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었다. "뼈마디가 녹아내릴 정도로" 불같은 사랑이었다. (일본어의 이런 표현은 정말 재미있다. 뼈가 녹는 사랑이라...) 그런데, 남자는 어째서인지 쫓기는 몸이 되고, 여자는 '세상 어디를 가든 너를 찾아내겠다'는 남자의 말 하나만을 믿고, 갓 태어난 딸을 안고 정처없는 방랑의 세월을 시작한다. 말하자면 사랑 때문에 살짝 미친 여자의 이야기다. 에쿠니 카오리의 팬만 아니었음 절대 읽지 않았을 설정이었다. 오로지 작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읽기 시작한 소설인데, 의외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여 즐겁게 보았다. 작가가 원래 그림책으로 데뷔를 한 사람이라서인지, <こうばしい 日々="">에서도 그렇고 이 소설에서도 그렇고 어린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엄마가 없는 밤마다 어린 소오코(草子)가 잠자리에 들면서 아끼는 인형들과 함께 교대로 자리를 바꿔가며 자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어릴 적 나의 기억이 떠올라 아련해지기도 했다. 유치원에 다니던 소오코가 점점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에 들어가고,,, 점차 성장해 가면서 조금씩 엄마 요오코(葉子)의 삶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 가는 과정들이 큰 사건이나 파장없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사실 주인공은 요오코이지만 이 소설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소오코다. 항상 정든 친구들과 이별하며 살아야하는 생활에 조금씩 지쳐간 소오코가 기숙사제의 사립고등학교를 선택하면서 모든 것이 변화한다. 방랑의 삶을 선택한 것은 엄마 요오코이지만, 그 방랑을 끝마치게 한 것은 딸 소오코인 것이다. '잎'이란 이름을 가진 엄마와 '풀'의 이름을 가진 딸. 다 읽은 후 스토리를 돌이켜 보면, 인물들의 이름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처음엔 이해 안 가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이지만, 다 읽고난 지금 마음 속에 뚜렷이 남아있는 건 역시 요오코란 인물이다. 산책과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담배와 초콜릿 없이는 살 수 없는, 가녀린 몸매에 늘 짧은 쇼트 머리의, 피아노를 치는 요오코. '내 보물은 세가지란다. 피아노. 그 사람. 그리고 너 소오코야.'하고 딸에게 말하는 소녀같은 엄마 요오코. 사랑하는 사람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사는, 어떻게 보면 참 고지식한 아줌마... 후기에서 작가는 "바다로 나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라는 아서 랜섬의 소설 제목을 들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이 소설을 쓴 시기는 작가가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이 때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쓴 에세이가 <いくつもの週末>인데, 이 에세이를 읽어보면 작가는 언제나 사랑이 지나쳐서 늘 남편과 싸운다.) 작가는 어느날 밤, 한잔의 칵테일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칵테일이었을지 궁금해진다. (황금색의 단 맛의 칵테일이라고 밝히고 있지만...것두 '쓰러질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계절감을 즐겨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였다. 마치 철 따라 예쁜 그림엽서를 받아보는 듯한 느낌이었다.いくつもの週末>こうばし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