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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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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누구일까?  라우라와 훌리오(부부) 그리고 마누엘(라우라의 사랑이며 정부). 그들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 마치 거울 같은 양쪽 집에서 살고, 친한 이웃처럼 지낸다. 하지만, 마누엘은 포도주, 훌리오는 진토닉이다. 어느 날, 당신은 이웃의 사고에 ‘사고 소식은 날카로운 메스가 살을 가르듯 깨끗하게 토요일 오후를 양분했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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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누구일까?

 라우라와 훌리오(부부) 그리고 마누엘(라우라의 사랑이며 정부). 그들은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 마치 거울 같은 양쪽 집에서 살고, 친한 이웃처럼 지낸다. 하지만, 마누엘은 포도주, 훌리오는 진토닉이다. 어느 날, 당신은 이웃의 사고에 ‘사고 소식은 날카로운 메스가 살을 가르듯 깨끗하게 토요일 오후를 양분했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이 부부의 사이, ‘치료법 없는 질병은 더는 이야기하지 않듯 더 이상 그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또 임신한 라우라는 ‘세상일보다는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듯 했다.’ 우리는 각자이다. 중개자가 없이 서로 말을 하고 침묵과 불평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마누엘과의 대화도 ‘건조한 어투로 현실적인 정보를 주고받거나 매일 새롭게 처리할 일들이 화제에 보태질 뿐이었다. 현실적 문제를 핑계 삼아 감정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저녁식사의 전반부 대화는 마치 항구를 찾아 표류하는 배처럼 이런 저런 주제들을 오가며 이어졌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가! 아니면 우리의 삶에 좀더 사랑할 수 있을지, 아니면 우리에게 일상만이 남았는지. 의문이 이어진다.

 

마누엘은 사고로 코마가 된다. 라우라의 메시지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덮는 심정으로 등뒤로 문을 닫았다. 마누엘의 집을 열쇠를 얻은 훌리오, 공동납골당으로 유해를 옮기려고 낡은 묘를 비우듯 섬뜩한 기분으로 옷장을 비웠다. 하지만 그는 몸의 존재를 부인하는 옷과, 반대로 몸의 존재의 증거가 되는 옷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상을 일들, 옷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는 점점 마누엘화 되어간다. 그의 숨겨진 욕망이었나, 마누엘의 것으로 하나씩 하나 씩 그를 채워나간다. 내 몸은 어둡고 음습한 텅 빈 집이었을 뿐이다. 난 당신의 기호와 같은 수준에 있고 싶어.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끔찍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야. 자기세계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이 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누구인지. 누가 실제 사람이고 누가 그 반사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분리된 자아, 나는 어느 쪽에 있는가? 아니 나의 존재는. 거울은 존재를 나누어 주지만, 구분할 수 있을까? 나의 다른 모습은 내가 아닌가!

 

마누엘의 컴퓨터 그리고 이메일, 마누엘의 아기라니. 오 신이시여. 우리는 단지 우리가 아는 사실만 인지하는 법이지, 비록 소리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위해 울렸지만 이쪽 세상에 있는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집만이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방황한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는 일반적인 관습에 반하여, 우리가 함께 있을 때에만 실제적인 존재가 되는 거야. 몸 안의 골수에서 뻗치는 열의 엄습을 느꼈다. 관절과 몸의 약한 부위를 뚫고 열은 뜨겁게 치솟았다. 사흘 밤낮 동안 그의 육체는 벗어 던진 옷처럼 이불 안에서 쉬고 있었지만, 그의 기억은 인생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동했고, 기차 안에서 풍경을 바라보듯 무심하게 자신의 삶을 관찰하기도 했다. 감각은 육체가 단단한 고체라는 환상 하지만, 원자의 80%는 순전히 텅 비어 있지. 자신이 가진 그 작은 영혼도 옷에서 떨어져나간 단추처럼 자신의 존재 어느 구석에선가 잃어버리고 없었다. 그는 어울리지 않는 영화 안에,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삶 속에 들어온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의 삶은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거짓이었고, 존재하지 않은 존재인가.

