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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폭력 검은 저항 - 수전 캠벨 바톨레티
"하얀 폭력 검은 저항 - 수전 캠벨 바톨레티" 내용보기
최근 뉴스를 통하여 미국 텍사스에서 말을 탄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포승줄에 묶고 끌고 가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마치 노예제도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현지에서 많은 비판이 일고 있지만, 정작 경찰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상황이다. 최근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대처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상황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에 여전히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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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뉴스를 통하여 미국 텍사스에서 말을 탄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포승줄에 묶고 끌고 가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마치 노예제도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현지에서 많은 비판이 일고 있지만, 정작 경찰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상황이다. 최근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대처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상황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에 여전히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이러한 차별이 흑인에 대하여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역시 그러한 차별의 대상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미국에 존재하는 이러한 차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이루어진 미국의 남북전쟁은 전쟁 기간 중 이루어진 노예해방선언(1863년)으로 인하여 전쟁의 성격이 마치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전쟁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전쟁으로 인하여 공식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흑인이 곧바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늘날에도 공공연하게 인종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당시 노예해방선언과 그러한 정책을 지지하던 북군이 승리를 거뒀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남부 백인의 반발과 흑인들의 조심스러운 적응은 평등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요원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미국의 역사에서 흑인의 민권에 대한 다양한 법안과 그에 따른 저항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미국의 재건 시대(1863년 노예해방선언 또는 1865년 남북전쟁 종전 시점부터 1877년까지에 해당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그러한 변화의 양상[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라는 글을 통하여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물의 증언과 실제 뉴스 기사를 바탕으로 당시 흑인의 민권이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였는지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남북전쟁 막바지에 북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13조가 통과되었고, 1년뒤 정식으로 의회에서 채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남부는 왜 연방 정부의 그러한 정책에 반대한 것일까? 지금까지 북부에 비하여 흑인의 노동력이 절대적인 생산 수단이었던 남부의 상황에서는 노예 폐지는 생산 수단 및 재산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전쟁 기간에 북군에게 그들의 농장은 약탈당하였으며, 전쟁에 패배를 하여 연방 정부로부터 반역자라는 낙인까지 찍혔으니 남부 백인에게는 이는 더욱 큰 상실감으로 작용하였다. 무엇보다 250년 동안 백인이 사회 계층의 윗막이에, 흑인이 가장 낮은 아랫막이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간격을 노예제도의 폐지로 단번에 메꾸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들이 내 것이 아니라면 누구 것인가요?"라는 백인의 절규는 당시 흑인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남부 백인의 입장에서 노예해방이 진정한 인종 차별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부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으로 인하여 그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점점 산업화되어가는 북부의 상황에서는 흑인 노예가 절대적인 수단이 아니었으며, 남북전쟁 중간에 노예해방선언이 이루어진 것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부 백인은 하느님이 흑인을 백인의 노예로 활용하기 위하여 창조하였다는 굳건한 신앙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흑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공치사는 미합중국 정부가 받았지만, 정작 대가를 치른 것은 남부인들이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연방에서 탈퇴하여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한 입장이었으니 남부 전체가 반역자로 내몰린 상황에서 그들은 일방적이긴 하지만 노예해방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선의를 베풀며...이 나라의 상처를 봉합하고,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합시다."

 - p. 27 中에서 -

 링컨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 연설의 내용을 감안한다면 흑인들 입장에서 재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인 측면과 북부의 백인 역시 평등이란 흑인이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는 것으로 바라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남부의 가혹한 노예정책에 비한다면 자신들에게 큰 변화가 오리라는 것을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종료 5일후인 1865년 4월 14일에 암살을 당하였으니 그의 흑인에 대한 관대한 재건 정책은 실질적으로 상징으로만 남게 된다. 그의 뒤를 이어 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공화당인 링컨과 달리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통상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은 같은 당에서 선출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남부와의 화합을 위하여 민주당 소속의 앤드루 존슨을 지명한 링컨의 선택은 오히려 그가 꿈꾸던 재건 정책에 차질을 가져오게 된 것이었다.

 

 노예 해방에 대하여 적극적이었던 공화당 의원들은 남부에 대한 가혹한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민주당 출신이자 본인이 남부 주지사 출신이었던 앤드루 존슨은 그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심지어 남부 백인에 대하여 관대한 사면 조치마저 단행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남부에서는 '흑인 단속법'을 통하여 해방된 흑인에 대하여 다시금 통제를 가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들에게 흑인이 생산 수단으로 필요한 상황에서 자유민이 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에 반발한 공화당원들은 존슨 대통령의 거부권에도 불구하고 1866년 4월 '민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남부의 '흑인 단속법'을 무효화시키게 된다. 인디언을 제외한 미합중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시민으로 인정받고 미합중국 정부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이 법안은 남부 백인을 더욱 압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표현처럼 '하얀 폭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KKK(Ku Klux Klan : 쿠 클럭스 클랜)이 탄생하게 된다.

