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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발루는 적도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1990년대 해수면 상승치를 기록한 이후부터 투발루를 비롯한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서서히 물속에 가라앉고 있습니다. IPCC(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 의 예측이 맞는다면 최고지점 해수면이 3.7m인 투발루는 거대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온실가스를 줄이고 석유문명을 탈피한다고 해도 바닷속의 국가가 될 것 같습니다. 애석하게도 투발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의 1/42 수준입니다. 이산화탄소가 인류에게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온실가스가 없다면 인류는 영하에서 살아야하는 생태적 환경을 만날 것입니다. 문제는 엄청난 화석연료의 사용과 무분별한 도시계획에 따른 산림파괴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은 그간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을 처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바닷물은 산성화되어가고 대기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100년이 넘게 분해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류의 선택은 이미 피할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지구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자신을 낮추거나 최대한의 협조를 갈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인본주의와 종교가 발전한 이래 인류의 모습은 극히 독단적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자연을 중심으로 한 삶에서 자연은 인류의 희생물이 되어갔던 것입니다. 특히 환경오염과 온난화에 따른 생태계의 파괴로 수 천종 동식물의 몰락이 진행중이며 이는 전혀 다른 지구적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류 역시 자연의 한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자기조절시스템을 이용하여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을 작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태계의 상호작용에 관여하고 다양하게 변화하는 가변성을 보여준다는 이론입니다. 즉 지구는 30억년이 넘게 자신에게 존재하는 생명에 알맞게 역동적인 생리학 시스템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자가 조절이 가능한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생긴다면 지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구는 다시금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지각변동 등을 통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가이아 이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져 많은 정치적 지도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기득권 국가들이나 집단들에 의한 반란(?)입니다.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부분 환경협약을 파기하거나 정치적 논리를 통해 온난화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원인엔 기업 논리와 정치적 영향이 포함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자신들이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땅위에서 유례없는 고통의 시작을 겪고 있습니다. 고갈되어다는 화석연료는 이미 전 지구적 환경오염은 물론이고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으나 사용한 량이나 범위에 비해 대체할 수단을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발전이라는 명목 앞에 인간에게만 편리한 시스템이 지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인구증가는 지속적인 연료 사용을 증가시킵니다. 우린 우리가 만든 시스템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유독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자세를 견지합니다.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논리를 이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다음에도 외칠 수 있겠냐고. 인류는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에게 가혹하리 만치 잔인한 행동을 하고 있으나 전혀 뉘우침이나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구는 인간만이 사는 행성이 아닙니다. 자연과의 조화는 우리들의 자세를 더욱 낮추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믿음이 있습니다. 과거에 이렇게 해왔으니 미래엔 보다 나은 인생을 가꿀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거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참해 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이 아무런 필요가 없다면 우리의 생각이 바꾸어질까요? 그런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 주위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은 악덕 못지않게 생존에 대한 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 저자의 표현대로 지속가능한 퇴보가 우리가 실행해야할 최소한의 행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구는 우리들이 살아왔던 곳이고 살아가야할 터전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후세에게 물려줄 위대한 생태계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아의 복수, 말만으로도 섬뜩합니다. 선택이 아닌 전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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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이아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거짓말처럼 나는 지구를 생각했었다. 신화속의 여인 가이아가 누구인가? 바로 대지의 여신이다. 우리모두를 품어 주었던 대지의 여신.. 이 책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이아 이론이란 것이 지구 전체가 동물이 체온과 화학적 균형을 조절하는 것처럼 내부 환경을 조절하는 하나의 생물로서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쉽게 말한다면 살아가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그렇게 해왔던 존재라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치유해가며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 그런데 그 가이아가 지금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고 한다. 늙고 병들어서 이제는 우리가 먼저 가이아를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더이상은 품을 수 없을정도로 많아진 인구수와 그 인구들이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자신의 편안한 일상을 위해 저지르는 모든 일들이 가이아를 힘들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두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파괴능력과 문명건설 능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에너지를 오용하고 인구 과잉 상태로 만든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속에서의 모든 움직임이 이산화탄소를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올시다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가 없으니 지구라는 이름을 가진 가이아에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매스컴이나 언론을 통해 흔히 들어왔던 지구온난화라든가 환경문제 따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이아를 살아있는 존재로써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은 놀라웠다. 삶의 풍요로움을 위하여 '자연'이라고 불리워지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우리에게 최소한의 '시골'을 잃어버려서는 안되는거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음이다. 사실 나는 이 책속에 나와있는 열역학이니 양의 되먹임이니 음의 되먹임이니 하는 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어려운 말들은 차치하고라도 내게 들려왔던 것들은 이랬다. 