 

그는 받아들인다. 아니 그가 마누엘이 되었다. 우리 세 사람 모두의 아이이기도 해, 두 개의 삶을 사는데, 둘 중 더 중요한 삶은 거짓으로 사는 삶이었다. 인류의 삶은 결국 거짓말 위에 세워진 셈이야. 모든 건 창의적인 허구 위에 세워진 것이다. 전설은 세대에서 세대를 거치면서 수세기 동안 가족의 서사로 전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거울을 파는 셈이군. 우리는 양심이란 또 다른 우리가 아닌 내적 모순과 비교를 통한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이면서도 나 이지를 못하는 사람들.

 

스페인 소설, 이해하기 힘든 내용 아니 이해하기 싫은 현실, 나는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버렸나. 하지만, 많은 표현들이 멋지다. 그 비유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림 같은 표현들이 마음을 더 암울하게 만든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진실이란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생존의 이유는 무얼까? 속고 속이는 인간의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가? 작가는 분리(분열)된 자아를 표현한 것인가? 아 언젠가 이런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림처럼 쭉 펼쳐진 사실들을.

 



YES마니아 : 골드 p*******t 2011.04.13.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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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데 무관심한 소설이 주는 감동
"감동을 주는 데 무관심한 소설이 주는 감동" 내용보기
언뜻 보면 연관이 없기도 하고 연관이 있기도 한 여러 이야기가 한데 모여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쌓아올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편집이란 말이 아니다. 분명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장편소설인데, 길지 않은 분량에 여러 이야기를 녹이고 있고, 여러 상념과 상상을 전개하고 있어서 줄거리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들 이야기들이 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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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연관이 없기도 하고 연관이 있기도 한 여러 이야기가 한데 모여서 아름다운 건축물을 쌓아올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편집이란 말이 아니다. 분명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장편소설인데, 길지 않은 분량에 여러 이야기를 녹이고 있고, 여러 상념과 상상을 전개하고 있어서 줄거리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들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자세히 귀기울여 보면 이 모든 이야기, 상념, 상상은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마치 아름다운 선율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서 들려주는 변주곡처럼. 그래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곡이거나.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절대적인 재미일 것이다.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상상을 듣는 것.

옷에 관한 상상, 거울을 사이에 둔 에로틱한 상상, 그림자에 관한 상상, 가짜에 관한 상상.... 사물에 대한 오랜 관찰과 사고 속에서 나올 법한 기발한 상상들이다. 예를 들어, 옷을 피부나 내장과 같이 인간 육신의 일부로 다루는 이야기, 여자 손님의 옷을 다이에 펼쳐두고 거기에 사정을 한 세탁소 주인 이야기, 인간 육체의 70%는 물이라고 하여 물이 넘치지 않게 조심조심 균형을 잡고 걷는 사람들.

 

이러한 곁가지 이야기들이 너무 매혹적이라 이것부터 급히 썼지만, 사실 이 소설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훌리오 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에는 마누엘이라는 독신남이 살고 있다. 부부와 이 남자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데, 훌리오는 모든 면에서 자기와 정 반대인 마누엘을 은근히 부러워하고 있다. 마누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코마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고, 훌리오는 아내에게서 별거를 선고받고 집을 나오게 된다. 딱히 갈데가 없어서 훌리오는 비어 있는 마누엘의 아파트에 잠입하게 되고, 유령처럼 이 집에서 살게 되면서 마누엘의 화장품이나 옷, 신발을 따라 신으면서 점차 자신을 잃고 평소에 부러워했던 마누엘을 그대로 빼닮게 된다. '마누엘 되기'는 소설 중반을 넘어서면서 뜻밖의 반전을 겪고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나도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 니콜 키드먼처럼 지적인 아름다움을 지녔으면 좋겠고, 손석희처럼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대화를 예리하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을 지녔으면 좋겠고, 드라마 <행복합니다>의 서윤처럼 자기가 생각한 대로 거침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주변의 누구처럼 옷 입은 폼새가 여리여리했으면 좋겠고, 또 누구처럼 얼굴에 늘 부드러운 미소가 박혀 있는 인상이면 좋겠고, 기타를 잘 치면 좋겠고.... 나의 '되고 싶다' 목록은 끝이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겠는가.