 

 "여보게들, 우리 모임을 만들어 보세."라는 말과 함께 탄생된 KKK는 1866년 테네시 주 펄래스키 시티에서 여섯 명의 남부 퇴역 군인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애초 위의 말처럼 답답한 남부의 상황에 대해 토론하는 사교 모임에서 출발하였지만, 조직의 수장을 '그랜드 사이클로프스'라 부르면서 마치 유령을 연상케 하는 뾰족한 두건, 하얀색 가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님으로써 신비주의적인 의미가 가미된 단체였다. 이후 회원이 가입하거나 활동을 할 때, 철저히 비밀에 입각하여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들 세력은 남부에서 폭넓게 확대된다. 하지만 클랜은 점점 무지한 데다 미신까지 믿는 몽매한 자들을 마음먹은 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일개 사교 모임에 불과했던 클랜은 옛 노예들의 품행을 단속하는 집단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클랜의 초기 단체인 존 레스터는 애초 사교모임 내지는 자경단으로 출발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노예제도 하에 폭넓게 용인되던 인종차별 행위를 계속 이어 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다.

 

 남부 기병대장 출신이었던 네이선 베드포드 코리스트를 '그랜드 위저드'로 영입하면서 클랜의 활동은 조직적으로 흑인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우선 자유민이 되어 생산물의 반을 토지 임대인에게 넘겨주는 '반작'의 형태로 일종의 자립을 꿈꾸던 흑인들을 협박하여 그들의 생산물을 갈취하거나 아예 쫓아버렸으며, 흑인들을 위한 학교와 교회 역시 흑인들에게 불온한 사상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테러를 가하였으며, 이에 동조하는 백인들에게도 살인을 일삼았다. 더구나 1867년 내슈빌 시에서 이루어진 클랜과 민주당원의 만남은 이들이 공화당 정권을 전복하고 재건 정책을 둘러싼 갈등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로 비춰질 여지가 있었으며, 이제 쿠 클럭스 클랜은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라 일종의 준군사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백인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됨에 따른 백인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뭉친 이들은 나라 안의 나라로서, 자체의 헌법과 지도자, 법률, 경찰 조직을 갖춘 '보이지 않는 제국'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클랜의 이러한 범법적인 행위는 남부 주 정부와 법원에서 미온적인 대응을 통하여 용인되었기에 그들의 흑인 탄압 및 동조 세력에 대한 보복은 거칠 것이 없었다. 흑인에 대한 구타 및 강간은 물론 나무에 목을 메어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하는 그들의 행위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의 건국 이념과 헌법으로 동작하는 미국의 법치 체계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흑인들 역시 어렵게 얻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으로 인하여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다. 선거권을 획득한 흑인들이 클랜으로부터 민주당에 투표하라는 협박을 받은 상황에서도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살당해야 한다면, 차갑게 피가 식어 살해당해야 한다면... 그렇게 합시다.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는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공화당에 투표를 하였으며, 스스로 교사와 성직자가 되어 흑인의 실력 강화에 힘썼기 때문이다.

 

 또한 새롭게 대통령이 된 북군 사령관 출신의 그랜트 대통령은 1871년 4월, 이른바 '쿠 클럭스 클랜 법'이라고 일컬어진 민권법에 서명을 함으로써 클랜의 범죄에 대한 연방 개입의 길을 열어 놓는다. 수정헌법 14조를 집행하는 이 법안은 법 앞에서의 평등한 보호를 방해하는 행위를 연방법 위반으로 규정함으로써 이제 클랜의 범죄는 남부의 지방 법원 및 주 법원이 아니라 연방 정부에서 다룰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이는 최악의 경우 남부에 다시 연방 정부군을 투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871년 5월부터 12월까지 특별위원회는 클랜에 의한 잔혹한 행위를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간 클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흑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다시금 그들의 범죄 행위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쿠 클럭스 클랜 역시 연방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대부분 사면을 댓가로 죄를 시인하거나 캐나다로 도주를 하였으며, 그들의 무력 단체인 기마단 역시 연방에 의하여 해체되어 그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된다. 이제 노골적인 흑인에 대한 차별은 일단락된 것이다.

