나쁜 책(작품이라고 하기는 커녕 쓰레기라고 부를만한, 요즘 나오는 수많은 인스턴트 같은 것들)은 읽고나면 그걸로 끝이지만 좋은 작품은 다 읽고 난 뒤에도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여운이 남느냐 안 남느냐, 또 얼마만큼의 긴 여운을 남기느냐는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직후의 감상과 기나긴 여운을 음미한 뒤의 감상은 또 다르기 때문에, 나는 어찌되었든 모든 면에서 인스턴트 적인 것들을 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은 감상 정도는 남겨보고자 한다. 사람의 감정에는 길게 음미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 또한 있기 마련이니.
누군가 내게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고 물으면 난 스스럼 없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고 답하곤 했다. 그 때의 그 감동은 정말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기가 힘든 것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카페에 홀로 앉아 한 잔의 커피와 책을 즐기는 나는 그 날도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며 한 권의 책을 펼쳤고, 그것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그 카페에서 소리 없이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감정을 순간적으로 폭발하게 만드는 책들은 흔히 여운이 없게 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순간적인 폭발력은 그만큼의 기나긴 여운으로 다가왔고, 내겐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작품으로 남겨졌다. 또한 그 뒤로 수많은 작품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이는 나의 감동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호메로스는 날 흥미롭게 만들었고, 셰익스피어는 날 웃게 만들었고, 도스또예프스끼는 날 전율하게 만들었으며, 괴테는 날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지만, 그래도 내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여전히 어떤 척도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비극만큼 인간의 본질과 그 내면을 강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또 있을까. 사람은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때에는 그 본성이란 것을 잊기 마련이다. 누구나 천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인간의 본질인가에 대하여는 참으로 회의적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인간은 불행 속에서 전적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불행 속에서 그 불행들을 대하는 하나하나의 태도와, 그 때마다의 내면에서의 심경의 변화, 끊임없이 갈등하는 양심, 하지만 항상 지금보다는 나아져야한다는 강한 욕구, 그러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으려는 본능, 하지만 다시 그에 대한 양심과 이성의 목소리, 그로 인한 갈등.
레 미제라블, 2000페이지가 넘는 꽤나 긴 작품이다. 하지만 그 탄탄한 구성과 정말 "치밀"하다고 말할 만한 인물배치와 그 등장구조는 "아!"라는 탄식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프랑스 혁명사 속에서 자연스레 이끌어내는 당시의 시대상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도피에 도피를 거듭하며, 위장에 위장을 거듭하고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는 잠시도 쉴 새 없는 그들의 등장과 끊임없는 사라짐 속에 그들은 고뇌하고 갈등하며 욕망하는 그들의 이야기,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비참한 환경 속의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온통 가득하다.
얼마만의 눈물인가. 얼마만의 진정한 카타르시스인가. 호메로스의 그 진취적 흥미로움보다, 셰익스피어의 그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면에 대한 연민과 조소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그 짜릿한 전율보다, 괴테의 아름다운 선율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던 그 새로운 세상보다, 더 날 흥미롭고 웃게 만들었으며 내게 더 짜릿하다기보다는 아찔한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고 더 아름다운 선율로 날 보다더 새로운 세상을 이끌었으며 무엇보다도 내게 순간적이고도 폭발적인 크나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참으로도 굉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작품을 읽어나감과 동안 작은 감동 하나하나가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다가 그 차곡차곡 쌓인 잔잔한 감동이 더이상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찰나, 그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뻥! 하고 터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의 감동도 빠뜨리지 않고 차곡차곡 담아 한번에 순간적이고도 폭발적인 강한 전율로 다가오는 만큼, 보다 강한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지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내게는 이제 새로운 척도가 생겼다.