가이아가 복수를 하기 이전에 기후변화에 맞설 방어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재생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는 그런 것들.. 그리고 더이상은 '자연'을 파괴하여 지구에게 이중으로 타격을 가해서는 안되는거라는... 그많은 재생에너지들을 논하면서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핵에너지를 선택했을 때의 장점에 대해 끝까지 열변을 토한다. 유기농이니 풍력에너지니 하는 말들은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시설들을 마련하기 위해 파괴되어지는 자연을 염려하면서 말이다. 체르노빌 사태와 같은 상황을 예로 들어주면서도 핵에 관한 우리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조속히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저 많은 인구들을 모두 먹여 살릴 수 있는 유기농식품이 아니라면 유기농식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농경지를 만드는 것도 중단해야하며 지구 온난화를 막아주는 숲을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휴대폰과 컴퓨터에게 후한 점수를 준 저자의 변론에는 그렇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움직여야만 했다면 그것으로 인한 오염도가 훨씬 더 심해졌을거라는 말에 살풋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 자체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 조절 능력에 의해 한번쯤은 뒤집어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게 될 시기가 가까워오고 있다는 말에도 나는 공감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래도 인간이라는 종은 끝까지 살아남을 거라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강하다는 말일까? 아니 어쩌면 그토록이나 이기적인 존재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억지일까? 언젠가 너무도 놀라운 마음으로 보았던《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다큐영화에서처럼 인간도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한갖 미물임에 불과할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일전에 보았던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기후학자인 어느 박사가 지구의 기온 하락에 관한 연구발표를 하게 되고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빙하가 녹아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결국 해류의 흐름이 변하게 된다는.. 지구 전체가 서서히 빙하로 뒤덮이는 재앙을 보여주었던 영화.. 도시 전체를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만들어가며 밀려들어오던 바닷물의 공포를 보면서 어쩌면 정말 저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섬뜩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었다. 이 책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지금 우리 모두가 가이아의 늙고 병듬을 믿어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살길이 보일 거라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속에서처럼 이 책의 저자도 해수면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재앙이 닥쳐올지도 모른다고 예견한다. 언제였는지 일본이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 눈 앞에 시련이 닥쳐와야만 그것을 알 수 있다면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거라는 저자의 말이 왠지 무서워지기도 한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그런 재앙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전문적인 해설을 따라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1 장에서 늙고 병든 지구의 현재상태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가이아가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그동안 가이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이아의 생활사라는 구분으로 이해를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실제적으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의미들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저자가 예로 들어주었던 21세기에 관한 예측이라거나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에 관한 이야기들은 환경론이나 지구라는 의미에 대해 언어적인 의미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에게조차 왠지 조바심을 느끼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동식물과 많은 미생물들이 더이상은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가이아는 뜨거워질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철저한 파국이 찾아올 것이라는 작자의 의도를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저 끔찍한 책의 제목처럼 가이아의 복수가 시작되어진건 아닐까? 더이상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세계속의 이슈들이 모두 기후조건에서부터 왔다는 것을 부정할수는 없을 것 같다. 지구의 여기저기를 휩쓸고 다니는 커다란 홍수의 물결을 봐도 그렇고, 폭설에 의한 재앙소식도 우리를 두렵게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진이나 토네이도와 같은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의 처참한 모습들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볼 때 전해져오던 그 전율들은 그저 그냥 생겨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속에서 은근히 비추어내던 지구의 예견된 앞날이 바로 저런 모습은 아닐런지... 무언가로 한대 맞은듯한 기분이다. /아이비생각
가이아도 그렇다. 자기 삶의 처음 오랜 세월 동안 세균만 있었고, 중년 막바지에야 최초의 다양한 동물상과 후생동물이 출현했다. 80년대에 들어서야 행성에 최초의 지적동물이 등장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간에, 가이아가 아직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 우주에서 행성 전체의 모습을 보게 함으로써 우리는 가이아의 노년을 흡족하게 한 것이 분명하다. 불행히도 우리는 정신분열증 경향을 보이는 종이다. 그렇기에 파괴적인 성향이 점점 늘어나는 십대 무리와 한 집을 쓰는 할머니처럼 가이아는 점점 화가 나고 있으며, 그들의 행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들을 내쫓을 것이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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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본인의 생각을 일부 기록해야 하겠다. 기실, 그간 생태학이 주장하는 태생적인 한계와 우울한 선입견, 환경론자의 거친 근본주의적 주장과 현실에서는 독선적인 활동에 대해 나름대로 우려하여 왔다. 본인의 독서활동에서 가장 최근의 수확은, 환경론은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이며 나름대로 수준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테렌스볼/리처드대거가 쓴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라는 서적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 이후 환경론자의 주장을 재차 파악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서적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우울한 미래 예언서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읽고 난 소감은, 수십 년 간에 걸쳐 연구했다는 저자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전혀 과학적이지 아니한 개인적인 소감에 기초하여 맹목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준이 환경론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본인은 지금까지 환경론의 수준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본 서적이 진정으로 환경론에 관한 의미있는 책이라고 한다면, 환경론 그 자체는 범생명주의라고 하는 선언적 강조점 이외, 귀기울여 들을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자세한 연구궤적은 알 길이 없으나, 내용을 보면 진화론, 분자생물학, 인지심리학, 에드워드 월슨의 통합학문 등 소위 이성에 기초한 합리주의자 및 과학자의 주장에 상당한 정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의 논쟁에서 대책없이 패배한 것으로 판명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주장은 환원론적 관점을 무시하고 직관에 의존하려는 비과학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특히, 본 서적 제8장의 내용은 압권이다.