 

 하지만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 다루는 재건 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흑인을 차별하는 다양한 법안이 등장하였다는 점과 근본적으로 북부 백인 역시 그들이 생각하는 평등이 백인과 흑인이 동일한 선상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오늘날 미국의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와 달리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차별에 비하여 오늘날 교묘히 이루어지는 차별이야말로 더욱 큰 문제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 책이 미국의 인종 차별에 대하여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이 책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백인들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과 달리 이외의 이방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일종의 차별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파트와 자동차로 대변되는 자산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도 볼 수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극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인종 차별에는 저항이라도 존재하지만, '돈의 폭력' 앞에 별다른 저항없이 오히려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차별이라는 폭력과 그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 보다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g*******7 2019.08.30. 신고 공감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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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폭력 검은 저항, 그런데 우리 안의 KKK는 어쩔 것인가
"하얀 폭력 검은 저항, 그런데 우리 안의 KKK는 어쩔 것인가" 내용보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하얀 것은 좋은 것, 검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블랙리스트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그런 무의식를 뒤집는다. 폭력을 하얀 것으로, 저항을 검은 것으로. 그런데 이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검은 감자>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일랜드의 감자 역병에 의한 대기근을 연상시키게 했듯이 수전 캠벨
"하얀 폭력 검은 저항, 그런데 우리 안의 KKK는 어쩔 것인가" 내용보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하얀 것은 좋은 것, 검은 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블랙리스트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책은 제목부터 그런 무의식를 뒤집는다. 폭력을 하얀 것으로, 저항을 검은 것으로. 그런데 이 제목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검은 감자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일랜드의 감자 역병에 의한 대기근을 연상시키게 했듯이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이 하얀 폭력 검은 저항이라는 제목을 통해서 백인들이 가한 폭력, 그리고 그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을 얘기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다루는 것은 KKK단의 역사다. 역시 사회학적 분석은 거의 가미하지 않은 채 그 일들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KKK.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 결성된 것부터 보여준다. 시점은 남북 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이 나고, 남부의 절망감과 분노가 치솟아 있는 무렵이다. 전쟁에 참전했던 테네시주 펄래스키의 여섯 사내들은 종종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얘기를 했을 것이다. 특히 북부에 대한 불평, 흑인에 대한 모멸스런 얘기들, 남부의 운명에 대한 얘기를 했을 터이다. 그러다

“1866 5월 어느 날 저녁에 나눈 대화뿐이다. 이날 예의 법률 사무소에 남자들이 모여 있을 때 존 레스터가 갑자기 친구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들, 우리 모임이나 단체 같은 것을 만들어 보세.”” (48)


이렇게 KKK는 시작된다. 농담처럼 주고받다 친목 모임이나 만들어보자고 한 것이다. KKK라는 이름만 보면 뭔가 음산한 느낌부터 주지만, 실제로는 그리스어로 모임혹은 무리를 의미하는 쿠클로스(kuklos)’라고 하려다 뭔가 있어 보이려고 쿠 클럭스로 조금 바꿨다. 거기에 무리’, ‘모임을 의미하는 또 다른 말인 클랜(klan)’을 덧붙였다. 그러니 이 이름은 사실 우스꽝스럽다. ‘모임 모임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농담처럼 결성된 작은 조직은 남부 지역에 들불처럼 퍼져나간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질서를 다시 세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겁했던 것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하고 복면을 하고서 밤에만 행동하며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의 응징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폭력을 넘어선 범죄 행위는 정도를 더해갔고, 조직도 커져갔다. 책에서도 얘기하듯이 차별을 찬성하는이들이 차별을 용인하는 사회와 만나, 그 차별이 질서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거의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처벌을 받더라도 아주 경미한 처벌에 그쳤다.

 

미국 정부도 우왕좌왕댔다. 우리는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과 남북 전쟁 이후 노예 해방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처럼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며칠 후 살해당한 링컨의 뒤를 이은 존슨 대통령은 태생이 남부 출신이었으며, 남부의 재건에 대해 의회와 대립한다. 남부의 지도자들에 대해 대부분 사면을 내렸으며, 흑인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엄정한 태도를 지니지 못했다. 다음 대통령으로 북부의 군대를 이끌었던 전쟁 영웅 그랜트가 당선되고, KKK에 대한 응징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응징은 철저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흑인과 흑인을 옹호하고 교육하던 백인들이 KKK에 의해 협박을 받고, 폭력을 당하고, 심지어 죽었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은 사람은 일부였으며, 그 일부도 몇 년이 지나자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그 후의 일은 예상 가능하다. 다시 KKK는 번성했고, 1960년대에 이르러 다시 목숨을 내놓는 투쟁을 통해 민권운동이 벌어졌으며, 겨우겨우 형식적인 평등이 선언된다. 그러나 저자가 스스로 확인했듯이 여전히 KKK의 집회는 계속되고 있으며, 흑백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당당할까? 우리가 식민의 시절을 겪으면서 겪었던, 그 이후 유색인으로서 받았던 차별을 얘기하지만 이제 우리는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피부색에 대한 차별 만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KKK를 비난하고, 그 행태를 용인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실은 우리 속에 그 KKK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 본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n*****m 2019.09.19.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