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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하면 짜증이 확 일어난다. 뭐야! 하필 왜 내가 가는 길에 저런 돌이람!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엔 나도 존재하고 또 저런 돌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무언가로 인해 심히 마음이 까칠해졌을 때, 내 마음 속 비늘을 제 결대로 쓸어내릴 수 있게 하는 책! 나는 그런 책을 만났다. 두고두고 펴 보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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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마음에 와닿았다. '왜냐고 묻지 않는 삶' 얼핏 이 문장을 보면서 시인 김삼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마지막 구절인 '왜 사냐건 웃지요.'가 떠올랐다. 물론 이 두 문장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책 제목에 꽂혀 있던 차에 TV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가 방송됐는데, 끝부분만을 스치듯이 살짝 보게 되었다.
![]()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태어날 때에 탯줄이 목에 감겨 죽을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뇌에 산소부족 현상이 일어나서 뇌성마비가 된다.
3살부터 약 17년 간을 요양시설에 있었는데, 신체적 장애의 고통 속에서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대학에서 철학,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면서 학문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는 이 책 속에서도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지만 신체적인 장애가 결코 정신적 장애가 될 수 없음을 많은 독자들에게 일깨워준다. 그만큼 그의 생각은 그 누구 보다도 깊이가 있고 맑고 밝다. 그는 인간 승리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밀리언 셀러 작가이며, 방송과 강연을 넘나드는 행복 전도사이다. 그런 '알렉상드르 졸리앙'이 2013년, 아내와 세 자녀 (빅토린, 오귀스탱, 셀레스트)를 데리고 한국에 와서 생활을 하고 있다. 가톨릭 구도자인 그가 한국의 불교를 만나러 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한국에 오면 어디에서나 불상을 볼 수 있고, 불교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알렉상드르 졸리앙이지만 법명은 혜천, 즉 지혜의 샘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삶과 불교적 명상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고 있다. 이 책은 약 90여 편에 달하는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그 글들을 읽다보면 '삶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의 삶이 말해주는 위로와 용기,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들마다 '왜 사냐?'고 묻곤 한다. 아니 '너는 과연 지금 잘 살고 있냐?'고 우리의 삶을 스스로 추궁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 " 우리 삶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혹시 '불안', '짜증', '남의 시선'이 아닐까? 우리는 '행복한 척', ' 잘난 척', '센 척' 하여 거짓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 (책 뒷표지 글 중에서) 줄리앙의 한국에서의 삶은 종교의 경계를 허무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부처님 휘하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이 기독교와 동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삶이며 두 종교 사이에서 그는 삶의 진실을 찾고 있다.
그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를 살펴본다. * 첫 번째 진리 :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 두 번째 진리 :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 세 번째 진리 : 이 세상에 의로운 인간은 지극히 드물다. * 네 번째 진리 : 태양 아래 살아 있음을 즐겨야 한다. 알렉상드르 줄리앙은 명상을 배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9천 킬로미터를 날아 왔다. 그의 내적 치유를 위한 명상일지인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반추해 보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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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로 졸리앙. 나는 그를 지난 연말 kbs의 '사람과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유럽에서 잘나가는 작가이며 뇌성마미 환자이다.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물음 속에서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해 스승을 찾아 한국으로 온 철학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 프로그램은 낯선 한국에서 세자녀와 지내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선 수행의 의미와 참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졸리앙의 솔직담백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잠재된 기억의 소산인지 우연히 그의 책 발간 소식을 듣게 되고 조금 더 그의 사색의 광대한 범위와 깨달음의 파편이라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독했다. 그는 예수님과 부처님이라는 절대적 우상을 분리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삶의 고민과 번뇌, 안정과 평화를 얻기 위해 사색하는 인간이다. 