 

평소에 '내가 누구일까' '내가 원하는 게 무얼까'를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반가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웃집 남자를 몹시 부러워하여 그가 되었다가 다시 자신으로 돌아온 이 남자의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선망과 갈등을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들과 비유로, 한 마디로 예술적으로 한 차원 끌어올려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궁지에 몰린 콩쥐에게 두꺼비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남자 훌리오의 이런 일상적 갈등은 작가가 여기저기 풀어놓은 소설적 장치들의 환상적인 도움을 받아 아름다운 행위로 다시 태어난다. 인간을 그 초라한 일상에서 끌어내어 새삼 그의 소망과 행위가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본연의 임무가 아닌가. 이웃집 남자 흉내나 내면서 만족하던 훌리오가 마지막에 용서와 포용이라는 정말로 아름다운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과, 이 소설의 아름다운 상징적 전개와는 무관하지 않다.

 

책을 읽으며서 지루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나의 지루함은 스토리 전개의 속도나 사건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는데, 이 책은 음미하고 넘어가야 할 작가의 정교한 장치가 많아서 바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몹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정서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j******s 2008.06.1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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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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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함께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과학실험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서로의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노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산 부부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거의 99% 이상이 일치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성격끼리 잘 맞는다라는 말은 어째 틀린 말 같다.   멋진 소설 속 어느 커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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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함께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과학실험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서로의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노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산 부부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거의 99% 이상이 일치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성격끼리 잘 맞는다라는 말은 어째 틀린 말 같다.

 

멋진 소설 속 어느 커플이 있다. 라우라와 훌리오라는 부부다.

이들은 옆집에 사는 마누엘이라는 남자와 셋이 친해지게 된다. 마누엘은 이 커플에게 한 가지 명제를 던진다.

"두 사람 꼭 남매 같아요."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지만 사실 훌리오(남편)는 자신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남성인 마누엘을 싫어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마누엘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게 되고, 훌리오는 아내에게 버림 받고 우연히 바로 옆집인 마누엘의 집에 들어가 그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겉으로 화려하고 예술가를 가장한 무직인 그의 모습에 못마땅해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

그의 컴퓨터를 쓰면서 사실 자신의 부인인 라우라와 마누엘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부인은 이메일로 남편이 아닌 마누엘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옆집에서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그의 옷을 입고 옆에서 널어놓은 자신의 부인의 속옷을 훔치기도 하며 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자아에 대해 확실히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인의 매력도, 그녀가 왜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마누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알게 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 그는 자신에게 없던 부분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없었던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감도 갖는다.

 

여러가지 일이 있은 후,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시 돌아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대단한 이상도 필요하지만 또한 명확하고 분명하며 현실적인 일들도 필요한 법이라며.

 

이 소설은 스토리 구성이나 사건들이 상징적인 요소들로 정확하게 구조를 이루는 흥미로운 스페인소설이다.

플라네타 상, 나달 상, 프리마벨라 상 등 스페인어권의 주요문학상을 수상한 후한 호세 미야스의 소설이기도 하다.

내가 남미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정확한 현실의 상징을 그대로 작품 속으로 가져온다.

 

가령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자신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주변의 타인에게서 자신과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찾는 것이다. 그럼 좀더 객관적인 시점으로 자신의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대칭적 공간에서의 대칭적 자아의 정체성문제를 불륜이라는 에로틱한 관계로 풀어나간다.

 

간만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하나 건졌다.

자신있게 강추한다.

 

 

 

s*******2 2008.06.0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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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자신을 무엇으로 진정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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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남자를 보라. 텅 빈 공간에 현실 같은 인공세트장을 짓는 남자, 옆집 사내를 질투하고 열망하는 남자,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남자, 그림자를 훔친 남자, 그의 이름은 훌리오. 적당히 소심하고 조금 우스꽝스러우며 미치도록 가련한! 우리는 모두 이 남자를 닮았다. 정이현(소설가) -책 뒤표지에   표지에 그림자를 훔쳐 달아나는 남자의 본래 모습이 거꾸로 보인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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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남자를 보라. 텅 빈 공간에 현실 같은 인공세트장을 짓는 남자, 옆집 사내를 질투하고 열망하는 남자,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하는 남자, 그림자를 훔친 남자, 그의 이름은 훌리오. 적당히 소심하고 조금 우스꽝스러우며 미치도록 가련한! 우리는 모두 이 남자를 닮았다. 정이현(소설가) -책 뒤표지에

 

표지에 그림자를 훔쳐 달아나는 남자의 본래 모습이 거꾸로 보인다. 그림자를 훔쳤을 때는 괜찮아 보이는데 그림자를 훔치지 않았을 때는 여자가 울고 있고 남자 역시 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휑한 눈만 또렷하게 보인다. 눈만 보고도 이 남자의 표정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남자! 무표정의 소유자이다. 왠지 공허한 이 느낌은 <그림자를 훔친 남자> 처음 한두 장을 넘기기 전부터 나타난다.

