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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국내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평론가다. 나는 가라타니 고진이 프레데릭 제임슨에 못 미치는 사상가라고 본다. 그런데 국내에선 제임슨보다 고진의 이론이 유행하고 있다. 뭔가 잘못되었다. 고진이 비록 '트랜스크리틱'이라는 마르크스와 칸트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자본-국민-국가의 구조로 이루어진 이론체계를 확립했지만 그래도 칸트, 마르크스, 프로이트 이론의 영리한 중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진이 제임슨보다 나은 유일한 점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일본 근대문학에 대한 평론이 읽을 만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2004년 출간된 [역사와 반복](비, 2008)은 역자 조영일의 말대로 두 가지 독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 텍스트를 매개삼아 도달하게 되는 ‘근대문학의 종언’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 텍스트를 매개삼아 세계자본주의의 이행 단계를 따라가는 방법이다.
<표>세계자본주의의 단계(12쪽)
역사는 반복강박성을 보인다. 역사의 주기성은 흔히들 60년과 120년을 거론한다. 60년 주기설은 세계자본주의에서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고 불리는 약 60년의 경기순환에서 비롯되었다.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계자본주의는 60년을 주기로 이행이 일어났다. 글로벌한 시장경제로의 이행이 일어난 1990년대와 후기자본주의의 이행이 일어난 1930년대. 1930년대와 제국주의로의 이행이 일어난 1870년대. 이제 우리는 2050년대가 되면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리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고진은 일본이 내셔널리즘에서 제국주의로 전환한 것은 청일전쟁(1894)을 기점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국민국가로서의 일본이 제국주의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 청일전쟁 때부터라는 말이다. 이때 이러한 전환에는 미학(불교와 예술)의 영향력과 지지가 있었다.
고진은 근대성의 정치경제적 재현시스템을 분석하기 위해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포착한 것은 불황-호황-공황-불황이라는 자본의 축적운동이 가진 반복강박성이고, [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이 포착한 것은 근대국가의 대의제라는 정치형태가 가진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불러일으킨 반복강박성이라고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론]이 근대경제학 비판이라면, [브뤼메르 18일]은 근대정치학 비판이다.
고진의 이론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대의제라는 정치적 표상시스템이 가진 위기가 1930년대 독일,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러시아의 레닌주의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고진은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을 프랑스 보나파르티슴의 한 형태로 해석한다. 여기서 파시즘은 '대항혁명'으로서 반자본주의, 반국가주의 성격을 지닌다. 고진이 대의민주주의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의제는 여전히 자본-네이션-국가 시스템의 한 구성요소이고 역사적으로 볼 때 '억압된 것의 귀환'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즉 의회제(대표제)의 문제는 1870년대 제국주의, 1930년대 파시즘, 1990년대 '역사의 종언'과 같은 운동과 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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