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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도 묘한 흐름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책 읽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흐름도 있겠습니다만, 출판계가 만들어내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금년 여름에는 특히 남성의 정체성이 주목을 끌고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저도 같은 맥락의 책을 이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소개드린 일본의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의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 http://blog.yes24.com/document/8870141>에선 은퇴 이후의 남성과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주에 소개드린 <혼자 있고 싶은 남자>는 우리나라에서의 남성의 심리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남자>는 상담심리사로 활동하시는 선안남님이 상담현장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냈습니다. 앞서도 출판의 흐름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만, 작가의 저서 목록을 보아도 그런 흐름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여성을 다루었다가 이제 남성으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학이나 심리학이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이 개별 사례를 통하여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미분적 접근방식을 취한다면 사회학은 개별 사례들을 모아서 거시적으로 분석하는 적분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작은 변화가 모여 큰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현상으로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특정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성의 정체성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의 정체성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통하여 새롭게 드러나는 현상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혼자 있고 싶은 남자>는 남성 심리학을 다루고 있지만, 특히 중년 이후의 남성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의 장년들이 갈 곳을 찾고 있다’라고 본 미나시타 기류와는 달리 <혼자 있고 싶은 남자>의 저자는 ‘한국의 남자들은 혼자 있고 싶다’라는 명제를 내놓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남자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자다움‘의 압력에 시달리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방법을 터득하고 억압 본능을 갈고 닦게 된다(7쪽)”라고 전제합니다. 하지만 저자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특정한 성격의 남자들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이 전제가 타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는 대다수의 남성들 역시 이와 같은 압력을 받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미에 보편성의 그물망에 묶이지 못하는 개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이 있다는 점을 서술하기는 했지만,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이야말로 개개인의 특수한 경험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자는 남녀 간의 성차에 주목하고 과거와 현대의 남성상을 병렬적으로 비교, 대조하는 방식으로 남성상을 설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인식의 틀과 차이를 허물로 각자의 경험 밑에 깔린 복잡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물꼬를 트고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과거 한국의 남성상을 ‘가부장제’라는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기에는 과거 한국의 가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를 정확하게 짚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앎이 많지 않아서 잘 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만, 과거 한국의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방적인 횡포에 눌려 살았다고 정리하는 것이 절대적 진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조, 특히 관직에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나뉘었던 사회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지 서로의 영역을 존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지엄하신 왕께서도 내명부의 일에는 일체 간여할 수 없었던 것이 법도였던 것처럼 사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남녀가 평등한 사회의 전형으로 삼는 서양에서의 여성의 입지는 오히려 근세에 이르기까지도 우리나라보다 못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한국의 남성을 ‘철들지 않는 어른 아이’, ‘허세 부르는 소년’, ‘가장은 영웅이고 싶다’, ‘아버지의 그림자’ 등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상담을 받으러 오는 남성들을 여성적 시각에서 해석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철들지 않는 어른 아이’의 핵심은 ‘침묵’입니다. 남편 혹은 남자친구와 소통이 안된다는 불만을 들고 오는 여성 상담자로부터 듣는 이야기로부터 일반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회사 일까지도 미주알고주알 아내에게 털어놓는 저의 경우가 일반적일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갈 일이 없을테니 말입니다. 물론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성의 아내나 여자 친구 가운데에도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므로, 남성의 침묵이 그리 불편하지 않을 여성도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남성의 침묵을 아동기에 경험한 분리 불안에 기인하는 것으로 단정하여 심리학적 문제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단정하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 정상인 사람을 환자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걸’이니 ‘거대한 엄마’ 등의 수사가 과연 우리나라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나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상황들로 인하여 만들어진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에 강남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단편적인 사회현상을 지나치게 부풀렸던 것이 바닥에 깔려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입니다. “특히 삶이 더 힘들어지고 기댈 데가 없어진데다가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남성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강력한 가부장제로 회귀하고자 하고 여성 혐오주의를 키우기도 한다.