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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저자간담회를 함께 진행하는 고명섭 기자는 물론이고 청중들은 저자가 자신의 책을 '촛불'에 연관시켜 말해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결국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대답이) 결정되는 것 같다"면서 "내게 대답을 요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라고 말할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이 원하는 '화끈한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고 대중의 요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저자의 말처럼 축제와 촛불의 무리한 관계맺기는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으나, <축제>는 분명 '촛불'에 시사하는 바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앙집권제'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저자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프랑스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 어떤 나라보다 중앙집권화가 강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제도나 영토가 통일됐다고 해서 '대사'가 성립될 수는 없으며, 결국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말해주는 사건은 '손수레의 날들'이다. 당시 혁명을 완수하고 축제를 기획하던 혁명정부는 축제에 사용할 공간을 만드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장인들의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축제가 개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은 집에서 농기구 등 물품을 실어 날라 며칠 만에 축제준비를 끝냈다. 시민들이 '손수레'로 축제의 장을 열었던 사건을 '손수레의 날들'이라고 한다. 조국대순례도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의 초창기는 '대공포 시대'였는데, 농민들이 성을 침략하거나 이웃 마을을 침략하는 등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혁명을 완수하고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위해 지방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축제준비단을 파견하는 이른바 '조국대순례'를 계기로 '대공포'는 눈녹듯 사라졌다. 지방의 시민들은 국민방위대 대표들을 뜨겁게 환영하고 소식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경계와 공포가 사라지며 '국민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머도 여기에 한몫 했다. 샹드마르스의 연맹제 때 '열기구'를 띄우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달에 착륙시켜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로운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권선언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가. 촛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면, 촛불을 든 사람들과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 간의 '국민감정'이 만들어졌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잘 가는 식당의 주인아저씨 말처럼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든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촛불광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통제된 공간(도로)를 한껏 전복하는 환희를 맛보는 등 축제의 특징을 여지없이 누렸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 국민의 승리는 아니었다. 단지 촛불을 든 사람들끼리 인사하며 자위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묶을 수 있는 '문화적 힘'을 창조해낼 수 있는가가 촛불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30석 규모의 공간이 빈칸없이 독자들로 채워졌고 더러는 계단에 앉아야 했다. 대학 교수의 저서답게 제자들이 적지 않은 눈치였는데, 2~3시간의 간담회 내내 열띤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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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이하여 덕수궁을 방문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였던 덕수궁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버리고야 말았다.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장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급기야 행사 진행 상황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소리를 통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아마도 일상적인 볼거리가 부족한 현대인의 색다른 것을 갈망하는 모습이 반영된 탓일 것이다. 많은 축제들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이 따로 있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축제라면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축제는 그러하지가 못하다. 정해진 틀이 있고 그 틀을 완벽하게 따르는, 정리된 형태의 축제를 사람들은 선호한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의 축제에 대해 다루었다. 그것도 프랑스에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던 시절의 축제에 대해서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혁명과 축제라니, 이 두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프랑스의 축제는 혁명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키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1789년부터 93년까지의 대혁명 시기 동안 파리에서 벌어진 일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제였다. 민중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을 지배하던 이들의 머리를 창 끝에 꽂은 후 행진했고 밤새 춤을 췄다. 지금껏 억눌려 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축제의 주인이 되어 즐기는 과정에서 혁명은 급진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축제는 과격했던 혁명을 누그러뜨리고 또 다른 안정을 추구하는 기제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플로레알 18일의 보고서>를 통해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적 통합을 성취하고 공화국을 단단하게 확립하기 위한 축제를 제시했으며, 다비드는 자연과 식물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나이별 집단 구분법을 사용함으로써 민중들이 지닌 혁명적 열망을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로 교체하려 들었다. 이러한 목적을 지닌 축제인 만큼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지배 계층에 의해 기획된 퍼포먼스가 그 빈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축제를 특정 사건의 기억과 기념을 통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문화적 기제라고 본다면 샤토비유 축제가 추구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문화적 기제라고 본다면 샤토비유 축제가 추구한 정체성은 공화주의였다. 축제를 통해서 샤토비유 군인에 대한 시민들의 환호와 열정을 공화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내려 하였고, 그러한 정치적 의지는 반군주제적인 담론이나 이미지, 그리고 직간접적인 공화주의 이미지들을 통해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샤토비유 축제는 공화주의적 정체성의 형성에 있어서나 공화주의적 상징이나 이미지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맹제가 ‘국민’ 자체를 탄생시킨 축제였다면 샤토비유 축제는 그 국민이 지향해야 할 정체성이 공화주의임을 보여준 축제였다고 할 것이다. (p 120) 오늘날의 축제가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던 과거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즐거움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그 내막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형태의 의도 관철이 불가능한 현대의 상황에서 축제는 지배층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서구편향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축제문화에 대해 난 잘 알지 못한다. 과거를 지우는 것을 발전/진보와 동일시 했기에 전통적인 형태의 축제가 많이 사라진 것도 아마 내가 우리나라의 축제에 대해 미천한 지식을 갖게 된 이유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비록 오늘날의 축제가 전통과 단절된 형태를 띠고 있을지라도, 축제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