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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터뷰]축제가 '촛불'에게 귀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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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의 정치사>(한길사)는 촛불정국에 편승해서 출간된 여타 책들과 달리 촛불에 대해 무척 건조한 문체로 온건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관점이 촛불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뗄 수도 없고 어울릴 수도 없는 딜레마, '혁명'과 '혁명정부'윤선자 교수의 <축제의 정치사>(이하 '축제')는 최근 촛불정국과 맞물려 서둘러 출간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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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의 정치사>(한길사)는 촛불정국에 편승해서 출간된 여타 책들과 달리 촛불에 대해 무척 건조한 문체로 온건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관점이 촛불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뗄 수도 없고 어울릴 수도 없는 딜레마, '혁명'과 '혁명정부'

윤선자 교수의 <축제의 정치사>(이하 '축제')는 최근 촛불정국과 맞물려 서둘러 출간되지 않았을까 하는 항간의 소문과 달리 윤 교수는 빨리 출간을 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가 시점을 맞추기 위해 한두달 기다리다가 결국 물대포가 발사되기 바로 전날(5월 30일) 시중에 배포됐다. 저자간담회는 8월 4일 저녁 7시 안국역 근처 북카페 '마고'에서 진행됐다. 매달 주요한 저자를 초대해 인문사회 중심의 심도 깊은 간담회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하니누리'가 자리를 마련했다. <축제>의 문체는 다소 건조하고 온건하다. 학술서적이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사정이 반영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촛불정국에 몰입했던 독자라면 촛불에 대한 과잉된 상징과 부푼 희망이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을 오랫동안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차갑게'와 '뜨겁게'라는 두 관점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축제의 정치사>는 촛불에 대해서 '차갑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성공한 혁명은 필연적으로 이질적인 두 개의 키워드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혁명'과 '혁명정부'다. '혁명'은 전복의 쾌감을 주는 축제 그 자체이지만, '혁명정부'는 혁명의 결과를 수습하는 마무리곡이다. 고대 중국으로 보면 옹철(雍徹 : '雍'은 천자가 제사를 끝낼 때 부르는 노래이며, '徹'은 제사를 마치고 제기를 거두는 의식으로 행사를 끝내는 음악을 말함)과 같다. 혁명의 성과물을 오롯이 시대정신에 담기기 위해서는 혁명정부에게 역할을 맡기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혁명정부가 혁명의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결국 혁명의 모든 취지와 근거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점이다. "모든 혁명은 배반이다"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며 87혁명의 실패(나는 실패라고 평가한다) 역시 '혁명정부의 배반'으로 생긴다.


▲ 한겨레 독자서비스 '하니누리'가 초대한 <축제의 정치사>의 저자 윤선자 교수(오른쪽)가 고명섭 한겨레 기자가 안국역 부근 북카페 '마고'에서 저자간담회를 진행했다.


책의 내용으로 이를 표현하면 저자는 축제를 비공식적 축제와 공식적 축제로 나눴다. 비공식적 축제느 프로이트의 개념을 빌려온 것인데, 일상에서 자기를 짓누르는 금기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환희, 기쁨의 순간 자체가 축제라는 해석이다. 난장, 이탈, 해방의 분출구는 축제의 주된 땔감이다. 바흐친은
비공식문화, 집단적 민중적 특성, 웃음과 패러디를 통해 지배계층의 권위와 전통을 파괴하는  카니발이야말로 '축제 중의 축제'라고 평가했다. 이 때의 카니발은 비공식적 축제로 분류된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비해 공식적 축제는 형식을 강조하며 절대적인 존재자를 상정한다.(혁명정부는 '이신론'의 전통을 따르므로 인격신은 아니다, 가톨릭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를 통합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영웅이나 지존을 끌어들이는 것이 공식적 축제 기획자들, 즉 '혁명정부'의 특징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대표하는 세력, 자코뱅 파(중앙집권)과 지롱드 파(지방분권)는 끊임없는 혈투와 대결로 혁명공간을 피로 물들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차이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샤토비오 축제와 시모노 축제는 모두 '자유'라는 대표 슬로건을 앞세웠지만 그 의미는 천양지차다. 샤토비오 축제의 '자유'는 "뭉치면 자유롭다"는 혁명적 개념으로 억압, 구체제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오겠다는 공화주의적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반해 시모노 축제가 내세우는 '자유'는 "법을 따르면 자유롭다"는 선언처럼 법, 헌법, 입헌군주제적인 자유를 앞세운다. 축제의 사소하 형식 역시 두 파로 갈린다. 서 있는 행위, 가슴까지 노출시키는 복장, 빨간 프리지아는 혁명적인 공화주의파를 상징하며, 앉아 있는 것, 정숙한 긴 드레스, 별 등은 온건한 혁명정부를 상징한다. 혁명정부는 국민축제를 기획하며 혁명의 기억들을 점점 없애버렸는데, 대표적인 예는 연맹제 때 구체제의 상징물인 왕실의 기물들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하자마자 비둘기 100마리를 창공에 날린 일이다. 불을 태운다는 것은 '폭력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날려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요즘 말로 하면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 윤선자 교수(고려대)는 '촛불'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축제의 정치사>가 '촛불'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책과 상관없는 정치적 성향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답을 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이다"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저자간담회를 함께 진행하는 고명섭 기자는 물론이고 청중들은 저자가 자신의 책을 '촛불'에 연관시켜 말해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결국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대답이) 결정되는 것 같다"면서 "내게 대답을 요청한다면 나는 '휴머니스트'라고 말할 것이다. 때문에 독자들이 원하는 '화끈한 이야기'를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고 대중의 요청을 완곡히 거절했다. 저자의 말처럼 축제와 촛불의 무리한 관계맺기는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으나, <축제>는 분명 '촛불'에 시사하는 바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앙집권제'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일부의 평가에 대해 저자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프랑스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그 어떤 나라보다 중앙집권화가 강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제도나 영토가 통일됐다고 해서 '대사'가 성립될 수는 없으며, 결국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말해주는 사건은 '손수레의 날들'이다. 당시 혁명을 완수하고 축제를 기획하던 혁명정부는 축제에 사용할 공간을 만드는 데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장인들의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축제가 개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은 집에서 농기구 등 물품을 실어 날라 며칠 만에 축제준비를 끝냈다. 시민들이 '손수레'로 축제의 장을 열었던 사건을 '손수레의 날들'이라고 한다.