그 사색의 끝단에 있는 스승이 서명원이라는 한국인이였고 혜천이라는 법명을 얻고 제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인이자 불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졸리앙의 종교적 근원은 기독교이며 단지 선 수행은 내적 평화를 얻고자 하는 선택적 수단에 불과하다. 이 책을 보더라도 기독교에 대한 언급은 자주 눈에 띄지만 부처의 교리에 대한 해석이나 인용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일기체 방식으로 구성된 졸리앙의 자기 철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 철학이라는 것이 서양 철학의 원문을 인용하거나 해석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졸리앙의 생활 속에서 감지해 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쉽게 풀이하고 있다. 그의 내용은 깨달은 자가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선언적 잠언들이 아니라 권위와 가식으로 꾸며지지 않은 보통 인간인 졸리앙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고민이 우리와 동일하다는 생각에 안도의 웃음을 짓게 한다. 그가 말하는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란 '나중에 대한 강박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 무엇보다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이곳에 체류하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다................'우선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 때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 것 내가 잘했어야 하는데라든가' '아 그때 이래었다면!'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공연히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것이겠다"라고 말한다. 왜냐고 묻지 않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번뇌와 잡사의 마귀와 싸우며 선 수행에 돌입한다. 그에게 일상은 하나의 도장이고 시험대이다. 더구나 이곳 서울은 경쟁과 불평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무서운 속도의 대련장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의 성찰과 이를 위한 멈춤보다 타인의 시선에 자신이 평가를 맡기고 무한 질주하는 무서운 아이들 뿐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졸리앙이 이끌어 낼 삶의 방향과 해결점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글 자체는 쉽거나 혹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큰 고민없이 읽어 낼 수 있다.그러나 스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한국에서 잘나가는 작가가 되기에는 다소 무리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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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왜?"라는 질문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인생의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도, 지금 서있는 자리가 낯설 때도 뭐하나 선뜻 결정하지 못해 주춤거릴 때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왜?"라는 질문은 딱히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나 해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의 위로랄까. 혼자 짊어져야 할 삶의 질문은 언제나 그렇다. 이런 지금보다 나은 삶의 지표를 찾는 첫 번째 노력일 수 있는 "왜?"라는 질문을 묻는 것조차 욕심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를 만났다. 스위스 태생의 알렉상드르 졸리앙이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뇌병변 장애인이다. 게다가 철학자이자 구도자이다. 유럽에서는 꽤나 유명한 강연자이기도 하다는데 그런 그가 지금 한국에 있다. 슬그머니 "왜?"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몸도 불편한 장애인이 그것도 아내와 두 딸에 아들까지 모두 데리고 낯선 이국땅에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구도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다큐에서 그를 보고 그가 궁금했었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조건없이 달려와 준 한국인 남자와 티없이 맑게 웃는 그를 말이다. 몸도 불편하고 말도 어눌한, 그런 그가 <왜냐고 묻지 않는 삶>이라는 책을 펴냈다길래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고 어찌 살면서 왜냐고 묻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책을 읽어 나가며 자신은 장애인이라고 무심히 툭툭 던지는 그를 만난다. 분명 다르지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의 삶의 철학이 담담히 나를 위로한다. 하지만 나 역시 움직이기 쉽지 않은 몸뚱어리를 질질끌며 살지만 그와는 다르게 나는 "왜?"라는 질문을, 삶의 이정표를 찾아 늘 되물으며 살아 간다. "내려 놓는 삶"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예수든 부처든 그에게 참 많은 걸 주셨다는 생각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해야 하는 구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 이 머나 먼 타국까지 날아 온 것을 보면 그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범인인 나에게는 여전히 삶은 미궁 속 "왜?"라는 질문으로 가득차 있음으로 "내려놓는 삶"이란 터무니없는 호기요 사치다. 그럼에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위로하고 때로는 천천히 느리게 삶을 조망하고 무의미하던 유의미하던 마구 쏟아내는 말보다는 깊은 심연의 느낌으로 침묵이 필요함에 공감하게 만든다. 