(43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가부장제를 향유한 남성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한국 남편들을 모두 마마보이로 모는 듯한 대목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던 미국사회에서도 요즈음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성들은 여전히 독립을 꿈꾸고 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사회나 관계는 중요합니다. 가족은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인데, 어찌 보면 부부의 관계보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변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관계를 부모-자식 간의 관계보다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갓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부부의 중심으로 돌아가던 가정도 자식이 장성해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부모-자식 관계가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부모의 관계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꿀 것 같습니다. 특히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 말입니다. 결혼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가족 관계의 가지가 더 확대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나르시스와 에코의 관계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시각을 달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한 여성이 내세운 이유를 보면 남자친구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관계 속에서 착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보이고, 에코이스트는 에코이스트들은 자기 주관이 없어 상대의 욕구에 끌려 다니기 쉽다(123쪽)’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만약 나르키소스가 들으면 아주 섭섭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그가 자기중심적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착취적 특성은 나르키소스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시키는 말입니다. 나르키소스는 단지 눈이 높았던 것이기에 에코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한 죄밖에는 없습니다. 만약에 나르키소스의 눈이 낮아서 모든 에코들의 소망을 들어주었더라면 이번에는 나르키소스가 바람둥이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문제는 에코에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옛 말도 있는 것처럼 상대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데 목을 맬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신만을 사랑해줄 진정한 인연은 따로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사례에 나온 여성의 경우에도 남자친구가 아니다 싶으면 일찍 이별을 결심하면 될 일입니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개저씨’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책에 쓰는 어휘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대목입니다. “보통 사회적으로 민감성이 강한 여성일수록 자기 목표를 행해 가는 도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일이 많다.(142쪽)” 이는 부정적 의미의 속담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은 길을 잘 못 든 사람이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말일 것입니다. 삼천포로 가는 길이 잘 닦여서 벌어지는 일이었다고 위안을 삼으면 좋았을 터이나 삼천포에 사시는 분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트집을 잡는 것으로 일관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마도 남성의 시각으로 읽다보니 변명거리를 찾아내야 하겠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트집잡기로 책읽기를 일관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남성들의 현주소를 아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들의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원인 가운데 중요한 것에 대한 언급은 부모나 자녀 모두가 꼭 알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부정적 인식은 대체적으로 어머니를 통하여 어머니의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는 직접 부딪혀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경우 의외로 쉽게 해결점을 찾더라는 것이 저자의 경험입니다. 따라서 희생자로 보이는 어머니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를 권유하였고, 또한 아내에게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생기는 불만을 자녀들에게 투사하는 일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여성들은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동호회 활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 쓰고 돈 쓰고 에너지 쓰고, 얻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남자들은 왜 그렇게 단체를 만드는데 집착할까요?(305쪽)”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와 같은 남자들의 행태를 ‘완장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여성들이 사적이며, 친밀한, 작은 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경향이 강한 것과는 달리 남성들은 학연, 지연, 취미를 망라한 조직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관계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기 마련입니다. 