본 서적의 내용은 복잡하지 아니하다.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의와 논리적 귀결은 특이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와 본 서적에 대한 본인의 평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종교적이라고 명시하지 않는 한, 스스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한,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주장하고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면 적어도 합리적인 근거는 있어야 한다. 특히,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주장이라면 적어도 과학적인 기반을 가져야 한다. 저자의 주장이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과학적인 방법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내용은 영적인 에세이이며,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위선적인 양심 고백서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본 서적은 과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서적이 아니라 환경론을 위한 정치 입문서라고 해야 하지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이런 책을 2008년 우수환경도서로 꼽은 환경부의 의도, 수준 내지 그 선정경위에 대해 의아스럽기 그지 없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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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의 복수]를 읽고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저자의 저작이다. 그런데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던 지난 40억년간 지속되어온 자기조절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최근의 수백년사이에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에너지원으로 다양한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에 지속가능한 퇴보를 통한 우리의 안전성에 대한 노력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책은 개인적으로 우리 문명에 대한 재앙을 예측한다기 보다는 우리 문명의 발전 추구 방식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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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론을 이야기하는 듯한 내용이다.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 궁극적으로는 핵연료의 사용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 이면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자제해야, 아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화석연료의 고갈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책과 대중 매체가 화석연료의 대체물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재앙-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 이론적 토대를 ‘가이아’라는 지구의 인격화한 이름으로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하여 지구를 바라보라고 주문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가이아에 대해 언급해 보자. 가이아는 생물권을 포함하며 30억 년 넘게 우리 행성을 생명에 알맞게 유지해 온 역동적인 생리학 시스템이다. 가이아의 목표는 어떤 환경에든 맞게 조정할 수 있고 어떤 생명체에든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를 태양계에서 가장 큰 살아 있는 존재라고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구가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행성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꿀 의지와 우리가 지구를 우리의 최대의 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이아 가설은 생물권이 지구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활동적이고 적응적인 제어 시스템이라고 본다. ‘우리의 살아 있는 지구-가이아’는 심각한 열병을 앓고 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제어의 능력의 밖으로 치닫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자. 우리는 지구의 질병이 아니라 심장이자 정신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욕구와 권리만 생각하는 짓을 당장 그만두고 우리가 살아 있는 지구에 피해를 입혀 왔으며 가이아와 화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환자인 살아있는 지구가 열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지구는 노쇠해 있고 기력 회복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구가 가열되면서 생기는 열기가 진짜이며, 치명적이고, 이미 우리와 지구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혁이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조직적인 파괴 행위가 너무나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구과학자들과 기후과학자들을 구비한 영국이 그들의 경고와 충고를 거부해 왔다는 것은 슬프고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구, 가이아를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핵에너지를 유일한 대안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핵에너지가 수많은 자료와 수치를 열거해 가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핵발전소의 유해성을 일축시키고 가장 안전하며 깨끗한 연료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들어 보자. 핵분열에너지가 현재 우리 수중에 있는 유일하게 효과 있는 치료약이라고 본다. 금세기에 찾아올 새로운 암흑기를 피하려면 핵에너지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를 덮칠 혼돈을 물리침으로써 우리 문명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대의가 될 것이다. 여러 다른 대체 에너지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게 수록했다. 바이오 연료는 지구 몇 배에 해당하는 면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풍력발전은 기후에 영향을 주고, 효율성과 경제적측면, 그리고 환경 파괴의 이유로, 태양에너지는 미래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너무 비싸 널리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그나마 가장 긍정적으로 본 지열에너지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이 드물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오로지 핵.. 