 

라우라와 훌리오 부부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전화벨이 울리고 아내 라우라가 마누엘의 사고 소식을 듣고 정신을 못 차린다. 마누엘의 사고 소식은 이들 부부에게 엄청난 공허 그 자체.

"문제는 그 인물이 빠져버리면 그들 부부는 이제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9쪽)

"방금 사고를 당한 마누엘이 이들 부부네 옆집으로 이사를 온 것은 이 년 전이었다. 비록 세 사람이 동갑이긴 하지만 부부는 자신들이 그의 후견인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다. 세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것은 훌리오가 자기 집 벽이 축축해진 것을 발견하고 옆집 문을 노크한 날이었다." (9-10쪽)

벌써부터 조금 짐작되는 점도 있지만 - 아내가 다른 남자의 죽음에 그토록 충격을 받는다는 건? 남편 훌리오가 그림자를 훔치지 않고 배기겠는가! 물론 누가 먼저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대한 해석은 순환논법에 버금가는 것이고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 확실히 초반부터 독자를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자주 접하지 못한 스페인어권 작가의 미묘한 문학 세계라 할 수 있고, 좀 더 우리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산업시대 이후에 이어진 가족 해체와 그로 인한 소외, 공허, 허무와 같은 소모적인 감정의 만연이다. 워낙 악성 종양처럼 널리 퍼져 있긴 하지만 이것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IMF 초창기 시절, 우리집 막내가 식구들에게 준 스트레스는 참으로 막강했다. 서비스직 특성상 아침엔 조금 늦게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고객 응대에 바쁜 아이였는데 집에만 오면 사람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무관심을 가장한 거드름을 그렇게 피워댔다. 그걸 알면 다행인데 잘 모르는지 한 번은 자기보다 약간 직급이 높은 직원이 자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더라면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런 식이다. 대충 들어보니까 식구들이 겪는 것과 비슷했다.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네가 조금 관심 가지고 대응해 주고 그래"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이러한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관심과 거드름, 소외, 공허, 허무를 직접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 더 쉽게 빠져들 수 있고 공포 소설이 아님에도 기괴한 느낌까지 들 수 있다. 

 

영화 세트 제작자인 훌리오와 물리치료사인 라우라 부부의 엄청난 공허와 쓰여진 작품은 없지만 아무튼 작가였던 이웃집 남자. 그리고 나머지...

 

   주택 개조 사업을 하는 훌리오의 아버지와 훌리오의 새엄마 루이사,

   루이사의 딸이자 훌리오와는 배다른 동생 아만다, 아만다는 아이와 혼자 살고 있다.

   훌리오와 라우라 부부가 살고 있는 안뜰이 있는 공간, 옆집과 붙어 있는 창문이 없는 욕실...등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들 부부의 삶을 부연해 주고 음산함을 더하는 보조 역할과 같았다. 어떻게 보면 억지 설정 같기도 한 부분이 참 많다. 진짜와 가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남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남과 여, 잎담배를 피워대는 어른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 거울 속으로, 이도 저도 아닌 코마 상태[[coma, 뇌사 상태], 인터넷 메일로 주고받는 사랑의 언어 등 어쩐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평론가들이 이러쿵저러쿵 할 만한 이야기는 엄청 많을 것 같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대칭 구조, 이분법, 진짜와 가짜 같은 사람을 가지고 놀며 속이는 듯한 느낌, 일부 서양 사람들이 지니는 거북한 느낌이 들 정도의 개방적인 태도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 소설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한 가지에 진득하니 만족하지 못하고 정반대의 다른 것을 욕망하는 시선, 진짜와 가짜를 의심하게 만드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삶, 어른들의 잘못인 입양 · 이혼 · 외도 때문에 정체성의 미로를 헤매는 아이들, 자유를 추구한다면서 무분별하게 훌러덩 난처한 모습들, 진정한 줏대가 뭔지도 모르고 물렁한(우유부단한) 이 시대의 남과 여... '흔들리는 자신을 무엇으로 진정시킬 것인가' 이 소설은 묻고 있다.