일장연설로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고 따뜻하게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치솟지만 여전히 "왜?"라는 질문이 생각을 짖눌러 버렸다. "상실은 무엇보다 정신의 산물이다. 가령 내가 힘들어 죽겠어도 온 세상이 나와 같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핍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비교다." -p34 <우리는 결정권자가 아니다> "단지 꼼꼼하게 발을 내디뎌가며 걷는 것. 버티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것." -p54 <한걸음 한걸음> "신은 말한다, 나는 잠자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잠자리에서 불안에 시달리고 신열로 들끓는 자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신은 말한다, 나는 매일 밤 사람들이 자기 성찰을 하기 바란다. 그것은 분명 바람직한 자세이지만 그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자신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하루가 이미 끝난 시간이다. 다시 손질할 수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친구여, 간단한 문제다. 너희에게 괴로움으로 남은 그 모든 죄들, 그것은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을 때 저지르지 말았어야 한 죄들이다. 지금은 이미 끝났다. 그러니 어서 자라! 내일, 되풀이 하지 않으면 된다. 신은 말한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무얼 할까 계획 세우는 자를 나는 사랑하지 않는다." -p88 <내일을 위한 계획> "실은 늘 자각하고 있는 위험이 있는데, 끊임없이 그게 나를 지치게 한다. 바로 멈출 줄 모른다는 것. 왜냐고 묻지 않고서는 삶을 즐기질 못한다는 것." -p220 <단순한 즐거움의 축제> "침묵하기로 다짐하는 것은 억지로 자신을 닫아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입을 다물고 세상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p267 <세상의 소리>
글 : 두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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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철학서를 잘 안 보지만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문구는 라캉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소위 젓가락 문화권 특유의 공동체? 혹은 체면? 중시 경향은 사회 평균적인 행복도의 저하를 가져왔습니다. (체면이라는 단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겠군요ㅎ) 본서는 <월든>, <조화로운 삶>, <행복의 기원> 및 법정스님·법륜스님 같은 분들의 저서와 같은 선상에 서있으며 사실 이런 책들은 대개 유사한 논조/패턴을 보입니다. 어찌보면 뻔하고 늘 똑같은 맥락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들이 계속 출간되고 언급되는 건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론'인데도 막상 이를 지키며 사는 건 정말정말 어렵기 때문일겁니다. '영성'이라는 주제조차 한없이 도구화되고 상품화된 현세에서 저자가 유명세를 훌훌 떨쳐버리고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는 건, 어떻게든 자신을 띄우고 드러내고 싶어 안달나있는 시대에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소박하고 또 아름답습니다. 유럽 등지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저자라 많은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였지만 아주 작은 출판사를 택했고 역시나 그놈의 마케팅이 잘 안되다보니 그다지 알려지지도 않고 소리소문 없이 볼 사람만 조용히 본 느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단지 체화와 실천이 어려울 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CGV에 가면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지긋지긋한 광고가 있죠. '잊고 있었습니다~' 디씨를 비롯한 수많은 곳들에서 국뽕광고라 비웃음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나오더군요. 여기에 한창 싸이가 떴을 때 외국인만 보면 '두 유 노우 갱놤스타일?' 하며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자격지심, 인공지능으로 매년 기사를 대신 올려도 될 거 같은 고은의 노벨상 수상, 유투브에 넘쳐나는 'OOO를 처음 먹어본/접해본 외국인들의 반응', 해외 톱스타 내한 인터뷰에서 공식 입국절차처럼 외쳐대는 '김치 좋아해요~' 멘트 등등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남이 좋아하든 말든 타인의 생각에 왜 그렇게 신경을 쏟는지. 어떤 면에선 이런 어거지 국뽕 주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헬조선 같은 단어가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의 시선에 갇혀서 사는 기조가 지속되면 앞으로 삶의 질이 아무리 더 나아져봐야 불만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겠죠. 절대적인 측면에서 분명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삶의 질을 고려하면 이런 남 신경쓰는 문화, 명품 등에 자기를 감추고 싶어하는 내면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분명 과합니다. 얼마 전 공중파에서 아스카 피규어를 거리낌없이 가지고 노는 데프콘의 모습은 대단히 이색적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숨겼어야 할 일이니까요. 로보트를 모으든 피규어를 수집하든 게임을 하든 진정 내가 즐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인지. 반대로 실상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본적도 없는 난해한 영화나 책을 좋아한다는 등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고 자의식 과잉을 부추기는 사회문화가 참 재미있습니다. 마침 이 책을 읽고 리암 니슨의 내한 인터뷰를 언뜻 보니 김치 좋아요 드립이 나오더군요. 여전히...