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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문화재청 / 눌와 / 243 문화재는 그 나라의 유무형 문화유산이자 정신이고 역사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이니만큼 많은 문화재가 있었지만 몇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가 파괴되었고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문화재가 망실되었다. 현재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문화재의 수는 약 15만점이 넘는데 이중에는 불법 약탈된 문화재는 물론 합법적으로 취득한 문화재도 포함된다. 약탈문화재는 될 수 있는한 돌려받아야 하지만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소재를 파악할수 없는 문화재나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문화재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양의 문화재가 해외에 유출되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역사의 비극이고 국력이 약한 탓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있는 문화재 중에서도 자칫 유실될 뻔한 것을 목숨까지 걸고 지켜낸 존재와 인물에 관한 것이다. 모두 열세편의 문화유물이야기가 담겨있다. 임진왜란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비들,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회수한 경천사십층탑,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수집, 만신창이가 된 광화문, 안용복이 지킨 독도,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 일본땅에서 끝내 화재로 소실된 경복궁 자선당, 독일에서 돌아온 겸재화첩, 야스쿠니의 북관대첩비, 남아있는 덕수궁, 625전쟁때 지켜진 고찰들, 도둑맞은 건봉사 진신사리, 건설현장에서 살아남은 노거수들 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유물들은 각각 존재와 가치를 알아내고 온 힘을 다해 이를 지켜낸 사람들 때문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게 되었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지 않은 일이다. 경천사십층석탑은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현관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원래 유물이란 제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경천사는 개성에 있던 절이었으니 차라리 홀로 박물관에 보존된 것이 다행이지도 모른다. 1348년에 세워져서 후일 원각사 십층탑의 모델이 된 탑이다. 국사교과서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탑이라고 설명이 되었듯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대리석십층탑이고 층마다 기와지붕의 모양으로 조각되어있다. 이탑은 1907년 우리나라에 온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그 자태를 탐내 무단으로 주민들을 협박하여 탑을 해체 일본으로 실어갔다. 이를 안 영국인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이에 호응하여 일본의 영자신문에 비판기사를 실어 약탈행위를 고발했다. 사실이 외국에도 알려지고 일본내에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자 마침내 1918년 다나카는 탑을 한국에 반환하게 된다. 석탑은 많은 부분 훼손되어 경복궁앞뜰에 방치되었다가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고 1995년 본격적인 해체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경복궁에는 동궁의 침전인 자선당이 있다. 1430년 건립되어 임진란대도 살아남았던 몇 안되는 전각이다. 1915년 데라우치총독이 총독부건물을 짓기 위해 경복궁을 마구 훼손하던 당시에 많은 수의 전각이 일본과 민간에 팔려나갔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새로 지을 때 330여동의 전각이 있었는데 일제시기에 200여동이 헐리고 팔려나갓다. 자선당은 오쿠라 기하치로(일제기 일본의 거상으로 선린상고의 설립자고 동경에 오쿠라슈코칸이라는 사설 박물관을 건립했다. 우리나라에서 악명높은 문화재 약탈범 오쿠라는 두명인데 오쿠라재벌 오쿠라호텔설립자 격인 오쿠라 기하치로는 성이 大倉이라 오오쿠라 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명의 오쿠라는 오쿠라 다케노스케인데 성이 小倉으로 우리 약탈문화재로 가득한 오쿠라컬렉션의 주인이며 오오쿠라와 구별하여 오구라라고 부르기도한다. 둘다 악질이다.) 에게 팔려 동경의 자기집 안에 재조립되어 사설 박물관 조선관으로 사용되었다. 미국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자선당의 온돌방식에 감탄하고 이후 그가 설계한 집에 온돌난방방식을 적용했다는 여담도 실려있다. 이 자선당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불타버리고 잔해만 남게 되었다. 목원대 교수 김정동은 일본에서 공부하던중 오쿠라가 자선당을 뜯어갔다는 내용을 접하고 그 흔적을 쫒았다. 오쿠라호텔을 찾아가 정원 한구석에서 기단과 주추만 남은 건물터를 발견하고 이를 국내 학계에 공개하였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큰 관심을 받아 1996년 유구만 남은 자선당을 한국으로 옮기게 되었다. 110톤의 유구는 경복궁으로 돌아와 지금 건청궁옆에 보존되어 있다. 비극이자 코미디다.