 

훌리오와 라우라는 함께 산다.

너와 나는 함께 산다. 

 


 

t*****0 2008.07.2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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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꿈꾸는 남자이야기!
"그림자를 꿈꾸는 남자이야기!" 내용보기
두 사람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당신들은 소설적인 인물이거든.  - P. 18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누구인가? 영화 세트 제작자 훌리오, 아내 라우라, 아이없이 애정도 없이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그들에게 찾아온 반가운 손님 마누엘. 자신들의 옆집으로 이사온 마누엘, 그로 인해 어둡고 냉랭하기만 하던 훌리오의 집에는 활기 넘치는 작은 변화가 나타난다. 삼인용 소파를 보고 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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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당신들은 소설적인 인물이거든.  - P. 18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누구인가? 영화 세트 제작자 훌리오, 아내 라우라, 아이없이

애정도 없이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그들에게 찾아온 반가운 손님 마누엘. 자신들의

옆집으로 이사온 마누엘, 그로 인해 어둡고 냉랭하기만 하던 훌리오의 집에는 활기

넘치는 작은 변화가 나타난다. 삼인용 소파를 보고 비웃음을 던지던 마누엘, 그도

그럴것이 마누엘과 훌리오는 옷입는 스타일부터 가정사, 그리고 직업까지도 너무

다른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마누엘에 대해서 조금의 부러움과 동경의 마음을

갖게되는 훌리오. 그러던 마누엘이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은 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이후 라우라의 임신과 별거, 그리고 거울을 보듯 대칭

적인 구조를 지니는 마누엘의 집으로 라우라 몰래 짐을 옮긴 훌리오. 그곳에서 그가

동경하던 마누엘의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라우라를 지켜보고 새로운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 책을 만나기전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거울 밖으로 나온 한 남자의 기묘한

이야기라는 책에 대한 소개를 듣고 미스터리가 가미된 판타지적 분위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는 조금은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에 집중된 작품이라

생각된다. 주인공의 직업에 따라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듯한 소설내 또다른 소설들의

등장과 그 내용이 주인공의 상황과 매치되는 여러가지 판타지적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자신의 이복 동생의 딸인 훌리아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또 다른 소설의 재미를 선사

하고 복선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파트의 대칭적 구조 속에서 자신이 동경하고 열등감

을 느끼던 마누엘의 삶속에 들어간 훌리오를 거울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거울 밖으로
나왔다고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조금은 독특한 설정이라기 보다 그저 평범함을 돋보이게

포장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부부간의 관계 문제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온

불청객, 그 불청객의 사고, 그 사고로 알게되는 또 다른 비밀, 그리고 다시 부부의

문제... 거울을 들락날락하는 주인공이라든지, 대칭적구조, 액자소설이라는 여러가지

수식어구보다는 그냥 부부들의 문제를 다루고 가족관계,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속에서 작가가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거울속에 나와 거울 밖에

서있는 나, 가족과 사랑......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가장 크게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이가 없고 원만치 못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훌리오. 마누엘의 등장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어쩌면

근친상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드는 훌리오. 비밀을 알게된 훌리오, 하지만 다시 라우라의 부름에 손을 다시

잡아주는 그의 모습. 마누엘의 모습을 훔쳐낸 훌리오. 그림자를 훔친 남자!!

 

하지만 결국 그 그림자는 마누엘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는 존재이기에.. 마누엘에게 열등감과

함께 동경의 시선을 가졌던 훌리오, 마누엘은 단지 그가 동경하던 자신의 그림자

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훌리오는 정당하게 자신이 찾고있던 그 모습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취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가족간의 관계, 정체성의 문제, 그리고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한 부부와 그들의 곁을 찾아온 한남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일깨우고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거울속에  '나'가 진짜 나인지? 거울밖에 서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직도 물음표(?)