유명 배우의 상징이기도 한 ‘의리’라는 관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남성들의 이런 특성은 은퇴 후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본 남성들은 은퇴하게 되면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관계망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어 ‘갈 곳이 없는 남자’가 되어 아내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자는 심리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남성 혹은 여성들이 가지고 오는 문제의 원천적 원인은 ‘고립’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소통의 부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인데, 소통을 단절시키는 원인은 아마도 쌍방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는 노랫말처럼 타인을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도 그렇지만 <혼자 있고 싶은 남자> 역시 여성의 시각으로 남성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심리상담을 통하여 경험한 사례들이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크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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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혼자 먹는 밥)이니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니 혼자가 익숙한 시대다. 글 쓰는 상담심리사 선안남은 혼자 있고 싶은 남자에 주목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남성상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회 변화에 맞고 심리적 욕구와 일치하는 건강하고 새로운 남성상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모습과 그 모습 밑에 깔린 남성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특히 여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남자들의 특성에 초점을 맞춰 표정을 잃어가는 얼굴 밑에 잠긴 심리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남녀가 함께 사는 재미를 회복하고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남자들이 접어 두어야 했던 자기 안의 진짜 마음을 펼쳐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다. -p. 10 시작하며
책은 1장 철들지 않는 아이, 2장 허세 부리는 소년, 3장 가장은 영웅이고 싶다, 4장 아버지의 그림자로 구성된다. 도대체 남자가 왜 그러는지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원인을 분석한다. 남자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저자에 의하면 사실은 남자도 약한 존재다. 그런데 그 약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때로는 여자가 문제를 크게 만들기도 한다. 썸만 타고 잠적하는 남자의 경우, 추적하는 여자가 남자 안에 있는 잠적 욕구를 끄집어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유를 막론하고 잠적하는 남자의 행위는 최악이지만, 저자는 여자도 너무 남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건강한 관계는 ‘너도 나, 나도 너(혹은 나), 우리도 우리’가 되어 서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너는 너, 나는 나, 우리는 별개’로 각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우리는 우리’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는 교집합을 늘려나가되 각자의 다른 세계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따로 또 같이’ 하는 관계다. 이 경계를 잘 지키고 소통해나간다면 잠적과 추적을 반복하는 남녀 관계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p. 75~ 76
이렇게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해결 방법까지 모색한다. 그 방법이 공통적인데, 용기, 균형, 이해, 표현, 배려 등이다. 이 방법으로 인해 ‘개저씨’도, 마음과 입의 문을 꼭 닫은 남편도,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아빠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표현 방식과 타이밍은 달랐을지 몰라도 우리는 누구나, 또 언제나, ‘고립’이 아닌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품고 있다. 우리가 관계 속에서 상처 받고 상처 입히게 될 때마다 끝끝내 기억해내고 붙잡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공통의 연결 욕구인 것이다. 이 책이 우리가 서로를 고립시키는 정체된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작은 파문이 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혼자’보다 ‘함께’에 한 표를 더 던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p. 319 마치며
혼자 있고 싶은 남자.. 속으로는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고 있다. ‘혼밥’, ‘혼술’도 맛있지만, 함께 하는 ‘이야기밥’이 더 맛있다. 모두 함께 하실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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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남 심리 상담사의 책을 접하며 우리 사회야말로 심리학이 필요한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도 여자에 못지 않게 고민과 어려움이 말 못할 정도로 크다는 생각도 함께. 저자가 남자에 대해 서술한 내용들을 보며 나는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는 차이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도리어 그 차이를 강조하게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다는 말을 했다. 저자가 언급한 보편성의 그물망에 묶이지 못하는 개개인의 특수한 경험들은 분명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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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시대에 능력 위주의 사회로 돌입하고 있다. 가부장적 시대의 봉건적 인습은 개인의 능력과 경쟁 앞에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은 시대의 흐름과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오랜 세월 남성들이 갖었던 남성 우월주의가 시대와 의식의 변화 앞에 무기력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반면 여성은 억눌렸던 잠재력과 개인의 능력을 앞세워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당당하게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구촌의 최고 리더자들이 점점 여성의 비율이 커져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두드러지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데에 보다 유연하고 수평적 사고의 관념과 같은 것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이다보니 종래 남성들 위주의 직업도 이제는 여성들이 얼마든지 갖게 되었다. 개성과 자기계발, 기호(嗜好)와 같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가정에선 주부라는 단어 대신 워킹맘과 같은 단어가 일상어가 되었다. 반면 남성은 양성평등의 시대를 맞이하여 가사, 육아, 훈육 등 가정의 전반에 걸쳐 부부가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 앞에 놓여 있다. 아내가 밥, 빨래, 육아, 가계부를 정리하며 가정을 꾸리던 시절의 모습은 먼 과거의 일로 오버랩된다. 대신 사회적 활동 폭이 커지면서 남성과 대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사회 및 의식의 변화 앞에 저변에 어떠한 심리 상태에 놓여 있을까.