저자는 원자력이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가이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가이아의 안락한 기후와 대기 조성 유지 능력에도 간섭하지 않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라고 믿는다. 물론 배제된 에너지원을 아예 사용하지 말자고 하지는 않는다. 중요하면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시간이어서 시간적으로 가장 빠르게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핵에너지임을 강조한다. 다가올 암울한 미래에 대비한 생활 방식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내용적 측면은 매우 파격적으로 들린다. 이 정도로 심각한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살펴보자. 우리가 진정으로 인류의 복지에 관심을 가진다면 가이아를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우리의 정당한 몫 이상으로 가이아에게서 많은 것을 취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하나는 지구가 태양에게서 받는 열의 양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나 연소 발생원에서 이산화탄소나 다른 온실기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을 세 곳으로 나눈다. 한 곳에는 도시, 산업시설, 항구, 공항, 도로를 집중시키고, 다른 곳에는 모두의 수요를 충족시킬 작물을 집약 재배하고(여기에 새로운 대규모 식품 공장이라는 개념도 들어간다.), 나머지 한 곳은 가이아에게 넘겨서 간섭이나 관리 없이 진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안녕과 편의만을 생각했다. 지구 시스템을 가이아로 인격화 하는 비유는 지구의 진정한 특성을 폭넓게 이해시키고 눈앞에 닥친 치명적인 위험을 이해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가시적인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보고 그 뒤에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우리가 일으킨 변화를 되돌리기가 너무 늦었을 것이다.
반대의 의견을 필역한 서적이 있으면 읽어보고 싶게 한 책이다. 어쨌든 많이 수긍이 가는 책이지만 저자가 우려한 일반적인 사람의 범주에 나도 포함이 된다. 어쩌면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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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브록 박사는 온난화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 내 어릴적에는 소복히 하얀 눈이 쌓이면 눈을 한움큼 집어 입속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아무도 그것이 더럽다거나 오염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눈도 그때보다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비가 내리면 산성비니 맞지 말아라, 눈이오면 우산을 쓰고 다니고, 입속에서 사탕처럼 녹여 먹었던 고드름도 이제는 보기가 쉽지 않을뿐더라 매우 오염된 것으로 간주해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가이아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1978년 영국 과학자이고 저자인 제임스 러브록이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소개된 이론이라고 한다. 가이아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가리키는 말로 가이아란 지구를 뜻하는 말인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가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로,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즉,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명체로 바라보면서 지구가 생물에 의해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지금도 쉬지 않고 내뿜어지고 있는 캐캐한 짙은회색빛 연기며, 거리에 터질듯 달리는 자동차가 황산화물질을 배출하고 있고, 여기저기에 꽂혀있는 전원코드며,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 모든것들에 의해서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 중인것이다. 그로인해 북극의 얼음산이 녹아내려 자연재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지구의 뜨거워짐으로 인해 지반이 뒤틀려 쓰나미같은 재해로 인해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가이아의 복수'이 책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핵에 대한 이론에서도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의 정보를 알려준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핵의 안정성 부분에서는 암과의 연관성을 말하며 핵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자의 말을 전적으로 공감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알려준거 같아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양열을 이용한 에너지 개발이나 물을 이용하거나 최소량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친환경적인 대체에너지 개발은 정말 시급해 보인다. 지금껏 써온대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황산화물질과 광물질, 화력발전소나 공장들의 유연탄 사용으로 인한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환경오염이 크게 사회적 문제 아니,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알고는 있지만 특별한 강구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것 같아 심각한 숙제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저자가 경고하는 가이아의 복수는 점점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다가올지 사뭇 심각해 짐을 느낀다. 지금의 편한 생활 앞에는 더욱 불편함을 감수하고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라도 제임스 러브록의 경고에 귀기울여 병들지 않고 조금이라도 건강한 지구가 되기위해 노력해야 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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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계절상으로 보면 분명히 가을이다. 예전의 가을의 날씨는 분명 하늘의 구름한점없는 청명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한여름의 날씨었다. 정말 지구의 날씨가 더워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 지구온난화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우린 손 놓고 어쩔수 없지..라는 푸념만을 섞은체 아무 노력도 않할수 없지 않는가 여기에 행성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제임스러브록 박사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행성의사라는 용어가 생소할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행성의 상태를 진단하여 지금 이 행성의 얼마나 위험한지를 조사하는것이 직업인것이다.