는 느낌표(!)로 변하지 않았다. 일상적 이야기들속에서 특별한 구조와 인식을 통해

독특함을 느끼게해준 스페인작가의 이 작품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일 작가들의

소설과는 차별되는 독특함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 된것 같다.

e****e 2008.07.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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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그 한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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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한 이야기일지언정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번민과 갈등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자신을 살피면 이내 긍정할 수밖에 없다. 잰걸음과 주춤거림의 발걸음이 찍힌 땅바닥에선 제각각의 생각 덩어리들이 웅변조로 아우성치고 있다. 판단의 무서움, 그것은 절대적이라는 측면 때문에 적극적인 시냅스의 운동을 요구하곤 한다. 그 상황, 그 당시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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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한 이야기일지언정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수많은 번민과 갈등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자신을 살피면 이내 긍정할 수밖에 없다. 잰걸음과 주춤거림의 발걸음이 찍힌 땅바닥에선 제각각의 생각 덩어리들이 웅변조로 아우성치고 있다. 판단의 무서움, 그것은 절대적이라는 측면 때문에 적극적인 시냅스의 운동을 요구하곤 한다. 그 상황, 그 당시엔 분명히 그렇다.

 

통속적인 스토리라인인 듯 하지만 인물들의 내러티브와 사유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 일상에서 비롯된 위기의 사건이 소소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서술되어 있다. 그 속에서 질서와 혼돈, 정체와 역동, 관습과 자유 사이를 빛과 그림자의 구분 없이 넘나든다. 작가의 감각과 관념으로 주춧돌을 쌓아 올린 단단한 벽을 만지는 느낌이다.  인간의 정체성,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공간,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대칭적 구조 같은 심리적 묘사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액자들은 더 빛이 난다. 노파가 나오는 영화의 시나리오는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지 않지만 선명한 그림을 그려내며 호흡감을 불어 넣는다. 그림자에 관한 훌리오의 세 가지 이야기는 자체만으로 특별하다. 각각의 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듯 하며 서로 힘을 불어 넣는다. 아예 자신의 삶을 직유하는 한편 다른 이의 존재를 은유하며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주변 캐릭터가 다소 밋밋해서 갈등의 그림자를 좀더 짙고 어둡게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지만, 빛의 조도 자체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다. 죽은 자의 레퀴엠은 전설이 되고, 남은 이들은 여전히 참과 거짓 사이에서 거울을 바라보듯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w******1 2009.03.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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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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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심리적 그림자'를 소설로 설파한 책이다. 감추고 싶은 것, 시치미를 잡아 떼고 싶은 것을 그림자라고 여기면 된다. 그런 어두운 면은 누구에게나 있다. 삶 속에서 그러한 그림자가 없는 곳은 없다. 잘 읽혀지지 않아 머리가 아픈 융의 이론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 놓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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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심리적 그림자'를

소설로 설파한 책이다.

감추고 싶은 것, 시치미를 잡아 떼고 싶은 것을

그림자라고 여기면 된다.

그런 어두운 면은 누구에게나 있다.

삶 속에서 그러한 그림자가 없는 곳은 없다.

잘 읽혀지지 않아 머리가 아픈 융의 이론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 놓은 책이다. ^!^

s****a 2010.05.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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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림자인생을 살고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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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주거 생활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단위를 꼽으라면 아파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대 생활에 맞게 편리하고 손쉬운 접근법에 의해 설계된 아파트. 그 특징 중 하나는 대칭성이다. 거울에 비친 듯 각자를 닮은 마주보는 두 집. 문에서 들어가서 작은 방, 정면으로 화장실, 한 쪽은 우측으로, 한 쪽은 좌측으로 안방, 그 반대편으로 부엌. 치밀하고 완벽한 거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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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주거 생활의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단위를 꼽으라면 아파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대 생활에 맞게 편리하고 손쉬운 접근법에 의해 설계된 아파트. 그 특징 중 하나는 대칭성이다. 거울에 비친 듯 각자를 닮은 마주보는 두 집. 문에서 들어가서 작은 방, 정면으로 화장실, 한 쪽은 우측으로, 한 쪽은 좌측으로 안방, 그 반대편으로 부엌. 치밀하고 완벽한 거울상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다는 건가. 자신은 온전히 자신으로 존재하는가.

