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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주로 그렸던 화가, 이중섭의 이름은 그림 「흰소」와 「황소」로 알고 있었다. 정작 작가의 삶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외국의 화가인 고흐나 베르메르 혹은 클림트의 그림과 그들의 삶은 책으로 만나 알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화가의 삶은 알지 못하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에 떠나는 특별한 예술기행' 이란 소개글도 있고, 우리나라 화가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이중섭의 소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지역과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직접 여행하며 쓴 글이라 더욱 의미있는 책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예술의 혼을 놓지 않았던 화가 이중섭의 삶을 따라가 본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부잣집의 막내 아들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도 어쩌면 그게 한몫 했을지 모른다. 오산학교에 입학했던 이중섭은 외국에서 유학한 임용련, 백남순 부부 만남의 영향이 컸다. 그로 인해 일본의 분카가쿠인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그의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인 야마모토 마사코, 즉 만덕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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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달을때였다. 한국으로 들어온 마사코와 결혼식을 올린 이중섭은 그녀에게 만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해 아이들을 이끌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이중섭. 그는 피난지에서 하루하루 날일을 하면서도 그림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제주에 있을 때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보였다. 꽃게와 아들들을 함께 그린 그림들에서 행복한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 「흰소」
생활고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만덕. 이중섭은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놓고 그리움에 울었다. 엽서에 그려 보냈던 그림에서 아내와 아들들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묻어 나왔다.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도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끼리 다방에 모여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모여 전시회를 열어 그림을 알리고 그림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저 다방 벽에 붙여놓은 그림들이었지만 말이다. 생활고에 찌들어도, 전쟁속이어도 그림에 대한 열망과 예술혼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천도복숭아와 아이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렸던 이중섭의 생애. 가족을 곧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렸을 그림들의 표정은 밝았다. 일본과 제주, 통영과 부산 그가 머물렀던 곳을 따라가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섭의 여러 그림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가 거의 소만 그린줄 알았었다. 이중섭의 혼이 담겨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나의 무지를 깨달았다. 그가 머물렀던 공간을 사진으로 담았고, 그가 그렸던 많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어 소장하기에 더 좋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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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이렇게 해가 쨍하고 매미가 더위를 반기며 찌르르 울어대는데... 어이 없이 눈물이 흐르다니...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을 한 것도 아니면서.
부산에 살고 있으면서도 범일동에 있다는 이중섭 전망대 한 번 오르지 않았고 광복동 거리를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도 "밀다원 다방" 시절의 이중섭을 스쳐지나가듯이라도 떠올려보지 않았던 내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중복 염천의 한낮에 방 안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앉아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써내려간 책을 읽고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술 더 더 끅끅거리기도 더해준다.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봤으면 아주 친한 사람이 갑자기 죽기라도 했냐고, 물어볼 양이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데. 오디오에선 참 그 마음을 지지한다는 뜻인지 영화 아이앰샘의 OST중 하나인 'across the universe'가 흘러나온다. 아이,참. 슬프고 슬프고 더 슬퍼지다, 마침내 미어진다.
흰 소 한 마리의 압도적인 힘을 느끼며 어떻게 해서 그 강인한 그림이 그려졌느냐를 궁금해해도 모자랄 판에 난데없이 쓸쓸함과 허무함을 쏟아내면 어쩌자는 말이냐. 이건 다, 이중섭의 발자취를 한 걸음씩 좇을 수밖에 없도록 유인한 작가의 탓이다.
