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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가야 정상인이 되고 남자가 되고 사람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군대를 거부하고,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고 부른다.
엠네스티 활동가 고은태님이 블로그에서도 설명했듯 여기서의 '양심'은 선하고 착한 마음이 아니다. 군대를 가면 나쁜 사람이고 가지 않는 그들이 착한 사람이란 의미가 아닌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따르고 지키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보다 소신에 의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가 더 맞는 말인듯 하다)
그래서 그들이 치뤄야하는 댓가는 너무나 혹독하다. 군대가는 이들보다 더 혹독한 감방에서 1년 6개월의 젊음을 바쳐야하고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거부당하고 바깥으로 밀려나곤 한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하는 고통을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감옥에 가기를 주저않는 이들이 해마다 백여명씩 줄지않고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그렇게나 지키고 싶어하는 자신의 신념은 무엇이길래 오늘도 차디찬 감방안에서, 사회의 모멸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군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당연하다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며 군대를 거부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의 댓가가 무엇인지 제발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란다.
그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전쟁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모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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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휴전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다만 무덤덤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 하지만 익숙함 뒤에는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전쟁을 향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남과 북의 군사 수치를 비교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며칠 만에 서울이 점령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한다. 최근에는 이전까지 병역을 거부한 자들의 대부분은 특정 종교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회는 그들을 이단아라 지칭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1년 말, 한 청년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들고 병역 거부에 나서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불교 신도인 그는 평화를 지향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직접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닐지라도 총을 드는 것 자체가 이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된다는 사실에 그는 괴로워했다. 이후로도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이유에서 병역을 거부했다. 현직 교사로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등등. 과거와 같은 단조로운 시각으로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어쩌면 다소 늦긴 했으나 지금이야말로 대체 복무에 대한 절실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할 시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제 시대를 통해 우리는 국가라는 하나의 기치 하에 순응하는 법에 눈을 떴다. 국가 지상주의. 목숨을 바쳐 천황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싸우자는 무시무시한 구호는, 형태가 조금 변형되긴 하였으나, 이 땅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우리의 제1 의 목표는 다름 아닌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렇기에 단 한 가지, ‘예’라는 대답만이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면 개개인은 어느 정도 희생되어도 좋다는 식의 견해가 만연하기도 했다. 지난 70-80년대가 끔찍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과거에 대한 향수도 더욱 짙어지는 것인지, 많은 이들이 개발 독재를 그리워한다. 군대의 폐해가 극심함에도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의견이 줄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 그렇지만 각자가 품은 평화를 향한 신념은 뚜렷하다 못해 아름다웠다. 모두가 평화를 원하는 하지만 실천하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는 이 땅에서 그들의 행동은 적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1년 6개월의 고독한 시간이 주어지고, 이후에는 사회의 냉랭한 시선이 그들의 가슴에 꽂힌다는 사실을 그들이라 하여 모를 리는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폭력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그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행동은 무모함이 아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차가운 감옥에서 평화를 향한 신념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다른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장난감 권총을 그토록 갖고파 했었던… 여전히 장난감 총은 남자 아이들에게 훌륭한(?) 장난감이겠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해진다.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그 순간부터, 비록 그 총이 장난감일지라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장난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 죽음이 너무도 쉬운 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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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스스로 써내려간 고백을 담고 있다. 이들 30명이 감옥에서 보낸 기간을 합치면 자그마치 37년, 1만3500시간. 책에는 이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하기 전, 재판받던 도중, 그리고 수감생활 와중의 복잡한 심경이 각자의 필치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진다.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또 실행하기까지의 고뇌도 묻어나온다. 병역거부자들의 편지와 함께, 책에는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해 온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글이 함께 실렸다. 두 지식인의 글을 통해 한국사회 징병제의 기원과 군사주의의 문제, 병역거부 운동의 의의 등을 짚어볼 수 있다. 지난 60여년간 한국에 1만여명의 병역거부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만나게 된다. 2007년 9월 국방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머지않아 병역거부가 흘러간 옛 역사가 된다면, 이 책에 실린 “내부 망명자의 길을 택한 인간의 작은 목소리(홍세화)”는 더더욱 그 역사를 증언할 귀중한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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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대한민국에서 말을 꺼내기가 가장 민감한 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즘처럼 맹목적인 매카시즘의 광품이 불고있는 사회 분위기를 보건데, 험난한 댓글들이 수두룩히 달리는 건 아닐까 미리 걱정이 되기도 한다. 20여년 전, 나도 군대라는 데를 갔다 왔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 생각없었다. 