 

 유쾌하지 않은 질문을 내던지는 작가는 스페인권의 유망한 작가 후안 호세 미야스다. 그렇다. 이 책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자신을 버리고, 부러워하던 이웃집 남자로 분해 사는 한 남자 훌리오의 이야기다. 

 

 아이가 없는 부부 사이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이웃집 남자 마누엘이 어느 날 사고를 당한다. 훌리오는 아내 라우라로부터 갑작스런 이혼 통보를 받고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난다. 갈 곳 없는 이 남자, 이제 빈 집이 된 이웃집으로 스며들어간다. 밝혀지는 사실들은 가히 웃으며 읽을 내용은 아니지만 이야기는 묘하게 웃음을 자아낸다. 좀 더 솔직하자면 작가가 그려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다소 웃기고, 별로 슬퍼 보이거나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도 덤덤히 시간을 보내는 훌리오는 무력한 현대인을 닮았다. 마누엘의 그림자를 훔쳤지만 대단해 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하시시(담배)조차 제대로 못 피는 가련한 중생이여. 그는 마누엘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있어서도 그림자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모른다.

 

 작가는 상당히 치밀하다. 단순히 큰 이야기 덩어리에서만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몇 개의 복선 -훌리오가 조카 훌리아에게 해 주는 그림자나라 이야기, 훌리오와 마누엘의 실체없음을 다루는 직업, 훌리오와 마누엘 집의 대칭성- 등을 통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주제의식을 주입시킨다.

 

 이야기는 '나는 존재하는 그대로의 내가 맞는가?'로 귀결된다. 얼마간의 시간동안 자신이 아닌 이웃집 남자로 살았던 훌리오. 그 때의 그는 훌리오 자신이였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마누엘의 코롱을 뿌리고. 주거지에는 병원에 있어야 할 마누엘의 향이 감지된다. "너 같지 않아"라는 말을 들으며 마누엘의 옷을 입고 다닌다. 그 절정은 아내에게 보내는 마누엘의 마지막 이메일을 통해 보다 극명해진다. 타인으로 분하는 그는 그 자신이 아닌 마누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성형수술로 비슷해지는 외모를 갖고 비슷한 집에서, 같은 상품을 사용하며 점점 비슷해지는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경각심을 느끼게 해줄 책이다. 문득 위아랫집 혹은 앞집에서 나와 똑같은 방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따각거리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난 달라 라고 외치고 싶지만 비슷해져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에 심심한 위로의 말을.

 

 

 

 

 

 

YES마니아 : 골드 z*****x 2008.07.0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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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스페인 영화를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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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와 훌리오. 그리고 마누엘- 이들의 미묘한 세 관계가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 듯한 <그림자를 훔친 남자>. 현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훌리오와 마누엘을 생각하면 왠지 환상적이기도 하다. 특히 훌리오가 마누엘과 라우라가 주고받은 메일을 보게 되는 장면이 인상깊다. 아니, 그 장면 자체보다- 그것을 보고 나서의 훌리오의 반응과 심경이 흥미로웠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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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와 훌리오. 그리고 마누엘-

이들의 미묘한 세 관계가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 듯한 <그림자를 훔친 남자>.

현실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훌리오와 마누엘을 생각하면 왠지 환상적이기도 하다.

특히 훌리오가 마누엘과 라우라가 주고받은 메일을 보게 되는 장면이 인상깊다.

아니, 그 장면 자체보다- 그것을 보고 나서의 훌리오의 반응과 심경이 흥미로웠다.

 

이런 일이 실제로도 있을까?

아니, 훌리오와 마누엘같은 관계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많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띠지에 나와 있던대로, '남을 닮고 싶은 욕망' -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가장 은밀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 '남' 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혼합시켜 버리고 결국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남이 내가 되고 내가 남이 될 수 있는 경험.

멋졌다!!!

 

그리고 훌리오의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를 주고 싶다.

과연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같으면 다르게 행동했을 것 같기도 해서..)

이미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된 후에야, 무슨 상관이겠는가? 결국 네가 나인것을!!

j***e 2008.06.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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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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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훔치는 도둑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은밀하게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일들을 저지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처럼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되는 후안 호세 미야스의 소설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림자를 '훔친' 남자, 그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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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인가를 훔치는 도둑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어져 왔다. 은밀하게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 일들을 저지른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처럼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되는 후안 호세 미야스의 소설 『그림자를 훔친 남자』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림자를 '훔친' 남자, 그림자를 훔친다? 어떻게?