제주도 여행을 가서도 그 많은 이들이 찾는다는 이중섭 미술관 한 번 찾지 않은 것은 무슨 경우였느냐고, 이제 와서 나 자신을 힐문해본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중섭이 태어난 원산은 분단의 아픔 덕에 이제는 찾을 길 없게 되어버린 탓을 하더라도... 화가의 삶을 좇아 무작정 떠나기에는 그래도 좀 무리인 듯 싶은 일본에서의 자취도 무시하더라도. 월남하여 처음 발 디딘 곳 부산, 남덕의 이름을 좇아 좀 더 내려간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 홀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매진한 통영, 진주 등에 한 번씩 들를 때마다 이. 중. 섭. 이 세 글자는 기억했으면 좀 좋았겠냐고.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은 대체로 이중섭의 전기처럼 일대기를 그리고 있지만 증거 자료나 그림의 비평보다는 인간 이중섭에 초점을 맞춘 듯한 책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을 둔 이중섭은 형의 남다른 사업 수완 덕에 유복한 청년 시절을 보냈다. 평안도 정주에서 하숙을 하며 오산학교에 들어간 그는 유학파인 임용련, 백남순 부부와 만나 전위적인 서양 미술을 배우고 흡수한다. 민족 정신을 펼쳐야 한다는 선생의 뜻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영향이었을까, 당시 이중섭이 한글 자모를 활용한 구성작업을 하기도 하였고, 훗날 일본에서 활동할 때조차도 한글 자모로 된 서명을 했다.-44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중섭은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면서 평생의 사랑이자 뮤즈인 아내를 만난다. 해방이 이루어질 즈음의 뒤숭숭한 정세 덕에 한국으로 돌아온 중섭을 뒤쫓아온 마사코. 중섭은 아내에게 '이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며 잠시 꿈같은 나날을 보낸다. 한국전쟁 발발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 부산에서 제주도 서귀포로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혼자 지내기 시작한다. 통영, 진해, 마산 등지를 다니며 그림 활동을 쉼없이 한 것은 언젠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되리라는 행복한 꿈 때문이었는데... 개인전을 열었으나 흥행하지 못하자 점점 희망을 잃고 마침내는 정신을 놓아버린 중섭. 그의 곁에서 지켜봐주던 친구들이 있어 쓸쓸하진 않았겠지만 죽은 뒤 1년 후에야 가족의 품에 안긴 중섭의 생은 너무나 짧았다.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며 은지화에도 벽에도, 편지에도 그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뿍 담았던 중섭은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과 같은 제목의 작품을 남긴다.
평소에는 친구들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그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편지에서는 이렇듯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내곤 했다.
오산학교 시절부터 그려 온 소는 한국의 민족성을 나타내기 위한 소재였던 것일까? 아니면 불알을 강조한 수소를 주로 그린 것에서 화가 자신의 은유적 표현인 걸까?
각기 다른 붓터치와 표현법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 민족이든, 화가 자신이든 시대의 불운에 맞서는 "소"의 이미지가 이중섭의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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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울먹울먹하는 마음이 저 빝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이 부분을 읽을 때가 아니었나, 싶은데...
책의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이 지점부터 이중섭의 밝은 에너지가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서서히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고 느꼈다. 자신을 위해 한국-일본간 책 무역을 시작한 아내 마사코가 두 번째 시도에서 부도를 맞고 빚을 지면서 이들의 생활고는 점점 심해지기만 하는데... 화가로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은 가족을 위해 그림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과 다른 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아 오면서 헤픈 씀씀이를 보였고 작품을 팔아 돈이 생기면 친구들을 위해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만나고 싶어했던 마음만은 진짜였다. 이중섭을 비운의 천재라느니, 해괴한 미치광이라느니 등등, 다양한 면으로 재쟁산해낸 면이 있어 그의 진면목을 올곧게 바라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 책에서는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이중섭을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서 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목차를 보면 이중섭의 처지가 '소'에 빗대어져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에 휘말린 소, 행복의 도원을 향하는 소달구지, 가족을 향한 황소의 울음, 은지에 담은 소의 꿈, 꿈에서 깨어나 몸부림치는 떠돌이 소...
그 중에서도 나는 "행복의 도원을 향하는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소와 함께 중섭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한 그는 복숭아 피는 도원에서 행복한 웃음을 웃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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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나영 작가의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은 이쪽 계통은 문외한인 나에게 이중섭 화가의 고난의 삶과 세상에 남긴 흔적으로 안내해 주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십대 시절 그녀는 이중섭 화가의 <흰 소>를 처음 마주하면서 느꼈던 흰 소의 굳건하고 의연한 인상 덕분에 미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천재화가 이중섭에 대한 짝사랑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2. 작가는 마치 순례 기행을 하는 것처럼 이중섭 화가가 생전에 머물렀던 고장(일본,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답사하고, 도시가 되어버린 현재의 공간에서 이중섭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사후 60년이 지난 뒤에서야 방문한 그곳에는 이중섭이 남긴 흔적보다는 이중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영 작가는 이중섭 화가의 어려웠던 시절의 삶과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보낸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며 절박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이중섭 화가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을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대중들에게 공개된 이중섭 화가의 작품에 대한 여러 갈래의 전문가 해설들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도 간결하게 전달해준다. 민족화가 이중섭의 한국 화공이라는 정체성과 이중섭 화가의 분신으로 평가받는 소의 몸짓을 그린 역동적인 작품, 아이들. 특히 이중섭 화가의 자식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려낸 군동화. 그가 머물렀던 고장의 목가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풍경화, 그리고 담배를 감싸는 은지에 스케치(드로잉)를 한 은지화,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에 그린 작품들까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에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3. 이 책에는 작품의 모범 답안이 있다. 그렇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느낀 것을 써보려 한다. 다음에 이중섭 화가와 관련된 작품을 다시 만났을 때를 위해서. 107. 이중섭이 그리는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특유의 간단한 윤곽선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그리고, 많지 않은 색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이중섭의 군동화는 인기가 꽤 높다. 어쩌면 우리 역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이중섭이 그린 아이들은 즐거움, 행복, 기쁨 등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하다. 이중섭 화가가 그린 군동화의 특징은 작가가 소개하는 그대로다. 대표적으로 <서귀포 환상>이라는 작품이 그렇다.