사는 것이 재미없다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불안하고 외롭고 힘들어 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남성을 애인으로, 가장(家長)으로, 아버지로,아들로 두고 있는 가족들은 딱하게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삶의 질이 전 세계 최하위권을 달리면서 기본적인 생계마저 이어가기 버거운 현실 앞에 남성의 내면은 점점 위축되어 가는 것 같다. 경제적 수입의 고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남성은 가정에선 가장으로서 최상의 역할을 해야 하고, 사회에선 자신의 역할,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다. 아무리 기를 쓰듯 노력해도 삶의 질은 답보 상태 내지 뒷걸음질 치진다면 개인은 '번 아웃' 현상에 빠져 심신을 달래야 할 것이다. 일종의 삶의 휴지기가 필요한 셈이다.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양성평등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남성이 해야 하는 역할은 크게 바뀌지를 않았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유교적 가족주의의 굴레가 남성들의 의식을 옭아매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의식적 맥락이 남성들의 의식과 내면에 억압과 상처를 안겨 주면서 온전한 삶을 구가하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대세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삶을 뒷걸음질칠 수는 없다. 어긋난 인식의 틀과 차이를 스스로 허물어 내야 한다. 그리고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거든 심리상담 및 약물 복용을 통해 마음 다스리기를 하려는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면 안에 깊게 파고 드는 종양 및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 나가야 억압과 상처 또한 원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법이다. 사회의 변화, 의식의 변화가 바뀌었다고 심리적으로 위축될 필요도 없고,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불만일지라도 자포자기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체질,능력에 맞게 쉼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자세가 필요하다.
위축되고 불안을 거듭하는 남성들의 자화상을 그린 이 글을 읽으면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경제적 수입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일을 찾아 가늘고 길게 나아가기를 남성들에게 바란다. 학벌, 지연보다 능력이 우선으로 돌아가는 시대에선 당연 스펙과 스토리텔링을 균형있게 다져 나가야 한다. 사회는 이러한 양성평등의 시대를 절대 수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남성들이여, 기지개를 펴고 당당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장 신뢰하고 객관적인 멘토와 자주 자신의 내면을 간담상조하라. 이를 통해 꺼져 버린 심신의 탈진을 긁어내고 새살을 돋게 하라. 평생의 반려자, 사랑하는 사람과도 늘 대화의 문, 소통의 장을 활용하여 심신에 주름이 가지 않게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고 위무해야 한다. 가정에서 최소한 '개저씨'라는 말을 듣고 살지 않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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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서, 그리고 혼자가 아닌 둘이 살아가면서 때때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말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일을 쉬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간 몰랐던 남편의 일상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어떤 날은 힘 없는 모습으로 퇴근하는 남편. 내가 그런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해야 "무슨 일 있었어?" 정도였다. 좀 더 가까이 있는 내가, 내 옆의 그에게 던진 그 단순한 질문은 우리를 꽤 고요하게 만들곤 했다. 그 후로는 물음보다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물론, 그역시 긴 고요함의 시간이었다. 가끔, 한번씩 고요함의 물꼬를 먼저 트는 남편의 목소리, 그리고 전해지는 그의 하루는 꽤 나를 젖게 했다. 함께 있지 않는 시간, 그에게 있었던 일들은 내 생각보다 꽤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대화란, 그렇게 긴 고요함 끝에 이루어지곤 했다. 남편은 그 긴 고요함을 무던히 침묵으로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선안남 상담심리사의 글은 내 안에 똬리를 튼 비밀의 방으로 들어왔다. 기척도 없이 성큼 들어와 문을 열고 아무렇지않게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은, 글을 읽는내내 상당 시간을 내 안에서 함께 했다. 나도 잘 모르던 나를 들킨 느낌. 그리고 그런 나를 마주하면서 나는 나를 보고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 글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처럼 내 남편에게 잘못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방 안에 탑이 쌓였다. 내가 생각없이 행했던 행동과 말들과 그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이 꼿꼿하게 나를 바라보는 느낌은 오래 계속되었다. 분명한 것은 '다름'이 아닐까. 나는 나이고, 남편은 남편이다가 아니라 나와 남편은 서로 다르다는 본질. 그래서 같은 상황에 있어도 늘 같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다름. 같은 생각이 아니어도 그의 생각을 존중해줘야한다는 기본적인 생각들이 탑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르시시즘의 사회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또 한명의 나르시시스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무척이나 서툰 나르시시스트이진 않았을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더 서툰 표현속으로 밀어넣는 것 같은 직감적 느낌. 이제는 좀 더 변화가 있고 표현에 능한 나를 이끌어내고 싶다. 에코든, 나르시시스트든 건강한 변화는 꼭 필요한 조건일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해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래서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나의 오늘, 우리의 내일이 되길 빌어본다. 내 남자의 섬에 한 발 가까워지는 오늘,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행복을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될 거라 믿는다. '다름'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고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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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인간이지만 오죽하면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도 너무 다른 남과 여의 심리에 평소 관심이 많았어요.