내가 사랑한 괴테만큼, 내가 정말 동경해 마지않았던 도스또예프스끼만큼, 위고는 내 사랑을 받을 것이며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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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프랑스 역사와 시대의 모습을 장편으로 풀어놓았다. 선택의 순간에서-어쩌면 삶이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겠지만- 방황하고 번뇌하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이토록 상세하게 통찰할 수 있었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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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장발장이란 이름만 알고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우연히 리영희 선생님 책을 읽다가 옥중에서도 읽으셨다는 내용을 보고 레미제라블이란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부분 우리가 잘 아는 신부님과 은촛대 이야기 등 어려서 읽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감동의 연속이고 제 눈에서 눈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자베르 경감의 고뇌 코제트를 위해 자신의 시장직도 버린 장발장 혁명의 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파리의 하수도를 헤매며 마지막 숨을 거둘때까지 책을 읽으며 제가 흘린 눈물이 한 컵이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께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레미제라블을 꼽고 소설가 조정래씨가 레미제라블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저 또한 제가 읽은 소설중 최고의 소설을 레미제라블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꼭 한 번 읽어 보세요 눈물을 흘리고 싶으신 분들은 따뜻함이 전해 오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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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 지긋 지긋한 삶속에서 위안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책이 아닌듯 싶다.
나의 독서 방법은 책을 여러권을 동시에 시작하는 엽기적인 독서 방법을 하고 있다.
책을 앉은 자리에서 죄다 읽다보면, 이야기에 그냥 빠져들어서 중독되는 것 같아서, 가급적... 이야기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독서를 하려고 하는 주의이다.
나는 프랑스와 프랑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글로벌하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이 작가의 작품이 기똥차게 재미있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특히 2권에서의 전쟁 묘사는 꼭 있어야 하는 부분이였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정도였으니깐..
여하튼, 이 책은 재미보다 느낌, 감성... 그리고..슬픔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원래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만 느끼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는데...
솔직히 정치나 그런건 별루 관심이 없어서, 혁명 어쩌구 하는 부분은 단지 소설적 장치로만 치부하여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그랬음에도 팡틴느의 이빨 뽑는 장면을 비롯하여,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고 비참한 삶에 대한... 그의 글솜씨는...정말 감탄 그 자체였던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로 공지영소설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던져버릴만한 책은 아니다. 그래서..세계명작이라고 하고, 여러 세월을 지나서 고전으로,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가이고 소설인가보다,라고 생각했었다.
ps. 책 읽고 깜짝 놀란점 : 장발장이 밥 얻어먹은 교회에서 촛대 갖고 도망치는 것은 레미제라블이란 것을 알았었다. 하지만, 수녀원의 묘지를 통해서 탈출하는 이야기는 레미제라블이 아니라 명탐정 홈즈의 내용이었었다고 생각했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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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소설을 읽고깊은 감동의 처절한 몸서리를 느껴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겟다 레 미제라블. 장발장으로 알려져있는 이책을 처음 접할때. 분량및 장대한 내용으로 너무 심오하고 너무 괴변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레 겁부터 먹었다. 비록 살기위한 죄인이었으나. 누구보다도 성자다운삶과 자신의 양심및 영혼을 사랑하는 거룩한 삶을 살았던 장발장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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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레 미제자블.. 사실 어릴적 읽었던 동화 장발장에 대한 기억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단지 몇 몇 장면들이 스쳐가듯 기억에 날뿐.. 전체적인 줄거리 조차도 가물했다.. 그래서인지 원작인 레 미제라블을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딱히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릴 적 장발장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봤다.. 4대 뮤지컬 중 하나란 말에 솔깃해 본 뮤지컬.. 하지만..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보고 받은 충격이란.. 너무 아름다운 음악.. 너무 가련한 인물들.. 장발장.. 자베르.. 가브로슈.. 에포닌.. 그리고.. 이름없이 죽어간.. 바리케이트의 젊은 피들..