나는 이 작품의 밝음에서 이중섭 화가의 더 큰 쓸쓸함을 감지한다. 배고프고 추운 날의 추억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였었던 제주도에서의 1년 남짓한 시간. 그림에 담긴 찰나의 행복을 다른 시간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이중섭 화가는 작금의 힘든 현실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중섭 화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이러한 밝음을 과시하듯이 꺼내놓음으로써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희망을 채우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행복한 사진들처럼 말이다. 4. 이중섭 화가가 그린 소들의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는 그의 자화상을 옮겨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144. 이중섭에게 소는 가장 오랫동안 그렸던 소재로, 오산학교 시절부터 소를 그려왔다. 소를 오랫동안 그린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첫째로는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기 위한 소재로 소를 사용했다는 견해다. 일본 유학시절 당시 여자 친구였던 마사코에게 자신이 그린 것은 조선의 소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와 관련된 그림이나 연극이 공공연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중섭이 소로 한국의 민족성을 드러낸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한국의 화공이므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서 한국을 재표하는 동물로 소를 화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이중섭이 그린 소는 불알을 강조한 수소라는 점에서 화가 자신의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걸으며 그림을 그린다고 쓴다. 조카 이영진이 회상한 서귀포 단칸방 벽에 있던 시 <소의 말>에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면서, "맑에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라 쓰고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희망을 갖고자 하는 이중섭의 심경을 담았다는 것이다. 146. 특이한 점은 소만을 단독으로 그린 소 그림에서 유독 거친 붓질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군동화나 소가 아이들이나 가족과 함께 있는 그림에서는 둥근 윤곽선으로 형태를 그리고 화면도 밝은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히자만 소가 단독으로 그려진 그림에서는 유독 매우 화가 나 있는 듯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어도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우수한 작품을 남긴다면 잃어버린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이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린 소의 모습은 이처럼 거칠었지만 위풍당당한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러나 곧이어 소개하는 그림은 이중섭 화가의 자아와 그의 굳건한 믿음을 방해하려는 무언가의 싸움을 의미하듯 두 마리의 소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을 두고 허나영 작가는 예술성만 쫓고 싶은 이상적 자아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자아의 싸움으로 해석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궁핍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창작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뜻하는 흰 소와 이런 마음가짐으로 온 종일 창작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도무지 진전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뜻하는 푸른 소의 싸움이 아닌까 싶었다. 실제로 그가 그린 작품들은 팔리긴 했지만 제 값을 받지도 못하거나 돈을 떼이기가 부지기수였고, 그나마 벌어들인 돈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느라 탕진해버렸으니 말이다. 151. 이중섭에게 소는 바로 자신이다. 동시에 자신이 '한국의 화공'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듯 한국의 소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어떠한 소재보다 황소의 움직임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더 자세하게 표현했다. 이는 이중섭이 얼마나 소와 하나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머릿속으로 익히고 가슴속에 새겨 손을 통해 표현되는 경지를 넘어 자신이 울 때 함께 울고, 괴로워할 때 함께 소리쳐주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그린 동일한 배경의 황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노쇠함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이 그렸지만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 어쩌면 이중섭 화가의 말년의 비극을 예고하는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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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그림으로 떠올리는 화가 이중섭. 화가 탄생 100주년이라 전시를 갈 예정이었다. 화가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없기에 조금은 편하게 화가를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어 읽게 된 책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전문적인 작품 비평이나 설명 보다는 화가 이중섭의 행적을 통해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화가 이중섭의 소 그림은 익숙하지만 왜 그가 소를 그렸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소 만큼이나 유명한 가족과 아이들 그림에서 화가 내면의 상처와 바람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연치 않게 나오는 몇몇 곳은 나 또한 방문했던 곳이다. 그러나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난해 다녀온 통영에 왜 이중섭 거리가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또한 책을 통해 풀 수 있었다. 그냥 관광지로 찾은 곳이었는데 화가의 대표작들이 탄생한 곳이었다니...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책을 읽으며 자신만만하고 재능 또한 있던 유능한 화가가 시련 속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 또한 화가 이중섭처럼 밝은 날을 꿈꾸고 있으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그나마 먹고 사는 것에 문제는 없기에 화가 보다 나은 처지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알기에 너무 희망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은 삶의 태도가 중요함을 느낀다.