너무 달라서 여자에게 오해받기 쉬웠던 남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도
기승전 아는 지식이 전혀 없으니 오해할 수 밖에 없었던 저에게 같은 남자이면서
자기 자신도 몰랐던 그들의 숨겨진 본심을 만나볼 수 있는 도서를 만났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모습과 그 모습에 숨겨진
남성상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남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일종의 사회적 강압에 고립되어온 남자들의 심리가
과연 어떤 부작용과 상처를 품고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도 알고 싶었어요.
남자와 여자라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차이를 넘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존의 의미로 남녀가
서로를 고립시키지 말고 차이점보다는 상호보완이라는
개념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너무 다른 남과 여를 인지하기 위해서 먼저 차이점을
분명하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지만
저는 그 부분이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특히나 여자와 남자의 심리를 비교하여 확실한 예시를
다양한 사례별로 담아낸 철들지 않는 어른 아이 부분이
저의 공감을 가장 크게 불러왔는데 잠적하는 남자와
추적하는 여자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주변에 정말 한 사람은
반드시 존재하는 사랑의 유형을 가진 여자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제가 평소 궁금했던 잠적하는 남자들의 심리속에
숨겨진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어떤 모습이며
이런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현실 확인같은 내용이
많았는데 저는 잠적과 귀환을 되풀이 하는 남자들의
독특한 심리적 방황의 유형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남자들도 사회적 통념에 갇힌 남자다움의
고정관념으로 오랫동안 상처 입고 생존해왔으며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용기를 상실하고 좌절했는지도
모른다는 상황적인 심리 내용을 처음 알려준 도서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상대에 대한 진심
사랑을 담은 관계의 희망을 남자들도 갖고 있었지만
깊이 이해해주는 상대의 배려가 없었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연습조차 하지 못했는지도 몰라요.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일단 잠적만하려는
남자들의 상처를 우리가 이해하고 그들 스스로도
방어만 하지 않고 거둘 수 있는 용기를 제안해요.
남녀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자신의 표현의 통로를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기대하게 만들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에게 중립적인 전문가의 생각을 담아
일종의 중재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도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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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자들의 자아선언이 줄을 이었었는데 이제는 남자들이 자아선언을 하고 있다. 한때 아줌마가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주목받고 사전에까지 올랐던 적이 있다. 비슷하게 중년의 남자 역시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아닌가 싶다.
과거 중년의 남성은 여전히 힘과 권력을 지닌 가부장으로 존경받고 대우받았다. 한데 이제는 은퇴와 동시에 뒷방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역사상 한 번도 약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그 설움과 슬픔은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중년의 남자는 방황 중이다. 옛날의 무용담을 반복하거나, 별거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고, 집이 아니라 술집에서 이야기 상대를 찾고, 사소한 일에 울컥 분노를 터트린다.