![]() 임진왜란시 정문부장군의 공적을 기록한 북관대첩비는 함경도 길주에 있던 것을 러일전쟁당시 일본군 2사단이 치욕스럽다며 뽑아서 일본으로 가져갔고 연유를 알수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는데 1909년 조소앙이 처음 비석의 존재를 알렸고 1978년 재일학자 최서면이 이를 공개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해주정씨 문중과 외무부를 비롯 다양한 경로로 비의 반환촉구운동이 전재되었고 남한과 북한가 일본의 불교계가 협동하여 2005년 국내로 반환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 비는 국립박물관에서 복원과 보존처리를 하고 2006년 3월 북한으로 인도되어 현재 김책시 임명리에 설치되어있다. 이외에도 기가 막히거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유물과 고마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지금 유출 문화재 환수를 위한 민간단체로는 혜문스님의 문화재제자리찾기 가 유명하고 정부에서도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을 설립하여 여러 방면으로 유물문화재의 회수에 힘쓰고 있다. 관심과 적극적 행동, 나아가 국력만이 우리것을 되찾는 길이다. 프랑스에서 돌려준다고 약속한 것조차 주지 않고 버티는 현실인데 과연 중국에도 그렇게 했을까 의심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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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유명한 것 중에는 남산 아래 이순신 장군 동상만큼이나 중요한 광화문이 있다. 그런데 이 광화문도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 때 대원군의 경복궁 재건 시 함께 세워졌다가 다시 일본 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안에 지으면서 허물게 된 것을 일본인 야나기의 움직임으로 겨우 자리를 옮겨지게 되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리문화를 사랑 했다지만, 많은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 한 인물이기에 평가는 조심스럽가 만하다. 어쨌든 광화문의 운명은 살아 있을 수는 있었다. 한나라의 왕궁이, 한 나라의 소중한 건축물이 수모를 당해야 되는 역사가 한탄스럽기 만하다. 이런 사례가 빈번하니 이런 수난의 역사에서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야겠다.
근현대사 역사의 격량 속에서 견뎌온 문화재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겪었다. 서울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숭례문이 어이없게도 화재로 소실이 되어, 새로 세워진다고 해도 이미 문화재에 대한 빛은 잃어버린 아쉬움만 남는 일이다. 공기의 고마움을 잊었듯이 늘 보는 문화재의 중요성을 놓쳐버린 한 순간의 실수라지만, 허망한 일에서 각성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물어진 경복궁은 다시 복원되어 옛 위용을 다시 찾으려 한다지만, 그 숨결이 느껴 질 지는 의문이다. 광화문이 다시 우리 손으로 목조가 아닌 시멘트로 범벅이 되는 우를 범하는 사례에서, 진정한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요구 된다. 야나기 무네요시나 설의식 같은 문화재를 예찬하고 아끼는 정신이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느낀다. 다시는 문화재가 수난당하지 않게 지켜내려는 훌륭한 사례에 관심을 키워야겠다.