-_-)a 공동체 지향적인 코리안 스탠다드에서 벗어나 각자 원대로 놀 줄 아는,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해방의 시대를 본격 맞이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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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전 잠시 읽다가 자야겠다라는 마음에 펼쳐 들었다. 하지만 이내 마지막 장이 될때까지 책을 덮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적응한 적응기를 토대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 안에 그의 철학적 요소를 만날수 있는 책인 것이다. 자신의 영적스승을 만나기 위해 9천킬로미터를 날라온 사람이기도 하다. 기독교 인이면서도 불교적 수행을 하는 이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훌륭하게 극복해낸 사람이기에 얼마만큼 노력을 했을가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체의 장애는 극복할수 있어도 마음의 장애는 극복할수 없다는데... 그는 그의 신체적 장애가 삶을 살아가는데 그저 조금 불편한 것임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한국에서는 혜천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이라는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으며 3살때부터 17년간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어려움과 고통이 그를 괴롭혔으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으로 철학공부를 시작으로 하여 그가 책을 펴내는 대까지 오게 되었다. 1999년 첫책을 출간한 이후부터 주옥같은 철학책을 담아내며 유럽100만독자를 사로잡은 그!!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스승을 찾아 한국에 와 삶을 누린다는 사실... 그 삶속에서 얻은 자신의 철학적인 마음과 의미를 한권의 책으로 담아 펼쳐 냈다. 그것은 그의 일기이기도 하며, 철학적인 마음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저 지나칠수 있는 것에서 찾아내는 소중함을 잠시 엿보는 시간이다. [나를 치유해 주는 것이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닭아가고 있다. 치유되려는 생각으로 부터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그가 남길 글이다. 하지만 가장 공감이 되는 글이기도 했다. 전체의 이야기가 모두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로 집약된 것은 바로 이말이였으니 말이다. 주옥같이 펼쳐진 한줄의 말에서 동감을 얻고 위로를 받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실에서 소중함을 얻는 다는 것!! 그저 지나칠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현제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 잊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감 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한 소중함!! 그렇다고 해서 집착과 미련이 가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작은 것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깨닭는 순간... 내 안에 작은 것부터 변화가 될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작은것을 보고 계속 가다보면 결국은 큰것을 놓치고 만다. 그저 흐르듯 그곳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 빠지고 나면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모든 일은 멈춤없이 흐르고, 그 흐름속에서 이뤄지는 것인데.. 그것을 잊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잠시 놓는 순간 다른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을 쥘수가 있을텐데.. 악착같이 손에 쥐고만 있어 결국 쥐어야 할 다른 것을 보았을때 쥐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런것을 꼬집어 내는 그의 말에 잠시 뜨끔 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을 모른척 했단 일에 잠시 숙연하면서 부끄럽기도 했다. 몸이 조금 불편한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 혜천 또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잠시 나를 돌아 보는 것이 무엇이 힘들다 그리도 앞만 보고 달려 왔던 것인지... 내 삶의 주인이 누군지. 등떠밀어 가라고 하는 세월인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인지...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였다. 읽는 내내 나라는 사람과 대입시키고, 나라는 사람이 어떠 했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고 생각학 했던 책이였다. 지루한가? 그 지루함이 책을 덮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유유자적...한번에 읽어내리기 보다 천천히 나누어 음미하며 읽으면 좋은책!! 괜히 알렉상드르 졸리앙을 철학자라 부르는 이유를... 그가 한국에서 살아가기에 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가 될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의 영적 순례를 통해 나도 다시 한번 나를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작은 것에 감사하자... 그럼 조금씩 변화해 가는 나를 만날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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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내 인생에 사표를 내고 싶을때가 한 두번이던가. 어김없이 1년이란 삶을 살아내야한다. 어떤 문제든지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의외로 제목이 묻지 말란다. 파란눈의 아저씨가 한국에 와서 혜천이란 이름으로 책의 제목을 깨우치기 위해 와서 수행하는 과정을 에세이로 저마다의 삶의 방향에 어울림과 울림을 주고 있다.
