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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람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가 어떤 면에서 변했는지도 알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어렸을 때와 여전히 같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게 정말 일관성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때그때마다 눈치껏 경험으로 알아차려야 하는데, 내 일임에도 나를 잘 모르겠다. 이래서야 세상 어느 일에 대해서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워지는데. 이 시인의 시를 좋다고 느꼈다고 기억한다. 다시 들춰보지는 않았지만 맞을 것이다. 이 시집도 그래서 펼쳐본 것인데, 아, 이랬던가,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변한 쪽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변한 건지, 작가가 변한 건지, 혹은 내가 변하지 않은 건지. 작가의 예전 시집과 이 시집을 나란히 놓고 비교까지 해 볼 생각은 전혀 없고 오로지 내 인상에 남은 기억만으로 비교하는 건데 나는 안 변하고 작가는 변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에 이르게 된다.(맞고 안 맞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쨌든 이 시집에 내가 빠지지 못했다는 말이니까.) 이 시집의 시들은 우리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세상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시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아닌가?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시라면 소설과 달리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물러나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가? 이렇게 쓰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고단한 문제에서 물러나 있는 시들을 더 좋아하면서 아닌 척 나를 속이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변하지 않는 위선 하나. 개운하지 않은 독서다. 나를 만나는 일은 때로 이렇게 쓴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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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읽지 않던 시집을 오랜만에 읽어 볼까 하고 최근 나온 시집들을 찾아보던 중 예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작가의 시집이 신간이 있어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이윤학이라는 시인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의 이미지입니다. 미묘하게 삶이라는 경계선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영역의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선보이며 기교의 매력이 무엇인지 보여 줌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그 속에서 주제를 발견하도록 이끄는 점이 마치 깊은 바다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세이렌과 같은 느낌의 시어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번 짙은백야에서도 기존에 알고 있던 작가의 장점들과 더불어 더욱 발전된 시어 구사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아서 읽는 동안 한편한편 꼼꼼하게 시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하다는 느낌이라 이번 시집에서 최고인 작품이 무엇인가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시어들의 나열이 조금 복잡해서 이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 시집이었고 이번 짙은백야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시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집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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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 속에서 건너편 불 켜진 아파트를 건너다본 적이 있다. 커튼이 열린 이웃의 거실에는 소파에 앉은 노모와 탁자 주위를 뛰어 다니는 어린 두 명의 손주, 아랑곳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향하여 꼼짝도 하지 않는 아이들의 아버지 그리고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발코니 쪽으로 넘어 오는 여인이 있었다. 발코니에는 몇 개의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여인은 한참동안 백합이 환하게 피어 있는 화분을 바라보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그 화분을 들어 슬쩍 난간 너머로 던져버렸다. “백합이 품은 짙은 백야를 / 필사적으로 걸어온 자 / 물소리를 틀어놓고 / 자갈을 뒤집는 잠이 들었다” - <짙은 백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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