이 책 <수난의 문화재> 이를 겪어낸 인물 이야기/ 문화재 청 엮음 / 눌와 / (2008. 6 월 발행)은, 수많은 외침과 전쟁에서 문화재를 지키려고 애쓴 인물의 열정과 자긍심을 느껴보는 책이다. 침략과 약탈의 역사를 돌아보며, 문화재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민족 문화를 지켜낸 감동적인 이야기 13 편의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지금은 국립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경천사 십층 탑의 위용을 보며, 일본의 약탈이 과연 얼마나 큰 것인지, 민족의 수난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한다. 이렇게 큰 사탑도 분해해서 옮겨 가는 약탈을 일삼은 것을 본다면, 그보다 작은 도자기며 금동 불, 회화, 도서 등의 약탈 사례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경복궁 자선당, 북관 대첩비, 겸재화첩의 사례도 힘들게 이뤄낸 수난 문화재의 역사이다. 임진왜란 때 지켜내려고 애쓰던 조선 왕조 실록이 다시 우리 손으로 오기에는 힘든 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아울러 아직도 우리 곁에 오지 못한 많은 문화재의 회귀를 기대하며,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국력이 더욱 커져야하고, 전 국민의 문화재 사랑이 앞서야겠다.
"인간과 짐승을 가장 두드러지게 구분해 주는 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야. 그런 의미에서 한 나라의 문화재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주체성과 정신적 가치가 깃든 일종의 유산이지 즉 우리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함축된 유산이란 말일세." - P50, 간송 전형필 -
이 책에서 만나는 간송 전형필의 문화 애국 하는 길을 택한 아름다움은, 칭송받을 만 한 분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파리에서 직지와 의궤를 발견하였던 박병선의 사례도 훌륭하다. 우리의 찬란했던 인쇄문화의 실상을 확인한 직지의 진가를 널리 알린 공로를 높이 사고 싶다. 이런 고마운 사례를 널리 알리는 일도 우리가 해야 할 문화재 사랑일 것이다.
수난의 사례를 보인 약탈 문화재는, 일본 뿐 아니라 프랑스 등의 여러 나라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더욱 적극적인 반환 독촉이 필요하고, 원활한 반환을 위해서 미 해병박물관에서 신미양요 때 가져간 수장기를 반환이 아닌 10년간 장기 대여 식으로 다시 들여온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외규장각 도서 등 가급적이면 많은 문화재가 다시 돌아와 문화재 연구와 사랑이 꽃 피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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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서 저걸 어쩌나 싶었는데 그게 반짝 관심이었던지 한동안 잊고 살았다. " 국보 1호 숭례문"을... 한동안 "정도전 예언"이라는 검색어와 함께 민심을 뒤숭숭하게 했던 숭례문 방화 사건이 발생한 것이 지난 2월. 지금 숭례문은 어떤 모습인지가 새삼 궁금해지는 건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보호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이 책 [수난의 문화재] 덕분이다.
[수난의 문화재]를 읽으며, 숭례문 말고도 수많은 문화재들이 그간 국민들의 관심 밖에서 파괴되거나 방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엮은 이 책에는 위기에 처했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소개와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더러는 주워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지만, 잘 몰랐던 이야기들도 많이 있어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것이 많다. 멀게는 임진왜란 당시 실록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안의와 손홍록의 이야기로부터 가깝게는 북관대첩비 반환에 이르는 이야기까지.. 눈에 보이는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 새삼스레 놀랍고 반갑다.
"현재 일본,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국외로 약탈되거나 유출된 우리 문화재가 7만 5,000여 점이라고"(p118)한다. 그리고 "이 중 환수된 문화재는 7,878점으로 6.4퍼센트에 불과"(p121)하단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일제 강점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약탈 당한 문화재들이 100여년이 다 지나가도록 아직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나마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문화재들마저 관리 소홀로 사라져가고 있음은 더욱 안타깝지만, 다행히 이 책에 소개된 바와 같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 반갑고 고맙다.
현 "간송미술관"의 토대를 마련한 간송 전형필의 이야기는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조선 최고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호사와 안락한 생활이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p65)고. "독립투사의 애국심 못지않게 민족문화와 문화재 수집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외곬으로 묵묵히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p65)다. 졸부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훼손되는 것을"(p49) 막기 위해 자신의 부와 생애를 바쳤던 그의 이야기를 통해 물질에의 탐욕을 누른 정신의 승리가 아닐까.. 그러기가 참 어려운데 말이다!