행복이란 무얼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잘라내고 덜어내서 단순화하는 것이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잡아내 발가벗고 앞으로 나아가는일.....라 정의한다.
올 한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상대방과 비교하고, 남에게 많은 것들을 투사시킬까. 지금까지 퇴비처럼 쌓아온 것들만 합쳐도 넘쳐나는데, 왜냐고 묻지 않는 삶,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것, '내가 잘했어야 하는데'라든지, '아, 그때 이랬었다면!' 따위의 말을 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현실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차분하게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속에 살아가는 자체가 수행의 과정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은 이미 자유로움을 뜻하지만 온갖 망상들이 자시중심적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멍때리는 매너리즘에 함몰되어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덜어내야 겠다.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내야 할 이유를 찾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기를 거부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발가벗으면 좀 나아질까.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하고, 외출해서 돌아오면 묵은때를 비눗물로 씻어내듯, 삶이란 녀석도 그렇게 수도꼭지 틀고 샤워하듯 번민과 고뇌들을 시원하게 털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이것 저것 바꾸려고 얼마나 애썻던가, 타인의 삶에 얼마나 개입했던가. 그저 지나가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으면 다행일건데, 나잇살을 먹어가면서 부고장이 이곳저곳에서 날아든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도 중요한데,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하나 치러내야 할 작은 문제들 역시 무시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온갖 걱정거리들을 만들어내고 풀어내는 과정에서 호들갑을 떨어가며 오늘 이 순간들의 살아간다.
부처는 모든 고통, 모든 고난을 해소하거나 '눈물의 골짜기'를 메워주려고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우리에게 윤회輪廻)를 사는 법, 고통의 중심에서 평화를 찾는 길을 가르치러 오신 것이다. 더불어 온갖 범죄와 폭력,질병과 고통,불의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궁극적으로 온당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네라고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기도란 곧 삶을 사는 것이고, 일어서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허무하고 덧없는 동시에 그 자체로 완벽하고 경이롭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모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만사가 제자리걸음일때, 꿋꿋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과만반응하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도 세상 덕분에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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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왜냐고 묻는 삶에 익숙해져 있어서 인지 오히려 묻지 않는 삶이라니 생소해서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탯줄을 목에 감고 태어나는 사고로 인해서 졸리앙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하지만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 오를 정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 유럽을 순회하며
밀리언 셀러 작가이자
그는 카톨릭신자이지만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KBS "사람과 사람들" 프로그램에 12월 19일에도 방송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실제 그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왜냐고 묻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묻지 않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경제가 어렵다, 취업 등 의 이야기에 익숙해져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인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왜냐고 묻지 않는 삶에 살아가고 싶다.
당장의 어떤 해답은 없겠지만 철학자 졸리앙의 말처럼 빠르게가 아니라 조금씩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철학자의 이야기라 그런 지 일상 생활 속에서의 삶을 이야기 해주지만 솔직히 나는 조금 어려웠다. 한번에 읽기 보단 두고두고 읽어봐야 할 알렉상드로 졸리앙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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