책의 편집은 아담해서 마음에 든다. 중간중간 보이는 삽화를 통해 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보며, 화가에게 영감을 주거나 생활의 터전이었던 장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엿볼수도 있다. 이미 과거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곳들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시대 나름 풍경을 화가가 마주했다면 어땠을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시회에 가기 전 책을 통해 화가의 삶을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림에 대한 비평이나 이해 보다 그 작품을 그릴 때 화가는 어떠한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그 감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전시회 때 그림을 마주하면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비극적인 삶을 살았으나 그림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화가 이중섭. 기회가 되면 책 속에 나온 국내의 장소라도 방문을 해봐야 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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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이중섭, 난 이중섭, 이름 석 자를 들으면 웬일인지 창백한 모습의 시인 김수영이 떠오른다.
실상 내가 사진을 통해 먼저 본 모습이 이중섭인지, 김수영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이중섭을 묘사하는 문장은 이렇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자>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마른 얼굴과 자꾸만 흘러내리는 앞머리, 듬성듬성 자란 노란 수염.> (17쪽)
<턱이 긴 모습>(18쪽)
이목구비를 더 이상의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 이중섭을 묘사한 것만으로는 자연히 김수영을 떠올리게 되는 것.
해서 이번에는 그 두 사람 사진을 한 화면에 띄어 놓고 살펴보았다,
다른 모습이다, 영 딴 판인 두 사람인데, 나는 왜 김수영 얼굴을 한 이중섭을 생각했을까
그런 그에 관한 책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그에 대하여 조각 조각 단편적으로 읽었고 그래서 그에 관한 기억은 겨우 몇 가지 일화뿐, 아내가 일본인이라는 것 정도에다가 소를 은박지에 그렸다는 화가. 어려움 속에서 종이를 살 돈이 없어 담배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 정도였다.
그런 이중섭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드디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이중섭 신화, 과연 사실일까
사후에 출판된 여러 평전들이 주로 문학가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에서 이중섭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소박한 바람이 깃들어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저자의 시각으로 이중섭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며 그의 여정을 따르며 더 깊은 이해와 사색을 해보고자 히는 소박한 바람이다.
이 글을 통해 조금 더 이중섭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은 저자가 이중섭을 신화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간,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려는 데에서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겠다.
그만큼 책이 읽기 편하고, 쉽다는 것, 그래서 이중섭을 편히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는 생전에 이중섭이 다녔던 길을 따라, 그의 뒤를 추적하듯 따라간다.
제일 먼저는 부산으로 독자들 인도한다.
그 다음 이중섭이 태어난 곳과 자란 곳, 그리고 학교 생활을 한 곳, 오산학교.
그런 곳은 지금은 가 볼 수 없기에, 그 다음 목적지는 이중섭이 유학을 했던 도쿄로 향한다,
거기에서 이중섭은 운명의 여인을 만난다,
이름은 야마모토 마사코 (山本方子)
미래의 아내가 되는 사람이다.
저자는 그녀를 이렇게 평한다,
<이중섭의 인생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친 여인.>(57쪽)
마사코는 1945년 4월 그 혼란한 전쟁의 와중에 조선으로 넘어왔다, 이는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74쪽)
둘은 결혼을 하고 이중섭은 아내 이름을 남덕이라 지어 주었다,
남덕(南德), ‘따뜻한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의미다.
