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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을 얘기하여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한 것으로’만’ (일부가) 굳게 믿고
있는 애덤 스미스의 경우, 그것은 결국 반독점에 대한 주장이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타인과 어떻게 어울려 살 것인가를 고민한 사상가였다. 칼 마르크스는 지금은, 특히 한국에서는 철지난 이론, 또는 종북좌빨의 원흉으로 지목되곤
하지만, 정작은 공황과 착취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적 전략을
내놓은 이론가였다. 막스 베버의 경우, 프로테스탄트 윤리(특히, 칼뱅주의)와 자본주의의 성공을 연결시켜 이른바 우파적 경제 사상의 대가로 일컬어지지만 그는 칼뱅주의가 자본주의 성립에
기여했을 뿐이라고 얘기했고, 정작은 ‘온건 모범생 좌파’였다. (적어도 내게는 낯선) 칼 폴라니는 협동조합을 통한 계획 경제를 주장함으로써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존 메어너드 케인즈는 우파, 자유주의자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20세기 대표적 경제학자이지만, 정작은 자본주의를 유지시키기 위한 구원자였다. 그가 제안한 정책은
실제 경제에 적용되어, 어찌 되었든 대공황을 극복하는 정책이 되었다.
그럼에도 무분별한 ‘삽질’은 안 된다는 것을
잊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조지프 슘페터의 엘리트주의도
이른바 자본가들에 의해 오해되거나 악용되었다. 그는 ‘기업가’를 ‘혁신가’로 생각했으며, 그들에 의해 경제가 발전된다(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슘페터를 자본가의 혁신적 역할과 그에 대한 막대한 보상을 정당화한 인물로만 기억’한다. 이는 철저한 오해이며 악랄한 악용이다. 베블런은 평생을 비주류
경제학자로 살아갔고, 그의 ‘유한계급론’ 또는 ‘베블런 효과’는
주류 경제학에서 예외로 밖에 취급하지 않지만 오히려 현대의 소비 행태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이론이다. 『증여론』, 즉 선물 경제를 처음 얘기한 마르셸 모스 역시 선물 경제의 틀에만 가두기에는 아주 폭넓고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한 경제학자였다. 사회경제학자 조형근과 시사평론가
김종배의 팟캐스트에서 경제학자들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그들이 고른 경제학자들’만’이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경제학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오해하고 있거나 악용해서 인용하고 있는 경제학자이면서 그들의
경제학 속에서 현대 경제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선택이다.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의 삶과
주장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있지만, 사실은 이 책(또는
대담)의 목적과 가치는 거기에 있지 않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이 세계 경제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에서 주로 읽어야 할 부분이다. 이들이 팟캐스트를 진행한
시점은 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점이고, 책은 박 정권의 한 가운데에 나왔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많이 달라진 지금 이 책의 가치가 어떨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뀌고, 정치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경제의 환경과 논점은 그만큼 바뀌지 않았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두 대담자가 우려하는 상황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의 가치와 한계 또한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긴 겨우 몇 년이니… 사실 경제학 자체가 경제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부정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제학자들의 고뇌와 주장, 실천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음을 얘기한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 말은 ‘경제학이 그럴 수 있었으면’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학이 그럴 수 있었으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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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도 하는 기업에서, 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영업조직에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이라 불리는 규칙을 잘 이해하고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내가 인간임을 자각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후배가 말하던 책이라 내가 읽어 보겠다고 구매했다. 경제학을 깊이있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협소한 시장의 스펙트럼을 바라보며 느끼는 점들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의 단면을 보고 사는 사람과 그 단면과 이면의 관계를 보는 것은 새로운 안목과 시야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방송을 정리한 책으로 사회학 전공자가 바라보는 경제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담스미스, 마르크스, 막스베버, 칼 폴라니, 케인즈, 슘페터, 베블런, 모스까지 다양한 학자를 다루고 있다. 그 이야기 속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필요한 부분과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부분만 차용하여 현상을 짜마추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기심과 이익란 동기로 바라보기 이전에 인간 본연의 관계를 기록한 아담 스미스를 우리는 아주 단면만 보고 있다. 공산주의와 빨갱이로 점철된 마르크스는 투쟁과 같은 정치적 해석 이전에 당시에 접한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자본주의자이기도 하다. 2-3년전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금 마르크스에 관한 책이 여러권 출간된 것도 그 만큼 자본주의가 내포할 수 있는 불완전성을 바라본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시카고 학파중심의 신자유주의와 화폐경제를 중심으로 금융팽창주의의 가속패달이 멈춰서고 다시금 케인즈를 돌아보는 것도 온고이지신이란 자연스러운 학습태도다. 중요한 점은 정책을 세우고,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양쪽을 돌아보지만 그 제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단면만을 본다는 것이 역량을 더욱 제한하게 된다. 케이즈의 "정보가 바뀌면 결론이 바뀐다" 다른 책의 번역으로는 "상황이 바뀌면 나는 판단을 바꾼다. 경은 어떠한가?"라는 그 한줄은 인간이 갖고 있는 불안정성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지속적인 시스템의 개선, 개선방향을 결정하는 시대의 철학과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볼 수 있다. 변덕이 아닌 유연한 사고와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가장 재미있게 보게된 학자는 칼 폴라니다. 순순한 노동의 가치와 상품으로써의 노동이 초래하는 구분자체가 조금 어렵기도 하고 일상에서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힘든 경계가 존재하지만 보다 인간적인 삶을 경제제도를 위해서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함께 피력하는 부분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슘페터도 재미있습니다. 창조적 파괴와 혁신으로 알려진 슘페터가 마르크스의 정태적 경제이론을 극복한 동태적 경제분석에 대한 긍정의 이야기를 보면서 같은 것을 보고, 깨닫는 정도의 차이만큼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의 깊이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된다. 매체와 신문지상에 오르는 세이의 법칙, 파레토의 법칙이란 결과를 교묘하게 차용하면서 그 근본적 논리의 근간은 용도폐기된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역사속의 인물들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의 오해는 자연발생적이라기 보다는 인위적인 정치의 폐해가 아닐까합니다. 책을 통해서 학자와 시사평론가가 풀어가는 다양한 지적 깊이에 대단함을 보게 되고, 내가 세상속에서 일하며 논리와 이성의 저편에 존재하는 감성과 인간에 대해서 돌아보는 고민들에 대한 성찰이 벌써 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쪽과 더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은 아무 만족스러운 책입니다. 도서를 다시금 눌러보니 리뷰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꼭 옳다가 아니라 넓게 보고, 주어진 상황을 이해해야 케인즈의 말데로 판단을 바꿀것인지, 어떤 판단이 내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도움이 되지 않을가합니다. 편견과 편식은 건강한 정신과 몸을 방행하는 원인이 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