이 책은 선안남 상담심리사가 이런 남성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 쓴 책이다. 최근 남성 내담자들이 늘어나면서 고통 받는 남자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책을 썼다. 남자들이 입을 닫는 ‘선택적 함구증’은 대표적인 현상이다. “남자들은 모두, 소년을 지나 남자가 되어가는 길목에서 여자를 둘러싸고 분열감을 느낀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요구와 기대가 부담스럽고, 몸만 큰 어른이 돼서는 여자친구나 아내의 기대 때문에 입을 닫는다는 얘기다. 남자아이가 기대, 상처, 혼란을 해결하지 못하고 성장해 결혼을 하면 내면의 숙제가 폭발한다. 아직 미숙하지만 ‘남자다움’이란 압력에 시달려가며 ‘가짜 독립’한 탓이다. ‘아들 바보 엄마’의 아들들은 엄마한테 받은 무한 사랑을 채워주고 싶지만, 한편으론 ‘탈옥’해 자유를 찾은 아버지를 부러워하게도 된다고 한다. 경쟁 만능, 천민자본주의 속에 남성을 생계능력에만 한정지어 평가하는 가부장제도 문제의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바깥에서 큰 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도맡아서 했다. 소소한 일에는 남자는 간섭하지 않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고, 맞벌이 가정이 다수라고 할 정도로 사회가 변했다. 이렇게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남성들이 많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침묵해 버리고, 잠도 줄여가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남성들의 독특한 습성을 하나씩 소개하고 원인을 파헤친다. 저자는 “지금도 남자에게는 식솔을 지켜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의무가 남아 있다”면서 “남자는 내적 검열을 충분히 거친 후에야 자신을 펼쳐 보인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회자하는 ‘딸 바보’와 ‘개저씨’라는 용어는 맥락도 없고 명분도 없는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가부장들의 마지막 결투와 발악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정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일해 왔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전에 없던 권위 추락과 남자로서의 특권 상실, 계속되는 (부모) 의무와 (자식) 부양, 불안정한 노후뿐이다. 이런 괴리와 스트레스를 아저씨들은 개저씨가 되어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남자들의 심리상태는 복잡하고 혼돈 속에서 헤매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희생했음에도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쓸쓸한 남자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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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제 또래가 아닌 연배가 어느정도 있는 중장년 남성들을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소위 '꼰대'로 불리는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가 궁금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다움의 압력에 시다릴며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법을 터득하고 억압 본능을 갈고 닦는다'는 저자의 표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는 여자의 고충을 다른 여자들에게 표현하고 공감을 얻지만 남자는 고충을 남자에게는 물론 여자에게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자들의 스트레스가 꽉 찬 쓰레기통이라면 남자들의 스트레스는 닫힌 쓰레기통이기 때문에 뚜껑을 여는 일부터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긴 했지만 '무거운 입과 강한 책임감,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의무가 현대의 남성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다 '남성이 자기표현을 더 잘하고 공감능력까지 갖춰 현대 여성의 마음까지 보살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한층 심화된 기대'까지 부응해야 합니다. 부부의 불화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것도 공감갔습니다. '대부분의 자녀들이 엄마에게 의존하고 있고 함께 보내는 식나이 많은 만큼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고 엄마의 시각으로 아빠를 보게 됩'니다. '내면에는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자녀들에게 찾고 엄마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믿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세뇌'시킵니다. 자녀들은 '자신에게 의존적인 엄마의 스트레스와 횡포를 이해하고자 너무 애쓰게 되고 그 부담이 모조리 아빠때문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정 어디에서도 자기 편을 찾을 수 없고 사회적인 입지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안쓰럽게 보기도' 합니다. 결혼 후 남자들이 '대리효도'를 하는 경우가 많죠. 이에 대해 저자는 심리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주양육자로서 엄마는 딸과 아들에게 다른 사회적 압력을 적용'합니다. 게다가 사회문화적으로 '남자의 독립성이 강조되기 때문에 소년은 멀리서 강하게 키우고 소녀는 가까이에서 보호하며 키웁'니다. 그러다보니 아들들은 아직 심리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섣불리 독립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심리적 독립을 위해서는 '부모에 대한 경제적 의존'부터 끊어야 하지만 남자의 의존성만 탓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여자의 결혼 관념 역시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노골적으로 의존하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결혼생활을 원했던 여자들도 결혼을 앞두면 능력있는 남자의 그늘 아래 편입되는 의존적인 결혼 생활을 꾸꾸면서도 그 안에서 누리를 수 있는 자유가 동시에 보장되기를 바라는 이중성'이 드러납니다.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결혼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책임과 의무는 편리하게 회피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의 독립성 역시 필수적입니다.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들에게만 부여되었던 부양의 의무가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는 남성들에게 더 큰 성취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것과 취집이라는 대안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가끔 부럽'기도 합니다. '여자에 비해 남자의 취업은 생존과 직결되는 비장한 목표를 되기 때문에 남자들은 직업을 통해 자아를 찾기 보다는 자아를 버려야 한다는 위기의식'에 시달립니다. 게임에 몰입하는 남자들을 안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오히려 '게임을 하기 때문에 괜찮은 남자'라고 대변합니다. '여자들이 드라마 속 가상공간의 대리인을 세워 성공과 실패를 시뮬레이션 해본다면 남자들에게는 게임 속 가상공간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는 곳'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실제적인 타격이 없이 심리적으로도 안전하고 안정적이죠. 책을 읽는동안 남자로서 정말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로 여성들에게 비판적인 면도 있었는데 만약 남성 저자가 이 내용을 작성했다면 객관적으로 작성했다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책의 주된 내용은 남성들의 심리상태이지만 여성들에 대한 내용도 많이 있어 여성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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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강한 이미지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 내는 것까지도 쉽지 않고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 또한도 남자는 당연히 00해야 된다는 고정 관념이 강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남성상은 많은 변화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남자들은 많은 혼란을 겪는 것이 현실입니다.