해방후, 전쟁이 일어나고 그들은 부산으로 피난을 온다,
그 다음은 제주도로, 또 다시 부산으로, 그리고 아내는 일본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난다,
저자는 담담한 필체로 이중섭의 뒤를 따라가며, 이중섭이 보고 느낀 것, 또 작품활동한 것들을 그림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이중섭의 삶과 그 동시 시간대에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사랑하고 그렸던 소와 아이들
몸찰, 소와 만나다
소를 그리기 위해 며칠동안 풀을 뜯는 소 옆에 가만히 앉아 관찰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이중섭의 소 그림이 시작되었다.
이중섭은 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소의 움직임과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몸찰’이라 불렀다. 몸으로 관찰했다는 뜻이다. (45쪽)
웃고 뒹구는 아이들 (79, 81, 102쪽)
모든 것을 잊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소를 그릴 때 그랬던 것처럼 무한한 애정으로 아이들을 보고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그렇게 독자들은 이중섭이 애정을 쏟아 부었던 대상들을 그의 그림을 통해 볼 수 있는데, 그의 생애에서 보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대상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힘차게 동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것은, 이게 바로 예술가의 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시 이 책은
이 책 서두에서 저자는 소박한 바람을 말한 바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저자의 시각으로 이중섭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자 하며 그의 여정을 따르며 더 깊은 이해와 사색을 해보고자 히는 소박한 바람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중섭과 그의 가족들이 자취를 남겼던 곳곳을 찾아다니며 과거를 소환하고 재현해 놓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신화의 자리에 올라 기인(奇人)으로 치부되는 이중섭 대신 , 지극히 인간적인 이중섭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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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본 것 같은데 이 책은 또 다른 시선으로 읽을 수 있는 색다른 책이였다. 서울, 통영, 부산, 대구, 제주, 일본등 이중섭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간 여행이야기면서 동시에 그의 삶과 작품, 예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1916년에 태어나서 1956년에 사망한 이중섭. 태어난 시기와 사망한 시기만 봐도 그 시대를 살았던 그가 참 안타깝다. 나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그 어려운 시절을 겪을때도 단 한 번도 그림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 그가 머물렀던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그와 관련된 곳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이중섭의 삶의 시간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씁쓸했다. 가족을 모두 일본에 두고, 혼자 그림을 그리며 전시회를 열고 가족에게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살았던 그가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회가 번번히 성공하진 않았지만 돈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모아놓지 그걸 또 친구들에게 빌렸던 돈을 갚고, 술을 사주고 했던 그가 답답하기도 했고, 차라리 돈을 빌려서라도 일단 일본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있었다면 그렇게 허망하고 불쌍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곳곳에 부인과 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면서도 슬펐다. 이중섭 관련 여행을 떠난 저자의 흐름을 쫓아가다보니 더욱 그의 삶과 그림들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냥 그림만 보고 설명만 들었을때보다 훨씬 더 가깝게 그가 느껴졌다. 그림이나 장소들의 사진도 많이 실려있어서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왔고, 그가 얼마나 고통속에서도 그의 뚜렷한 주관이 실린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화가 이중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소"그림도 전에는 그저 힘있고 역동적인 느낌이 다였다면 이 책을 접하고나서는 참 다양한 소의 그림도 있고, 그 그림속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었다. 참 많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했겠구나 싶어서, 그의 마지막이 "무연고자" 죽음으로 며칠동안 방치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가 그 시절에 태어나지 않고 조금만 더 늦게태어났어도 얼마나 엄청난 그림들을 많이 남겼을지, 그가 얼마나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지 상상을 해보니 그의 삶들이 더욱 애달프다. 시간 순서대로 그림을 따라가니 그림속에는 그의 삶의 시간들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여기저기 거쳐가면서 외로운 삶을 살았을 그의 모습이 "소"에 담겨 있었다. 떠돌이 소의 꿈은 아직도 진행중일 것이다. 아니 영원히 진행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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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절반이 넘게 흘러간 2016년, 알고 보니 화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다. 생전에 진가를 인정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사후에서야 작품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 이름을 알린다. 그래서 경외심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중섭이다. 저자는 홍익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중섭의〈흰 소〉의 강렬한 인상에 이끌려 이중섭의 삶과 작품에 대해 꾸준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미 신화가 되어 있는 이중섭이지만, 그가 머물렀던 지역과 작품을 보며 저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글들의 집합이『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이다.
