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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골방에 앉아 12인치의 우퍼가 달린 구닥다리 스피커로 듣는 넉넉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보다 청량하고 평온할 수 있으려면,
초여름 수목원의 언덕 배기에서 시원한 여름 바람을 쐬거나
보성 녹차밭 한가운데에서 푸른 잎들이 살랑거리는 정경을 훑어 보거나,
혹은 어스름이 짙어지는 약수터의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듣거나 해야겠지...
혹은 번뇌에 흐려진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고, 납의에 삭발한 푸른 정수리를
반짝거리며 무아의 황홀경에 잠긴다면 가능할 일.....
음악이야 말로 신의 음성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최고의 예술이라고 갈파한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공을 초월한 물자체의 표상 한자락을 다가가 만지는 듯 뭉클한 음악이 있다.
부르크너의 9번 교향곡이 그렇고 텔레만의 오보에 소나타가 그렇고, 파가니니의 프레게이아 소나타가 그렇다.
지금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때문이다. 이런 평온과 활홀경을 가져다준 샤프란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샤프란은 강철의 냉혈한 스탈린의 예술정책의 수혜자였다. 그는 누구에게나 재능만 있으면 평등하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소비에트 정부에서 운영된 어린이 특별 음악학교 출신이었다.
구소련의 첼리스트로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으로 유명한 연주자는 단연코 로스트로포비치이다. 그는 이미 샤프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글로벌할 유명세를 획득했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노년에 접어들어 무반주 첼로곡 전곡을 녹음했기 때문이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지닌 첼로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스트라디바리우스였으니....
나 역시 이런 기대감과 궁금증 때문에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 무반주를 구입한 애호가중 하나였다.
이름 모를 신인 연주자의 연주보다도 더 실망스럽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두리뭉실한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통의 울림 외에 어떤 스윙감도 찾을 수없고, 도대체 침잠이 아닌 혼침이었기에....
샤프란의 바흐 무반주 첼로는 나의 3대 바흐 무반주 첼로에 속한다.
제일은 모리스 쟝드롱의 바흐요 (시인 김정환이 극찬한 연주)
또하나의 제일은 안드레이 쉬프의 바흐이고
또 다른 제일은 이 샤프란의 바흐 무반주 첼로이다.
쟝드롱의 연주는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물든 연주라면
쉬프의 연주는 가볍지만 범상치 않은 우아한 춤곡이고
샤프란의 연주는 묵직하게 깔리면서도 현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진중한 바흐이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겠지만 위의 세 음반이 필자가 현재 소유한 푸르니에, 안너 빌스마, 카잘스, 지안 왕, 린덴과 앞서 언급한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에 비해 손이 자주가는 음반이다.
샤프란의 음반을 출시한 아울로스 음반사는 구소련의 멜로디아 음원이나 카잘스의 연주 등 ,LP시대 혹은 SP시대의 명연주들을 복각한 음반으로 인기를 모은 국내 음반사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울로스 음반사의 음반들은 이미 폐반된 예당음반사의 멜로디아 복각 음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음질이다. DSD 리마스터링 음반이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음이 날리거나 넓은 거실(혹은 리스닝룸)에 낭낭히 소리를 울려퍼지는 걸 즐겨할 오디오 파일이 기피할 정도의 형편없는 음질은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2% 부족한 음질(애호가 중에는 오히려 이런 러시아 음원의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되지 않은 소박함을 즐겨하는 부류도 있답니다)을 커버하고도 남을 훌륭한 연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