작가가 제목을 왜 혼자 있고 싶은 남자라고 정했는지는 책을 읽어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남자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남자 자신 또한도 이 감정의 표출이 어디에서 시작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결국 남자를 외롭게 만들고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고립하게 되는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제목이 되었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내용 중에서도 아버지로서의 남자의 위치는 일생은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밖에서의 활동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나머지 당연히 가족간의 대화에서도 멀어지게 되고 젊었을때는 직장 생활에 집에 경제적인 것을 책임지고 있을때에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지내지만 나이가 들어 은퇴했을때는 가정에 기여도가 떨어져 가족들에게 마치 미운털과 같은 이미지를 내비치는 경우도 있게 됩니다. 이럴 때 남자는 조금도 당당해질 필요가 있고 가족들은 아버지의 공로를 인정해 주며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도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도 활발해지고 그로인하여 가정에서 뿐 아니라 사회에서 남성의 지위에도 점차 변화가 있게 되었지만 그런 것에 대하여 누구에게 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면하게 되는 현실에서 당황하고 갈등하지 수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자신의 위치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고 주위에서 도움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남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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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을 하면서는 맞춰주고자 노력을 하였었고 결혼을 하고는 이해를 하고자 하였지만 머리로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지만 어느덧 화를 내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예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래! 서로 다른 별에서 왔으니까......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거야!' 이런 결심이 또다시 흐려진 듯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나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지...... 그래서 이번엔 남자에 대한 책만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책의 앞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모습부터 억압된 남성성까지, 오늘의 남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들의 말못한 상처와 숨겨둔 본성이 무엇인지 궁금하였습니다. 화성에서 온 그들의 이야기. 책의 앞장을 펼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책은 남자의 성장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1장 철들지 않는 어른 아이 2장 허세 부리는 소년 3장 가장은 영웅이고 싶다 4장 아버지의 그림자 저에게는 곁에 있던 남자친구에서 지금은 가장이 된 남편의 모습,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신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들에게 쌓여있던 감정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신혼 초에 느꼈던 남자의 모습이 이 책에서도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예쁘다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거울 앞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능력을 자신 있게 어필하지 못하고 타인의 부정적 반응을 예쌍하여 자기검열을 하는 동안, 자기 자신에게 써야 할 에너지를 타인에게 쏟으며 스스로를 방치하는 동안 여자들의 마음은 이리저리 흩어진다. 반면에 둔감하고 무심하고 단순하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러한 태도 덕분에 목표를 향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단순성이야말로 여성들이 남성들을 보며 비난하는 둔감성과 다른 사람들이 재수 없어하는 근자감을 대변한다. - page 148 이런 태도가 있었기에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에도 끄덕없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조금은 남편이 불쌍하게도 느껴졌습니다. 특히나 더 인상적이었던 문장. 여성적 마조히즘이 희생하고 참고 감내하는 소극적 희생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다르게, 남성적 마조히즘은 '남자인 내가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희생의 전제를 깔고 있다. - page 195 결혼을 하고 나만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다고만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큰 희생을 가진다는 그를 알게 되니 더 마음이 찡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보게 된 남자의 모습은 그저 둔감하고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나름의 짐들이 있었고 어릴 적부터 쌓여온 '남자다움'의 역할. 그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겨웠을지가 떠올랐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바라보게 된 남자의 모습에서 그동안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짜증을 냈던 제 모습이 너무나도 창피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완전히 그를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이제는 그와의 대화에서, 그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이해의 끈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