이 글을 통해 조금 더 이중섭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반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에 대해 개인적인 느낌을 나누듯, 이중섭의 작품 역시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모네의 작업식을 보러 프랑스의 지베르니에 가고, 밀레가 머물던 바르비종을 방문하듯 이중섭의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의 숨결이 담겨 있는 장소를 한 번씩 찾아가 보면 좋겠다는 바람도 들었다. 아쉽게도 더 이상 화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가 많지 않지만, 그곳에서 이중섭의 삶과 작품을 떠올린다면 우리만의 반 고흐를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를 찾아가는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p. 11 들어가는 글
평안남도 평원군 조운면 송천리에 태어난 이중섭.. 안타깝게도 저자도 우리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도쿄를 이중섭을 향한 첫 여행지로 잡는다. 이중섭이 1936년부터 1943년까지 유학하면서 평생의 평생의 반려자 마사코를 만난 곳이다. 저자는 이중섭이 다녔던 학교, 산책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렸던 이노카시라 공원 등을 다니며 유학 당시의 이중섭을 떠올린다. 이중섭은 역시 미술학도였던 마사코와 프랑스 유학을 꿈꾼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 이후 도쿄는 뒤숭숭해지고, 결국 이중섭은 귀국하게 된다. 이중섭의 나라 또한 혼란스러워 그는 마사코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그러나 마사코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중섭을 찾아오면서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또 하나의 전쟁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 전쟁이다. 이중섭은 아내 남덕(南德, 따뜻한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지어 줬다고 한다.), 두 아들 태성이와 태현이, 조카 이영진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부산, 서귀포, 다시 부산이다. 이중섭은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애쓰지만, 일은 점점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 결국 남덕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게 되고, 이중섭은 홀로 남는다.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날 날을 고대하며 통영, 진주, 대구,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이중섭미술관을 지척에 두고 헤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 헤맴은 미술관에 들어가서도 계속되었던 것 같다. 이중섭 영정 사진이 놓여 있던 그 작은 방에서 네 명의 식구가 생활했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사진 뒤로 적혀 있는 ‘소의 말’이라는 시의 의미 역시 알길 없었다. 이중섭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중섭을 발자취를 더듬어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저자 덕분에 무지의 자각을 한 셈이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전시, 공연을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이중섭의 삶을 거울 삼아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도 좋을 듯하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걸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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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일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느껴진다.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책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비운의 삶을 살다간 간 한국의 반 고흐이다. 우연한 기회에 미술관에 들렸다가 이중섭의 생활모습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묵었던 여관이나 자주 들렸던 다방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시해 두었다. 이중섭관 관련된 장소, 소품, 작품들을 봐서인지 책의 내용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살아가면서 사람 뿐만 아니라 책이나 영화, 음악 등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알고 있던 인물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미술관에서도 만나고 책을 통해서도 이중섭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게는 운명과 같은 만남을 가지는 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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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에서는 이중섭의 삶을 만난다. 작품만 알고 있던 분들이라면 그의 삶을 보면서 이전에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살았던 장소들을 따라 떠나는 길들은 아프고 슬프게 다가온다. 미술작품으로 만났던 그와 그의 삶을 통해 보는 작품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는것만 보이는 것처럼 그에 대해 알고나니 작품들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중섭 삶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작품이나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다양하게 만날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들도 만날수 있다. 아픈 시대에 살았기에 그도 아플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에게만 유독 아픔이 크게 다가온 것일까. 그의 유년시절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어떤 작품 활동을 했으면 그가 그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있다, 이중섭이라는 화가를 생각하면 소가 떠오르는데 그가 어떤 마음으로 소를 표현했는지 책을 통해 알아가는 것이다.