 

 그림자는 시각적으로 보이기에 일정한 형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대다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이 제목 또한 은유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림자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그것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어떤 보조적인 형태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그림자를 훔친 남자이자, 주인공인 훌리오는 옆집에 사는 매력적인 남자 마누엘의 정체성의 일부를 흡수하려고 했다.

 

 마누엘은 부부인 훌리오와 라우라가 사는 집 옆집에 살면서 그들과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던 독신 남성이다. 그는 작가이지만 창작한 작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창작하지 않은 작가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작가라며 그 자신의 고유한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훌리오와 라우라를 너무나 소설적인 인물들이라고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보다는 차라리 함께 사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면서. 훌리오는 그런 마누엘에 반감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어느 날 마누엘이 사고를 당했다. 식물인간이 된 마누엘의 집 키를 우연히 얻게 된 훌리오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조금씩 마누엘의 것들을 자기화한다.

 

 훌리오는 무채색의, 황무지, 고리타분한, 그리고 생업의, 이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반면에 마누엘은 이상적인, 강렬한, 색채의, 추상적인 그러나 허상이라는 단어가 가깝다. 훌리오에 비친 마누엘적인 것들은 자신에게 없는 이상적인 특질로 그려지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차 나타나게 되는 마누엘의 실상 또한 연약하면서도 불완전한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마누엘을 점차 이상적으로 느끼게 된 훌리오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훌리오는 왜 마누엘의 특성을 지니고 싶어 했을까?

 

 소설 속 마누엘은 훌리오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인물, 즉 스스로는 무엇인가를 원할 수 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따라서 훌리오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누군가 자신의 것을 원하게 될 때 그것에 놀라워하며 비로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탐욕을 느낄 것이라고 단언한다. 훌리오도 그 평가에 대해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 속에서 흘리듯 자주 언급되는 훌리오의 과거사를 보았을 때, 아마도 훌리오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상실이 그의 내부에 결코 회복될 수 없는 결핍을 만들어 불완전한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보기엔 훌리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독립하여 그 분야에서 인정을 얻고 있었으며 따라서 아버지의 재정에 기대 자립적이지 못한 마누엘보다는 사회에 잘 적응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었다. 

 

 사실 훌리오가 가지고 있었던 그의 위치와 세계는 너무나 불안정했다. 훌리오도 그 사실에 대해 막연한 위기감은 지니고 있었지만 확실히 대처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마누엘이 사고로 쓰러진 이후 라우라가 자신의 집을 떠나고 이혼을 요구하며 그의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한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예감할 수 있는 여러 증조들이 있었지만 평소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부부들처럼 아이가 없었기에, 아이가 있었다면 다른 부부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느낄 뿐이었다.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 속에서 살면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돌아보지 않는, 그리고 남들과 다른 것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지만 그러는 동시에 남들과 다른 자신의 어떤 특성을 내보이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은 훌리오를 닮아 있었다. 그들은 모든 추상적이고도 심미적인 가치를 상실한 채 구체적인 실용과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들과 구별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 존재하지 않지만, 모두가 똑같은 획일적인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기에 개성에 목말라 있다. 그와 같은 맥락 안에서 훌리오 또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처럼 보였던 마누엘의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마누엘도 완전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마치 일종의 이미지와 같은 것들을 동경한 마누엘은 진정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훌리오는 마누엘의 컴퓨터를 통해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다시 자기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마누엘의 허상을 이용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 허상이 실재하는 훌리오 자신보다 더 잘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느낀다.

 

p. 219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마누엘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다. 모든 건 창의적인 허구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단순한 오해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의붓여동생의 딸을 돌보아주면서 훌리오가 이야기한 그림자 이야기들, 그리고 훌리오가 살아가는 세상 속 허구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흥미로운 제목, 하지만 그보다도 더 독특한 구성과 빠져들게 만드는 참신한 이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 모두를 무엇이다 뚜렷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모호함 가운데 뚜렷한 하나로 드러나지 않아 더 많은 것들을 함축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p****p 2014.08.21.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