그는 가이아 이론을 통하여 지금 지구의 상태를 진단한다. 가이아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의 이름이다. 지구를 이렇게 인격화 시킨 것 처럼 그는 이 행성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있다. 그래서 다른 개발도상국의 벌목행위나 우리나라의 간척사업들이 그나라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쇄적인 반응들로 지구의 충격을 주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지구는 인간의 손으로 뿌린 재앙의 씨앗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속도가 가히 엄청 빠르다. 얼마전 뉴스 보도에 나왔듯이.. 이미 북극의 빙하가 녹아 뱃길이 뚫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간다면 얼마 않있어 북극이 없어 진다고 한다.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적도지방에 있는 섬들이 물에 잠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북극 얼음에 갇혀있던 일산화 탄소의 방출로 지구의 온난화가 더욱 가속되는 것이다. 정말 이것의 문제는 비단 적도의 섬들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범 세계적인 문제인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속가능한 후퇴를 말하고 있다. 더이상 바이오 연료의 사용을 하지 말고 핵에너지의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이오 에너지를 얻는다는명목아래 산림을 파괴되고 있다. 이번 쓰촨성의 지진또한 댐건설의 여파라고 하지 않는가... 풍력 조력은 정말 생산능력은 정말로 미지수이고 그 것을 새우기위한 땅만 들어갈 뿐이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실로 그 힘이 어마어마 하였다. 폐기물 또한 화석연료의 200만분의1이라고 하니 더 없이 좋지 아니한가. 여기서 체르노빌의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체르노빌로인한 공포로 원자력을 주저하지만 실상은 다른것이었다. 정작 방사능이라 그외 해를 입은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분별한 프레온가스.. 특히 냉장고나 에어컨들으로 인하여 온실가스의 증가를 막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조금의 시간을 벌수 있을것이다. 어제 신문발표에 지구의 환경시계가 9시 33분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이제는 정말 세계가 머리와 힘을 모아 더 이상의 시계바늘이 올라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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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이 어떤 종류건 간에 지표면의 조건은 그들에 알맞게 능동적으로 유지, 관리된다는 이론이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하는 가이아 이론이다. 이는 당시에 과학계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엄밀히 말해 환경과 미래를 걱정하던 사람들-에게도 깜짝 놀랄 만한 독창적인 이론이었다. 일반적으로 생명체가 지구 상황에 맞게 진화했다는 게 주류 과학인데, 이를 정반대로 뒤엎은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구가 생물, 지표면 암석, 바다, 대기 전체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자기 조절 시스템을 이루며 진화한다고 보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제임스 러브록은 린 마굴리스와 함께 이 이론을 발표하며 꽤 설득력 있어 보이는 몇 가지 증거도 제시했다. 그중 몇 가지가 온 세계 위정자들이 주장하는 핵 에너지 방지에 대한 반례, 온실가스의 주범이라고 주장하던 이산화탄소의 필요성, 대기 중 먼지의 온실 방지 효과 등등이다.
자신을 '행성의사'로 부르는 저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지구와 생명체가 진정으로 잘 살 수 있는 법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지구의 멸망을 촉진시키는 잘못을 더이상은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기후 전문가들이 자기 조절 시스템의 한계를 보이는 지구가 한계점에 거의 도달했으며 향후 10만 년 쯤 뒤에는 겉잡을 수 없는 열병에 걸릴 것이며 생물체는 결국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지구, 가이아를 살릴, 아니 좀 더 질병화 되는 속도를 줄일 방법으로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가. 핵분열에너지를 꼽고 있다. 화학물질이나 방사능으로 인한 발암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을지 모르나 미약하다는 것이다.
지구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겪으며 진화해 왔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간빙기로, 각종 온실가스로 인해 열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화석연료 소비의 증가와 녹지공간의 훼손으로 인한 가열 상태를 줄이기 위해서는 규모가 작은 나라부터 이산화탄소를 자연적으로 소비할 대책을 마련할 것(역 온실효과 기대). 태양을 직접 전기로 변화시키는 방법의 개발, 수력발전의 증대, 파도와 조수(潮水 )를 이용한 에너지 개발 등이다.
하악, 허억, 케켁.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환경에 대해, 역 인본주의적 사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러브록이 제시하는 가이아 이론을 전부 이해하고,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인류의 거만한 태도가 자연의 심판을 자초할 것이라는 데는 인정하게 됐다고나 할까. 평소 무심코 작동하던 전기제품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지구의 위기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 더 나아가 나에게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정부의 대체에너지 및 환경 정책안 등을 관심 있게 살펴 보게 되었다.
늘,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게 했던 이론에 반해 가이아 이론이 주는 신선함, 그속에 담긴 가이아의 복수(?)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대안들을 찾아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또 하나, 평소 손사래를 치던 자연과학서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물론 약간의 인내심이 요구되긴 하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