2시간을 훌쩍 넘긴 공연시간이 모자랄정도의 엄청난 이야기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던 장발장은 뭐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 혁명 후 왕정, 공화정, 제정 다시 왕정의 복고 등을 거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아니 견뎌내야 했던.. 민중들.. 그 민중들이 살아낸 그 세월을 이야기로 표현한 힘..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감동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장 위대한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그 사람들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소설이고.. 역사이지 않을까.. 그래서 책에서 나온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모두가 소중하게 그리고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이 책을 어릴 적 읽었던 장발장으로 기억하는게 얼마난 큰 실례인지..소설 속 인물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이름이 기억되어야 함을.. 그들은 장발장도, 팡틴느도, 자베르도, 마리우스도, 에포닌도, 가브로슈도 아닌 레 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다.. 그 힘든 시기를 살아내야 했던..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냈던 레 미자라블..
사실 책을 읽으면서.. 줄거리랑 상관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어색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뛰어넘을까 고민아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길고 긴 이야기속에 어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의 그런 얘기에도 귀 기울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뛰어 넘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레 미제라블에서 범죄자로, 사회의 이방인으로 그리고 다시 성인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장발장의 이야기는 역시나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그 자신에게 진실하고자 하는 그의 번뇌에 눈물흘리기도 했고.. 하지만.. 이 책이 정말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것은 그 시대의 레 미제라블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각 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세상을 바꾼 수많은 민중들..
오늘날 너무도 편안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 사람들을 잊어선 안된다.. 그 사람들이 물려준 이 안정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렇게 원한 자유와 평등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이 자유와 평등이.. 우리가 받은 이 수많은 기회들이 어떻게 얻어졌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우리는 레 미제라블을 읽어야 한다.
------------------------------------------------------------ 덧붙이는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인물은 소년 가브로슈이다.. 적어도 나는 그에게서 또 한 명의 장발장을 보는 듯했다. 아니 장발장 이상의 위대한 영혼을 보는 듯했다. 천사.. 그에게는 그 단어가 어울린다. 장발장의 선이 끊임없는 자기 단련에서 비롯된 것임에 비해 가브로슈의 사랑은 가브로슈 그 자체이다. 그가 장발장이 몽메르트에게 준 지갑을 훔쳐 가난한 집에 던져줄때도, 자신의 동생이지만 서로를 모르고 있던 두 불쌍한 꼬마들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해 줄 때도, 또 바리케이트 너머 포탄을 주워 올 때 조차도 그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의 배고픔도, 그의 죽음조차도... 그저 그는 행동한다. 그 자신도 한끼 해결 조차도 힘든 거리의 부랑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보다 약한 자들, 힘없는 자들을 본다.. 아마도 그가 아직은 아이의 영혼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영혼을 가진 그대로 죽은 그는 행복할 것이다. 천상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사랑받을테니...
그에 비하면 장발장의 영혼은 조금 더 불행하다. 그는 고통받았고.. 순수함을 잃었고.. 그런 다음 미라엘 주교를 통해 다시 선함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고민해야 하고.. 고통받아야 했다.. 언제나 자신속에서 싸워야했다.. 죽는 순간에 기적처럼 허용된 짧은 행복에 감사하고.. 언제나 용서를 구해야했다. 이미 그가 지은 죄보다 훨씬 더 많은 선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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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이라면 흔히 장발장과 빵 한 조각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 또한 그랬었고. 이것이 6권짜리 대작이라는 것도, 장발장만큼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이 소설을 제대로 마주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얽혀있어서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작가의 쫄깃한 입담은 이야기를 더 맛깔나게 해주었다. 다만 문장이 좀 긴데다, 번역의 한계인지 몰라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꽤 많았다. 또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 나라, 그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읽는 순간 순간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또 pdf 파일이라서 보기에 많이 불편했다. 이북이 가진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어...참 성의없이 책을 만들어 파는구나, 앞으로 이 출판사의 책을 사야하나? 아무리 번역이 낫다고해도 말이지, 같은 이런 저런 생각을 들게 만들었지. 여튼 이러한 단점만 좀 보완이 된다면 누구나 읽고픈 명작으로 거듭나지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제대로 된 번역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