그리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경천사십층석탑을 되찾는데 일조한 일제강점시기의 베델과 헐버트의 노력 또한 고맙기 그지 없는 일. 무식한 고백이지만 경천사십층석탑이 그렇게 일본인에게 강탈당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 소실될 뻔했던 덕수궁(경운궁)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제임스 헤밀턴 딜이라는 미국인 역시 고맙다. 박병선 박사의 직지심체요절 연구와 관련된 이야기, 100여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북관대첩비의 이야기는 가슴이 벅차기조차했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그리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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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문화재를 보면 우리 민족의 얼과 삶의 잔모습들이 그대로 뭍어나 있다. 이런 문화재가 현재 우리세대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마음 한편이 답답함을 금할길이 없다. 이책 '수난의 문화재,이를 지켜낸 인물 이야기'라는 책은 실로 오랜만에 나에게 우리 문화의 잊혀진 뒷모습과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되 짚어준 책이다. 문화재를 지키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사명이지만 그렇게 뜻대로 지켜지지 않음에 부끄러울 따름이다. 문화재는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닿은 과거의 발자취 일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는 얼굴이자 자부심 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통해 역사는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이자 새로운 미래가 되는 것이라고 문화재청장 이건무님은 말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많이 들어왔던 문화재가 있는 반면 역사속으로 묻힐뻔한 문화재도 존재함에 놀라웠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보다 외국에 반출된 문화재가 많은것 또한 가슴이 아픈 부분이다. 거의 강탈이 대부분임에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조선왕조실록을 지키기위해 산에 오른 조선의 선비가 있다.일본에 빼앗긴 실록... 93년만에 일부 47책을 돌려받긴 했지만 도쿄대학은 '기증'이라 주장하고 우리나라는 '반환'이라고 했다는 점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천사십층석탑을 지키기 위해서 두 외국인 저널리스트들의 노력또한 눈물겹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이방인이 우리 문화재 보존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은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소문난 갑부의 아들 간송 또한 역사속에서 주목할 멋진 인물이다. 한평생 호화롭고 편안하게 인생을 보낼수 있었지만 그러한 현실을 마다하고 문화재를 모으는데 전재산을 바쳤다.물론 개인이 소장하려는 욕심이 절대 아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그의 숨은 노력이 지금이라도 빛을보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광화문을 지키기 위한 복원노력이나,독도지키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독도지키기에 대한 일본과의 첨예한 대립은 정말 화가나는게 현실의 모습이다. 안용복또한 독도 지킴이로서 엄청난 외교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에게 돌아온건 상이 아닌 벌이었다니... 이젠 우리국민 모두가 맞서 대응해 보여야 할 때이다. 그리고 얼마전 읽었던 외규장각도서라는 소설이 단지 소설로서 끝나는 의미는 아닐것이다. 더욱 기가막힌것은 북관대첩비가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오랜동안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속의 소중한 문화재를 단지 국가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의 환수 운동이 더해 진다면 더욱 더 좋은 성과를 얻을수 있다고 한다. 해외 유출 문화재의 반환시기에는 유효기간이 없다고 하니 시일이 걸리더라도 환수조치 되어야 할것이다. 얼마전 우리를 놀라게 했던 숭례문 방화사건은 우리의 문화재보존실태에 일침을 가한다. 문화재 환수도 중요하지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의 보존은 우리모두가 심각히 고려해 보았으면 좋겠다. 커다란 은행나무도 보존을 위해 옮겨 심기까지 23억을 투자하고 있는 요즘시대에 버젓이 훼손을 방치하는건 아이러니한 풍경이 아닐수 없다. 한사람의 노력만으로 될일은 아니다. 우리 국민모두가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느끼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책을 읽고나니...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이책을 읽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일본문화에 열광하는 요즘의 청소년들이 좀더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을 평가해 주길 바라고 싶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값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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