남들 다 가는 곳이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렸었다. 주로 '여호와의 증인들'이라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그때만 해도, 그런 사람들을 똘아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군대에 안 가면 감방에 가야 하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극단적이나 싶었다. 특히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도 거부하는 그들을 한국 보수 기독교회에서는 '이단'으로 불렀고 은연중의 나의 마음에도 그들을 '번외'로 여겼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편견으로 '병역 기피'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채 자랑스러운 군필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책이 있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전쟁없는 세상'과 한홍구, 박노자 공저로 되어 있는 책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읽은 것. 이책은 전쟁없는세상 소속의 병역거부자 30인이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재판을 받고, 감방에 들어가 쓴 편지와 일기 등의 글과 박노자, 한홍구 교수가 각각 한국의 병역법의 역사와 그에 병행하여 존재했던 병역거부의 역사에 대하여 쓴 글로 이뤄져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글은 전문적인 작가의 글이 아니고, 일관된 형식이 아니라 이미 쓰여졌던 글들을 모아놓아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들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특히 왠지 유별날 것만 같은 '병역거부자'들도 결국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그들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들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그들 인생에 불어닥칠 엄청난 불이익에 대하여 갈등하고 있었고, 자신으로 인해 부모와 형제들이 겪게 될 험난함 때문에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마음 약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우리와 다른게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켰다는 것이다.
2001년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 중 처음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의 글이다.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을, 입영을 거부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차디찬 감방에 보내 단죄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행위일까?
책에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징병제가 어떤 역사를 통해 만들어졌는지(1943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시작된 징병제는 당시 조선 지배층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했다고 한다), 그 역사만큼이나 긴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징병제가 시작되기도 전인 1939년 6월 29일 여호와의 증인 30여 명이 전쟁과 징병제를 거부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는 얼마나 신산스러운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여태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름 진보적인 사고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기에 그 부끄러움은 더 컸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자들의 존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생각이 다르니 국가 전복을 도모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당을 해체시키는 나라다. 이미 병영국가의 대중화와 내면화가 공고해져 돌이킬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갑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보자면, 군대를 필한 사람들은 '갑'이고 소수 병역거부자들은 '을'일 수밖에 없다. 어디 감히! 전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분단 국가에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해!!
이제 조금 차분하게 우리의 병역 문제를 돌아볼 때가 왔다. 우리의 군대는 지금 정상적인가? 나라를 지킨다기 보다는 '간부'를 지키고 제대한다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가? 총을 들기보다는 삽을 더 많이 들지 않았던가? 징병제라는 것이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국민통제와 훈육의 기본수단으로 악용되어 왔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 곳곳에 병영문화가 침투해 있지 않은가. 또한, 반공과 군사주의를 축으로 하는 국가주의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신념이 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깊게 내면화된 국가주의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대체복무제도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효율적 국가 인적자원의 활용면에서라도 언젠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평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주목하는 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요구하는 '대체복무제도'가 아니라 그들이 그런 요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관점이다. '평화를 원하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이제 낡은 역사적 명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소유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전쟁을 치루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장 평화로운 나라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박사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에서 '전쟁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라고 역설했다. 나는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 그동안 존재했던 1만여 명 이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평화를 위한 선택'에 박수와 연대의 지지를 보내려고 한다. 그것만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설 수 있으며 더 많은 생명들과 함께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평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어렵고 무서운 일이다. 어쩌면 통일보다 더 원대한 일일 수도 있다. 순박하고 단순한 생각이라 욕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무한 경제성장만이 지상 과제인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자고 총대신 손을 내미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어렵다고 모든 사람이 포기했으면 지금 우리 인류가 그나마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자. 우리 모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처지에서 실천해나가면 그걸로 충분한 시작이 될 것이다. 평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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