이중섭이 소로 한국의 민족성을 드러낸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한국의 화공이므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로 소를 화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 본문 144쪽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라는 의미있는 해에 특별하게 만나는 이야기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영화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었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나 연극을 통해서는 그의 삶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편젹인 내용이라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면허 함께 울고 웃을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부드럽기보다는 어딘지 거친 느낌이다. 그런 것들이 아픔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에 대해 모르더라도 그림만으로도 전해지는 느낌이 아닐까. 부인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는 것처럼 누구보다 한국적인 화가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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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섭탄생 100주년에 떠나는 특별한 예술기행 국민화가 이중섭. 한때 위작 사건이라는 구설도 있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 책을 읽다보면 이중섭의 인생이 국시와 결부되어 짠해지는 마음이 강해지며 그의 작품이 깊이있게 보인답니다. 필자와 함께 떠나는 특별한 예술기행, 이중섭을 알아봅니다. ![]() 책 제목이 '떠돌이 소의 꿈'인 것처럼, 이중섭은 부산, 통영, 제주.. 많은 곳을 떠돌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이중섭거리를 다녀왔는데, 그저 제주도에서 활동한 줄 알았더라죠. 그런데 알고보니,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함께 지내는 바람에, 그래서 부산에도 오게 되었고, 통영에도 오게된 것, 그리고 제주도요. 저자는 부산에서 이중섭의 발자취를 먼저 찾아봅니다. 이중섭 아내인 남덕의 이름을따서 '마사코 전망대'가 있다고 하지만 이중섭의 작품이 벽화로 남으며 소소히 남은 정도라고 합니다. 활동하고파 했던 벽화, 생전의 꿈이 사후에야 기념으로 남았다 합니다. 국민화가라 불릴 수 있는 이중섭에 대해 한편으로는 너무 등안시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어찌보면 그의 소박했던 활동들이 아기자기 모여있으니 부산에 들르면 꼭 찾고싶어지네요. ![]() 이중섭은 상당히 로맨티스트적인 남자였다 싶습니다. 얼마전에 서양화가들의 책들에서는 예술혼들은 가득하지만, 가정에 대해서 부인에대해서는 소홀하던 이들을 보고 살짝 안타깝고는 했는데, 이중섭은 부인이 될 마사코를 마음에 담아 떨어져있는 기간에도 사랑을 그림에 담고, 떨어져지낸 자식들에 대해서도 그리움을 가득 안고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마사코(만덕)의 발이 다쳤을 때, 발을 치료했던 순간을 그림에 담기도 하고, 만덕에 대해 애칭을 부르면서 사랑을 편지에 담곤 했습니다. 첫째아이가 글을 읽기 시작하고, 아빠의 그림이 좋다고 하니, 엽서에 그림을 자주 그려보내기도 하고요. ![]() 만덕과 자식들, 자신의 소가족과 헤어지기 전. 서울이 수복되고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그곳또한 여의치 않고 포화상태. 그리하여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는데... "길 떠나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중섭은 내 가족과 함께 하니 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아무것도 없는 제주도에서 생활을 꾸려나가자 했을 때 그 자체로, 가족과 함께하니 좋았습니다. 가진것이 많지 않았다 해도, 간단한 그림 속의 아이들과 부부는 행복해보이지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나이터울 많은 형이 가정을 책임지며 잘 지내던 중섭. 그러다 6.25이후 형이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와는 이산가족이 되고... 만덕도 아버지의 사망으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그곳이 한국보다 나은 상황이라 일본에서 자리를 잡기로 했고. 안타까운 시국에 더불어 가족과의 이별들,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들과 함꼐하고픈 마음이 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중섭에게 같은 화가친구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형편이 좋을때 도왔기도 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의 도움 덕에 작품활동도 해보고, 자리 주선으로 수입도 있고 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의 인간적인 안심이 되곤 하네요. ![]() 힘겹게 여러곳을 전전하곤 하지만, 친구들 덕이 있었다 했죠. 구상은 특히 여러모로 신경써준 좋은 친구였습니다. <구상의 가족>에서 구상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모습. 그때 이중섭은 아들 태현과 태성을 생각하며 구상의 아들을 바라보는 듯 하죠. 구상의 아들에 손이 다을 듯 연결된 그림에서, 작가의 해석처럼, 중섭은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있을 것이라 저도 그리 느껴집니다. ![]() 이중섭은 우리에게 신화적인 화가로 전해집니다. 비록 당 시대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으니, 그의 가치를 잘 몰랐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 안타까운 역사에 걸쳐진 천재화가의 일생을 이해해보자면 그의 그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시기에서도 잃지 않았던 예술혼이 우리에게 신화로 보일 수 밖에 없겠다 싶어집니다. 곁에 있는 새를 그리고, 아이들을 그리고, 가족을 그리고.. 그리고, 중섭을 대변하는 느낌의 거친 붓놀림으로 우직한 소를 그렸습니다. 여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리하여 그림도 그냥 지나쳐왔던 것 같습니다. 저자를 따라 그의 발자취를 읽어보고나니, 그의 전시회들, 지금 당장 서울에서도 열린 전시, 꼭 챙겨야겠다 싶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