조국대순례도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의 초창기는 '대공포 시대'였는데, 농민들이 성을 침략하거나 이웃 마을을 침략하는 등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혁명을 완수하고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위해 지방에서 중앙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축제준비단을 파견하는 이른바 '조국대순례'를 계기로 '대공포'는 눈녹듯 사라졌다. 지방의 시민들은 국민방위대 대표들을 뜨겁게 환영하고 소식을 물어보는 과정에서 경계와 공포가 사라지며 '국민감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유머도 여기에 한몫 했다. 샹드마르스의 연맹제 때 '열기구'를 띄우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달에 착륙시켜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자유로운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권선언을 읽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익살스러운가.

촛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면, 촛불을 든 사람들과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 간의 '국민감정'이 만들어졌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잘 가는 식당의 주인아저씨 말처럼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든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얼마나 반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촛불광장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통제된 공간(도로)를 한껏 전복하는 환희를 맛보는 등 축제의 특징을 여지없이 누렸다고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은 전 국민의 승리는 아니었다. 단지 촛불을 든 사람들끼리 인사하며 자위를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촛불을 들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묶을 수 있는 '문화적 힘'을 창조해낼 수 있는가가 촛불에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30석 규모의 공간이 빈칸없이 독자들로 채워졌고 더러는 계단에 앉아야 했다. 대학 교수의 저서답게 제자들이 적지 않은 눈치였는데, 2~3시간의 간담회 내내 열띤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d*****7 2008.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대를 말하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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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이하여 덕수궁을 방문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였던 덕수궁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버리고야 말았다.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장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급기야 행사 진행 상황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소리를 통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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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이하여 덕수궁을 방문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였던 덕수궁을 앞에 두고 우리는 다른 것에 관심이 쏠려 버리고야 말았다.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광장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급기야 행사 진행 상황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소리를 통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니, 아마도 일상적인 볼거리가 부족한 현대인의 색다른 것을 갈망하는 모습이 반영된 탓일 것이다.

많은 축제들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측이 따로 있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축제라면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이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축제는 그러하지가 못하다. 정해진 틀이 있고 그 틀을 완벽하게 따르는, 정리된 형태의 축제를 사람들은 선호한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의 축제에 대해 다루었다. 그것도 프랑스에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던 시절의 축제에 대해서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혁명과 축제라니, 이 두 단어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프랑스의 축제는 혁명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키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다. 1789년부터 93년까지의 대혁명 시기 동안 파리에서 벌어진 일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제였다. 민중들은 그때까지 자신들을 지배하던 이들의 머리를 창 끝에 꽂은 후 행진했고 밤새 춤을 췄다. 지금껏 억눌려 있던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축제의 주인이 되어 즐기는 과정에서 혁명은 급진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축제는 과격했던 혁명을 누그러뜨리고 또 다른 안정을 추구하는 기제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플로레알 18일의 보고서를 통해 로베스피에르는 국민적 통합을 성취하고 공화국을 단단하게 확립하기 위한 축제를 제시했으며, 다비드는 자연과 식물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나이별 집단 구분법을 사용함으로써 민중들이 지닌 혁명적 열망을 완만하고 점진적인 변화로 교체하려 들었다. 이러한 목적을 지닌 축제인 만큼 민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점점 더 줄어들게 되고, 지배 계층에 의해 기획된 퍼포먼스가 그 빈자리를 대체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축제를 특정 사건의 기억과 기념을 통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문화적 기제라고 본다면 샤토비유 축제가 추구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문화적 기제라고 본다면 샤토비유 축제가 추구한 정체성은 공화주의였다. 축제를 통해서 샤토비유 군인에 대한 시민들의 환호와 열정을 공화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내려 하였고, 그러한 정치적 의지는 반군주제적인 담론이나 이미지, 그리고 직간접적인 공화주의 이미지들을 통해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샤토비유 축제는 공화주의적 정체성의 형성에 있어서나 공화주의적 상징이나 이미지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맹제가 국민자체를 탄생시킨 축제였다면 샤토비유 축제는 그 국민이 지향해야 할 정체성이 공화주의임을 보여준 축제였다고 할 것이다. (p 120)

 

오늘날의 축제가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던 과거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즐거움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그 내막에 깔린 정치적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형태의 의도 관철이 불가능한 현대의 상황에서 축제는 지배층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서구편향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우리나라의 축제문화에 대해 난 잘 알지 못한다. 과거를 지우는 것을 발전/진보와 동일시 했기에 전통적인 형태의 축제가 많이 사라진 것도 아마 내가 우리나라의 축제에 대해 미천한 지식을 갖게 된 이유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비록 오늘날의 축제가 전통과 단절된 형태를 띠고 있을지라도, 축제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달의 사락 q*****2 2008.10.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